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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 인문학|교양

골프인문학 | 비법을 찾아 떠나는 골프여행

2015.11.16 김민철  |  CIO KR
*알림 : 2014년 7월까지 <CIO Korea>에 인문학 칼럼을 썼던 필자가 이번달부터 골프인문학 칼럼을 시작합니다. 

몇 년 전 미얀마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만난 60대의 한 출판사 사장님은 식당에서 만나 나눈 우연한 대화 중에 내가 프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골프를 친 지 30년이 넘었는데 그 즐겁다는 골프를 하면서 행복하기는커녕 한이 맺혔다는 것이었다. 내기를 해서 잃은 돈만도 헤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동안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내가 이 짓을 왜 시작해서 이런 고생을 하나?”라고 수없이 생각하면서도 마약처럼 끊을 수 없어서 끝장을 보려고 혼자 그곳까지 왔으니 자신을 좀 살려 달라고 하였다.

그분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나보다 한 달 가량 먼저 그곳에 온 이래로 매일 혼자 걸어서 54홀씩 라운딩을 하곤 했던 것이다. 하루 9시간 이상의 시간 동안 20km가 훨씬 넘는 거리를 걷는 것이니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선수조차도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그 전 해에 필리핀에서 캐디 한 명을 데리고 하루에 45홀을 걸어서 플레이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캐디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정도였으니 한 달 이상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54홀 라운딩을 했다는 것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실제로 며칠 지켜보았더니 그것은 허풍이 아니었다. 끈질긴 부탁도 있었지만 노력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은지라 내심 좀 도와드려야겠노라고 마음먹고 집사람에게 이야기했더니 집사람은 “큰 돈을 내고 배워야 귀한 줄 알아요 그냥 가르쳐주면 싸구려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욕만 하기 마련이에요”라고 말하며 반대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럴 분은 아닌 것 같아. 도와 드리고 싶어”라고 말하고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다음날 아침 식사 시간에 핸디가 어느 정도나 되시는가 물었더니 80대 중반에서 90대 초반을 친다고 했다. 그분의 말씀대로라면 보기플레이어 정도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종종 마주칠 때 지켜본 바로는 그 정도 실력이 못 되었다. 그래서 숨기지 못 하는 성격 상 느낀 그대로 “105~110타 정도 치실 듯 합니다만…”이라고 말했더니 가슴을 치며 억울해 하면서 증명해 보이겠노라고 함께 라운딩을 하자고 했다.

첫 번째 라운딩 결과는 105타였다. 그 분은 억울해하면서 “이런 적이 없는데… 운이 없었어요. 한 번만 다시 기회를 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오후 라운딩 결과는 110타였다. 그 분은 ”내가 연습장에서는 거미줄까지 겨냥해서 맞출 정도인데 라운딩만 나오면 잘 안 되네요 어쨌든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조금만 가르쳐주세요”라고 하였다.

허풍이 심하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이미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기로 마음 먹은지라 몇 가지 팁을 알려드렸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조건 라운딩만 한다고 실력이 느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먼저 부족한 부분을 체크하고 연습장에서 보완한 후 실전 라운딩에서 연습의 효과를 확인하고 다시 연습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다수의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부족한 것은 가장 기본적인 부분 즉 스윙의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분의 스윙의 기초에 어떤 문제점이 있고 어떻게 교정을 하면 되는지도 알려드렸다.

다음 날부터 연습장에서 스윙 연습을 하는 것은 물론 저녁 식사 후에는 방에서 빈 스윙도 백 개 정도씩 한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함께 라운딩을 해 보면 연습의 효과가 조금씩 보이곤 했다. 틈만 나면 너무나 고맙다는 말을 하였고 크지는 않지만 종종 감사의 표시를 하기도 했다. 나 역시 마음이 뿌듯함을 느꼈고 남은 한 달 여의 기간 동안이라면 그 분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분이 나를 슬슬 피하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되지도 않는 것을 가르쳐준다”라고 말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굉장히 불쾌했지만 내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것도 아니라서 모른 척 하고 내 훈련에만 열중했다. 그분은 이전대로 매일 54홀 라운딩을 했고 며칠이 지나자 일주일 여의 연습 효과는 물거품이 된 채 이전과 전혀 다름없는 플레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면서 점점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더니 이후에는 골프에 흥미를 잃고 내가 떠나올 때까지 그 곳에 있는 손녀 뻘도 넘는 어린 캐디를 어떻게 해 보려고 공을 들였다.

