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19

칼럼 | 구글 리더와 갤럭시 S4··· 강요 당하는 불편한 혁신

Mike Elgan | Computerworld
최근 구글이 클라우드 기반 RSS 리더인 구글 리더(Google Reader)를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많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부는 구글이 마음을 돌릴 것을 호소하거나 서명 운동을 벌였고 다른 이들은 서둘러 대체 서비스를 모색하는 등 바쁜 움직임을 보여줬다.

구글 리더는 여러 RSS 리더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물론 가장 큰 규모이기는 하다), 사용자들은 구글의 이번 행동으로 RSS 포맷 자체가 위협 받지는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RSS를 유지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최근의 사회적 통념은(그다지 현명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RSS를 진부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트위터와 같은 소셜 기술들이 이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테크크런치(Techcrunch)는 ‘트위터는 거대한 RSS 리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위터는 거대한 RSS 리더가 아니다. RSS는 사용자가 통제하는 것이지만 트위터는 타인이 통제한다. 실제로 사용자가 구글 리더와 완전히 동일한 컨텐츠 소스들만을 구독하기 위한 트위터 계정을 개설한다 해도 보기 옵션이나 기능성 등의 트위터와 관련한 모든 요소들은 궁극적으로 트위터의 통제를 받게 된다. 따라서 구글리더와 트위터는 표면적으로는 유사한 콘텐츠 스트림을 제공하지만 사실 그 본질은 정 반대의 성격을 띠고 있다.
 
구글 리더와 RSS 팬들이 우려하는 것은 좋은 서비스와 멋진 포맷의 실종이 아니다. 그들은 통제권의 상실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읽고, 보고, 듣게 되는지에 관한 결정이 비밀스런 알고리즘과 소셜 미디어 대중의 변덕에 의해 좌우되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근거 없는 불안일까. 그렇지 않다. 사용자로부터 통제 권한을 빼앗는 것은 모든 산업에서 나타나는 과정이다.
삼성의 모호한 UI 그리고 MS의 키넥트 
컴퓨터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 User Interface)는 더 사용자 친화적이고 더 정교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그러나 사용이 쉬워질수록 통제는 어려워진다. 명령행은 사용자들에게 완벽한 통제권을 제공해줬다. 옳은 명령어를 입력하면 기기는 기대한 작업을 정확하게 수행했다. 반면 그래픽 UI는 조금 모호했다. 마우스를 조금만 잘 못 움직이면 선택해야 할 아이콘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멀티터치(Multitouch) UI는 이보다 더 부정확하다. 탭이나 제스처를 실수하는 것은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는 일이다. 핀치나 줌 역시 한 번에 완벽하게 맞춰지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본래 용도 자체가 대략적 크기 조정이라 보는 편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스크롤은 또 어떤가, 한 번 미끄러진 스크롤이 어느 지점에에 가서 멈출지를 맞추는 이가 있다면 '달인 열전'에 나가도 될 것이다.
 
이번 주 삼성은 두 개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해 스마트폰 UI에 한 번 더 혁신을 가져왔다. 새로 발표한 삼성 갤럭시 S4(Samsung Galaxy S4)에 탑재된 동공 추적 기능이 첫 번째 혁신이다. 이 기능은 사용자가 웹 페이지를 바라보며 휴대폰을 기울이면 자동으로 스크롤을 내려주고 또 비디오를 보다 눈을 돌리면 자동으로 영상을 일시 정지한다. 터치와 관련해서는 터치의 필요성을 없애는 혁신이 이뤄졌다. 이 새로운 기능은 사용자가 스크린을 터치하지 않고도 스크린 위에 손가락을 올리는 것 만으로 폴더와 이메일, 사진 갤러리를 볼 수 있다.
 
모두 정말 멋진 기술이고 동작 역시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기능과 편리함 역시 사용자의 통제권을 희생함으로써 얻어진 결과다. 이제 사용자들은 실수로 휴대폰을 기울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영상 속의 음악만을 듣고 싶어도 화면에서 눈을 떼면 안된다.
 
