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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교양

골프인문학 | 정유라와 리디아고

2017.02.15 김민철  |  CIO KR
10여 년 나름 유명한 한 대학의 서울 근교 캠퍼스에서 강의할 때의 일이다. 겸임교수니 외래교수니 하는 허울 좋은 명칭을 내세워 스스로를 과시하고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른바 ‘보따리장수’로 불리는 시간강사 시절이었다.

그곳에서 철저하게 을의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는 시간강사의 설움을 여러 가지 경험했다. 그 강좌를 주관하는 교수는 편한 시간의 강의는 자신이 맡아서 하고 내게는 아침 첫 강좌와 마지막 시간인 야간 강좌를 맡겨 7시간 이상의 공백이 생기도록 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사례의 인사를 해야 함을 은연중에 내비쳤고, 자신이 쓴 책을 교재로 사용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반항적인 기질이 다분한 나는 어이가 없어 인사조차 하러 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준 미달인 그의 책을 교재로 채택하지도 않았다. 전화 통화에서 그는 “강의를 계속할 생각이 있기는 한 거요?” 라고 말하기도 했고, 나는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학교의 강의를 한 학기 만에 접고 말았다.

이후 서울대 강의를 맡았을 때와 비교해 보면 당시의 상황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불합리한 것이었다. 서울대에서는 강의의 배정을 비롯한 모든 과정이 비교적 투명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학교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의 자율성도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그런 것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이것이 대학 수준의 차이인가 싶었다.

그곳 강의가 있는 날은 참으로 힘들었다. 새벽에 집을 나서 첫 아침 수업을 한 후, 저녁 수업이 시작되기까지의 시간을 좁고 붐비는 강사 대기실에서 보낼 수가 없어 학교 인근의 논두렁에 차를 세워두고 잠을 청하기도 했고, 시험 답안과 보고서 채점을 해야 할 때는 아침 수업 후 인근의 모텔 방을 잡아서 그곳에서 일을 처리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 가운데 하나는 운동선수들에 관한 것이었다. 내 수업에는 몇 명의 운동선수들이 수강생으로 등록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학기 내내 단 한 번도 강의를 듣기 위해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그들에게 F 학점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시험을 치르러 오기는 했으나, 수업을 전혀 듣지 않은 그들에게서 어떤 답안이 나올지는 뻔했고, 그들에게 F 학점을 주어야 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의 순진한 생각에 불과했다. 그들의 학점은 운동시합에서 그들이 거둔 성적에 따라 학교 측에서 결정되어 내게 통보되었다. 정해진 비율대로 ABCD 학점을 부여해야 하는 엄격한 상대평가인지라, 그들이 좋은 성적을 받으면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보아야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참으로 참담한 경험이었다.

이런 기억을 다시 생생하게 떠올리게 된 계기는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나의 대학 강의 경험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아해하시겠지만, 나는 사태의 핵심에 있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적인 학사관리와 입학, 그리고 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사법 당국의 조사 과정을 보면서 참으로 의아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고교시절, 우리 반에도 체육특기생인 운동부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오전 수업만 받은 채 훈련을 하러 나가곤 했다. 말이 수업을 받는 것이지, 그들 대다수는 네 시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으며,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당연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지, 혹은 어느 정도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수업이나 성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들의 운동 능력과 성과였다.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인정받는 선수는 일류대학에 스카웃되며, 그 가운데에서도 등급이 나뉘어 인기 있는 좋은 과로 배정받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체육과 타이틀을 가지게 되는 사람도 있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운동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에서도 수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운동만 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백 보 양보해서 그들의 특수한 상황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당연히 모두 체육과에 진학해야만 마땅한 것이다. 체육과 내에서의 학사와 학점 관리는 다른 전공과는 달리 실기 위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운동을 하더라도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을 받고 시험도 치러야 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동선수가 의사나 학교 수학선생과 같은 지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일도 드물지 않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오직 운동 기계로 키운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딴 메달이 마치 국가 경쟁력의 상징인 것처럼 여겨 온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골프를 하면서 더욱 이해하기 힘든 일을 목격했다. 다른 운동선수들과 달리 골프 선수들은 아예 학교 출석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이다. 프로지망생들은 아침에 학교가 아닌 연습장으로 출근해서 밤까지 훈련한다. 하지만 그들은 학교에 적을 두고 있으며, 역시 골프에서 거둔 성과에 따라 대학에 진학한다.