이 사건은 나에게 몇 가지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첫째는 가르침에 대한 것으로 공자 선생께서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으면서도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말린 고기 한 묶음은 가지고 와야만 비로소 가르침을 주신 까닭은 집사람이 말한 것과 같은 의미임을 깊이 깨우칠 수 있었다. 실제로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한 달에 몇 천 만원을 받아본 적도 있고 집안이 어렵다 하여 거의 무료로 해 준 적도 있었는데, 가르침의 내용이나 정성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전자의 경우는 내게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표했던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골프와 관련한 것으로는 왜 아마추어 골퍼들의 실력 향상이 그리 힘든지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른바 ‘한 큐에’ 고수가 될 수 있는 비법을 원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그 분의 경우, 그곳에 나와 함께 있던 나머지 한 달 동안만 충실히 기본기를, 다져가며 라운딩을 했더라면 핸디 20 정도의 수준까지는 무난히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가 하는 것은 이후에도 동일한 노력을 얼마나 경주하는가 여하에 좌우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분의 노력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 했다. 라운딩과 달리 동일한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 연습은 자기 발전의 쾌감 말고는 인내와 고통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쾌감도 오랜 시간과 노력의 축적이 있어야 비로소 빛을 발하기 마련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 한다 일주일 동안에 엄청난 진보를 보여 100타를 깨기도 했지만, 그는 전혀 만족하지 못 했다. 실제 핸디는 30개가 넘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 자신이 보기에 자신의 핸디는 20개 미만이었으므로 100타를 깬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으며, 내가 제시한 훈련법은 너무나 힘들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장인어른에게서도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처음 골프채를 잡고 3개월 여 동안 장인어른께서는 내게 골프를 배우셨다. 3개월쯤 되었을 때 어찌나 좋은 자세로 잘 치시는지, “내년이면 싱글에 진입해서 후년이면 티칭 프로 자격증 정도는 따실 수 있겠어요”라고 말씀드리곤 했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장인어른께서 슬슬 나를 피하기 시작하셨다. 내가 없는 시간에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시더니 다른 연습장으로 옮기신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동안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 까 걱정도 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지만 웃으며 “우리 김서방 번거로울까봐 그러지”라는 말씀만 반복하시는 데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장인어른께서 비법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귀동냥을 하고 다니신다는 것이었다. 어느 연습장에나 계룡산 도사들 같은 ‘재야의 고수’들이 있다. 그네들은 “그립만 바꾸면 바로 싱글 된다”와 같은 달콤한 말로 자신들만의 ‘비전(秘傳)’을 퍼뜨리곤 한다.

그런데 웃긴 것은 말로는 싱글입네 하는 그네들조차 실제로는 90타 치는 일도 드물다는 사실이다. 얼핏 보아도 100타는 치는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전지훈련장에서 프로지망생들의 스윙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가르치려 한다거나, 진짜 싱글 골퍼들에게 훈수를 하고, 자세를 바로 잡아 주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목격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법을 찾아 떠난 장인어른께서 수 년 간의 여정 끝에 내리신 결론은 “비법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게로 다시 돌아와 가르침을 청하셨다. 물론 나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지만 상황은 처음보다 더 안 좋아져 있었다. 처음에는 백지와 같아서 가르치는 대로 잘 흡수하셨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자 스윙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나쁜 습관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골프에서도 비법이나 지름길만을 찾으려 한다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병을 고치는 혹은 다이어트를 하는 최선의 지름길은 꾸준한 운동과 식단 조절뿐이다.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선생 밑에서 오랜 기간 동안 규칙적으로 공부하여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뿐이다. 골프 역시 마찬가지다. 한 가지 비법을 익히는 것으로 고수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골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이며 누구나 싱글 골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1% 내외의 골퍼만이 싱글 골퍼의 수준에 도달해 있을 뿐이다.

과거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골퍼가 TV 프로그램에서 레슨을 하는데 1시간이 넘는 레슨 가운데 80% 이상을 그립에 할애하면서 “골프에서는 그립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립을 잘 잡고 나머지는 한 번에 끝까지 스윙을 하면 되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가 매우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선수임은 십분 인정하지만 그의 레슨은 참으로 최악이었다. 그는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얘기를 한 것이었다. 만약 그의 말대로라면 그가 가르쳐준 대로 그립을 잡은 사람들은 모두 고수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립을 잡는 것은 조금만 신경 쓰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이다. 그런 식으로 실력이 일취월장하지도 않거니와 정말 어려운 것은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한 번에 끝까지 스윙하기”이다. 그 메커니즘을 익히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도 간간히 장인어른께 팁을 드리면, 장인어른께서는 “그래 맞아. 그거야 내가 오늘은 그것을 완전히 해버릴게”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아직 비법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감지하면서 “아버님 무릎을 조금 더 집어넣는 쪽으로 자세를 교정하는 데에도 한 달 이상이 걸리더라구요”라고 쓴 소리를 하곤 한다.

비법은 없다 쉬워 보이는 길과 어려워 보이는 길이 있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성공의 가능성이 높음을 명심해야 한다. 골프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강의와 글쓰기를 해 왔다 몇 권의 전문 서적과 교양서적을 저술하여 학술원과 문광부 등에서 우수 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40세에 우연히 골프를 시작하여 독학으로 8개월 여 만에 싱글 타수를 기록하고 11개월 만에 군소 단체 티칭 프로 시험을 통과하기도 했다 이후 USGTF 티칭 프로 자격을 획득한 뒤 세계 최고의 골프 교습가를 목표로 정진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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