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canvas

������

‘IT 브랜드의 전설’··· 자바의 이름이 자바인 사연

이 상표명은 전설적이다. 그러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프로그래밍 언어에 커피명을 어떻게, 왜 붙였는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타임 매거진이 자바(Java)를 1995년의 최고의 제품 10종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 이후, 자바는 미국 IT 마케팅 분야에 새로운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이 탁월한 기술이 원래대로 오크(Oak)나 그린토크(Greentalk)라는 이름을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이처럼 성공했을까? 모를 일이다. 멋진 오픈소스 프로그래밍 환경을 배포하면 당연히 인기가 있을 것이다. 이를 무엇으로 부를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차세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를 위한 썬(Sun)의 새 프로그래밍 언어에게는 브랜드 정체성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은 커피 이름을 상표로 확정했다. 그러나 자바(Java)라는 이름이 선택된 배경은 적어도 일정부분 미스터리다.  원래 1996년 자바월드(JavaWorld)에 의해 출간된 내용을 정리한 이 집단 인터뷰는, ‘자바’라는 이름의 탄생에 대한 멋진 회고를 제공한다.  Matthew Hamm (CC BY 2.0) 자바는 어떻게 자바가 되었나  썬의 당시 수석 엔지니어였던 프랭크 옐린은 “변호사들이 ‘오크(OAK)’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었다. 그 이유에 대해 오크 테크놀로지(Oak Technologies)라는 회사가 이미 상표로 등록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새 이름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회의가 열렸다. 당시 라이브 오크(Live Oak)라고 불린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참석했다. 10개의 유망한 이름이 최종적으로 선택되었고, 이것들을 법무지원 부서로 보냈는데, 3개의 이름이 통과되어 돌아왔다. 그것은 자바(Java), DNA, 실크(Silk) 였다. ‘자바’라는 이름을 누가 처음 제안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한 사람이 그 이름을 창안했음을 시사한다”라고...

자바 역사 읽을꺼리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브랜딩 브랜드

2022.07.19

이 상표명은 전설적이다. 그러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프로그래밍 언어에 커피명을 어떻게, 왜 붙였는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타임 매거진이 자바(Java)를 1995년의 최고의 제품 10종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 이후, 자바는 미국 IT 마케팅 분야에 새로운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이 탁월한 기술이 원래대로 오크(Oak)나 그린토크(Greentalk)라는 이름을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이처럼 성공했을까? 모를 일이다. 멋진 오픈소스 프로그래밍 환경을 배포하면 당연히 인기가 있을 것이다. 이를 무엇으로 부를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차세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를 위한 썬(Sun)의 새 프로그래밍 언어에게는 브랜드 정체성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은 커피 이름을 상표로 확정했다. 그러나 자바(Java)라는 이름이 선택된 배경은 적어도 일정부분 미스터리다.  원래 1996년 자바월드(JavaWorld)에 의해 출간된 내용을 정리한 이 집단 인터뷰는, ‘자바’라는 이름의 탄생에 대한 멋진 회고를 제공한다.  Matthew Hamm (CC BY 2.0) 자바는 어떻게 자바가 되었나  썬의 당시 수석 엔지니어였던 프랭크 옐린은 “변호사들이 ‘오크(OAK)’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었다. 그 이유에 대해 오크 테크놀로지(Oak Technologies)라는 회사가 이미 상표로 등록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새 이름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회의가 열렸다. 당시 라이브 오크(Live Oak)라고 불린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참석했다. 10개의 유망한 이름이 최종적으로 선택되었고, 이것들을 법무지원 부서로 보냈는데, 3개의 이름이 통과되어 돌아왔다. 그것은 자바(Java), DNA, 실크(Silk) 였다. ‘자바’라는 이름을 누가 처음 제안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한 사람이 그 이름을 창안했음을 시사한다”라고...

2022.07.19

칼럼 | 니에프스에서 아이폰13 프로까지

아이폰 7 플러스 모델부터 뒷면의 카메라가 한 개에서 두개로 늘어나고 인물 촬영 모드를 지원했다. 이때부터 단순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을 넘어, 사진 품질을 향상하려는 경쟁이 본격화됐다. 최신 모델인 아이폰 13 프로는 13mm f1.8의 초광각 카메라, 26mm f1.5의 광각 카메라와 함께 77mm f2.8의 화각과 밝기를 가지는 망원 카메라까지 3개의 카메라가 탑재되어 있으며 각각 1,200만 화소의 센서와 조합되어 있다. 안드로이드 폰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에서 출시한 최신 갤럭시 S22 울트라의 경우 아이폰보다 한 개 더 많은 4개의 카메라를 탑재하고 있으며 그 중 한 모듈은 1억 화소의 센서와 조합되어 있다. 센서의 화소 수와 사진의 품질 간의 상관관계가 꼭 비례하지는 않지만 대단한 발전임에는 분명하다. 왜 이렇게 스마트폰은 카메라 경쟁에 몰두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선사시대 인류가 거주했던 동굴에서 발견된 동굴벽화는 원초적인 인간의 기록 욕망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류는 이렇게 선사시대부터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했다. 동굴의 벽화에서 시작된 그림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현실과 같은 생생한 그림을 그리려면 아주 뛰어난 미술 실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따라서 한 순간을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망은 카메라의 발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진, 영어로 포토그래피(Photography)는 빛을 의미하는 ‘Photo’와 그림을 의미라는 ‘Graphy’의 합성어이다. ‘빛그림’, 즉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1839년 영국의 천문학자인 존 F.W. 허셜 경(Sir John Frederick William Herschel, 1792~1871)이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카메라를 이용하여 세계에서 최초로 사진을 찍은 사람은 프랑스의 조세프 니세포르 니에프스(Joseph Nicéphore Niépce, 1765~1...

애플 정철환 디지털 카메라 필름 카메라 역사 폰카 스마트폰 니에프스

2022.06.30

아이폰 7 플러스 모델부터 뒷면의 카메라가 한 개에서 두개로 늘어나고 인물 촬영 모드를 지원했다. 이때부터 단순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을 넘어, 사진 품질을 향상하려는 경쟁이 본격화됐다. 최신 모델인 아이폰 13 프로는 13mm f1.8의 초광각 카메라, 26mm f1.5의 광각 카메라와 함께 77mm f2.8의 화각과 밝기를 가지는 망원 카메라까지 3개의 카메라가 탑재되어 있으며 각각 1,200만 화소의 센서와 조합되어 있다. 안드로이드 폰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에서 출시한 최신 갤럭시 S22 울트라의 경우 아이폰보다 한 개 더 많은 4개의 카메라를 탑재하고 있으며 그 중 한 모듈은 1억 화소의 센서와 조합되어 있다. 센서의 화소 수와 사진의 품질 간의 상관관계가 꼭 비례하지는 않지만 대단한 발전임에는 분명하다. 왜 이렇게 스마트폰은 카메라 경쟁에 몰두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선사시대 인류가 거주했던 동굴에서 발견된 동굴벽화는 원초적인 인간의 기록 욕망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류는 이렇게 선사시대부터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했다. 동굴의 벽화에서 시작된 그림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현실과 같은 생생한 그림을 그리려면 아주 뛰어난 미술 실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따라서 한 순간을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망은 카메라의 발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진, 영어로 포토그래피(Photography)는 빛을 의미하는 ‘Photo’와 그림을 의미라는 ‘Graphy’의 합성어이다. ‘빛그림’, 즉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1839년 영국의 천문학자인 존 F.W. 허셜 경(Sir John Frederick William Herschel, 1792~1871)이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카메라를 이용하여 세계에서 최초로 사진을 찍은 사람은 프랑스의 조세프 니세포르 니에프스(Joseph Nicéphore Niépce, 1765~1...