편리함과 기능을 위해 통제권을 빼앗은 또 하나의 UI 진보 사례에는 엑스박스 360용 키넥트(Kinect for Xbox 360)의 인-에어 제스처(In-air gesture) 콘트롤이나 립 모션(Leap Motion)이 개발한 정교한 기술 등이 있다. 모두 멋진 기술이지만 컴퓨터 UI에 새로운 수준의 부정확성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구글 개인화 검색
검색 테크놀로지는 그 무엇보다 정확성을 추구해왔다. 지금까지의 검색 엔진은 자체 매트릭스 지표에 기반해 사용자가 입력한 특정 명령어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검색 기능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즉, 사용자의 통제권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 필자가 어떤 검색 엔진에 필자의 이름인 'Elgan'을 입력하면 정확히 일치하는 결과만 보여줬다. 그러나 이제는 검색 엔진이 자체 판단으로 오타를 입력했을 가능성까지 고려해 더 자주 검색되는 단어인 도시 이름 ‘Elgin’에 대한 검색 결과를 함께 보여준다.
 
개인화 역시 우리가 살펴봐야 할 또 다른 혁신이다. 구글 개인화 검색(Google Personalized Search)이 대표적이다. 개인화 검색을 통해 구글은 사용자가 어떤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의 과거 검색 기록이나 현재 위치, 거주지, 또는 사용자의 유투브, 구글+(Google+), 지메일 활동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검색 결과를 출력한다.
 
즉 사용자가 구글을 통해 검색한 결과는 그 사용자의 특성이 반영된 하나뿐인 결과물이고 다른 이가 동일한 검색어를 입력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결과물에는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제 검색 결과에 대한 통제권은 사용자가 아닌, 구글 알고리즘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페이스북 엣지랭크 그리고 자동완성
소셜 네트워크의 설계는 점점 더 사용자로부터 결정권을 빼앗아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팔로우하는 인물이나 페이지가 많아질수록 사용자의 뉴스피드는 그들이 업데이트하는 상태와 컨텐츠들로 정신이 없다. 이로 인한 사용자들의 피로를 막기 위해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들은 그들의 알고리즘을 이용해 우리에게 보여줄 컨텐츠를 편집해 제시한다.
 
예를 들어 닥터페퍼(Dr Pepper) 애호가가 해당 기업의 상태 업데이트를 구독하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 속 ‘좋아요'를 클릭해도 그들이 업데이트하는 모든 컨텐츠가 뉴스피드에 표시되지는 않는다. 페이스북의 엣지랭크(EdgeRank) 알고리즘이 자체 편집 과정을 거쳐 컨텐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의 지식과 노력을 갖춘다면 열람하는 정보들에 관한 통제권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나의 포스트를 받아볼 수 있을지에 관한 통제는 여전히 어렵다.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로서 우리는 우리에게 전달되는, 또 우리가 생산하는 스트림을 통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역할은 비밀스런 알고리즘과 공개되지 않은 기준이 대신하고 있다.
 
또 다른 편리한 진보는 자동완성과 그것의 악명 높은 친척인 '자동수정'이다. 두 작업은 모두 사용자가 입력하고자 하는 내용을 유추하는 정교한 소프트웨어에 의해 이뤄진다. 그러나 자동완성과 자동수정을 통해 입력된 우스운 검색어 만을 모아둔 블로그가 있을 정도로 이는 꽤 높은 실패율을 보여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컴퓨팅 그 자체
자체 데이터 파일 생성과 관리와 같은 일반적 컴퓨팅 작업에서도 사용자의 통제권은 줄어들고 있다. 이 역시 혁신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컴퓨팅을 정의하는 두 대표적 컨셉을 꼽으라면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과 포스트 PC 컴퓨팅(post-PC computing) 모델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사용자의 통제를 벗어나 애플리케이션과 파일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 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진 기술이다. ‘클라우드'라는 단어는 세부적인 사항들이 알려지지 않은, 그리고 이들 세부 사항에 대한 지식이 불필요한 복잡한 시스템의 네트워크 다이어그램(network diagram) 표상과 관련된 어휘이다. 즉 사용자가 ‘클라우드’에 개인 금융 정보나 데이터를 업로드하면 그 세부 사항들의 관리는 다른 누군가가 맡게 되는 것이다.
 
