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카드기 회사
IBM 이전에 천공카드 기계를 만들어 1890년도 미국 인구 조사를 마무리하는데 도움을 준 미국 헤르만 홀러리드(Herman Hollerith)가 있었다. (1880년 인구조사는 수작업으로 이뤄져서 마무리하는데 7년이나 걸렸다) 1896년 홀러리드는 TMC(Tabulating Machine Company)를 창업해 자신의 제품을 시판했는데, 이는 정부기관과 철도회사들에서 곧바로 인기를 끌었다. 홀러리드의 회사는 1911년 다른 3의 회사와 합병해 CTRC(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ompany)로 이름을 바꾸었다. 산업용 시간 기록계가 당시 매출의 주요 원천이긴 했지만 재고 관리와 회계를 혁명적으로 바꾼 그의 기계가 오늘날 대표작으로 남아있다. 1924년 이 회사의 장기 근속 임원인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이 회장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회사의 이름을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으로 바꿨다. 마지막 IBM 천공카드 기계였던 IBM 407 회계 기계는 1976년까지 판매됐다. (이미지 출처 :Adam Schuster/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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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용 기계 회사
도대체 ‘사무용 기기’가 뭘까? IBM이 지금까지 만든 제품 중 몇몇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이 바로 이 사무용 기기에 포함된다. IBM은 대공황 시기에도 개인 수표를 수월하게 처리하도록 만들어진 가구만한 크기의 기계를 수 백대나 판매했는데 이 기계가 바로 IBM 801 수표 분류기다. IBM의 사무용 기계는 IBM 801만큼이나 이 회사의 대표 상품이었다. 뒤돌아보면 이 기계들은 분명 컴퓨터의 전신으로 그 기계들의 특화된 기능과 기계적인 성격 그 자체만으로도 한 축을 이뤘다. (이미지 출처 :Karl Treier/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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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물자 업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IBM은 미국 내 공장을 전환해 폭격조준기, 총기, 엔진부품 등 군수물자를 만들었다. 전쟁기간 동안 이런 물자들은 단 1%의 이윤만을 붙여 판매되었지만, IBM은 냉전이 심화됨에 따라 군수 부문에서 더욱 탄탄한 사업관계를 계속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IBM은 이 동영상 광고에 나오는 SAGE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이는 미국 영공에 침투하는 모든 것들을 감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였다. (이미지 출처 :YouTube/Nuclear V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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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프레임의 제왕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후에 IBM은 이렇게 기억될 것이다: 1950년대에 IBM 701(원래는 이전 슬라이드에서 언급해야 했겠지만 군수 방어용 계산기였다)로 거대하고 강력한 컴퓨터를 처음 만들었고, 60년대는 다목적 기기인 시스템360(System360)을, 그리고 지금까지 시스템 z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메인프레임은 IBM과 IT업계에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친 반독점법의 대상이었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서 1982년 소송이 각하되었지만, IBM은 이전까지는 한대의 메인프레임을 팔면서 함께 담아내던 하드웨어, 운영체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그때까지 분리했고, 그로 인해 여러 새로운 시장 기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80년대 IBM에서 일했던 마이클 프리쉬버그(Michael Frishberg)는 IBM PC가 엄청나게 잘 팔리던 시기에도 메인프레임 담당부서는 내부적으로 자긍심이 강했고, 회사 안에서 특별히 마련된 자체 업무 영역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미지 출처 :German Federal Archive/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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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 회사
1933년 IBM은 ETI(Electromatic Typewriters Inc.)를 인수했는데, 주요 목적은 이 회사의 특허와 기술적 전문성에 있었다. IBM의 이름을 달고 나온 첫 번째 전기 타자기는 인기상품이었고, 타자기 제품들은 IBM에게 탄탄한 수익을 가져왔다. 1961년 IBM은 셀렉트릭(Selectric) 제품군을 선보였는데, 이 제품의 골프공 같은 모양의 헤드로 인해 사실상 IBM 컴퓨터의 초기 인풋 터미널이자 표준 타자기가 되었다. ASCI의 개발자인 IBM 컴퓨터 과학자 봅 베머는 셀렉트릭 그룹의 타자기에 새로운 표준을 이행하도록 설득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수용되지 않았다. 이는 IBM의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한 부서간의 전형적인 힘겨루기로 기억된다. (이미지 출처 :Oliver Kurmis/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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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제조사
IBM은 70년대 미니컴퓨터 호황을 거의 놓쳤지만, 1982년 PC라고 이름 붙여진 자체 마이크로컴퓨터를 공개하면서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비밀리에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개발된 PC는 거의 전적으로 상용 부품들로 조립돼 가격이 저렴했고, 제품 라인은 단 몇 년 만에 초기 시장을 지배하던 애플, 아타리, 그리고 기타 회사들을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IBM에서 일하던 다이앤 파이퍼는 “워낙 인기 있었던 만큼 관리자들은 이 제품에 아무런 손도 대고 싶어하지 않았다. PC는 새로운 존재였고, 모든 환경이 변하는 것처럼 그런 보수적인 태도의 결과도 좋지 못했다”고 말했다.)