2022.06.30

칼럼 | 프로그래밍의 ‘짜릿함’과 ‘위대함’에 대하여

코딩 작업은 지루하고 스트레스 가득할 수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 얼마나 특별한 일일 수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곳곳이 경이로움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 인간은 희한한 족속이다. 비행기라는 기적에 가까운 인류의 발명품에 감지덕지하던 것도 잠시, 이제는 탑승 수속이 오래 걸린다고 짜증을 낸다. 교통 체증에 불만을 품는 일은 다반사이지만 자동차라는 존재에 놀라워하는 것은 어쩌다 한 번이다. 근래 중요한 인류의 성과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빼놓을 수 없다. 프로그래밍 언어 탄생의 역사를 수놓은 위대한 정신적 업적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프로그래밍의 본질을 재발견하게 된다.   프로그래머는 시인과 같다 프로그래밍 분야의 명저 프레데릭 P. 브룩스 주니어의 논문집 <맨먼스 미신(Mythical Man Month)>에는 “시인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머는 순수한 사상과 밀접하게 붙어 작업한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다. 현직 프로그래머는 물론 관련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프로그래밍은 정신적인 세계와 물리적인 세계를 오가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물리적 현실에 내재한 논리적 속성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상가들을 그토록 혼란에 빠뜨렸던 심신의 구분을 프로그래머들은 가뿐하게 넘나드는 셈이다.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디지털 컴퓨터의 개념을 창시한 찰스 배비지는 “말하자면 추론 능력이 필요한 순수 지력의 영역이다. 노동의 기계적인 부분을 기계가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배비지는 1800년대에 러브레이스와 공동으로 컴퓨팅 개념을 창안했다. 그들은 아이디어 창출에 활용될 수 있는 물리적인 토양을 창조해 냈다.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험하고 다른 사람들이 검토해 정교하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토양이었다.   필자가 나름대로 철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바로는, 시험대에 오르지 않는 사상은 완전하기 어렵다. &nbs...

프로그래밍 코딩 프로그래머 역사 튜링 폰 노이만

2022.06.14

코딩 작업은 지루하고 스트레스 가득할 수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 얼마나 특별한 일일 수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곳곳이 경이로움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 인간은 희한한 족속이다. 비행기라는 기적에 가까운 인류의 발명품에 감지덕지하던 것도 잠시, 이제는 탑승 수속이 오래 걸린다고 짜증을 낸다. 교통 체증에 불만을 품는 일은 다반사이지만 자동차라는 존재에 놀라워하는 것은 어쩌다 한 번이다. 근래 중요한 인류의 성과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빼놓을 수 없다. 프로그래밍 언어 탄생의 역사를 수놓은 위대한 정신적 업적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프로그래밍의 본질을 재발견하게 된다.   프로그래머는 시인과 같다 프로그래밍 분야의 명저 프레데릭 P. 브룩스 주니어의 논문집 <맨먼스 미신(Mythical Man Month)>에는 “시인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머는 순수한 사상과 밀접하게 붙어 작업한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다. 현직 프로그래머는 물론 관련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프로그래밍은 정신적인 세계와 물리적인 세계를 오가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물리적 현실에 내재한 논리적 속성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상가들을 그토록 혼란에 빠뜨렸던 심신의 구분을 프로그래머들은 가뿐하게 넘나드는 셈이다.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디지털 컴퓨터의 개념을 창시한 찰스 배비지는 “말하자면 추론 능력이 필요한 순수 지력의 영역이다. 노동의 기계적인 부분을 기계가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배비지는 1800년대에 러브레이스와 공동으로 컴퓨팅 개념을 창안했다. 그들은 아이디어 창출에 활용될 수 있는 물리적인 토양을 창조해 냈다.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험하고 다른 사람들이 검토해 정교하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토양이었다.   필자가 나름대로 철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바로는, 시험대에 오르지 않는 사상은 완전하기 어렵다. &nbs...

2022.06.14

오픈소스로 세상을 뒤흔들다··· '스타 창시자' 15인

리누스 토발즈는 오픈소스 거물이다. 그리고 그가 학생으로서 “단지 재미를 위해”(Just For Fun ; 그의 저서 제목) 리눅스를 개발하고 리눅스 커널을 개발한 커뮤니티를 (다시 심술궂게) 통치한 이야기는 초기 오픈소스 운동과 해커 정신의 전형적인 사례다.   하지만 오픈소스는 분명 바뀌었다. 기업 분야에서 적극 수용했으며, 그 결과 기업과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모두 바뀌었다. 오늘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개인보다는 대기업의 협업 프로세스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전체에 도움이 되며, 그 창시자들은 새롭게 높아질 프로필의 이점을 누리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주요 오픈소스 프로젝트 이면에 자리한 혁신가들을 살펴본다.    아파치 카프카(Apache Kafka) : 제이 크렙스, 네하 나크헤드, 준 라오 데이터 스트리밍은 디지털 배관 작업처럼 따분하고 기술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소스로부터 얻은 더 많은 데이터를 소화하고 처리해야 하면서 데이터 흐름를 적절한 곳에 보내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2000년대 말과 2010년대 초기에 링크드인(LinkedIn)은 이 문제에 부딪힌 초기 기업 중 하나였다. 링크드인의 WVMPF(Who’s Viewed My Profile Feature) 기능을 개발하는 팀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 3명(제이 크렙스(가운데), 네하 나크헤드(오른쪽), 준 라오(왼쪽))은 메시징 시스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것이 결국 카프카가 되었다. 참고로 카프라라는 이름은 크렙스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오픈소스로 공개된 아파치 카프카는 광범위한 기업들과 프로제트를 위한 배관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한편 크렙스, 나크헤드, 라오는 상업용 클라우드 기반의 카프카 버전을 제공하는 기업인 컨플루언트(Confluent)를 설립했다.   레디스(Redis)...

역사 오픈소스 프로젝트 이야기 창시자

2022.03.16

리누스 토발즈는 오픈소스 거물이다. 그리고 그가 학생으로서 “단지 재미를 위해”(Just For Fun ; 그의 저서 제목) 리눅스를 개발하고 리눅스 커널을 개발한 커뮤니티를 (다시 심술궂게) 통치한 이야기는 초기 오픈소스 운동과 해커 정신의 전형적인 사례다.   하지만 오픈소스는 분명 바뀌었다. 기업 분야에서 적극 수용했으며, 그 결과 기업과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모두 바뀌었다. 오늘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개인보다는 대기업의 협업 프로세스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전체에 도움이 되며, 그 창시자들은 새롭게 높아질 프로필의 이점을 누리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주요 오픈소스 프로젝트 이면에 자리한 혁신가들을 살펴본다.    아파치 카프카(Apache Kafka) : 제이 크렙스, 네하 나크헤드, 준 라오 데이터 스트리밍은 디지털 배관 작업처럼 따분하고 기술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소스로부터 얻은 더 많은 데이터를 소화하고 처리해야 하면서 데이터 흐름를 적절한 곳에 보내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2000년대 말과 2010년대 초기에 링크드인(LinkedIn)은 이 문제에 부딪힌 초기 기업 중 하나였다. 링크드인의 WVMPF(Who’s Viewed My Profile Feature) 기능을 개발하는 팀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 3명(제이 크렙스(가운데), 네하 나크헤드(오른쪽), 준 라오(왼쪽))은 메시징 시스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것이 결국 카프카가 되었다. 참고로 카프라라는 이름은 크렙스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오픈소스로 공개된 아파치 카프카는 광범위한 기업들과 프로제트를 위한 배관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한편 크렙스, 나크헤드, 라오는 상업용 클라우드 기반의 카프카 버전을 제공하는 기업인 컨플루언트(Confluent)를 설립했다.   레디스(Redis)...

2022.03.16

칼럼 | 컴퓨터 게임의 발전사와 그 의미

컴퓨터가 세상에 등장한 후 소프트웨어 산업은 오늘날 IT의 중심축을 이루는 분야다. 이런 소프트웨어 산업 초기부터 함께 했던 오래된 분야 중 하나가 컴퓨터 게임 소프트웨어이다. 본 칼럼에서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과 함께 한 게임 분야의 발전사를 정리해보고 메타버스가 화두인 시대에 게임 발전의 역사가 가지는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텍스트 기반의 어드벤처 게임과 가상 세계의 등장 (1970년대 ~ 80년대 중반까지)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어드벤처 게임은1976년 윌리엄 크로우더(William Crowther)가 PDP-10 컴퓨터에서 개발한 ‘콜로설 동굴 모험(Colossal Cave Adventure)’ 이다. 순수한 텍스트 화면으로 진행되는 이 게임은 개발자인 크로우더가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보낸 켄터키의 맘모스 동굴(Mammoth Caves)의 추억을 기반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게임은 게임 캐릭터가 있는 방이나 위치에 대한 설명을 텍스트로 표시하고 명령도 텍스트로 입력한다. 명령은 이동 명령(남쪽으로 이동, 북쪽으로 이동)과 행동 관련 명령(칼 가져오기, 금 떨어뜨리기 등) 이다.  입력을 받은 후 프로그램은 행동의 결과로 발생한 일을 역시 텍스트로 플레이어에게 알려준다. 오늘날의 3D 그래픽 게임에서도 기본 골격으로 유지되고 있는 이 기본 게임 루프(Game Loop)는 다음과 단계로 진행된다. 1) 컴퓨터는 게임 세계와 캐릭터의 기존 상태를 표시한다. 2) 플레이어가 명령을 내린다. 3) 프로그램은 이 명령 및 기타 요소를 기반으로 게임 상태를 변경한다. 4) 위 단계를 반복한다. 여러 면에서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은 ‘던젼스 앤 드래곤스(Dungeons & Dragons)’와 같은 탁상용 게임을 포함하여 이후 등장한 많은 모험 및 판타지 게임에 영향을 주었다. 당시의 컴퓨터는 그래픽을 표현하기 어려운 하드웨어 성능을 지니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텍스트만으로 구성되었지만 사실은 오늘날의 최신 ...

