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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교양

인문학 |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하자

2014.11.14 이선열  |  CIO KR
1999년 세상을 떠난 미국의 시인 마크 오브라이언은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후 신체의 대부분이 마비되어버린 중증 장애인이었다. 목 아래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마크는 생의 대부분을 거대한 인공호흡장치 안에서 누워 보내야 했다. 그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특유의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몇 권의 시집과 자서전을 발간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지난 2012년 그의 길지 않았던 생애 후반기의 특별한 경험을 다룬 영화가 공개되어 주목을 끌었다.

영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이 보여주는 마크 오브라이언의 특별한 경험이란 다름 아닌 섹스다. 생의 대부분을 전신마비 상태로 살았던 마크에게 성욕이란 신체적 장애와 더불어 또 다른 저주였다. 신은 그에게 움직일 수 없는 신체와 채워질 수 없는 성욕이라는 이중의 시련을 주었다. 서른여덟 살이 되도록 성 경험이 전무했던 그는 여인을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는 처지에 좌절을 느낀다. 마크는 온전한 인간으로서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열패감에 빠트리는 콤플렉스에 도전하게 되고, 마침내 한 여성 섹스 테라피스트의 도움으로 정상적인 섹스의 과정을 배워나간다.

성 경험을 통해 성숙해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있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제법 파격적이다. 영화에서 묘사된 실제 성행위를 통한 성 치료요법이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기 때문이다. 이른바 섹스 테라피(sex therapy)는 성기능 장애로 인해 심리적 문제를 겪거나 대인관계에 곤란을 겪는 이들의 장애 요인을 단계적으로 파악해 치유하는 요법을 말한다. 대개 의학적 조치로는 해결이 불가능할 경우 시행하게 되는데,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필요에 따라 테라피스트와 의뢰인 간의 성행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물론 의뢰인은 그러한 테라피의 대가를 금전적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대해 하나의 윤리적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돈을 받고 행해지는 섹스 테라피는 일반적인 의미의 성매매와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물론 단순히 욕정을 추구하는 성매매와 치료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테라피는 목적과 의도에서 구분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 사이의 경계는 모호한 면이 있다. 무엇보다 두 경우 모두 성이 금전적 교환가치로서 이용된다는 점에서 형식상 동일성을 갖는다. 거칠게 말한다면 섹스 테라피 역시 치료라는 명목으로 성을 사고파는 행위가 아닌가? 과연 섹스는 치료요법의 일종으로서 인정될 수 있는 행위일까?

이처럼 금전적 대가가 따르므로 섹스 테라피와 성매매의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여겨진다면, 조금 다른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금전적 보상이 따르지 않고 무상으로 행해지는 ‘섹스 자원봉사’의 경우라면 어떨까? 이를테면 성경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지체 부자유 장애인을 위해 누군가 ‘무상으로’ 섹스를 제공한다면? 적어도 이 경우엔 ‘매매’라는 단어가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통념상 일반인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들리겠지만 장애인 성 봉사(sex volunteer)는 근래 소수자 인권 담론의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다. 장애인 성 봉사란 말 그대로 자력으로 성욕을 해소할 능력이 없는 장애인에게 섹스 및 기타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뜻한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에게 밥을 먹여주거나 옷을 입혀주는 활동은 마땅히 해야 할 도덕적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지체 부자유 장애인의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봉사하는 일 역시 도덕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을까? 과연 섹스는 봉사활동의 하나로 인정될 수 있는 행위인가?

이러한 물음을 품고 있는 장애인의 성 담론은 비교적 최근 들어 이슈화되기 시작한 의제다. 한 사회 안에서 비장애인이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를 장애인도 최대한 동등하게 향유토록 해야 한다는 발상은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다. 문제는 그렇게 보장되어야 할 소수자의 권리에 섹스 역시 포함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성욕을 충족시킬 정당한 권리가 있다면, 자력으로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없는 이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해 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단지 성욕 해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행복추구권 및 평등권의 보장에 관한 문제가 된다. 그렇게 볼 때 쟁점은 성을 경원시하는 전통적 성 관념과 장애인의 권리 보장이라는 두 도덕 가치가 상충하는 데서 발생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성욕은 식욕과 더불어 인간의 원초적 욕구다. 사지가 마비되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체 부자유 장애인에게도 성욕은 통제하기 힘든 자연의 명령이다. 그러나 성적 불만족으로 인해 야기되는 그들의 고통이 타인에게 전해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성욕의 해소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저속하게 여기는 사회적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적 고통은 대개 알아서 견뎌야 할 사적인 차원의 문제로 치부되기 마련이고 제대로 공론화되기 힘들다. 나아가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운운하는 것은 그보다 우선적인 장애인 인권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사치스런 생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성욕의 충족이 가지는 의미를 그저 쾌락의 추구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쾌락이 아니라 결핍된 인간적 존엄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성적 소외는 장애인에게 열등감과 모멸감을 느끼게 하며 타인과의 정상적인 교감을 방해하는 원인이 된다. 즉 성의 문제는 단순히 일시적인 욕구의 충족에 그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마크 오브라이언의 이야기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몸을 가진 행운아들로 하여금 그와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적어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성이 갖는 의미를 동일한 층위에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말이다.

장애인 성 봉사는 이른바 인권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도 찬반이 분분한 사안이다. 개방적인 성 문화를 가진 일부 국가에서는 성 봉사가 합법적으로 인정되기도 하지만 아직 일반적인 합의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성 문제에 유달리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는 찬반 여부를 떠나 논의 자체가 불충분하다. 그러나 담론의 유무와 무관하게 장애인의 성적 욕구는 실재하며, 애타는 그들을 상대로 성 봉사나 성 치료를 빙자한 변칙적인 성매매나 성폭력이 노골적으로 횡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9조는 모든 장애인의 성에 관한 권리를 존중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의 성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불편한 침묵과 무관심 속에 법령은 그저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당사자들은 음성적인 해결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성은 여전히 우리에게 뜨거운 감자다. 성의 문란을 경계하는 전통적인 성 도덕을 그저 구시대의 낡은 관념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옳든 그르든 관습화된 도덕에는 실제적으로 사람들을 규율하는 힘이 있으며, 그에 반하는 행동에 사람들은 거북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서적 거부감이 윤리적 판단의 일차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보장하는 지원책으로 양성화된 성적 서비스나 성 봉사가 최선의 방안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일회적으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게끔 도와주는 성 서비스보다는 성적 주체로서 장애인의 권리와 인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것, 우리 사회에는 보다 근본적으로 그러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 불편한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든 누군가는 말하고 누군가는 듣는 것, 그 이해와 소통의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공군사관학교, 숭실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주로 중국 철학과 한국 유학에 관련된 논문을 쓰고 강의를 해왔으나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윤리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동방사상과 인문정신>(공저)이 있으며 청소년을 위한 고전 시리즈로 박제가의 <북학의>를 편역한 적이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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