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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조선시대에 CIO가 있었다면···

2014.03.03 정철환  |  CIO KR
이번 달 칼럼은 따스한 밥 먹고 쉰 소리 하는 엉뚱한 칼럼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먼저 구합니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기본 정치이념으로 선택하고 있다. 영국과 같이 비록 아직까지도 왕이 존재하는 국가일지라도 실질적인 국가 권력은 선거를 통한 민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국민이 선택한 정치인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조직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있다. 바로 기업이다. 기업은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도 아니고 리더를 직원의 선거로 뽑지도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그룹은 오너집안의 상속에 의해 경영권이 세습된다. 민주주의가 보편 타당한 정치체제가 된 오늘날에도 기업은 왕권주의 사회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경영된다. 그리고 그러한 기업의 임원들은 왕조시대의 대신들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봤다. 만약 기업의 CIO라는 보직이 조선왕조에도 있었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정사회라는 말이 있다. 왕이라는 절대권력자가 있는 궁궐 내부의 사회를 의미하는 말로 치열한 경쟁과 대립이 눈에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곳이며 크나큰 출세의 길이 열리기도 하고 때론 모함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그런 사회다. 궁정사회에서는 구성원들끼리 절대 속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심지어 표정도 수시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앞에서 웃고 있으면서 뒤에서는 칼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사회가 궁정사회다. 궁정사회에서 왕은 모든 권력의 정점에 있다. 그리고 신하들은 왕 앞에서 자신의 안위와 세력 유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인물은 절대 왕 앞에 나타나지 않게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 하물며 그 인물이 왕이 그 동안 몰랐던 신하의 잘못들을 깨닫게 해 줄 수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CIO라는 신하는 궁궐에서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보직이다. 다른 대신들의 입궐에서 퇴궐까지의 모든 행동은 물론 나라의 현황에 관련된 정보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왕이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세세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신하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문제가 무엇이고 평소 왕 앞에서 올리는 보고에 어떤 내용이 왜곡되고 심지어 빠져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그렇기에 다른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CIO란 신하와는 불편한 관계일 수 있다. 따라서 다른 대신들은 CIO가 직접 왕으로부터 어명을 하달 받거나 왕에게 직접 보고를 올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자신들이 직접 왕에게 보고하는 것을 원할 것이다. 한편 CIO는 이런 궁정사회에서 큰 실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의 업무는 궁궐의 정보를 잘 관리하고 정보를 필요로 하는 여러 대신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면 되는 역할로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CIO는 문신 출신이 아니어서 정치에 능하지 못하다. 따라서 대부분 조용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만약 어느 정승이 뭔가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CIO를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상대 세력의 정보는 물론 자신들의 정보도 모두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CIO를 자신의 편에 세우지 않으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왕이라면 반드시 이런 정승들이 음모를 꾸밀 수 있다는 걱정을 늘 하기 때문에 역시 CIO를 가까이 두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얻고자 할 것이다. 다만 이렇게 하지 못하도록 평소에 여러 정승들이 왕과 CIO의 관계를 가까워지지 않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막고자 할 것이기에 대부분 왕과 CIO는 직접적인 대면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세력이 막강한 정승이라면 CIO가 자기편으로 들어오지 않을 경우 사소한 정보 제공의 오류나 잘못을 문제 삼아 CIO의 목을 베어버리는 경우도 있었기에 CIO는 주변에서 눈밖에 나지 않도록 늘 낮게 처신하고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조선시대에 왕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왕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정승들의 보고를 통해 듣는 이야기가 대부분이거나 극히 일부가 올리는 상소문들을 통해서만 외부의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각 분야에서 실권을 가진 정승들은 세세한 정보까지 접할 수 있었으며 이를 활용했다. CIO는 이러한 정승들의 모든 정보를 뒤에서 제공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정승들이 CIO가 너무 많은 정보를 알게 되는 것을 꺼리기에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직접적인 CIO의 관여는 절대적으로 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저 평소 정승들은 CIO에게 정보 관리나 차질 없이 잘 하면 된다고 했을 것이다.

결국 조선왕조 시대에 CIO라는 보직의 신하가 있었다고 해도 역사상에 눈에 띄는 활동을 남기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때로는 궁정사회의 권력 대립에서 희생된 경우도 종종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문 경우가 될 수는 있지만 CIO의 중요성을 파악한 왕이 즉위한 경우에는 왕의 최 측근에서 왕을 보좌하고 왕이 자신의 개혁정치를 펼치는데 큰 공헌을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정승들이 개혁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며 자신들의 영향력이 감소되고 심지어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될 수도 있는 개혁을 막으려 했을 것이므로 왕이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알고 살피는 것을 가능한 막고자 했을 것이니 말이다.


필자 생각에 조선시대에 CIO라는 보직의 신하가 있었다면 그리 높은 관직을 하사 받지는 못했을 것이고 역사에 많이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아주 가끔씩 개혁을 강하게 추진하던 왕이 등장할 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지 않았을까? 필자의 이런 생각은 단순한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왠지 씁쓸한 상상이라는 생각에 젖어 들게 되는 건 왜일까?

*정철환 팀장은 삼성SDS,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부제철 IT기획팀장이다. 저서로는 ‘SI 프로젝트 전문가로 가는 길’이 있으며 삼성SDS 사보에 1년 동안 원고를 쓴 경력이 있다. 한국IDG가 주관하는 CIO 어워드 2012에서 올해의 CIO로 선정됐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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