PC의 상용 부품들은 그만큼 모방하기도 쉬웠고, 1988년까지 복제품들이 IBM 제품보다 50% 이상 더 팔려나갔다. OS/2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 당한 패배는 IBM의 소프트웨어를 장악하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됐음을 의미했다. 씽크패드 랩톱 제품 라인은 2000년 대까지 그 고유 특성을 잘 이어갔지만, 이조차도 결국 레노버에 매각됐다. (이미지 출처 :German Federal Archive/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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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제조사
PC 제조사들의 운명적인 결정 중 하나는 IBM의 자체 반도체 노하우 대신 인텔의 칩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전직 IBM 직원인 프리쉬버그는 IBM이 조금 더 과감하게 뛰어들었다면 IBM 칩이 더 널리 보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90년대까지 IBM 반도체는 대량 생산 PC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고, 90년대에는 모토롤라와의 연합하여 설계된 파워PC(PowerPC) 칩의 형태로 진출해 IBM의 과거 숙명의 라이벌이던 애플이 제조한 컴퓨터 전용으로 쓰였다. IBM은 인텔을 따라잡지 못했고, 심지어 애플마저도 파워PC칩을 2000년 대 중반 버렸다. IBM은 여전히 파워 칩을 특수 시스템에 사용하고 있지만 더 이상 만들지는 않으며 2014년 칩 제조 시설도 매각했다. (이미지 출처 :John Sloan/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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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
90년대 중반과 2000년 대 초반, IBM은 자체 비즈니스 고객들에게 팔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기계가 아니라 기계에서 구동되는 복잡한 물건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오피스 스위트 같은 쉬운 제품들이 있었다. IBM은 최고급 (그래서 희망적으로 고수익인) 소프트웨어를 팔고자 했는데, 자체 미들웨어인 웹스피어(WebSphere)처럼 몇 개는 내부에서 개발됐고, 노츠(Notes)로 악명 높은 로터스 소프트웨어(Lotus Software)나 래쇼날(Rational)의 개발 툴처럼 몇몇은 인수했다. 이 모든 것들을 한데 모아 유지관리까지 포함해 판매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묶는 게 그 목적이었다. (이미지 출처 :ibmimpact/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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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사업
1990년대까지 IBM은 ‘서비스’에 전력을 다했으며, 여러 방면에서 컨설팅팀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경향은 IBM이 2002년 PwC를 인수하면서 굳혀졌다) 2000년 대 IBM의 x86 서버부문에서 일했던 존 러셀은 이게 어떻게 혼돈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전용 하드웨어를 원하나? IBM 블레이드센터(BladeCenter)는 어떤가? 블레이드센터 관리를 위해 IBM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 건 어떤가? 고객들을 위해 솔루션을 내놓는 컨설턴트들은 2가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첫 번째는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최선의 솔루션을 찾는 것이고 두 번째는 IBM 제품으로 그 솔루션을 구축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업에서 내 역할을 따져보면, 고객이 IBM을 선택하고, IBM은 그 고객이 필요로 하는 하드웨어를 찾고, 컨설턴트가 IBM 하드웨어를 고객에게 판매한다면, 내가 작업하는 제품도 거기에 딸려 팔릴 수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안 팔리면 할 수 없고.” (이미지 출처 :Robert/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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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실적! 실적!
IBM은 언제나 검소했다. 80년대 효율성 증대를 위해 내부 아이디어를 모으고 효과가 나온 아이디어를 보상하는 제안 부서(Suggestions Department)에서 다이앤 파이퍼가 일했던 기간에는 그랬다. 하지만 서비스 시대에 접어든 IBM은 더욱 비용 감축에 초점을 맞췄다. 한 전직 딜리버리 프로젝트 중역은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그가 했던 고생에 대해 밝혔다. 예를 들어 고객 계약에서 한 분야에 예산이 부족한 상태에서 고객이 필요로 했던 다른 분야로 이를 이전하는 대신 수익으로 기록하던가, 원래 견적을 낮게 써내서 미끼로 던진 계약에서 수익을 짜내야 했던 일화 등이었다. (당연히 딜리버리 프로젝트 중역의 연봉은 일정 부분 고객 만족도에 좌우됐다.) 이미지 출처 :Dan Lacher/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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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선지자
전직 IBM 직원들은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일하던 당시에는 당대 기술 최전선에서 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긍정적으로 말했다. 에일린 멀렌과 미셸 테퍼는 90년대 말 웹 초창기에 IBM닷컴 사이트의 작업을 맡았다. 테퍼는 “인터넷이 유틸리티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IBM은 일찌감치 알아봤지만, 대기업이 종종 그렇듯 거기에 맞춰 대응하는 데는 조금 늦었다”고 밝혔다. 멀렌의 그룹은 다른 회사들이 그들의 첫 웹사이트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마이클 프리쉬버그는 80년대 초에 현대적인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작업을 맡았다고 전했다. 결국 메인프레임의 시간 공유 모델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Andrea Grimes/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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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IBM
IBM은 현재 미래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IBM은 90년 대 말 딥 블루(Deep Blue)가 체스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Gary Kasparov)를 상대한 이래 인공 지능에 관심을 두고 있다. IBM은 ‘인지 컴퓨터’인 왓슨(Watson)을 만들어 2011년 제퍼디(Jeopardy) 우승을 통해 성공적으로 선보였고, 이제는 실용적인 활용에 나서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IBM은 앞으로 1,000년 후에 메인프레임을 만들어낸 회사로 기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성을 무용지물로 만든 회사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앞으로를 지켜보자! (이미지 출처 :Clockready/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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