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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O / 리더십|조직관리

칼럼 | 기업에게 정보시스템이란?

2011.09.19 정철환  |  CIO KR

몇 년 전에 필자가 몸담았던 회사에서 단체로 농구경기 응원을 간 적이 있었다. 박진감 넘치는 농구경기가 끝나고 응원을 갔던 사람들 모두 대표이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됐다.

식사 자리에서 대표이사는 팀장들에게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이야기를 하도록 했고 팀장들은 각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 중에는 그날 봤던 농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았다. “역시 농구경기에는 감독의 역할이 중요함을 느꼈다. 회사에서도 리더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농구경기에서는 스타 플레이어 보다는 팀워크가 더 중요함을 느꼈다” 등의 이야기였다.


필자가 했던 말은 “여러분들이 눈여겨보지 않았겠지만 농구경기장에 있는 전광판의 중요함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남은 공격시간을 보여주는 초시계가 없거나 스코어 및 각종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전광판이 고장 난다면 농구경기를 중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숨어서 전광판이 잘 동작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있기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기업의 정보시스템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였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정보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는 데이터센터에 전기설비 장애가 발생했고 실제로 업무 시간 중에 10시간이 넘게 모든 정보시스템이 다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필자의 입이 방정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날 모든 직원들은 대부분 서성이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 동안 필자의 속은 까맣게 타 들어갔고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후 늦게 돼서야 전기설비 복구가 끝나고 정상을 되찾게 되었다. 마침 이 글을 쓰는 날 저녁 헤드라인 뉴스도 가을의 늦더위로 인해 국내 여러 곳에 대규모 정전사고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가 평소 전기가 공급되는 것에 대해 신경이나 쓴 적이 있었던가? 마찬가지로 평소 출근해 PC를 켜고, 그룹웨어에 로그인하여 메일을 보고 결재하고 ERP에 접속해 업무를 수행하고 스마트폰으로 와이파이에 접속하여 정보를 조회하고 PC에서 웹 검색을 하고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고 보고서를 작성해 출력하고 메일로 보내고 퇴근하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정보시스템을 운영하는, 숨은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 인식할 수 있을까? 월요일 아침에 평소보다 많은 사용자가 업무 시작시간에 몰려 메일이 조금 늦은 반응을 보이면 불만을 토로할지언정 말이다.

전기가 최신 기술인 적이 있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무렵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정보시스템이 마법처럼 여겨지는 시절이 있었다. 정보시스템을 개발하면 성대하게 개통식을 하고 대표이사가 버튼을 누르면 프린터에서 마구 출력물을 찍어내는 행사를 하던 시절부터 시작해 사무실에 PC를 보급하여 정보시스템을 직원들 책상에서 직접 사용하도록 하고 임원정보시스템(EIS)을 도입하고 ERP 프로젝트를 전사적으로 추진하던 시절까지...

정보시스템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며 정보시스템을 통해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컨설턴트의 멋진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정보시스템이 마법과 같이 기업의 경쟁력에 기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 기대는 맞는 것이기도 하다. 정보시스템을 통해 기업은 보다 빠른 정보처리와 이를 통한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졌으며 방대한 양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직원들이 일일이 고민하지 않아도 오차 없이 정확한 월 결산을 해주고 있으니..

하지만 과연 정보시스템이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핵심인가? 경쟁력이 무엇인가? 남보다 뛰어난 무언가 일 것이다. 하지만 정보시스템은 오히려 기업간의 경쟁력 평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A기업이 노력 끝에 정보시스템을 개발하고 업무에 도입해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B기업은 해당 기업이 채택한 솔루션 회사를 찾아 벤치마킹을 하고 비슷한 정보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지 않은가?

글로벌 ERP기업의 솔루션을 거의 모든 기업에서 사용하게 되면 ERP 시스템에서 해당 기업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이끌어 낼 수 있나? 하지만 그렇다고 거의 모든 기업에서 사용하는 ERP시스템을 사용 안하고 버티는 게 더 나을까? 많은 IT솔루션 기업들이 고객사를 대상으로 영업할 때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고 경쟁력의 향상을 이야기하지만 해당 솔루션을 시장에서 경쟁관계인 A, B, C사에게 모두 같은 솔루션을 판매하면 과연 효과는 어떨까?

하지만 오늘날 정보시스템이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아니라는 것에 공감한다고 하여도 정보시스템의 도움 없이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 돼 버렸다. 그리고 그 정보시스템을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계속 끊임없는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도 경영진이 IT 부서에 보내는 껄끄러운 시선은 이런 현실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로 정보시스템이 기업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기업 조직원의 역량과 기업문화, 잘 정비된 프로세스, 끊임 없는 정보시스템에 대한 전사적인 관심과 개선 노력이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F1 경기를 본 적이 있는가? F1경기에 참가하는 머신(경주차)들은 유수의 자동차메이커에서 만든 최고의 것들이며 때론 같은 머신도 여러 대 경기에 나온다.

따라서 승부를 결정짓는 요소는 머신의 성능보다는 머신을 조종하는 드라이버, 피트에 있는 정비팀과 기술자, 그리고 지원 조직이 아닐까? 정보시스템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구축하고 개통하는 것은 시작일 뿐, 역량 있는 사용자와 시스템 운영조직, 뛰어난 기술지원, 경영진의 높은 관심 등이 어우러져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갈 때 기업의 성과에 기여하는 정보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 IT솔루션을 공급하는 업체들에게 느꼈던 아쉬운 점은 솔루션을 소개할 때 마치 “이 머신이 지난 F1그랑프리에서 우승한 드라이버가 탔던 것이니 이것을 타면 우승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솔루션 도입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우수한 IT솔루션이 경쟁력 있는 정보시스템의 구축을 위한 중요한 요소지만 진정한 정보시스템의 경쟁력은 기업 조직원들 스스로 정보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며 기업의 환경에 맞게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려는 노력의 산물이며 경영진의 이해와 관심 및 지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버린 기업내의 정보시스템을 비용만 잡아먹는 필요악으로 생각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 프로세스 개선과 접목하여 업무 경쟁력 향상의 훌륭한 수단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사용자 스스로에 달려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스마트 워크’도 조직 구성원들이 스마트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조직 문화와 제도, 여건을 갖추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철환 팀장은 삼성SDS,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부제철 IT기획팀장이다. 저서로는 ‘SI 프로젝트 전문가로 가는 길’이 있으며 삼성SDS 사보에 1년 동안 원고를 쓴 경력이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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