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번역 및 네이버 파파고의 경쟁 서비스를 운영하는 ‘딥엘(DeepL)’이 올 8월 보안 기능 및 API를 포함한 ‘딥엘 프로(Pro)’ 출시하며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하겠다고 9일 밝혔다.
독일에서 2017년 설립된 딥엘은 올 1월에 한국어 번역 서비스를 공식 출시했다. 현재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무료 버전인데, 유료 버전인 딥엘 프로(DeepL Pro)는 아직 한국 사용자가 이용할 수 없다.
딥엘의 창업자 겸 CEO인 야렉 쿠틸로브스키(Jarek Kutylowski)는 “한국 자체는 인구가 작은 시장지만 한국어 번역 수요는 매우 높다는 것을 파악했다. 또한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복잡하고,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은 사용자가 한국에 많아 이번에 공식적으로 시장 진출을 결정했다”라며 “개인적으로 향후 한국어가 전 세계 5대 번역 시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서비스는 공식 제공되지만 딥엘은 직접 한국 지사를 직접 세우거나 한국인 직원을 채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결정된 부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딥엘 무료 버전과 유료 버전 사이에서 번역 품질의 차이는 없다. 다만 딥엘 무료 버전은 한 번에 번역할 수 있는 분량이 정해져 있고, 문서를 통째로 번역할 때도 업로드 개수가 제한돼 있다. 딥엘 유료 버전인 프로 서비스는 분량을 무제한으로 늘려주고, API를 이용해 특정 서비스에 딥엘의 번역 기능을 통합할 수 있다. 서비스 속도도 더 빠르다. 가격은 미국 기준 월 8~57달러다.
프로 버전에서 눈에 띄는 기능은 데이터 보호이다. 현재 유료 버전의 경우 사용자가 입력한 데이터는 암호화해서 일시 저장하고, 번역이 완료되면 즉각 삭제하며, AI 모델 훈련에도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딥엘은 자체 데이터 센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유료 버전에서 입력되는 데이터는 외부 클라우드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 데이터 센터를 통해서만 처리한다. 반대로 무료 버전의 경우 딥엘의 기술 연구에 활용할 수 있으니 민감한 데이터는 올리지 않아야 한다.
쿠틸로브스키 CEO는 “딥엘뿐만 아니라 AI 기반 번역 서비스는 무료 버전에 올라온 데이터를 내부 기술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고 있으며, 딥엘도 각 나라의 법률을 따르는 수준으로 데이터를 수집 및 활용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유료 버전에서 의미 있는 기능은 맞춤 번역 기능이다. 사용자 혹은 기업 입장에서 자주 쓰는 표현, 단어, 문체가 있다면 이를 훈련시켜 맞춤 번역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쿠틸로브스키 CEO는 “이미 유료 버전이 출시된 다른 나라를 보면 산업 구분 없이 다양한 곳에서 프로 서비스가 활용되고 있다”라며 “법률 산업 같이 방대한 자료를 읽고 활용 하는 분야에서 딥엘 프로가 자주 쓰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간담회에서는 언론사 닛케이(Nikkei)가 번역 및 내부 자료를 조사를 위해 쓰는 경우와 웹사이트 제작 솔루션 업체 위글롯(Weglot)이 콘텐츠 번역 기능을 제공하기 딥엘 프로를 활용하는 사례를 공개했다.
딥엘은 마케팅 슬로건이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번역기(The world's most accurate translator)’일 정도로 번역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서비스는 겉으로 보면 구글 번역기 혹은 파파고와 큰 차이 없지만 번역 품질은 기존 번역기보다 번역투가 덜하고 조금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딥엘이 구글 번역기보다 최대 6배 더 높은 정확성을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기도 한다. 해당 수치에 대해 쿠틸로브스키 CEO는 “따로 전문 기관이 조사한 것은 아니고 내부 사용자 테스트를 통해 얻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딥엘이 어떻게 구글과 견주는 높은 번역 품질을 구현할 수 있었는지 여러 번 질문이 이어졌지만 핵심 기밀이란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쿠틸로브스키 CEO는 “나도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한 사람으로서 정말 말하고 싶지만 대형 기업과 경쟁하는 입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핵심 역량과 관련된 수치나 자세한 기술을 공유하기 어렵다”라며 “번역만을 위한 특수한 모델을 만들고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노력했다”라고 설명했다.
AI 학습에 사용한 한국어 데이터의 경우, 인터넷에서 수집했으며 이를 위해 번역을 자동으로 발견하고 품질을 평가하는 전문 크롤러를 개발했다고 한다. 쿠틸로브스키는 “좋은 번역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데이터의 절대적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번역이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AI 기업으로 운영하고 하는 입장에서 쿠틸로브스키는 AI 관련 규제나 일자리에 대한 생각도 공유했다. 쿠틸로브스키는 “AI를 분별력 있고, 책임감 있게 쓰려면 규제는 어느 정도 필요하며, 지속적으로 연구와 혁신도 필요하다. 가령 의료 시장에서 의사 결정을 하려고 할 때 AI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동시에 사람이 통제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며 “개인적으로 규제와 혁신의 중간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의사결정을 AI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보다는 AI의 장점을 현명하게 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번역가의 역할에 대해서는 그는 “향후 AI 번역 서비스 품질이 늘어나면서 번역가는 이제 AI 툴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AI 툴로 업무의 효율성이 높이고 자신만의 활용법도 만들어야 한다. 딥엘에서도 번역가를 고용할 때도 언어 능력뿐만 아니라 AI 및 각종 도구를 잘 다루는지 함께 본다”라며 “어떤 번역 업무는 이제 AI로 충분히 처리가 가능할 것이고, 개인화나 품질을 더 높이는 과정에서 사람 번역가가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AI가 작업의 가장 지루한 부분을 수행하고, 사람은 흥미로운 부분을 맡아서 기술과 사람 사이에 큰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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