컴퓨터 게임 메타버스 역사 물리 엔진 3D 가상 세계

2022.01.28

컴퓨터가 세상에 등장한 후 소프트웨어 산업은 오늘날 IT의 중심축을 이루는 분야다. 이런 소프트웨어 산업 초기부터 함께 했던 오래된 분야 중 하나가 컴퓨터 게임 소프트웨어이다. 본 칼럼에서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과 함께 한 게임 분야의 발전사를 정리해보고 메타버스가 화두인 시대에 게임 발전의 역사가 가지는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텍스트 기반의 어드벤처 게임과 가상 세계의 등장 (1970년대 ~ 80년대 중반까지)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어드벤처 게임은1976년 윌리엄 크로우더(William Crowther)가 PDP-10 컴퓨터에서 개발한 ‘콜로설 동굴 모험(Colossal Cave Adventure)’ 이다. 순수한 텍스트 화면으로 진행되는 이 게임은 개발자인 크로우더가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보낸 켄터키의 맘모스 동굴(Mammoth Caves)의 추억을 기반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게임은 게임 캐릭터가 있는 방이나 위치에 대한 설명을 텍스트로 표시하고 명령도 텍스트로 입력한다. 명령은 이동 명령(남쪽으로 이동, 북쪽으로 이동)과 행동 관련 명령(칼 가져오기, 금 떨어뜨리기 등) 이다.  입력을 받은 후 프로그램은 행동의 결과로 발생한 일을 역시 텍스트로 플레이어에게 알려준다. 오늘날의 3D 그래픽 게임에서도 기본 골격으로 유지되고 있는 이 기본 게임 루프(Game Loop)는 다음과 단계로 진행된다. 1) 컴퓨터는 게임 세계와 캐릭터의 기존 상태를 표시한다. 2) 플레이어가 명령을 내린다. 3) 프로그램은 이 명령 및 기타 요소를 기반으로 게임 상태를 변경한다. 4) 위 단계를 반복한다. 여러 면에서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은 ‘던젼스 앤 드래곤스(Dungeons & Dragons)’와 같은 탁상용 게임을 포함하여 이후 등장한 많은 모험 및 판타지 게임에 영향을 주었다. 당시의 컴퓨터는 그래픽을 표현하기 어려운 하드웨어 성능을 지니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텍스트만으로 구성되었지만 사실은 오늘날의 최신 ...

2022.01.28

'알고리즘 따라 부동산 샀더니...' AI·애널리틱스에서 비롯된 재난 6선

2017년 이코노미스트는 데이터가 석유를 넘어서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이 됐다고 선언했다. 비슷한 후렴구가 그 이후로 반복되고 있다. 모든 업종에 걸쳐 각 기업들이 데이터 및 애널리틱스에 크게 투자해오고 있다. 그러나 석유와 마찬가지로 데이터와 애널리틱스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IDG의 2021 CIO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IT 리더 중 39%는 데이터 애널리틱스에 대한 투자가 올해 IT 투자를 주도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머신러닝(ML) 알고리즘에 의한 애널리틱스 및 조치를 통해 얻은 통찰력은 조직에 경쟁적 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애널리틱스에서 비롯된 실수 또한 명성, 수익 또는 생명 측면에서 큰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툴을 이해하고 데이터를 파악하며 조직의 가치를 확실히 염두에 두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은 지난 10년간 세간의 이목을 끈 애널리틱스 및 인공지능(AI) 관련 사고들이다. 알고리즘으로 인한 주택 구입 실수로 인해 질로우는 수억 달러의 손해를 봤고 결국 인력을 감축했다 2021년 11월 온라인 부동산 시장업체인 질로우는 주주총회에서 질로우 오퍼스의 운영을 중단하고 향후 몇 분기에 걸쳐 인력의 25%에 달하는 약 2,000명의 직원을 감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동산업체인 질로우의 문제는 주택가격을 예측하기 위해 사용했던 머신러닝 알고리즘의 오류 비율이었다. ‘질로우 오퍼스’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에서 파생된 주택 가치인 ‘제스티메이트(Zestimate)’를 기반으로 해 부동산에 대해 현금 거래를 제안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아이디어는 부동산을 빠르게 개조하고 개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질로우 대변인이 CNN에 밝한 내용에 따르면 이 알고리즘은 1.9%의 중간 오류율을 가지고 있으며, 시장에 나와있지 않은 주택의 경우 오류율이 6.9%까지 치솟을 수 있었다.  질로우는 2018년 4월 질로우 오퍼스를 가동한 이후 이를 통해 2만 7,000채의 주택을 구...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사고 자동화 사고 실수 역사 재난 재앙 사과

2021.11.25

2017년 이코노미스트는 데이터가 석유를 넘어서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이 됐다고 선언했다. 비슷한 후렴구가 그 이후로 반복되고 있다. 모든 업종에 걸쳐 각 기업들이 데이터 및 애널리틱스에 크게 투자해오고 있다. 그러나 석유와 마찬가지로 데이터와 애널리틱스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IDG의 2021 CIO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IT 리더 중 39%는 데이터 애널리틱스에 대한 투자가 올해 IT 투자를 주도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머신러닝(ML) 알고리즘에 의한 애널리틱스 및 조치를 통해 얻은 통찰력은 조직에 경쟁적 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애널리틱스에서 비롯된 실수 또한 명성, 수익 또는 생명 측면에서 큰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툴을 이해하고 데이터를 파악하며 조직의 가치를 확실히 염두에 두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은 지난 10년간 세간의 이목을 끈 애널리틱스 및 인공지능(AI) 관련 사고들이다. 알고리즘으로 인한 주택 구입 실수로 인해 질로우는 수억 달러의 손해를 봤고 결국 인력을 감축했다 2021년 11월 온라인 부동산 시장업체인 질로우는 주주총회에서 질로우 오퍼스의 운영을 중단하고 향후 몇 분기에 걸쳐 인력의 25%에 달하는 약 2,000명의 직원을 감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동산업체인 질로우의 문제는 주택가격을 예측하기 위해 사용했던 머신러닝 알고리즘의 오류 비율이었다. ‘질로우 오퍼스’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에서 파생된 주택 가치인 ‘제스티메이트(Zestimate)’를 기반으로 해 부동산에 대해 현금 거래를 제안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아이디어는 부동산을 빠르게 개조하고 개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질로우 대변인이 CNN에 밝한 내용에 따르면 이 알고리즘은 1.9%의 중간 오류율을 가지고 있으며, 시장에 나와있지 않은 주택의 경우 오류율이 6.9%까지 치솟을 수 있었다.  질로우는 2018년 4월 질로우 오퍼스를 가동한 이후 이를 통해 2만 7,000채의 주택을 구...

2021.11.25

‘20세기부터 있었더라’ 오래된 SW 버그 10선

2021년, 현대 컴퓨팅의 근간에 해당하는 한 시스템에서 취약성이 발견됐다. 공격자가 시스템으로 하여금 임의의 코드를 강제로 실행하게 할 수 있는 취약점이었다. 충격적이게도 이 취약한 코드는 약 54년 전에 작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취약성에 대한 패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제공되지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문제의 이 시스템이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이론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실제 컴퓨터로 개발된 적은 없었던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의 1967년 범용 튜링 머신(Universal Turing Machine)이었기 때문이다. 민스키가 설계한 후 약 10년이 지난 후 초기 버전의 유닉스(Unix)와 DOS가 등장했고 그 후속작들이 지금껏 사용되고 있다. 최근 발견된, 역사가 오래 된 버그에 대해 알아본다.   닛산(Nissan) 텔레매틱스 컨트롤 모듈 베이스밴드 취약성   나이: 7년 도입 날짜: 2010년 수정 날짜: 2017년 2011년, 보안 연구원 랄프 필립 웨이만은 스마트폰에서 사용되는 베이스밴드 프로세서에 최근 유입된 결함을 발견했다. 이를 악용하면 해커가 가짜 기지국을 만들어 스마트폰이 여기에 연결하도록 속인 후 네트워크 연결을 가로챌 수 있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이 결함을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해결했으며 이내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스마트폰만 이 칩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동일한 셀룰러 베이스밴드 칩셋이 닛산 리프(Leaf)와 다른 여러 차량의 텔레매틱스 유닛에 사용되었다”라고 보안 기업 에클립시움(Eclypsium)의 수석 사이버 보안 연구원 제시 마이클이 말했다. (에클립시움과 의견을 같이 하는) 많은 연구원들이 폐차장에서 구한 자동차로 실험하여 해당 취약성을 발견했다. 마이클은 “약 7년 전에 다른 시장에서 공개된 이 취약성이 자동차 분야에서도 발견됐다. 자체적으로 복잡한 공급망을 가진 굉장히 다른 시장 부문이었기 때문에 자동차가 익스플로잇 ...

