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개인 신용평가 기업 트랜스유니언(TransUnion)의 CI&TO 아비 다르는 이민자 출신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그는 창업부터 CDO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며 불안감을 이겨내고, 다른 IT 리더들의 잠재력을 일깨워 CIO 자리까지 오르게 한 일화에 대해 얘기했다.
트랜스유니언은 미국의 3대 개인 신용평가 기업 중 하나다. 현재 트랜스유니온에서 부사장 겸 최고 정보(CI) 및 기술 책임자(TO)로 재직 중인 아비 다르의 커리어는 다채롭다. 그는 포춘 50대 기업의 최고 디지털 책임자부터 IT 스타트업 공동 설립까지 해봤다.
트랜스유니언에서 그는 전략, 보안, 애플리케이션, 운영, 인프라, 글로벌 정보 시스템 및 관련 직원을 지원하는 솔루션 제공 등을 비롯하여 기술의 모든 측면을 담당하고 있다.
아비 다르는 성공한 CIO일 뿐만 아니라 다른 IT 종사자들의 멘토로도 유명하다. 그의 조언 덕분에 CIO 자리에 오른 IT 리더가 수두룩하다. 그는 <CIO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커리어는 물론 다른 IT 리더들을 조언해 CIO 자리에 오르게끔 도와준 여러 일화와 심리적인 어려움을 극복한 방법 등에 대해 얘기했다.
포춘 50대 기업의 최고 경영진, 스타트업 설립자, 그리고 항공사 이사회의 임원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이런 경험이 트랜스유니언의 CI&TO 자리까지 가는데 어떻게 도움 됐는가?
아비 다르: 비즈니스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목표는 간단하다. 비즈니스는 수익을 내고, 비용을 충당하고, 투자자의 투자금을 돌려주면 된다.
포춘지 선정 50대 기업도 다를 바 없다. 스타트업을 창업하려 초기 자본으로 15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규모만 다를 뿐이다.
이런 일을 해보면 소유자, 설립자의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다. 의사결정이 뭔지, 그 맥락을 파악하게 된다. 이사진이 되는 것도 비슷하다. 결국 ‘누군가의 돈을 받았으니 갚아야 한다’라는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
사람을 보는 눈도 키워줬다. 말을 해보면 딱 봐도 특정 사안을 정말 잘 이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동감한다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인재다.
스타트업 창업자나 소규모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기업, 소위 '공룡 기업'으로 이동할 때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대기업, 특히 공기업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확립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 이런 비즈니스가 잘 굴러가도록 항상 감독하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증명된 방식이니 이를 잘 따라 망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가 기업에 입사하면 좌절한다. 끊임없이 회사를 비판할 것이다. '이도 저도 주체적으로 해볼 수 있게 없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행해볼 수도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기존 기업이 대형 선박이라면 스타트업 창업자는 쾌속정을 타고 있었던 셈이다. 둘은 매우 다르다. 그러나 대형 선박이 대형 선박답다고 비난할 순 없다. 대기업은 대기업만의 가치가 있고 방식이 있다. 변화를 원한다면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
사람 보는 눈을 키웠다고 말했다. 당신은 우수한 CIO로 성장한 많은 리더를 포함해 여러 인재를 육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후배를 양성하는 일에 힘을 쏟는 이유가 따로 있는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다 보니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많은 사람이 잠재력으로 넘쳐나지만, 아직 그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잠재력을 승화시켜줄 수만 있다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후배 양성에 진심이다.
이런 일을 하면 큰 보람을 느낀다. 예컨대 내가 진행했던 커리어 조언 팟캐스트에서 인상 깊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의 이름은 그렉 미슐리니였고, 재활서비스 회사 아틀레티코의 CIO가 됐다. 이런 식으로 내 커리어에서 만난 사람 중 CIO가 된 사람이 20~25명 정도 된다. 이런 식으로 초기에는 자신감이 없었지만 나중에 CIO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내가 한 건 별로 없다. 그들이 해낸 것이다.
훌륭한 CIO는 종종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하곤 한다. 당신의 리더십 스타일에도 이런 철학이 깃들어 있는듯하다. 이런 철학을 조직 문화로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 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사이트가 다운되었을 때, 시스템이 다운되었을 때, 릴리스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극도로 스트레스받는다.
