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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 난세에 대처하는 현자들의 자세

2013.06.14 김민철  |  CIO KR
10여 년 전 <금홍아금홍아>라는 영화에서 의외의 소득을 얻은 적이 있다. 당시 필자가 좋아하던 예쁜 여배우가 나오는 에로영화로 알고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영화가 의외로 명작이었던 것이다. 그 영화는 여전히 에로로 분류되어 있지만, 김갑수와 김수철의 연기가 돋보일 뿐 아니라 이상이라는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그 영화가 더욱 좋았던 것은 애초의 내 목적을 잘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상이라는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이상한 시와 소설을 썼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가 왜 그런 작품세계를 가지게 되었는지 나름대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엘리트 지식인이 기생에게 기생하며, 술과 담배를 탐닉하던 것과 같은 이유였던 것이다. 어떤 영화평론가는 그 영화가 여자에 빠진 이상만을 그렸을 뿐,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고뇌를 그리지 못했다고 비판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영화 속에서 그 평론가가 비판했던 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적어도 영화에 대한 내 해석은 그랬다.

필자가 영화에 대해 그런 해석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난세에 대처하는 현명한 지식인의 자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말기 한나라의 왕족인 한신은 진시황에 의해 6국이 망하자 한나라 부흥의 굳은 뜻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진시황의 친위대는 그러한 반란을 막기 위해 전국 요소요소에 삼엄한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는 사람은 가차 없이 처단하곤 했다. 한신은 그러한 감시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위장해야 했다. 병법에 대한 엄청난 지식과 뛰어난 무술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는 기생에게 돈을 타 쓰는 기둥서방 노릇을 했고, 언제나 걸식을 하며 술에 취해 지냈다. 왕족의 상징인 긴 칼을 차고 다녔지만, 그것을 진나라 군사는커녕 동네의 무뢰한들에게조차 뽑아 본 적이 없었다. 하루는 불량배들이 무능하면서도 왕족의 옷을 입고 큰 칼을 차고 다니는 한신을 조롱하다가 그 중 하나가 “칼을 뽑아 나에게 덤벼 보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나의 가랑이 밑으로 개처럼 기어 지나가거라. 그러면 살려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칼을 뽑으면 그들 몇 명을 해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정체를 노출시켜 큰일을 그르치는 행위였다. 결국 한신은 순간의 노여움을 참고 그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 지나감으로써 싸움을 피하게 된다. 하루는 너무 배가 고파 식사를 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군침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중 한 노파가 그를 불쌍히 여겨 밥을 나누어주었다. 한신은 그 밥을 맛있게 먹고 점잖게 나중에 신세를 갚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노파는 버럭 화를 내며, 자기 처지에 맞지 않는 허언을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저 젊은 걸인이 불쌍해서 밥을 나누어 주었을 뿐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보은에 대한 약속을 기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제 그는 같은 한나라 출신조차도 무위도식하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여기며 손가락질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모습은 진나라 친위대의 감시망마저 벗어나게 해 주는 커다란 무기가 되었다. 사상범이나 국지적 반란의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가 있을 때에도 한신은 언제나 예외로 취급되었다. 저런 바보 머저리가 그런 일에 가담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인고의 세월을 거쳐 한신은 유방이라는 장수의 참모가 된다. 항우와의 싸움에서 고전하던 유방에게 탁월한 병법과 웅지를 갖춘 한신을 얻은 것은 범이 날개를 단 것과 같았다. 그는 병법의 역사에 없던 배수진을 치는 등의 맹활약을 벌이며, 역발산기개세의 절세명장 항우를 곤경에 빠뜨려 결국 한나라 개국의 일등공신이 된다.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의 손자 손빈은 신선의 경지에 이른 귀곡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있었다. 당시 귀곡선생의 문하에는 종횡가의 대표인 소진과 장의를 비롯한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던 중 동문인 방연이라는 자가 먼저 하산하여 위나라에서 커다란 공을 세우게 된다. 뛰어난 병법을 발휘하여 주변 국가들을 제압하고 위나라를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자 귀곡선생의 친구인 묵적(묵자)는 손빈에게도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칠 것을 권유한다. 귀곡선생은 손빈에게 <손자병법> 전수해주며, 그것을 달달 외울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는 그 책을 불태워버린다.

묵적의 소개로 손빈은 위나라에 가서 방연과 함께 큰 뜻을 펴고자 한다. 위나라 왕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지만, 방연은 좌불안석이었다.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손빈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간첩사건을 조작하여 손빈을 옭아맨다. 그러나 그는 <손자병법>이 탐났다. 그리하여 그는 손빈의 무릎 연골을 빼 걷지 못하도록 한 후, 자신이 사형의 위기에 처한 손빈을 구한 척 하고는 <손자병법>을 필사해 줄 것을 부탁한다. 당연히 하인을 가장한 감시자가 따라 붙는다. 순진한 손빈은 그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겨 필사를 완성해가지만, 시간이 지나며 손빈의 인격에 반한 그 감시자는 사정을 모두 털어놓게 된다.

손빈은 딜레마에 빠졌다. 목숨을 구하자니 원수에게 할아버지의 병법을 넘겨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는 스승의 옛 가르침에 따라 묘안을 생각해낸다. 필사하던 손자병법을 불태우고, 돼지우리에서 자며 돼지 똥을 먹는 등 미친 행각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방연은 깊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오랫동안 보통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태연하게 해 내는 손빈의 모습에 방심을 하여 감시를 소홀히 하게 된다. 손빈은 그 틈을 타 자신의 고국인 제나라로 탈출하여, 방연의 위나라를 무찌르는 것을 필두로 커다란 공을 세운다.

공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부유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엘리트 지식인은 부유하기를 포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잠재적 위험 분자로 끊임없이 감시의 대상이 되고, 회유를 통해 조력할 것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이광수와 모윤숙 같은 유명한 문학자들이 친일 대열에 합류한 것은 단순히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들 역시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독립운동과 같은 가시밭길을 걷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제 치하에 살면서 방관자적 태도를 견지할 수만도 없다. 비협조는 곧 반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제 이상의 생애와 일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영화에서 그려진 이상의 모습은 한신이나 손빈과 같은 현자들이 난세에 대처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반쯤은 미친 쓸모없는 인간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난세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현자들이 택해야 할 가장 유력한 대안이다. 그렇지 않다면 곡학아세에 대한 강요를 협박을 이겨내기는 힘들 것이며, 그것은 지식인이 넘지 말아야 할 한계선을 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하에서도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한 민초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어야겠지만, 지식인들에게는 그것이 용납될 수 없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이상과 함께 미친 듯이 살아가던 <봄봄>의 작가 김유정이 폐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의 모습이다. 중병에 걸려서도 미친놈처럼 행동하던 그가 문병 온 이상에게 “살고 싶네”라고 진심을 토로하며 대성통곡을 했던 것이다. 본모습과 진심을 숨기고 광자로 행동하는 것, 그것은 지식인들이 난세에 최소한의 지조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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