버그 취약점 취약성 역사 코드 재사용

2021.06.22

2021년, 현대 컴퓨팅의 근간에 해당하는 한 시스템에서 취약성이 발견됐다. 공격자가 시스템으로 하여금 임의의 코드를 강제로 실행하게 할 수 있는 취약점이었다. 충격적이게도 이 취약한 코드는 약 54년 전에 작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취약성에 대한 패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제공되지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문제의 이 시스템이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이론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실제 컴퓨터로 개발된 적은 없었던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의 1967년 범용 튜링 머신(Universal Turing Machine)이었기 때문이다. 민스키가 설계한 후 약 10년이 지난 후 초기 버전의 유닉스(Unix)와 DOS가 등장했고 그 후속작들이 지금껏 사용되고 있다. 최근 발견된, 역사가 오래 된 버그에 대해 알아본다.   닛산(Nissan) 텔레매틱스 컨트롤 모듈 베이스밴드 취약성   나이: 7년 도입 날짜: 2010년 수정 날짜: 2017년 2011년, 보안 연구원 랄프 필립 웨이만은 스마트폰에서 사용되는 베이스밴드 프로세서에 최근 유입된 결함을 발견했다. 이를 악용하면 해커가 가짜 기지국을 만들어 스마트폰이 여기에 연결하도록 속인 후 네트워크 연결을 가로챌 수 있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이 결함을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해결했으며 이내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스마트폰만 이 칩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동일한 셀룰러 베이스밴드 칩셋이 닛산 리프(Leaf)와 다른 여러 차량의 텔레매틱스 유닛에 사용되었다”라고 보안 기업 에클립시움(Eclypsium)의 수석 사이버 보안 연구원 제시 마이클이 말했다. (에클립시움과 의견을 같이 하는) 많은 연구원들이 폐차장에서 구한 자동차로 실험하여 해당 취약성을 발견했다. 마이클은 “약 7년 전에 다른 시장에서 공개된 이 취약성이 자동차 분야에서도 발견됐다. 자체적으로 복잡한 공급망을 가진 굉장히 다른 시장 부문이었기 때문에 자동차가 익스플로잇 ...

2021.06.22

센서라마에서 확장현실까지… 한눈에 보는 가상현실의 역사

가상현실(VR)의 기본 개념은 그 역사가 꽤 길다. 심지어 초기 풍경화 화가도 보는 사람을 작품에 몰입시키기 위해 주변 시야를 채우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 이론이 등장한 것은 19세기지만 20세기에 기술이 발전하면서 처음으로 현실화하기 시작했고 이후 끊임없이 발전했다.   이제 우리는 VR이라는 약자로 정의되는 이 기술에 익숙하다. 전 세계가 ‘원격화’를 통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가운데 VR은 기업과 소비자 시장 모두에 진입해 매력적인 미래를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기술의 역사에 대해 다시 짚어볼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VR의 기원 초기부터 시작하면, VR의 특징을 가졌던 첫 기기는 뷰-마스터(View-Master)다. 독자적인 특허를 받은 스테레오스코프의 일종이었다. 스테레오스코프는 1838년 한 쌍의 별개 이미지를 동시에 표시해 3D 이미지를 만드는 장치로 출발했다. 뷰-마스터는 1939년에 이를 제품화했다. 작은 컬러 사진 필름으로 7개의 입체 3D 사진 쌍이 포함된 판지로 구성된 릴을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이 개념이 행락객 사이에 인기를 끌었고, 20세기 말 새로운 모델이 나오기도 했다. 뷰-마스터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VR 헤드셋의 ‘조상’으로 주목할만한 최초의 기기였다. 그러나 1935년에 가상현실의 개념을 한발 밀고 나간 '상상력'이 주목받았다. 1935년 스탠리 G 와인바움이 영화를 볼 때 사용자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안경이 등장하는 피그말리온 안경(Pygmalion’s Pectacles)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용자의 관점, 궁극적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기술에 대해 처음으로 종합적인 관점을 제공했다.   미래의 영화 1962년, 모튼 하일리그(Morton Heilig)라는 카메라맨이 뷰-마스터의 단순한 기능을 토대로 와인바움의 상상력을 더한 기기 '센서라마(Sensorama)'를 선보였다. 이 기기는 매우 큰 부스를 닮았다. 좌석에 앉은 사람이 기기에 설치된 주변이 막힌 ...

센서라마 확장현실 가상현실 증강현실 역사

2021.04.01

가상현실(VR)의 기본 개념은 그 역사가 꽤 길다. 심지어 초기 풍경화 화가도 보는 사람을 작품에 몰입시키기 위해 주변 시야를 채우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 이론이 등장한 것은 19세기지만 20세기에 기술이 발전하면서 처음으로 현실화하기 시작했고 이후 끊임없이 발전했다.   이제 우리는 VR이라는 약자로 정의되는 이 기술에 익숙하다. 전 세계가 ‘원격화’를 통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가운데 VR은 기업과 소비자 시장 모두에 진입해 매력적인 미래를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기술의 역사에 대해 다시 짚어볼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VR의 기원 초기부터 시작하면, VR의 특징을 가졌던 첫 기기는 뷰-마스터(View-Master)다. 독자적인 특허를 받은 스테레오스코프의 일종이었다. 스테레오스코프는 1838년 한 쌍의 별개 이미지를 동시에 표시해 3D 이미지를 만드는 장치로 출발했다. 뷰-마스터는 1939년에 이를 제품화했다. 작은 컬러 사진 필름으로 7개의 입체 3D 사진 쌍이 포함된 판지로 구성된 릴을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이 개념이 행락객 사이에 인기를 끌었고, 20세기 말 새로운 모델이 나오기도 했다. 뷰-마스터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VR 헤드셋의 ‘조상’으로 주목할만한 최초의 기기였다. 그러나 1935년에 가상현실의 개념을 한발 밀고 나간 '상상력'이 주목받았다. 1935년 스탠리 G 와인바움이 영화를 볼 때 사용자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안경이 등장하는 피그말리온 안경(Pygmalion’s Pectacles)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용자의 관점, 궁극적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기술에 대해 처음으로 종합적인 관점을 제공했다.   미래의 영화 1962년, 모튼 하일리그(Morton Heilig)라는 카메라맨이 뷰-마스터의 단순한 기능을 토대로 와인바움의 상상력을 더한 기기 '센서라마(Sensorama)'를 선보였다. 이 기기는 매우 큰 부스를 닮았다. 좌석에 앉은 사람이 기기에 설치된 주변이 막힌 ...

