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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교양

인문학 | 자유주의와 매춘, 그리고 정의

2012.10.15 김민철  |  CIO KR
우리나라에서 매춘은 불법이다. 성을 파는 사람뿐 아니라 성을 사는 사람까지도 처벌받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매춘의 천국이다. 최근에는 강남에서 건물 전체를 빌려 기업형 매춘을 했다는 보도가 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매춘 산업 종사자의 규모다. 공식적으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매춘에 종사하는 여성의 숫자는 100만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가임기 여성의 1/5에 육박하는 숫자다.

혹자는 이에 놀라움을 표시하며, “에이, 그럴 리가 있나? 미아리와 같은 대표적인 매춘굴이 사라진 지가 언젠데?”라는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서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룸살롱과 같은 술집에서 술을 따르는 여성들이 거의 대부분 매춘에 종사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는 그리 놀라운 숫자도 아니다. 룸살롱의 변형된 형태는 물론이고, 안마방과 같은 기타 업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매춘에 앞서 언급한 기업형 매춘, 그리고 원조교제를 포함한 개인적 차원의 매춘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를 훌쩍 뛰어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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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매춘 산업의 연 매출 규모가 GDP의 4% 정도로, 농림어업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매출을 합법화해서 월드컵 특수를 누릴 정도인 독일조차도, 인구는 우리의 1.5배 이상인데, 매춘 여성의 숫자와 규모는 우리의 반 이상임을 감안해 보면, 한국이 얼마나 매춘의 천국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한탄을 자아내게 하는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가 철학자로서 던질 수 있는, 그리고 던져야 하는 질문은 “왜 매춘이 불법으로 금지되어야 하는가?”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독자 여러분들은 필자를 미친놈이나 이상한 사람쯤으로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철학이란 원래 그렇게 모두가 당연히 여기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학문일 뿐 아니라, 막상 따져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음도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성을 파는 것은 당연히 나쁜 짓이지”라는 대답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성을 파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인가는 아니라 혼외 성관계 혹은 사랑 없는 성관계가 잘못된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파생될 수 있는 것이며, 그 문제에 대한 합리적 대응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이 좁은 공간에서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 범위를 좁혀야만 한다. 매춘 행위가 도덕적으로 비난의 소지가 없는가가 아니라 매춘을 불법화하고 처벌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도덕과 법의 영역은 분명히 다르다. 도덕을 어겼을 때는 비난을 받지만, 법을 어겼을 때는 처벌을 받는다. 그런 면에서 법적 기준은 도덕적 기준보다 훨씬 엄격해야 한다. 법을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물론 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해서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도 있다. 국가가 도덕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법에 포괄하여, 부도덕한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국민들이 바람직할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일견 타당할 뿐 아니라 바람직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몇 가지 반례를 들어 보기만 하더라도 그 문제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게을러서 성실히 가족을 부양하지 않는 가장, 술 마시고 노느라 가정을 소홀히 하는 아내, 매일 늦잠을 자서 학교에 지각하는 학생, 노인에게 경어를 쓰지 않고 불손하게 대하는 아이 등을 도덕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를 법으로 처벌한다면 바람직하겠는가?

그러한 사회는 결국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조지 오웰의 <1984>, 그리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데몰리션 맨>, <브이포벤데타>, <이퀼리브리엄> 등의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진 바 있다. 무엇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한가라는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문제를 법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그 질문에 대해 확고한 대답을 내려 줄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결국 완벽한 이상 사회를 추구하다 보면 독재자에 의해 자유를 침해당할 수밖에 없음을 그러한 작품들은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법은 최소한인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헌법에서 자유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는 대한민국 입법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 자유주의 하에서 법이란 타인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사안에 대해서만 금지 및 처벌을 행해야 한다. 그것이 자유주의 사회의 입법 원리이다. 자유권이란 크게 두 종류이다. 하나는 신체의 자유이며, 둘째는 재산의 자유다. 폭력, 납치, 강간 등은 전자를 침해한 것이고,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등은 후자를 침해한 경우이다. 이렇게 타인의 자유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모든 행위에 대한 자유는 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강압이나 사기의 요소가 개입되는 않는 한 모든 계약은 존중받아야 한다. 물론 미성년자의 경우는 예외다. 그들은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통해 자신의 결정을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을 정도의 성숙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가 보호자의 동의 없이 휴대폰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면 그것은 무효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성년자의 매춘이 허용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성년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매춘 종사자를 납치하고 감금하며 그에게 협박을 가하여 매춘을 행하게 했다면 당연히 이는 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며 불법으로 처벌받아 마땅하다. 매춘의 대가를 다른 사람이 강취했다면 그 역시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가 전혀 없이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해 성을 사고파는 행위가 처벌받아야 할 이유는, 최소한 자유주의의 법적 원리에 따르면, 전혀 없다. 누구의 자유권도 침해당하지 않았으며, 당사자들 간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행해진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이유는 정의의 원리 때문이다. 모두가 좋은 것은 각자의 몫에 따라 나누는 것이 정의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나누어야 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해당된다는 것이다. 두 학생이 수업을 ‘땡땡이’쳤는데, 한 사람은 부잣집 자식이라는 이유로 훈방되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한 집 자식이라는 이유로 50대를 맞는다면 정의로운 처사라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둘 다 안 맞는다면 최선이겠지만, 맞아야 한다면 25대씩 나누어 맞거나 아니면 둘 다 50대씩 맞아야 정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법 제정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매춘을 쉽사리 합법화할 수 없는 현실적 이유가 바로 이곳에 존재한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시라. 매춘을 할 용의가 있는가? 매춘은 분명 남녀를 막론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꺼리는 행위다. 그런데 매춘 종사자는 여성에 집중되어 있다. 사람들이 꺼리는 어떤 것을 특정 집단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사회적인 강압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특정 집단만이 당해서는 안 된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매춘에 종사하는 남녀의 비율이 같아야 하고, 강간을 당하는 남녀의 숫자도 비슷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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