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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 천리마론

2012.05.15 김민철  |  CIO KR
Scene 1. 진시황이 죽은 후 곳곳에서 의병들이 봉기한다. 그 중 가장 대표 격이자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주인공 항우는 어느 날 군사를 모아 돌아가던 중, 한 노인에게 부탁을 받는다. 호수에서 용 한 마리가 나와 검은 말로 변하여 동네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부하들은 무시하고 그냥 가자고 했지만, 항우는 용이 변해서 된 말이라면 힘이 좋을 것이라고 말하며 가 보자고 한다. 과연 엄청나게 사나운 검은 말이 횡포를 부리고 있었지만, 항우는 몇 시간의 사투 끝에 드디어 말을 굴복시키고 만다. 중국 역사에서 관우의 적토마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명마인 오추는 그렇게 역사에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항우는, 그 늠름한 모습에 반한 그 마을 유지로부터 딸을 맡아달라는 부탁까지 받아 절세미인을 부인으로 얻게 된다. 그녀가 바로 항우와 더불어 <패왕별희>의 두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우미인이다.

Scene 2.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영화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동네 공터에서 고철이나 돌 따위로 근육질의 몸매를 만들었지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는 포르노 배우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가 쓴 시나리오를 들고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달라며 헐리우드 500개 영화사의 문을 두드렸다. 모든 영화사에서는 그를 미친 놈 취급했고, 그는 무려 1,855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을 통해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바로 <록키>이다. 이는 불세출의 배우 실베스타 스탤론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여섯 살 먹은 딸과 네 살 먹은 아들, 두 아이의 아빠로서 언제나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고마움을 느끼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감사한 것은 아이들이 너무나 튼튼하고 건강하다는 점이다. 이 또래의 두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아이들이 아파 병원에 간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이니 말이다.

필자는 아이들이 경쟁에서 이겨 성공하기보다 행복하기를 바라며, 행복의 제 1 조건은 건강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무엇보다 잘 먹이고, 아이들이 자고 싶은 만큼 자게 한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도시에서 촌으로 이사를 왔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도 보내지 않는다. 물론 아내의 헌신적인 협조가 무엇보다 든든한 지원군이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잘 먹는다. 식당에 가면 여섯 살짜리 딸아이는 밥 한 그릇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추가로 한 그릇을 시켜 반 정도는 더 먹어 줘야 “좀 먹었구나~” 한다. 네 살짜리 둘째도 한 그릇 정도는 뚝딱 한다. 고기집에 가도 둘 다 1인분 이상은 먹는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쌀 소비량도 눈에 띄게 늘었다. 전에는 10Kg짜리 쌀을 샀는데, 이제는 20Kg짜리를 사도 금방 동이 나곤 한다.

아이들이 밥을 많이 먹기 시작할 때,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걱정하던 아내에게 필자는 “괜찮아, 우리 아이들은 천리마니까!”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의 글에 등장하는 천리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곤 했다:


세상 사람들은 천리마가 없음을 한탄하지만, 천리마는 언제나 있다. 단지 (천리마를 식별하는데 탁월한) 백락과 같은 사람이 없을 뿐이다. 천리마는 한 끼에 한 가마니의 곡식을 먹어야 힘을 쓴다. 그리고 재갈을 물려 좁은 우리에 가두어 두어서는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리마를 알아보지 못하고, 매 끼니 허기를 겨우 면할 만큼의 곡식을 주고, 재갈을 물려 몸을 돌리기도 힘들 뿐 아니라 더럽기까지 한 마굿간에 가두어 둔다. 허기지고 스트레스를 받아 힘을 쓰지 못하면 마구 채찍질을 해 가며, “이 비루먹은 말아, 밥값도 못 하냐?”라고 말하곤 한다.

천리마처럼 많이 먹으니, 천리마와 같은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논리이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내 희망은 점차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아프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자유롭게 풀어주고 아무 것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니, 자신들의 잠재 능력을 저절로 발견하여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과 영어를 스스로 깨우치고, 혼자 하모니커와 피아노 연주를 연습하고, 심심풀이로 혼자 끄적인 그림 실력이 웬만한 초등학생 못지 않으며, 이제는 싫다는 엄마를 끌고 운동 삼아 하루에 평균 5Km 가량을 걷곤 한다. 게다가 인사성 밝고 공손하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이라는 지덕체(智德體)를 고루 갖추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감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필자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 필자야말로 천리마를 알아본 사람 아닌가?

요즘 아이들은 서너 살만 되어도 중고생이나 어른 못지 않게 바쁘다. 아침에 일어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녀와서, 홈스쿨 한두 개 정도 하고, 피아노나 미술, 태권도 따위를 배우러 간다.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5km쯤 떨어진 아파트 놀이터에 놀러 가도, 노는 아이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촌에서도 이 정도이니 도시는 말할 것도 없다. 영어 조기교육이다 뭐다 해서 정신이 없다.

2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쳐 온 나로서는 한국 교육의 위대함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하곤 한다. 모든 학생들을 벽돌처럼 똑같이 찍어내는 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학생들과 토론 수업을 하다 보면, 중고생은 물론이고 대학생까지도 똑 같은 문제에 대해 똑 같은 대답을 하곤 한다. 심지어는 그들이 제시하는 사례까지 똑 같다. 어릴 때부터 정형화된 교육 패턴에 억지로 끼워 맞추어진 아이들 가운데, 설사 천리마의 재능을 가진 아이가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천리마는 그 재주를 알아보아 주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비로소 천리마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보잘 것 없는 말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오추마가 항우를 만나지 못했다면 사냥꾼의 손에 죽어갔을 것이고, 실베스타 스탤론도 자신을 알아주는 제작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름 없는 포르노 배우로 끝났을 것이다.   

최근 국내 굴지의 기업이자 세계적으로 한국보다 더 유명한 대기업의 연구원들이 IT 분야의 유명 회사로 이직하는 일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혹자는 편한 근무 환경만을 찾아가는 부정적 현상이라고 비난하지만, 연구원들마저 야근과 특근을 밥먹듯이 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아무리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선생님들이나 직장 고위층들은 항상 “요즘은 쓸 만한 놈들이 없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의 좁은 안목을 드러내는 말일 뿐이다. 운동계의 경우 한 프로구단에서 찬밥 신세인 선수가 자신을 알아 주는 감독을 만나 대 스타로 거듭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천리마는 항상 있다. 천리마를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드물 뿐인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하였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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