2021.04.01

'IT 역사에 족적을 남긴' 흑인 프로그래머 7인

컴퓨터 과학, 인터넷, 그리고 현대 소프트웨어 업계의 역사는 대부분 백인 중년 남성들이 주인공이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뛰어난 기술 업계 역사책 ‘혁신가들(The Innovators)’를 훑어보면 현대 컴퓨터 시대를 만들어낸 ‘발명가, 해커, 천재, 괴짜’들이 백인 일색이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 역사에 흑인들의 기여한 내용을 밝히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는 마곳 리 셰털리의 책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숨은 인물들)’ 그 책을 기반으로 제작된 미국 영화였다. 우주 개발 경쟁 시대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수학자로 근무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캐터린 존슨, 도로시 본, 그리고 메리 잭슨의 경력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프로그래밍 분야의 선구자로서 포트란(Fortran)으로 코드 작성과 NASA 내 이공계 직위에 여성 채용을 이끌었다. 기술 대기업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진행되면서 신세대 흑인 개발자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고 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흑인 역사의 달 2월을 맞아, 그 동안 역사에서 스쳐가 버렸을 수도 있는 주요 흑인 기술 선구자들을 자료 속에서 찾아내 조명해본다.  로이 클레이 컴퓨터 과학 분야에 기여한 흑인의 역사를 논하자면 전기 안전 테스트 장비 제조업체 ROD-L 일렉트로닉스(ROD-L Electronics)를 창업하고 CEO를 역임한 로이 엘 클레이 시니어를 빼놓을 수 없다. ROD-L 창업 전에 클레이는 프로그래머였다. 1956년 맥도널 에어크래프트(McDonnell Aircraft)에서 사용할 IBM 컴퓨터와 버로스(Burroughs)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하면서 경력을 시작했다. 1958년에 옮긴 곳은 현재는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라고 알려진 곳으로서 미국 에너지부를 위해 UC 버클리에서 운영을 맡은 곳이다. 로이는 통제 데이터 메인프레임 컴퓨터용 소프트웨어 언어를 개발하다가 휴렛패커드에 HP 2116A 미니컴퓨터 개발 책임자로 합류했고 나중...

흑인 역사 프로그래머

2021.02.10

컴퓨터 과학, 인터넷, 그리고 현대 소프트웨어 업계의 역사는 대부분 백인 중년 남성들이 주인공이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뛰어난 기술 업계 역사책 ‘혁신가들(The Innovators)’를 훑어보면 현대 컴퓨터 시대를 만들어낸 ‘발명가, 해커, 천재, 괴짜’들이 백인 일색이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 역사에 흑인들의 기여한 내용을 밝히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는 마곳 리 셰털리의 책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숨은 인물들)’ 그 책을 기반으로 제작된 미국 영화였다. 우주 개발 경쟁 시대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수학자로 근무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캐터린 존슨, 도로시 본, 그리고 메리 잭슨의 경력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프로그래밍 분야의 선구자로서 포트란(Fortran)으로 코드 작성과 NASA 내 이공계 직위에 여성 채용을 이끌었다. 기술 대기업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진행되면서 신세대 흑인 개발자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고 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흑인 역사의 달 2월을 맞아, 그 동안 역사에서 스쳐가 버렸을 수도 있는 주요 흑인 기술 선구자들을 자료 속에서 찾아내 조명해본다.  로이 클레이 컴퓨터 과학 분야에 기여한 흑인의 역사를 논하자면 전기 안전 테스트 장비 제조업체 ROD-L 일렉트로닉스(ROD-L Electronics)를 창업하고 CEO를 역임한 로이 엘 클레이 시니어를 빼놓을 수 없다. ROD-L 창업 전에 클레이는 프로그래머였다. 1956년 맥도널 에어크래프트(McDonnell Aircraft)에서 사용할 IBM 컴퓨터와 버로스(Burroughs)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하면서 경력을 시작했다. 1958년에 옮긴 곳은 현재는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라고 알려진 곳으로서 미국 에너지부를 위해 UC 버클리에서 운영을 맡은 곳이다. 로이는 통제 데이터 메인프레임 컴퓨터용 소프트웨어 언어를 개발하다가 휴렛패커드에 HP 2116A 미니컴퓨터 개발 책임자로 합류했고 나중...

2021.02.10

블로그 | '투카우' 문 닫는다··· 인터넷 자료실 시대의 끝

1980년대 초반에는 1,200BPS의 속도로 셰어웨어를 다운로드 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사용해 보며 마음에 들면 정식 버전을 구매하는 식이었다. 이후 웹이 등장했다. 초당 28~33.6Kbp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덩달아 프로그램 용량이 킬로바이트급에서 메가바이트급으로 커졌다.  몇몇 이들은 웹 상에 프리웨어나 셰어웨어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라이브러리 서비스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들 중 첫 번째 등장한 이가 투카우(Tucows)였다. 1993년 미시건 주 플린트의 도서관 컴퓨터에 기반해 모뎀 기반의 BBS(bulletin board system)에서 시작된 사이트다.  투카우라는 이름은 ‘The Ultimate Collection of Winsock Software”의 첫 글자를 모아 명명된 것이다. 참고로 윈속(Winsock)은 윈도우 95가 등장하기 전 윈도우를 인터넷에 좀더 쉽게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투카우는 이내 초기 웹 분야에서 인기 높은 프리웨어 및 셰어웨어 사이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과거의 이야기다. 회사 측은 투카우가 여전히 고대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메인 네임 등록 기관이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다운로드 라이브러리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투카우의 엘리엇 노스 CEO는 “최근 몇 년 동안 투카우 다운로드를 유지하는 유일한 이유는 ‘역사’이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사이트에는 유지 관리 문제가 있다. 이 사이트를 유지하면, 비즈니스 발전에 저해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단 사이트와 사이트 내의 프로그램들은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를 통해 역사적 유물로 보관될 예정이다.  한때 유용했던 사이트에 먼지만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투카우가 하던 역할을 애플과 구글의 앱스토어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형 PC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 수억 명이 사람들이 온라인 활동을 위해 이...

투카우 인터넷 자료실 다운로드 사이트 e자료실 역사 퇴장

2021.01.27

1980년대 초반에는 1,200BPS의 속도로 셰어웨어를 다운로드 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사용해 보며 마음에 들면 정식 버전을 구매하는 식이었다. 이후 웹이 등장했다. 초당 28~33.6Kbp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덩달아 프로그램 용량이 킬로바이트급에서 메가바이트급으로 커졌다.  몇몇 이들은 웹 상에 프리웨어나 셰어웨어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라이브러리 서비스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들 중 첫 번째 등장한 이가 투카우(Tucows)였다. 1993년 미시건 주 플린트의 도서관 컴퓨터에 기반해 모뎀 기반의 BBS(bulletin board system)에서 시작된 사이트다.  투카우라는 이름은 ‘The Ultimate Collection of Winsock Software”의 첫 글자를 모아 명명된 것이다. 참고로 윈속(Winsock)은 윈도우 95가 등장하기 전 윈도우를 인터넷에 좀더 쉽게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투카우는 이내 초기 웹 분야에서 인기 높은 프리웨어 및 셰어웨어 사이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과거의 이야기다. 회사 측은 투카우가 여전히 고대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메인 네임 등록 기관이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다운로드 라이브러리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투카우의 엘리엇 노스 CEO는 “최근 몇 년 동안 투카우 다운로드를 유지하는 유일한 이유는 ‘역사’이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사이트에는 유지 관리 문제가 있다. 이 사이트를 유지하면, 비즈니스 발전에 저해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단 사이트와 사이트 내의 프로그램들은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를 통해 역사적 유물로 보관될 예정이다.  한때 유용했던 사이트에 먼지만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투카우가 하던 역할을 애플과 구글의 앱스토어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형 PC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 수억 명이 사람들이 온라인 활동을 위해 이...

2021.01.27

애플의 회사명이 ‘애플’인 이유는?

애플의 기업명이 어떻게 정해졌는 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그 중 몇 개는 완전히 틀렸지만 다른 몇몇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여기 ‘애플’이라는 기업명이 정해진 배경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정리한다. 스티브 잡스가 실제로 ‘사과’를 좋아했기 때문 월터 아이작슨이 기술한 자서전에서 잡스는 ‘애플’이라는 기업명의 유래에 대해 ‘과일 식단 중 하나’에서 착안했다고 밝혔다. 한 사과 농장을 방문한 이후 ‘애플’이라는 단어가 ‘재미있고 활기차며 위협적이지 않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억에 떠올려보면 당시 나는 스티브 잡스와 85번 고속도로를 따라 공항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이었다. 스티브는 당시 오레곤 주의 ‘애플 과수원’이라는 장소를 방문한 이후였다. 실제로는 농업 공동체 같은 곳이었다. 스티브는 그때 ‘애플 컴퓨터’라는 이름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앨런 튜링을 추모 애플 로고에는 깨문 자국이 있다. 이로 인해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베어먹고 사망한 앨런 튜링과 유관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다. 잡스와 워즈니악이 컴퓨터 과학 및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튜링을 기리고자 했다는 생각은 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 유명한 로고를 제작한 롭 야노프는 애플 로고의 깨문 자국이 다른 과일 아니라 사과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깨문 자국의 크기로 인해 사과가 연상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는 설명이다.  잡스는 그러나 당초 의도는 아니었을지라도 튜링을 기념하는 것이 자신의 원하는 바와 일치한다고 영화배우 스티브 프라이에게 언급했던 적이 있다.  전화번호부 때문 1976년 애플이 설립되던 당시 이름을 고민하던 기업들 사이에서는 전화번호부가 주요 고려 요소 중 하나였다. 전화번호부는 알파벳 순이기 나름이며 이로 인해 ‘A’로 시작하는 이름이 유리했다. 애플이라는 이름은 잡스가 근무했던 바 있는 경쟁사 ‘아타리’보다 앞서 나올 수 있...

