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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교양

인문학 |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2014.10.14 이선열   |  CIO KR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부끄러움을 느낄까? 대개 뭔가 망신스런 일을 당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기 마련일 것이다. 예컨대 지하철에서 꾸벅 졸다 침을 흘렸다거나 조용한 도서관에서 큰 소리로 방귀를 뀌었다면, 나는 순간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이 때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당혹스러움’의 감정에 가깝다. 창피하여 얼굴이 무척 화끈거리겠지만 그렇다고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을 느끼진 않으리라.
그런데 그와 달리 공금횡령이나 성추행이 들통 나서 만천하에 드러난 경우라면 어떨까? 주변의 친구는 물론 가족조차 “아빠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면서 나를 비난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나는 부끄러울 것이다. 이 때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단순한 당혹감이 아닌 ‘수치심’에 가깝다. 그러한 부끄러움은 모종의 도덕관념과 결부되어 있으며 죄의식을 동반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는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물론 그런 행동을 저지를 때는 둔감하다가 들통 날 경우에 비로소 부끄러움을 느끼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어떤 종류의 부끄러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덕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독교 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최초의 남자와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고서는 벌거벗은 몸을 부끄럽게 여겨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인간이 선악(善惡)을 구분하는 도덕의식을 가지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이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인간이 선악과를 통해 도덕성을 획득하자마자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 바로 ‘부끄러움’이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창세기 신화는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의식의 발현이 부끄러움의 감정과 무관치 않음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한다. (다만 벌거벗은 몸은 딱히 죄짓는 일이 아니거늘 왜 선악과를 먹고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의문스럽긴 하지만.)

동양의 사상가 중에도 부끄러움을 인간의 도덕성과 연관된 감정으로 주목한 이가 있었다. 맹자는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내재된 도덕 감정을 네 가지로 제시한 바 있는데, 그가 말한 사단(四端) 가운데 ‘수오지심’이 바로 부끄러움의 감정과 관련된다. 수오지심이란 도덕적으로 바르지 않은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즉 자신이 저지른 부도덕한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타인의 악행에 분노를 느끼는 마음이 수오지심이다. 맹자는 그것이 누구나 느끼는 인지상정이며, 이를 발단으로 삼아 인간은 선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맹자의 생각을 발전시킨 조선의 유학자 다산 정약용 역시 부끄러움을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감정으로 이해했다. 그에 따르면 남의 물건을 훔친 도둑도 자기 아들에게는 “사정이 절박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음탕한 짓을 벌인 남녀 또한 “우리가 하늘에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는 모두 속으로 부도덕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있기에 나타나는 반응이다. 또 불효자나 음란한 여자도 누군가 그들더러 참 효자로구나, 참 정숙한 여인이네 라고 칭찬하면 기뻐하고, 악덕을 일삼는 탐관오리조차 아랫사람이 청백리라고 아첨하면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들 또한 내심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도덕한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들조차 속으로는 그것을 떳떳이 여기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 정약용은 이 같은 사례를 들어 사람이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임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옛 생각에 비추어 본다면, 인간이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안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도덕적 관념을 지닌 존재라는 말과 상통할 것이다. 지구상에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또 다른 생명체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도덕관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도덕적인 행동의 실천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존재(homo moralis)로서의 인간’이라는 명제는 하나의 종(種)으로서 인간이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할 뿐, 그가 반드시 선한 행위를 하는 존재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선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변명을 한다. 변명은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인지할 때 표출되는, 부끄러움에서 비롯되는 자기방어적 반응이다. 자신의 악행에 대해 변명이라도 하는 사람은 최소한 변명을 할 만큼의 부끄러움이나마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현실세계를 살면서 우리는 인간이 저지르는 비리와 악행을 지겹도록 목격한다. 그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 비리와 악덕이 판치는 표면적인 현상 이면에 진정 우려되는 바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부끄러움을 상실해간다는 점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는 도덕적 위반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뻔뻔함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듯하다. 버젓이 인권을 유린하고 보란 듯이 약자를 조롱하며 거리낌 없이 불법을 자행하면서도 아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자들이 권세를 휘두른다. 그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도 변명하기는커녕 당당하기 그지없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힘의 논리 앞에 악행과 부도덕은 더 이상 은밀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것이 되어간다. 오히려 보란 듯이 행하는 악덕과 부도덕은 내가 그 정도의 힘과 권위를 가졌음을 과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 듯하다.

백주대낮에 버젓이 드러난 악덕이 더 이상 부끄러움을 일으키지 못하는 사회에서 과연 도덕이란 무엇이며 정의란 무엇인가. 이제 사람들은 힘없는 것이 부끄럽고 못 가진 것이 부끄러워진다. 빼앗은 자는 당당하고 빼앗긴 자가 부끄러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선(善)이 아니라 힘이며, 비난받아야 할 것은 악(惡)이 아니라 약(弱)이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일그러진 실상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가치전도가 만연해진 것이 단지 힘 있는 자들의 패악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현실을 묵묵히 수긍하며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도덕의 복권을 바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강자의 대열에 서기를 희구하는 욕망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부끄러움의 마비는 도덕적 판단능력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부끄러워야 할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도덕적 존재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극한 상황으로 내몰린 인간은 부끄러움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전쟁이나 재해 등으로 삶의 조건이 급박해질 때 금세 자신에 대한 존엄과 타인에 대한 예의를 외면하는 것이 인간의 취약한 본성이다. 어쩌면 한국 사회가 부끄러움을 잃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처지가 재난 상황에 가까워짐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사람이 만들어내는 참화(慘禍)요 인재(人災)일 것이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공군사관학교, 숭실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주로 중국 철학과 한국 유학에 관련된 논문을 쓰고 강의를 해왔으나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윤리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동방사상과 인문정신>(공저)이 있으며 청소년을 위한 고전 시리즈로 박제가의 <북학의>를 편역한 적이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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