포스트 PC 패러다임의 단적인 사례는 애플의 아이패드다.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는 기기 안에 저장된 자신의 파일에 관한 정보나 접근 과정을 관리하지 않아도 되고 결과적으로 이 파일들의 위치와 관리 통제권을 확보하지 못한다. 
 
사용자 통제권이 사라지는 오늘날의 경향이 나쁘다는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혁신은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한 것들이다. 사용 편의성을 높이고 복잡성을 줄이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혁신들이 한데 모여 결과적으로 사용자들이 모든 통제권을 상실하게 된다면 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될 것이다. 사용자의 통제권이 서비스 혹은 이를 운영하는 기업들로 넘어가는 현상이 사용자와 기업 중 누구에게 더 이익이 되는지 역시 의문이 가는 점이다.
 
다시 한 번 구글 리더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사용자들이 구글에게 표출하는 우려는 이들마저도 사용자 중심의 콘텐츠 스트림을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는 스트림으로 바꿔가려 한다는 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구글의 비즈니스 역시 그 핵심은 알고리즘에 있다. 이것이 구글의 혁신과 지적 자산, 그리고 거래 기밀의 근간이며 그들을 시장 최고의 업체로 만들어준 비밀이다. 그들에게 사용자의 통제권이란 멋진 말이지만 돈이 되지는 않는 개념인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통제권을 지켜내고자 하려면 이를 위한 싸움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의 시작은 우리의 통제권을 앗아가려는 거대한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 역시 기억하자. editor@idg.co.kr



2013.03.19

칼럼 | 구글 리더와 갤럭시 S4··· 강요 당하는 불편한 혁신

Mike Elgan | Computerworld
최근 구글이 클라우드 기반 RSS 리더인 구글 리더(Google Reader)를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많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부는 구글이 마음을 돌릴 것을 호소하거나 서명 운동을 벌였고 다른 이들은 서둘러 대체 서비스를 모색하는 등 바쁜 움직임을 보여줬다.

구글 리더는 여러 RSS 리더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물론 가장 큰 규모이기는 하다), 사용자들은 구글의 이번 행동으로 RSS 포맷 자체가 위협 받지는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RSS를 유지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최근의 사회적 통념은(그다지 현명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RSS를 진부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트위터와 같은 소셜 기술들이 이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테크크런치(Techcrunch)는 ‘트위터는 거대한 RSS 리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위터는 거대한 RSS 리더가 아니다. RSS는 사용자가 통제하는 것이지만 트위터는 타인이 통제한다. 실제로 사용자가 구글 리더와 완전히 동일한 컨텐츠 소스들만을 구독하기 위한 트위터 계정을 개설한다 해도 보기 옵션이나 기능성 등의 트위터와 관련한 모든 요소들은 궁극적으로 트위터의 통제를 받게 된다. 따라서 구글리더와 트위터는 표면적으로는 유사한 콘텐츠 스트림을 제공하지만 사실 그 본질은 정 반대의 성격을 띠고 있다.
 