애플 스티브 워즈니악 스티브 잡스 유래 역사 사과 사명

2020.03.10

애플의 기업명이 어떻게 정해졌는 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그 중 몇 개는 완전히 틀렸지만 다른 몇몇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여기 ‘애플’이라는 기업명이 정해진 배경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정리한다. 스티브 잡스가 실제로 ‘사과’를 좋아했기 때문 월터 아이작슨이 기술한 자서전에서 잡스는 ‘애플’이라는 기업명의 유래에 대해 ‘과일 식단 중 하나’에서 착안했다고 밝혔다. 한 사과 농장을 방문한 이후 ‘애플’이라는 단어가 ‘재미있고 활기차며 위협적이지 않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억에 떠올려보면 당시 나는 스티브 잡스와 85번 고속도로를 따라 공항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이었다. 스티브는 당시 오레곤 주의 ‘애플 과수원’이라는 장소를 방문한 이후였다. 실제로는 농업 공동체 같은 곳이었다. 스티브는 그때 ‘애플 컴퓨터’라는 이름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앨런 튜링을 추모 애플 로고에는 깨문 자국이 있다. 이로 인해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베어먹고 사망한 앨런 튜링과 유관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다. 잡스와 워즈니악이 컴퓨터 과학 및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튜링을 기리고자 했다는 생각은 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 유명한 로고를 제작한 롭 야노프는 애플 로고의 깨문 자국이 다른 과일 아니라 사과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깨문 자국의 크기로 인해 사과가 연상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는 설명이다.  잡스는 그러나 당초 의도는 아니었을지라도 튜링을 기념하는 것이 자신의 원하는 바와 일치한다고 영화배우 스티브 프라이에게 언급했던 적이 있다.  전화번호부 때문 1976년 애플이 설립되던 당시 이름을 고민하던 기업들 사이에서는 전화번호부가 주요 고려 요소 중 하나였다. 전화번호부는 알파벳 순이기 나름이며 이로 인해 ‘A’로 시작하는 이름이 유리했다. 애플이라는 이름은 잡스가 근무했던 바 있는 경쟁사 ‘아타리’보다 앞서 나올 수 있...

2020.03.10

기고 | 인공지능(AI)의 간략한 역사

머신러닝 모델 분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AI가 풀어야 할 과제는 60년 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AI가 태동하던 시절, 컴퓨터 과학자들은 컴퓨터에 사람의 정신을 일부나마 재현하려 시도했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지능을 구현하려 시도한 것이다. 즉,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지능(인텔리전스)을 ‘인텔리저빌리티(Intelligibility)’로 부른다. 한편 인텔리저빌리티를 갖춘 컴퓨터를 사용하면, 역으로 인간의 추론, 학습, 인식, 기타 정신적 행동 방식을 탐구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초기 인텔리저빌리티 연구들은 실제 세상과 (인지 과학의 영역인) 정신의 일부를 컴퓨터에 모델링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무려 60년 전에 이런 실험을 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다. 초기 인텔리전스 모델들은 연역적 추론(deductive reasoning)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잘 알려진 이런 종류의 초기 AI 프로그램 중 하나는 인간의 문제 해결 능력을 흉내내기 위해 1956년 만든 ‘논리 이론가(Logic Theorist)’이다. ‘논리 이론가’는 수학 이론(Principia Mathematica) 2장의 첫 52개 정리(Theorem) 가운데 38개를 증명했으며, 한 가지 정리를 발전시켰다. ‘논리 이론가’는 머신이 (당시 기준으로) 지능과 창조력이 요구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작업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을 사상 처음 증명해 보였다. 곧이어 과학자들은 다른 종류의 사고,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를 조사, 이를 설명할 가설을 도출하려 시도할 때 귀납적 추론이 사용되곤 한다. 과학자들은 귀납적 추론을 연구하기 위해 NASA 연구소 과학자들의 유기 화학에 대한 지식을 이용, 이들이 유기 분자를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는 인지 모델을 만들었다. 이 덴드랄(Dendral) 프로그램은 인공지능의 두 번째 특징적 기능인 인스트루멘탈리티...

역사 덴드랄 인스트루멘탈리티 인텔리저빌리티

2020.02.17

머신러닝 모델 분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AI가 풀어야 할 과제는 60년 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AI가 태동하던 시절, 컴퓨터 과학자들은 컴퓨터에 사람의 정신을 일부나마 재현하려 시도했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지능을 구현하려 시도한 것이다. 즉,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지능(인텔리전스)을 ‘인텔리저빌리티(Intelligibility)’로 부른다. 한편 인텔리저빌리티를 갖춘 컴퓨터를 사용하면, 역으로 인간의 추론, 학습, 인식, 기타 정신적 행동 방식을 탐구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초기 인텔리저빌리티 연구들은 실제 세상과 (인지 과학의 영역인) 정신의 일부를 컴퓨터에 모델링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무려 60년 전에 이런 실험을 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다. 초기 인텔리전스 모델들은 연역적 추론(deductive reasoning)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잘 알려진 이런 종류의 초기 AI 프로그램 중 하나는 인간의 문제 해결 능력을 흉내내기 위해 1956년 만든 ‘논리 이론가(Logic Theorist)’이다. ‘논리 이론가’는 수학 이론(Principia Mathematica) 2장의 첫 52개 정리(Theorem) 가운데 38개를 증명했으며, 한 가지 정리를 발전시켰다. ‘논리 이론가’는 머신이 (당시 기준으로) 지능과 창조력이 요구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작업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을 사상 처음 증명해 보였다. 곧이어 과학자들은 다른 종류의 사고,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를 조사, 이를 설명할 가설을 도출하려 시도할 때 귀납적 추론이 사용되곤 한다. 과학자들은 귀납적 추론을 연구하기 위해 NASA 연구소 과학자들의 유기 화학에 대한 지식을 이용, 이들이 유기 분자를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는 인지 모델을 만들었다. 이 덴드랄(Dendral) 프로그램은 인공지능의 두 번째 특징적 기능인 인스트루멘탈리티...

2020.02.17

칼럼 | 인터넷 비즈니스 역사 속 뒷이야기

1994년 NCSA에서 모자익 브라우저를 개발하여 월드와이드웹의 시대를 연 마크 안드라센은 NCS를 그만둔 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작은 회사에 취업했다. 왜 창업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회사를 창업하고 벤처 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고, 제품 또는 서비스를 개발하여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주식시장에 상장해 대박을 거두는 그런 프로세스 자체가 실리콘밸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를 최초로 만든 것이 넷스케이프였고 아직 마크 안드라센이 넷스케이프를 창업하기 전이었다. 넷스케이프가 주식시장 상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지속해서 사용자를 늘려가고 있을 때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인터넷과 웹에 큰 관심이 없었다. 빌 게이츠는 당시 미국 IT 업계를 지배하던 ‘Information Super Highway’의 주인공은 웹과 인터넷이 아니라 TV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최대 14.4Kbps 정도의 속도만 가능한 전화선으로는 미래에 필요한 통신 대역폭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생각을 바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무상으로 배포하면서 넷스케이프의 몰락을 주도하게 된다. 1994년 웹에서 최초로 배너 방식의 광고를 도입한 후 전체 매출액은 5천만 달러 수준이었고 1997년에 비로소 온라인 광고 매출이 10억 달러에 이른다. 당시 기업의 전체 광고 시장 규모는 600억 달러였다. 그러나 2015년에는 전체 디지털 광고 시장의 규모는 596억 달러로 성장한다. MakeItSo.com, Relentless.com, Cadabra.com, Browse.com, Bookmall.com 그리고 Aard.com, Awake.com.... 이 도메인 네임들은 제프 베조스가 자신의 웹사이트 이름이 결정되기 전 후보였던 이름들이다. 결국 아마존으로 결정한 이유는 A로 시작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eBay는 왜 eBay라고 이름이 지어졌을까? 창업자 Pierre Omidyar는 이미 eShop이라...