특히 초급, 중급 관리자들이 가장 큰 압박을 받는다. 어린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하려는 부모인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이 만드는 시스템을 쓰는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점이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며, 우리 모두가 사람 한명 한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포용적인 문화를 조성하려 한다.
대신 기본은 지켜야 한다. 엔지니어로서 긴급 상황을 일으킬 만한 짓을 저지르면 안 된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동료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모두가 각자의 본분을 알아서 지켜야 한다. 이런 건 매뉴얼을 만든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나는 리더로서 이런 본분을 때때로 상기시키고 일깨워줄 뿐이다.
트랜스유니언 글로벌 기술 플랫폼의 수석 부사장인 디피카 두지랄라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창의적인 과정이라며 '그림 그리기, 조각하기, 교향곡 쓰기 또는 도자기 빚기'에 비유했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 같은 유명한 사람을 보면 자명하다. 창의성의 상징으로 칭송받는다. 엔지니어가 되는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고, 고치고, 무언가 쉬지 않고 만들려 하는 성향을 보인다. 창의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기업이 이런 성향을 잘 수용하지 못한다면 창의적인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패착 중 하나는 엔지니어를 엔지니어라고 여기지 않고 ‘IT 기술자’로 여기는 자세다. IT가 나쁜 건 아니지만 IT 지원은 말 그대로 지원이 목적이지 엔지니어링이 목적이 아니다.
사전 인터뷰에서 처음 기술 책임자가 됐을 때 가면 증후군에 시달렸다고 언급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가면 증후군에 대처해왔는가?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조언이 있는가?
가면 증후군이 심각했다. 기술 책임자가 돼자 CIO와 관련된 필요한 모든 회의에 참석해야 했고, 매번 CIO의 무게를 체감했다. 그러자 내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고 끊임없이 반문했다.
다행히도 이제는 이런 불안과 걱정을 어느 정도 벗어났다.
내가 가면 증후군을 극복한 방법은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항상 더 어려운 것을 선택하는 접근방식이었다. 물론 더 어려운 걸 선택하면 당장은 ‘내가 미쳤지’라고 말하며 후회가 몰려온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에는 어떻게든 해낸다는 것이다. 주변 동료들의 지지에 힘입어 해내고야 만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완수해내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는 사서 고생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또 어려운 길을 택했고, 내 커리어 내내 그런 일이 반복됐다. 왜 그랬을까? 내가 왜 이사진 멤버가 됐을까? 왜 굳이 스타트업을 창업했을까? 소매업 회사에서 잘 일 하다가 왜 갑자기 금융 서비스 회사에 왔을까? 나는 금융 서비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라는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근데 놀라운 건 내가 어떻게든 이 모든 것을 해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내면의 비관론자는 점점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한다. 많은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일에 몰입하는 자세다. 맡은 서비스에 온전히 집중하면 일과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 자기 능력을 의심할 새가 없다.
직원과 동료들이 심리적 안전시대(comfort zone)을 벗어날 수 있게 잘 돕는다고 들었다. 어찌어찌 승진은 하고 있지만 커리어가 무언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을 받는 사람들에게 해줄 만한 조언이 있는가?
나는 이민자 출신으로 미국에 왔을 때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렸다. 운이 좋아 좋은 멘토를 만날 수 있었고, 큰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내가 밑바닥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시로 아까 말한 아틀레티코의 CIO 그렉 미슐리니에게 이런 조언을 한 게 기억난다. 나는 그에게 당시 포춘 10대 기업에 속했던 월그린스-부츠 얼라이언스의 CIO 직무에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2,500개 넘는 약국 사업의 기술적, 사업적 측면은 물론이거니와 고객 경험까지 책임지는 일이었다. 그는 너무 위험한 도전이라며 극구 사양했지만 나는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라고 재차 말했다. 결국 그는 해냈다.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여럿 있다. 내가 딱히 선견지명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바보 같은 실수를 많이 해봐서 많은 조언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강조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인생의 각본은 언제든지 다시 쓸 수 있다’라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곧잘 내 인생의 각본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나는 재차 아니라고 강조한다. 훨씬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만 심어주면 큰 일을 해내고야 만다. 내 인생에서 가족 외에 가장 큰 성공은 바로 이렇게 성장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iokr@id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