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분야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꾸준히 발전한다. 그리고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제품들도 시간이 갈수록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매년 신차종이 나온다. 그리고 신차종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며 안정성이 높아지고 편의성이 향상된다.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등 첨단 제품은 지속적으로 신제품이 나오고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 역시 세월이 가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작년 하반기에 기존의 오피스 제품군을 업그레이드 한 MS 오피스 2013을 출시했다. 그런데 과연 이 신제품은 오피스 사용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제품들은 신제품이 곧 더 나은 제품을 의미한다. 하지만 신제품이라고 해도 기술적인 면에서 발전이 별로 없는 제품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에어컨, 식기세척기, 세탁기, 냉장고, 시계, 가구류 등은 어떤가? 이미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의 정점에 달해 현 제품의 기능만으로도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들이다. 다만 이러한 제품들은 시간이 지나 수명이 다해서 새것으로 바꾸어 줄 필요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제품들이 시간이 지나도 전혀 고장이 나지 않고, 성능도 저하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기존의 제품을 버리고 새것으로 사겠는가?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하물며 신제품이 기존의 제품과는 많이 다른 사용법과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출시되었다면 새로이 익혀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멀쩡한 세탁기와 냉장고를 새것으로 교체하겠는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MS오피스 제품군은 어떤가? 사용 시 기능의 부족함은 많이 느끼는가?
필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2013 발표회를 참관하였다. 클라우드와 연계되고 태블릿PC를 위한 UI도 포함되는 등 최근의 IT 추세에 따라 많은 기능을 포함하였다. 그 이외에도 여러 기능들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이미 필자는 다른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여 오피스 자료를 여러 디바이스에서 공유하고 있고 태블릿이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본격적인 자료의 작성은 키보드가 있는 노트북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러한 업그레이드 기능이 꼭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필자는 오피스 2007을 사용하고 있다. 그나마도 손에 익었던 오피스 2003에서 올라오는데 좀 노력이 필요했었다. 필자가 있는 회사에서는 아직도 오피스 2003을 사용하는 사용자들도 제법 있다. 이런 사용자들에게 오피스 2013은 어떤 의미일까?
소프트웨어 제품은 다른 공산품들과는 달리 오래 쓴다고 해서 기능이 저하되거나 고장이 나는 제품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사용하게 되면 손에 익어서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제품을 업그레이드 된 제품으로 바꾸면 한동안 사용법이 달라서 업무 능률이 저하될 수 있다. 하물며 기존의 제품으로 자신의 담당 업무를 수행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면 과연 업그레이드 된 소프트웨어 제품으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필자는 1980년대부터 컴퓨터를 이용한 문서작업을 해왔다. 당시 MS-DOS 환경에서 국내 기업이 만든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문서를 작업했었다. 당시의 컴퓨터 하드웨어 환경과 지금의 환경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나지만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하여 글을 쓰는 작업의 본질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글은 내용이 좋아야 하는 것이 핵심이지 워드 프로세서의 기능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프레젠테이션도 마찬가지 아닐까? 화려한 프레젠테이션 기능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스프레드시트의 경우에는 좀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엄청난 스프레드시트의 기능들을 다 알고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로운 오피스를 내놓게 된 배경과 새로운 제품이 지향하고 있는 것을 필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개발 배경과 새로이 추가된 기능 중에 기존 오피스 사용자의 니즈와 요구사항에 기반한 것이 얼마나 될까? 극히 일부분의 전문 사용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오피스 사용자들이 오피스 2003 또는 2007 이상의 기능을 필요로 할까? 기업의 PC 운영체제 환경 역시 아직까지도 윈도우7을 사용하는 기업이 많아졌지만 아직까지 윈도우XP를 사용하고 있는 기업들이 꽤 된다. 이유는 운영체제 변경에 따라 바뀌어야 할 기업 내 IT 환경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고 XP 만으로도 지금까지 큰 불편 없이 업무를 수행해 왔고 필요로 하는 기능은 추가적인 소프트웨어 설치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필자의 의견과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피스 2013을 간절히 기다려 온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피스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제품이 아니다. 수 많은 사무직 종사자의 업무 수행을 위한 필수 도구다. 마치 목수가 연장을 필요로 하듯 사무직 종사자에게 오피스는 대패요 끌이요 망치이다. 하지만 “훌륭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 목수에게 있어 중요한 건 자신의 실력이다. 사무직 업무 종사자들에게 필요한 건 보고서 쓰는 능력의 향상이요, 프레젠테이션 자료 작성 능력의 향상이다. 훌륭한 타자기가 명작 소설 창작의 핵심이 아니듯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새로이 출시된 오피스 2013은 너무도 복잡하고 거대해진 것은 아닐까? 모든 기능을 오피스에 담기 위해 무거워지고 복잡해지고 그리고 비싸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업그레이드가 정말 사무직 종사자의 업무 능력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줄까?
최근 에버노트라는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 필자도 애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이다. 아주 단순한 인터페이스와 제한된 기능을 제공하지만 iOS와 안드로이드 기반의 모바일 기기와 태블릿, 그리고 PC를 통합한 환경을 통해 자료를 작성하고 간단하게 싱크할 수 있는 아주 가볍고 유용한 소프트웨어이다. 물론 표 작성이나 기타 오피스에서 제공되는 기능들이 구현되어 있지 않아 불편하다고 하는 사용자들도 있다. 하지만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및 웹 브라우저와 윈도우에서 완벽한 통합성을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의 윈도우 플랫폼 중심의 생각을 버리고 iOS와 안드로이드를 통합하여 오피스 자료를 사용할 수 있는 가볍고 단순화된 통합 소프트웨어 환경을 진작에 내놨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주 저렴한 가격이나 또는 무료로 말이다. 그것이 정말로 많은 오피스 사용자들이 원했던 요구사항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가 iOS와 안드로이드용 오피스를 출시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잘 나가는 소프트웨어 기업이 자사의 이익 중심이 아닌 진정한 사용자 중심의 마인드를 갖길 원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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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환 팀장은 삼성SDS,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부제철 IT기획팀장이다. 저서로는 ‘SI 프로젝트 전문가로 가는 길’이 있으며 삼성SDS 사보에 1년 동안 원고를 쓴 경력이 있다. 한국IDG가 주관하는 CIO 어워드 2012에서 올해의 CIO로 선정됐다. ciokr@id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