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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 믿음의 거짓말

2015.01.15 이선열  |  CIO KR
1954년 어느 날,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레이크시티에 거주하던 가정주부 매리언 키치는 외계의 신으로부터 지구멸망의 계시를 받는다. 메시지의 내용은 무시무시하고 급박했다. 그 해 12월 21일 자정을 기해 대홍수가 일어나 전세계가 가라앉을 것이며, 오직 서낸더라는 이름의 구세주를 믿는 자들만이 구원받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인들에게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고 머지않아 일군의 신도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재산을 정리하고 직장을 그만두며 다가올 종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활동을 주시했고 신도들은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같은 수난은 그들의 신념을 흔들기는커녕 오히려 집단의 결속과 유대를 강화시켰다. 마침내 종말의 밤이 찾아왔다. 신도들은 모두 한 집에 모여 구원의 순간을 기다렸다. 초조와 긴장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물론 대홍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들의 믿음이 산산조각 난 것을 확인한 신도들의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크게 낙담한 듯 보였지만 그들은 곧 구세주의 새로운 메시지를 받아들였다. 실망한 이들에게 당도한 새로운 전갈은 신도들의 정성에 감복한 신께서 세상을 구원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절망의 한숨은 금세 환희의 탄성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열렬히 매스컴과 인터뷰하며 자신의 행동과 믿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설파하고자 했다.

위의 사례는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제창한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유명한 이야기다. 인지 부조화란 한 사람의 내면에 상반된 생각과 태도가 충돌을 일으킬 때 나타나는 심리적 혼란을 말한다. 그처럼 마음 속에 모순이 발생할 때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생각을 조정하여 자아의 일관성을 지키려는 성향이 있다. 종말이 오리라는 믿음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인식이 상충하면서 혼란에 빠진 신도들이 곧 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신념을 고수하려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페스팅거에 따르면, 그들은 정신 나간 이들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며 인간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는 신도들의 선택이 자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온전한 정신을 지키려는 당연한 반응이었다고 본다. 믿음 때문에 집도 팔고 가족마저 버린 그들이 정말로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끝까지 믿음을 고수하는 편이 더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지 부조화의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듣기에 썩 유쾌한 소식은 아니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일상을 조금만 돌아봐도 부정하기 쉽지 않은 결론이다. 우리는 매사에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보다 ‘선택을 합리화하기’에 능숙한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른바 ‘정신승리’에 능한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신승리’란 중국작가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인공 아큐는 불량배에게 실컷 얻어맞고서도 사실은 자기가 이긴 것이라 믿어버리고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심지어 폭력을 모면하려고 ‘나는 벌레’라는 굴욕적인 말을 내뱉으면서도 스스로를 벌레로 인정한 사람은 내가 첫 번째일 것이라며 득의만만해 하는 것이 아큐의 정신승리법이다. 이처럼 현실의 패배를 정신의 승리로 치환하는 아큐의 모습을 통해 루쉰은 변화하는 세계의 실상을 외면한 채 구태의연한 자기만족과 타성에 빠져 있는 20세기초 중국의 병태를 꼬집었다.

아큐와 같이 희화된 모습은 아닐지라도 대개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금연에 실패한 사람들은 흔히 흡연보다 금연의 스트레스가 몸에 더 해롭다는 말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자동차 접촉사고를 겪은 운전자들은 한결같이 나의 부주의보다 상대방의 과실로 사고가 났다고 주장하곤 한다. 자신의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을 곧바로 사실로 간주해 믿어버리는 것이다.

크건 작건 이 같은 자기기만의 유혹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개 인간은 자기가 평균치보다 덜 이기적이고 정직한 성품을 가졌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에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만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것이다. 교육수준이 높고 논리적인 사고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지능을 과대평가하고 합리화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자기 판단을 신뢰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지 않는 새로운 정보를 접하였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사실상 두 가지다. 지금껏 지켜왔던 자신의 믿음을 의심해 보거나, 아니면 새로운 정보의 진위를 의심하거나. 이 때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고정된 관념을 반성하는 일은 많은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 나이가 들수록, 또 그 믿음의 강도가 클수록 자신의 껍질을 깨는 일은 보다 많은 고통과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정보를 무작정 수용해 곧바로 자신의 믿음을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까? 때로 그것은 줏대가 없거나 자존감이 낮은 이들의 전형적인 행태일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상당수는 그 진위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성찰 못지않게 새로운 사실에 대한 검증 역시 중요하다. 특히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것이 단지 사실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가치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예컨대 ‘정직하고 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부정의와 권모술수가 성공한다’는 부인하기 힘든 현실과 모순을 일으킬 때, 더 많은 용기와 자존감이 요구되는 쪽은 현실과의 타협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이다.

신념과 자기합리화의 경계는 모호하고 종종 시험에 들곤 한다. 그럴 적마다 자기기만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견지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나를 속이는 데 가장 뛰어난 명수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 속에 어떤 불협화음이 발생했을 때 나를 잡아끄는 즉각적인 판단은 대체로 나를 기망(欺罔)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안과 밖을 냉철하게 점검하고 살피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쉽게 무망(誣罔)의 상태에 빠지고 만다. 나의 믿음을 부단히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열려 있고자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찰하는 삶의 기본적인 자세일 것이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공군사관학교, 숭실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주로 중국 철학과 한국 유학에 관련된 논문을 쓰고 강의를 해왔으나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윤리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동방사상과 인문정신>(공저)이 있으며 청소년을 위한 고전 시리즈로 박제가의 <북학의>를 편역한 적이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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