골프 투어 중계를 보면 많은 선수들이 시합에 참가할 때 옷이나 모자에 자신이 속한 대학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리디아고나 전인지는 고려대에 재학중이며, 고려대학교 홍보에 톡톡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인지야 국제스포츠학부라는 체육과 비슷한 곳에 소속되어 있으니 백 보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리디아고가 심리학과에 재학중인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인지도 마찬가지이지만, LPGA 투어 생활을 하고 있는 리디아고가 정상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시험을 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리디아고나 학교 측에서야 인터넷 강의와 보고서를 통해 학사 일정을 소화한다고 말하지만, 그것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뉴질랜드 국적을 가지고 있고 한국으로 국적을 바꿀 것에 대해 일고의 고려도 하지 않는다는 그녀가 재외국민특별전형으로 입학한 것도 문제가 되었던 듯하다.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거의 모든 운동선수들이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대학에 입학하거나 정상적인 학사 관리 과정을 거쳐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많은 국민들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정유라가 고등학교 수업 일수를 채우지 않았고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으며, 수업에 참여하거나 정상적으로 시험 혹은 보고서를 통하지 않고서 성적을 받은 것에 대해서만 그렇게 분노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이 분노해야 할 일이라면, 그리고 정의의 칼날이 그곳을 향해야 한다면 그것은 운동선수 생활을 하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며, 그들에게 적용되는 비정상적인 교육 과정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선진국처럼 우리나라의 운동선수들도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도록 하던지, 아니면 그들에게 특화되고 최적화된 학교나 과정을 만들던지 말이다.

사실 리디아고의 부모가 뉴질랜드 이민을 결정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한국에서 골프를 시키면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골프와 교양,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목표를 뉴질랜드에서 이루고는, 편하게 좋은 대학 타이틀을 한국에서 얻겠다고 나선 것은 그들의 이기적인 욕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용납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와 그녀를 홍보의 도구로 삼고자 한 해당 학교의 존재야말로 보다 커다란 원인 제공자일 것이다.

몇 년 전 스크린골프 대회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고 있는 어린 친구와 연습 라운딩을 한 적이 있다. 아주 겸손하고 훌륭한 인성을 가졌다고 판단되는 그에게 학교 교육에 대해 물었더니, 학교에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를 거쳤으며, 그것은 아버지와 자신의 뜻이 합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으로 훌륭한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정유라와 관련된 여러 학사 비리에 대한 분노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는 내게 여전히 의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음주운전을 했다고 해서 나도 음주운전을 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음주운전을 한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 나 혼자에게만 엄청난 비난의 화살과 처벌이 가해지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희망한다. 이번 사태가 바지와 티 한 벌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옷을 입고, 수백만 원짜리 장비를 들고 다니는 화려한 프로골퍼 지망생들이 학교라는 곳에 전혀 가 보지도 못한 채, 새벽부터 밤까지 훈련에만 내몰리는 머리가 텅 빈 스윙 기계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고 그것이 모든 운동선수들의 교육 과정에 적용되는 계기가 되기를 말이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강의와 글쓰기를 해 왔다. 몇 권의 전문서적과 교양서적을 저술하여 학술원과 문광부 등에서 우수 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40세에 우연히 골프를 시작하여, 독학으로 8개월여 만에 싱글 타수를 기록하고, 11개월 만에 군소 단체 티칭 프로 시험을 통과하기도 했다 이후 USGTF 티칭 프로 자격을 획득한 뒤, 현재는 혁명적인 레슨으로 모든 골퍼들에게 1년 내에 싱글 진입을 보장하는 <베리타스골프아카데미(http://cafe.naver.com/veritasgolfacademy)>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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