CIO 넷프케이프 사명 월드와이드웹 WWW 테슬라 역사 정철환 이름 페이팔 넷플릭스 이베이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 실리콘밸리 마피아

2019.02.28

1994년 NCSA에서 모자익 브라우저를 개발하여 월드와이드웹의 시대를 연 마크 안드라센은 NCS를 그만둔 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작은 회사에 취업했다. 왜 창업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회사를 창업하고 벤처 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고, 제품 또는 서비스를 개발하여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주식시장에 상장해 대박을 거두는 그런 프로세스 자체가 실리콘밸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를 최초로 만든 것이 넷스케이프였고 아직 마크 안드라센이 넷스케이프를 창업하기 전이었다. 넷스케이프가 주식시장 상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지속해서 사용자를 늘려가고 있을 때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인터넷과 웹에 큰 관심이 없었다. 빌 게이츠는 당시 미국 IT 업계를 지배하던 ‘Information Super Highway’의 주인공은 웹과 인터넷이 아니라 TV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최대 14.4Kbps 정도의 속도만 가능한 전화선으로는 미래에 필요한 통신 대역폭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생각을 바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무상으로 배포하면서 넷스케이프의 몰락을 주도하게 된다. 1994년 웹에서 최초로 배너 방식의 광고를 도입한 후 전체 매출액은 5천만 달러 수준이었고 1997년에 비로소 온라인 광고 매출이 10억 달러에 이른다. 당시 기업의 전체 광고 시장 규모는 600억 달러였다. 그러나 2015년에는 전체 디지털 광고 시장의 규모는 596억 달러로 성장한다. MakeItSo.com, Relentless.com, Cadabra.com, Browse.com, Bookmall.com 그리고 Aard.com, Awake.com.... 이 도메인 네임들은 제프 베조스가 자신의 웹사이트 이름이 결정되기 전 후보였던 이름들이다. 결국 아마존으로 결정한 이유는 A로 시작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eBay는 왜 eBay라고 이름이 지어졌을까? 창업자 Pierre Omidyar는 이미 eShop이라...

2019.02.28

1979년에서 2017년까지, 5G의 역사

2020년 본격화될 5G 무선 통신이 향하는 곳에는 빅데이터와 IoT가 있다. 아직 공식 표준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NGMN(Next Generation Mobile Network)DML 5G 백서에 따르면, 5G 연결은 '사용자 경험 개선, 시스템 성능, 향상된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및 관리 및 운영'라는 목표에 기반하고 있으며, 4G 대비 3배 이상 더 빠를 전망이다. 5G 시대의 도래에 앞서 이 기술이 출현하기까지의 역사를 정리했다. 1. 1984 - 1세대 1세대, 즉 1G 무선 표준은 1979년 일본 도쿄에서 처음 서비스된 이후 1984년까지 일본 전력에 배치됐다. 미국은 1983년 모토롤라 다이나택(DynaTAC) 휴대폰을 통해 첫 1G 네트워크를 개시했다. 영국과 캐나다 등의 국가들이 뒤를 이었다. 2. 1991 - 2G 1991년 핀란드에서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표준이 상업적으로 출시됐다. 2G는 1G와 비교해 월등히 우월한 표준이었다. 특히 음질을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개선됐다. 정적 잡음과 배경 잡음이 크게 감소했다. 이 밖에 개선된 무선 연결을 통해 SMS 문자 메시지를 지원했으며 디지털 암호화된 대화를 구현됐다. 모바일용 데이터 서비스 또한 최초로 제공됐다. 문자 메시지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창출해냈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적 변화는 휴대폰의 전파 도달 범위가 줄어든다는 특성으로 이어졌으며, 도시 곳곳에 셀 타워가 구축되는 풍경으로 이어졌다. 3. 2001 - 3G 3G는 2001년 5월 프리 릴리즈 테스트를 거쳐 2001년 10월 일본에서 처음 출시됐다. 초창기에는 3G 지원 핸드폰의 부재로 서비스가 지연되는 현상도 있었다. 3G 역시 2G보다 우수한 표준이었다. 3G 사용자는 위치 기반 서비스를 사용하고 모바일 TV를 시청할 수 있었다. 또 화상 회의에 참여하거나 주문형 동영상을 보는 것...

5G 역사

2018.09.12

2020년 본격화될 5G 무선 통신이 향하는 곳에는 빅데이터와 IoT가 있다. 아직 공식 표준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NGMN(Next Generation Mobile Network)DML 5G 백서에 따르면, 5G 연결은 '사용자 경험 개선, 시스템 성능, 향상된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및 관리 및 운영'라는 목표에 기반하고 있으며, 4G 대비 3배 이상 더 빠를 전망이다. 5G 시대의 도래에 앞서 이 기술이 출현하기까지의 역사를 정리했다. 1. 1984 - 1세대 1세대, 즉 1G 무선 표준은 1979년 일본 도쿄에서 처음 서비스된 이후 1984년까지 일본 전력에 배치됐다. 미국은 1983년 모토롤라 다이나택(DynaTAC) 휴대폰을 통해 첫 1G 네트워크를 개시했다. 영국과 캐나다 등의 국가들이 뒤를 이었다. 2. 1991 - 2G 1991년 핀란드에서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표준이 상업적으로 출시됐다. 2G는 1G와 비교해 월등히 우월한 표준이었다. 특히 음질을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개선됐다. 정적 잡음과 배경 잡음이 크게 감소했다. 이 밖에 개선된 무선 연결을 통해 SMS 문자 메시지를 지원했으며 디지털 암호화된 대화를 구현됐다. 모바일용 데이터 서비스 또한 최초로 제공됐다. 문자 메시지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창출해냈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적 변화는 휴대폰의 전파 도달 범위가 줄어든다는 특성으로 이어졌으며, 도시 곳곳에 셀 타워가 구축되는 풍경으로 이어졌다. 3. 2001 - 3G 3G는 2001년 5월 프리 릴리즈 테스트를 거쳐 2001년 10월 일본에서 처음 출시됐다. 초창기에는 3G 지원 핸드폰의 부재로 서비스가 지연되는 현상도 있었다. 3G 역시 2G보다 우수한 표준이었다. 3G 사용자는 위치 기반 서비스를 사용하고 모바일 TV를 시청할 수 있었다. 또 화상 회의에 참여하거나 주문형 동영상을 보는 것...

2018.09.12

우스운 놈, 야릇한 놈, 그리운 놈··· 빈티지 기술 광고 라운드업

우리를 추억에 젖게 하는 빈티지 광고를 정리했다. 몇몇은 우습고 몇몇은 민망하다. 그리고 몇몇은 복잡하지 않았던 그 시절을 그립게 만들기도 한다. 잠시 그 옛날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본 콘텐츠는 영국 테크월드 로리 클라크 기자의 기사를 토대로 작성됐다. 일찌감치 '멋쟁이'(groovy men)를 내세운 애플의 '아이폰' 광고. 사브리나를 내세운 벨앤하우웰(Bell & Howell) 프로젝터 광고. "심지어 섹시하기까지 하다"라고 묘사된 펜릴(Penril) 데이터 모뎀. 2 바이트를 야릇하게 이용한 테크니코 SS-16 광고. 컴퓨터 제조사였던 버로우스(Burroughs)는 '화를 내고 있는 젊은 컴퓨터' 이미지를 내세웠다. 코모도어 이그제큐티브 64 컴퓨터에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냐고? 셔츠 단추를 채울 필요가 있는 중년 남자다. LBMS. 오늘날에는 지루하게 들리는 '컴퓨터 지원 시스템 엔지니어링'이지만, 예전에는 파격적인 이미지와 조합되고 있었다.  하니웰 전자 메일. '요정'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컴퓨서브는 온통 하얀 색으로 둘러쌓인 미래를 묘사했다. 우주복 같은 패션을 포함해서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애플의 광고 콘셉트가 그 중 하나다. ciokr@idg.co.kr 

광고 역사 빈티지

2018.06.20

우리를 추억에 젖게 하는 빈티지 광고를 정리했다. 몇몇은 우습고 몇몇은 민망하다. 그리고 몇몇은 복잡하지 않았던 그 시절을 그립게 만들기도 한다. 잠시 그 옛날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본 콘텐츠는 영국 테크월드 로리 클라크 기자의 기사를 토대로 작성됐다. 일찌감치 '멋쟁이'(groovy men)를 내세운 애플의 '아이폰' 광고. 사브리나를 내세운 벨앤하우웰(Bell & Howell) 프로젝터 광고. "심지어 섹시하기까지 하다"라고 묘사된 펜릴(Penril) 데이터 모뎀. 2 바이트를 야릇하게 이용한 테크니코 SS-16 광고. 컴퓨터 제조사였던 버로우스(Burroughs)는 '화를 내고 있는 젊은 컴퓨터' 이미지를 내세웠다. 코모도어 이그제큐티브 64 컴퓨터에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냐고? 셔츠 단추를 채울 필요가 있는 중년 남자다. LBMS. 오늘날에는 지루하게 들리는 '컴퓨터 지원 시스템 엔지니어링'이지만, 예전에는 파격적인 이미지와 조합되고 있었다.  하니웰 전자 메일. '요정'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컴퓨서브는 온통 하얀 색으로 둘러쌓인 미래를 묘사했다. 우주복 같은 패션을 포함해서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애플의 광고 콘셉트가 그 중 하나다. ciokr@idg.co.kr 