구글 리더와 RSS 팬들이 우려하는 것은 좋은 서비스와 멋진 포맷의 실종이 아니다. 그들은 통제권의 상실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읽고, 보고, 듣게 되는지에 관한 결정이 비밀스런 알고리즘과 소셜 미디어 대중의 변덕에 의해 좌우되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근거 없는 불안일까. 그렇지 않다. 사용자로부터 통제 권한을 빼앗는 것은 모든 산업에서 나타나는 과정이다.
삼성의 모호한 UI 그리고 MS의 키넥트 
컴퓨터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 User Interface)는 더 사용자 친화적이고 더 정교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그러나 사용이 쉬워질수록 통제는 어려워진다. 명령행은 사용자들에게 완벽한 통제권을 제공해줬다. 옳은 명령어를 입력하면 기기는 기대한 작업을 정확하게 수행했다. 반면 그래픽 UI는 조금 모호했다. 마우스를 조금만 잘 못 움직이면 선택해야 할 아이콘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멀티터치(Multitouch) UI는 이보다 더 부정확하다. 탭이나 제스처를 실수하는 것은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는 일이다. 핀치나 줌 역시 한 번에 완벽하게 맞춰지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본래 용도 자체가 대략적 크기 조정이라 보는 편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스크롤은 또 어떤가, 한 번 미끄러진 스크롤이 어느 지점에에 가서 멈출지를 맞추는 이가 있다면 '달인 열전'에 나가도 될 것이다.
 
이번 주 삼성은 두 개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해 스마트폰 UI에 한 번 더 혁신을 가져왔다. 새로 발표한 삼성 갤럭시 S4(Samsung Galaxy S4)에 탑재된 동공 추적 기능이 첫 번째 혁신이다. 이 기능은 사용자가 웹 페이지를 바라보며 휴대폰을 기울이면 자동으로 스크롤을 내려주고 또 비디오를 보다 눈을 돌리면 자동으로 영상을 일시 정지한다. 터치와 관련해서는 터치의 필요성을 없애는 혁신이 이뤄졌다. 이 새로운 기능은 사용자가 스크린을 터치하지 않고도 스크린 위에 손가락을 올리는 것 만으로 폴더와 이메일, 사진 갤러리를 볼 수 있다.
 
모두 정말 멋진 기술이고 동작 역시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기능과 편리함 역시 사용자의 통제권을 희생함으로써 얻어진 결과다. 이제 사용자들은 실수로 휴대폰을 기울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영상 속의 음악만을 듣고 싶어도 화면에서 눈을 떼면 안된다.
 
편리함과 기능을 위해 통제권을 빼앗은 또 하나의 UI 진보 사례에는 엑스박스 360용 키넥트(Kinect for Xbox 360)의 인-에어 제스처(In-air gesture) 콘트롤이나 립 모션(Leap Motion)이 개발한 정교한 기술 등이 있다. 모두 멋진 기술이지만 컴퓨터 UI에 새로운 수준의 부정확성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구글 개인화 검색
검색 테크놀로지는 그 무엇보다 정확성을 추구해왔다. 지금까지의 검색 엔진은 자체 매트릭스 지표에 기반해 사용자가 입력한 특정 명령어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검색 기능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즉, 사용자의 통제권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 필자가 어떤 검색 엔진에 필자의 이름인 'Elgan'을 입력하면 정확히 일치하는 결과만 보여줬다. 그러나 이제는 검색 엔진이 자체 판단으로 오타를 입력했을 가능성까지 고려해 더 자주 검색되는 단어인 도시 이름 ‘Elgin’에 대한 검색 결과를 함께 보여준다.
 
개인화 역시 우리가 살펴봐야 할 또 다른 혁신이다. 구글 개인화 검색(Google Personalized Search)이 대표적이다. 개인화 검색을 통해 구글은 사용자가 어떤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의 과거 검색 기록이나 현재 위치, 거주지, 또는 사용자의 유투브, 구글+(Google+), 지메일 활동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검색 결과를 출력한다.
 
즉 사용자가 구글을 통해 검색한 결과는 그 사용자의 특성이 반영된 하나뿐인 결과물이고 다른 이가 동일한 검색어를 입력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결과물에는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제 검색 결과에 대한 통제권은 사용자가 아닌, 구글 알고리즘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페이스북 엣지랭크 그리고 자동완성
소셜 네트워크의 설계는 점점 더 사용자로부터 결정권을 빼앗아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팔로우하는 인물이나 페이지가 많아질수록 사용자의 뉴스피드는 그들이 업데이트하는 상태와 컨텐츠들로 정신이 없다. 이로 인한 사용자들의 피로를 막기 위해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들은 그들의 알고리즘을 이용해 우리에게 보여줄 컨텐츠를 편집해 제시한다.
 
