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기술 업계는 한 경영자의 화려한 다음 행보가 화제였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퇴출되었다가 1996년 의기양양하게 복귀하여 세계를 움직이는 전자제품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기술 업계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자신이 유명해진 책임자 직위 또는 역할을 (자발적 또는 타의에 의해) 떠나 다른 새로운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로는 이런 새로운 일이 기존의 일보다 더욱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긴 하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분야일 수도 있고 기술 선두주자를 새로운 수준으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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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론 머스크
2001년, 엘론 머스크는 자신이 설립에 참여하고 온라인 결제에 집중했던 페이팔(PayPal)의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이유가 그의 독재적인 경영 스타일 때문이라거나 페이팔의 인프라를 유닉스(Unix)에서 윈도우로 옮기려 했기 때문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들이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한 서비스를 만들어냈다는 사실과 1억 6,500만 달러의 대가에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머스크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차량의 동력 전달 방식을 바꾸기 위한 테슬라(Tesla)와 유인 우주선의 수익성을 추구하는 스페이스X(SpaceX)에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 두 목표 모두 매우 거창해서 상상조차 어렵다.
이브 윌리엄스
1999년 이브 윌리엄스가 공동 창업한 파이라 랩스(Pyra Labs)는 (지루한)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블로거(Blogger)라는 내부용 퍼블리싱(Publishing) 툴을 제작하면서 외부용 서비스로 빠르게 자리 잡았고 블로그의 인기를 주도하다가 2003년 구글(Google)에 인수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윌리엄스는 구글을 떠나 2006년 시작되어 SMS 기반 퍼블리싱 네트워크로 인식되던 twttr라는 서비스 등 진행 중인 여러 프로젝트를 보유한 일종의 인큐베이터인 오비우스(Obvious Corp.) 설립에 참여했다. 약 10년 후, 트위터(Twitter)는 2000년대의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2010년대의 웹 퍼블리싱을 정의하게 되었다. 윌리엄스의 다음 스타트업은 좀 더 신속한 결과물에 집중하게 될까?
잭 도시
윌리엄스가 트위터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트위터 기술의 기초를 다진 것은 잭 도시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유사한 아이디어로 고민했으며, 트위터의 초기에 CEO 역할을 맡기도 했다. 트위터는 초기에 큰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당시 도시는 또 다른 신생서비스인 스퀘어(Square)를 출시했다. ㅡ마트폰에서 쉽게 신용카드를 결재할 수 있는 서비스다. 스퀘어는 2010년 베타 단계에 이르렀다. 트위터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더 많이 회자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스퀘어를 더 많이 만나보았을 것이다. 현재 도시는 트위터에 다시 돌아와 임시 CEO를 맡고 있다.
앤디 루빈
루빈의 다음 행보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데인저 힙탑(Danger Hiptop) 휴대폰-PDA 복합기로 2002년 시장에 출시했을 때 시대를 앞서도 너무 앞선 기업 데인저(Danger)의 공동 창업자였다. 루빈이 해당 기업을 떠나고 침체기에 빠져 있다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 흡수되었지만 그는 모바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모바일 소프트웨어에 초점을 두었으며 2005년 구글이 조용히 인수한 기업 안드로이드를 조용히 설립했다. 안드로이드는 세상을 바꾼 소프트웨어로, 때로는 다음 행보가 더욱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칼리 피오리나
기술 업계에서 칼리 피오리나는 1990년대와 2000년대 HP의 CEO를 역임했으며, 당시 업계 내에서 논란이 난무했다. 그녀는 해당 기업의 설립 가문과 대립했으며 평등주의적인 "HP 방식(HP Way)"를 해체하고 조롱이 난무했던 컴팩(Compaq)과의 합병을 추진했다. 피오리나는 2005년 해고되었지만 더욱 거창한 정치계를 선택했다. 여전히 생생히 기억되는 이상한 캠페인 중 하나였던 2010년 상원 선거에서 실패했으면서도 의연했던 피오리나는 현재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쟁을 치르고 있으며 그녀는 첫 토론에서 도날드 트럼프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헨리 블로겟
헨리 블로겟만큼 첫 도전을 극적으로 장식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닷컴 붐 시기에 메릴 린치(Merrill Lynch)의 주식 애널리스트였던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치가 높지 않다고 인정한 주식을 상장하면서 200만 달러의 벌금형을 선고 받고 증권 업계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제기를 위해 언론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2007년 SAI(Silicon Alley Insider)의 설립에 참여했으며, 해당 기업은 머지 않아 블로겟이 수석 편집자 겸 CEO로 있는 BI(Business Insider)로 흡수되었다. 업계 내에서 그에 대한 반감이 많이 사그라졌으며, 그를 괴짜로 보는 사람들이 많고, 특히 그가 이런 경험담을 기사로 작성하자 그런 시각이 더욱 강해졌다.
케빈 로즈
케빈 로즈는 많은 기술 경영자들이 말하는 재기의 상징일 것이다. 로즈는 2000년대에 수 년 만에 인터넷에서 가장 중요한 웹 사이트로 자리잡고 수 억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거나 파괴할 수 있는 기업 디그(Digg)를 설립했다. 동안의 로즈는 2006년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의 표지를 장식했지만, 추후 그가 썼던 모자와 헤드폰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고백했다. 2010년 디자인 변경으로 인해 디그의 고객 호감도가 급감하면서 로즈는 구글이 인수한 앱 개발 기업을 설립했으며 결국 구글 플러스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끝이 좋지 못했다.
제임스 고슬링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적으로 좀 더 차분한 행보를 선택하기도 한다. 1995년 제임스 고슬링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를 위해 자바(Java)를 개발했으며, 2010년 썬이 오라클에 합병되고 오래지 않아 회사를 떠났으며, 이런 행보는 두 기업 사이의 문화적 충돌로 비쳐졌다. 구글에서 5개월 동안 근무한 후, 고슬링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그는 리퀴드 로보틱스(Liquid Robotics)에서 저전력 자동 항해 로봇 개발에 참여했다. 이전에 유명세를 탔던 일에 비해 분명 스트레스가 훨씬 덜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가 업계로 복귀한 사실이 너무 중요한 나머지 그의 다른 행보를 간과하기 쉽다. 1986년 애플에서 추방된 잡스는 500만 달러를 들여 루카스필름(LucasFilm)의 그래픽스 그룹(Graphics Group)을 지원했으며, 해당 기업은 곧 사명을 픽사(Pixar)로 변경했다. 특수 효과 전문가들에게 자사에서 개발한 맞춤형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려다 실패하고 상업용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1995년 잡스는 해당 기업을 매각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토이 스토리(Toy Story)가 막대한 인기를 얻으면서 다시 한 번 회생하게 되었다. 나머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과 같다. 잡스는 다음 행보도 꽤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