2018.06.20

"사람은 로봇의 감독관이 돼야 한다" HPE의 SGI 담당 CTO

학자들은 인공지능(AI) 및 로봇 같은 기술이 제공하는 자동화 덕분에 업무의 절반이 곧 사라질 것으로 예측한다. HPE의 SGI CTO 겸 부사장인 응 림 고 박사는 “궁극적으로 어떤 업무가 대체될지는 아직 논의 중이지만 AI 세계에서 우리는 올바른 결정과 올바른 결정을 구별해야 하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지난주 호주 멜버른의 루터대학(Luther College)에서 고 박사는 AI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후 Q&A 세션에서 역사적인 데이터를 사용하여 기계가 최적화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도덕적으로 옳은 결정을 전달해야 한다. 어떤 정확한 의사결정은 사회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자라면서 다른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공부하고, 학교에 가고, 와인 파티에 가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고 박사는 밝혔다. 이어서 고 박사는 "[이 시간에] 우리는 인간 가치 체계를 관찰하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로봇을 만든 인간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산업혁명 당시 [했던] 것처럼, 우리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과 객관적으로 정확한 것을 구분하면서 로봇의 감독관이 돼야 한다. 객관적으로 정확한 결정 대부분은 도덕적으로 옳은 결정이다. 하지만 그들 중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청중들에게 이야기했다. 이런 이유로 고 박사는 과학을 공부하는 것 외에도 인문학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학, 사회과학, 역사 등 이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인류를 로봇과 차별화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중요할 것"이라고 고 박사는 덧붙였다.   --------------------------------------------------------------- 인공지능 인기기사 ->칼럼 | 성큼 도래한 유비쿼터스 A...

CIO 일반지능 HPE 역사 인공지능 사회과학 일자리 CTO 인문학 SGI 업무 경제학 general intelligence

2018.06.08

학자들은 인공지능(AI) 및 로봇 같은 기술이 제공하는 자동화 덕분에 업무의 절반이 곧 사라질 것으로 예측한다. HPE의 SGI CTO 겸 부사장인 응 림 고 박사는 “궁극적으로 어떤 업무가 대체될지는 아직 논의 중이지만 AI 세계에서 우리는 올바른 결정과 올바른 결정을 구별해야 하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지난주 호주 멜버른의 루터대학(Luther College)에서 고 박사는 AI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후 Q&A 세션에서 역사적인 데이터를 사용하여 기계가 최적화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도덕적으로 옳은 결정을 전달해야 한다. 어떤 정확한 의사결정은 사회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자라면서 다른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공부하고, 학교에 가고, 와인 파티에 가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고 박사는 밝혔다. 이어서 고 박사는 "[이 시간에] 우리는 인간 가치 체계를 관찰하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로봇을 만든 인간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산업혁명 당시 [했던] 것처럼, 우리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과 객관적으로 정확한 것을 구분하면서 로봇의 감독관이 돼야 한다. 객관적으로 정확한 결정 대부분은 도덕적으로 옳은 결정이다. 하지만 그들 중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청중들에게 이야기했다. 이런 이유로 고 박사는 과학을 공부하는 것 외에도 인문학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학, 사회과학, 역사 등 이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인류를 로봇과 차별화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중요할 것"이라고 고 박사는 덧붙였다.   --------------------------------------------------------------- 인공지능 인기기사 ->칼럼 | 성큼 도래한 유비쿼터스 A...

2018.06.08

개척자의 전설··· 세일즈포스의 역사 브리핑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 휴일 마크 베니오프가 하와이의 바다에 떠 있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바다 위에서 생각했다. '왜 소프트웨어를 아마존에서 물품 사는 것처럼 살 수는 없는 거지?' 이렇게 시작된 아이디어는 베니오프와 그의 개발자 팀이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소프트웨어를 인터넷으로 제공하고 월별, 이용자별로 과금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탐색하게 만들었다. 베니오프는 2009년 저서인 'Behind The Cloud'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마존닷컴에서와 같이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련느 목표로 1999년 임대 아파트에서 세일즈포스닷컴을 시작했다." 여기 신생기업에서 세계 최대의 SaaS 기업으로 성장한 세일즈포스닷컴의 타임라인을 간단히 정리했다. 2018 세일즈포스 타워 개소식에 등장한 마크 베니오프 설립 베니오프는 오라클 부사장이라는 직책을 무려 23세에 얻어내며, 자신의 역량을 일찌감치 입증했다. 그는 1999년 3월 레프트 코스트 컨설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3인(파커 해리스, 데이브 묄렌호프, 프랭크 도밍게즈)과 함께 세일즈포스를 설립했다. '비하인드 더 클라우드'에서 개괄한 바와 같이 이 기업의 목표는 "설치, 유지 보수 및 지속적인 업그레이드의 복잡성 없이 소프트웨어를 보다 쉽게 ​​구입하고, 사용하기 쉽고, 대중화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세일즈포스 고객들은 연 3회 인터넷을 통해 신기능을 제공받고 있다. 세일즈포스닷컴은 2004년 6월 상장돼 1억 1,000만 달러를 모금했다. 오라클 설립자 래리 엘리슨은 베니오프의 초기 투자자이자 멘토였다. 플랫폼 구축 이후 세일즈포스는 세일즈 클라우드, 마케팅 클라우드, 커뮤니티 클라우드, 서비스 클라우드, 커머스 클라우드 등 다양한 분야, 다양한 브랜드의 CRM 소프트웨어를 출시하기 ...

CRM 세일즈포스 오라클 마크 베니오프 역사

2018.05.31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 휴일 마크 베니오프가 하와이의 바다에 떠 있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바다 위에서 생각했다. '왜 소프트웨어를 아마존에서 물품 사는 것처럼 살 수는 없는 거지?' 이렇게 시작된 아이디어는 베니오프와 그의 개발자 팀이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소프트웨어를 인터넷으로 제공하고 월별, 이용자별로 과금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탐색하게 만들었다. 베니오프는 2009년 저서인 'Behind The Cloud'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마존닷컴에서와 같이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련느 목표로 1999년 임대 아파트에서 세일즈포스닷컴을 시작했다." 여기 신생기업에서 세계 최대의 SaaS 기업으로 성장한 세일즈포스닷컴의 타임라인을 간단히 정리했다. 2018 세일즈포스 타워 개소식에 등장한 마크 베니오프 설립 베니오프는 오라클 부사장이라는 직책을 무려 23세에 얻어내며, 자신의 역량을 일찌감치 입증했다. 그는 1999년 3월 레프트 코스트 컨설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3인(파커 해리스, 데이브 묄렌호프, 프랭크 도밍게즈)과 함께 세일즈포스를 설립했다. '비하인드 더 클라우드'에서 개괄한 바와 같이 이 기업의 목표는 "설치, 유지 보수 및 지속적인 업그레이드의 복잡성 없이 소프트웨어를 보다 쉽게 ​​구입하고, 사용하기 쉽고, 대중화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세일즈포스 고객들은 연 3회 인터넷을 통해 신기능을 제공받고 있다. 세일즈포스닷컴은 2004년 6월 상장돼 1억 1,000만 달러를 모금했다. 오라클 설립자 래리 엘리슨은 베니오프의 초기 투자자이자 멘토였다. 플랫폼 구축 이후 세일즈포스는 세일즈 클라우드, 마케팅 클라우드, 커뮤니티 클라우드, 서비스 클라우드, 커머스 클라우드 등 다양한 분야, 다양한 브랜드의 CRM 소프트웨어를 출시하기 ...

2018.05.31

회사명:한국IDG 제호: ITWorld 주소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23, 4층 우)04512
등록번호 : 서울 아00743 등록일자 : 2009년 01월 19일

발행인 : 박형미 편집인 : 박재곤 청소년보호책임자 : 한정규
사업자 등록번호 : 214-87-22467 Tel : 02-558-6950

Copyright © 2022 International Data Group. All rights reserved.

1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