예를 들어 닥터페퍼(Dr Pepper) 애호가가 해당 기업의 상태 업데이트를 구독하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 속 ‘좋아요'를 클릭해도 그들이 업데이트하는 모든 컨텐츠가 뉴스피드에 표시되지는 않는다. 페이스북의 엣지랭크(EdgeRank) 알고리즘이 자체 편집 과정을 거쳐 컨텐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의 지식과 노력을 갖춘다면 열람하는 정보들에 관한 통제권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나의 포스트를 받아볼 수 있을지에 관한 통제는 여전히 어렵다.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로서 우리는 우리에게 전달되는, 또 우리가 생산하는 스트림을 통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역할은 비밀스런 알고리즘과 공개되지 않은 기준이 대신하고 있다.
 
또 다른 편리한 진보는 자동완성과 그것의 악명 높은 친척인 '자동수정'이다. 두 작업은 모두 사용자가 입력하고자 하는 내용을 유추하는 정교한 소프트웨어에 의해 이뤄진다. 그러나 자동완성과 자동수정을 통해 입력된 우스운 검색어 만을 모아둔 블로그가 있을 정도로 이는 꽤 높은 실패율을 보여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컴퓨팅 그 자체
자체 데이터 파일 생성과 관리와 같은 일반적 컴퓨팅 작업에서도 사용자의 통제권은 줄어들고 있다. 이 역시 혁신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컴퓨팅을 정의하는 두 대표적 컨셉을 꼽으라면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과 포스트 PC 컴퓨팅(post-PC computing) 모델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사용자의 통제를 벗어나 애플리케이션과 파일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 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진 기술이다. ‘클라우드'라는 단어는 세부적인 사항들이 알려지지 않은, 그리고 이들 세부 사항에 대한 지식이 불필요한 복잡한 시스템의 네트워크 다이어그램(network diagram) 표상과 관련된 어휘이다. 즉 사용자가 ‘클라우드’에 개인 금융 정보나 데이터를 업로드하면 그 세부 사항들의 관리는 다른 누군가가 맡게 되는 것이다.
 
포스트 PC 패러다임의 단적인 사례는 애플의 아이패드다.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는 기기 안에 저장된 자신의 파일에 관한 정보나 접근 과정을 관리하지 않아도 되고 결과적으로 이 파일들의 위치와 관리 통제권을 확보하지 못한다. 
 
사용자 통제권이 사라지는 오늘날의 경향이 나쁘다는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혁신은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한 것들이다. 사용 편의성을 높이고 복잡성을 줄이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혁신들이 한데 모여 결과적으로 사용자들이 모든 통제권을 상실하게 된다면 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될 것이다. 사용자의 통제권이 서비스 혹은 이를 운영하는 기업들로 넘어가는 현상이 사용자와 기업 중 누구에게 더 이익이 되는지 역시 의문이 가는 점이다.
 
다시 한 번 구글 리더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사용자들이 구글에게 표출하는 우려는 이들마저도 사용자 중심의 콘텐츠 스트림을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는 스트림으로 바꿔가려 한다는 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구글의 비즈니스 역시 그 핵심은 알고리즘에 있다. 이것이 구글의 혁신과 지적 자산, 그리고 거래 기밀의 근간이며 그들을 시장 최고의 업체로 만들어준 비밀이다. 그들에게 사용자의 통제권이란 멋진 말이지만 돈이 되지는 않는 개념인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통제권을 지켜내고자 하려면 이를 위한 싸움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의 시작은 우리의 통제권을 앗아가려는 거대한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 역시 기억하자. editor@idg.co.kr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