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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교양

인문학 |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의 비밀

2013.08.14 김민철  |  CIO KR
장자가 자신의 친구인 혜시를 두고 평가한 데에서 말미암은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말이 있다. 대장부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남녀평등의 시대가 되었으니, “지식인을 자처하려는 사람은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로 옮기는 것이 보다 마땅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찔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과연 어느 정도의 책을 읽었는가 반성해본다면 말이다.

우리의 기를 꺾을 만한 또 한 가지 사실은 수레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른바 ‘리어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부 시절 학교 근처에 <달구지>라는 술집이 있었는데, 그 집 내부에는 말 그대로 달구지 한 대가 덜렁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달구지를 둘러싸고 30여 명이 족히 술을 마실 만 했으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수레 한 대에 1톤 트럭 한 대 분량의 짐은 실을 수 있을 듯하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은 과연 몇 수레의 책을 읽었는가? 아마 한 수레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조차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기가 죽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단언컨대 여러분 모두는 아마 20~30수레분의 책을 읽었음에 틀림없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수레의 크기는 어마어마하지만, 문제는 책의 성질이었다. ‘책(冊)’이라는 한자는 대나무를 조각내어 그에 글을 쓴 뒤 그것을 묶었음을 보여주는 상형문자이다. 책을 셀 때 “말다”라는 의미의 ‘권(卷)’은 그것을 운반하거나 보관할 때는 돌돌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주먹도 말아쥐기 때문에 ‘권(拳)’이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나무책, 죽간(竹簡)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볼펜이나 샤프가 있었을 리 없고, 동물의 털로 만든 붓을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에서는 안부를 묻는 편지 한 통만 써서 말아 놓더라도, 그 분량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수레의 크기가 아무리 큰들 다섯 수레라고 해 봐야 현대의 대하소설 한 질도 안 될 것이다. 이제 여러분 모두 안심하시길 바란다^^

여기에서 조금 돌아가 보도록 하자. 서양 최초의 문학 작품이 호머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생소하지만 동양 최초의 문학 작품은 <<시경>>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것들이 모두 시라는 사실이다. 호머의 작품들이 서사시라는 사실은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을 통해 누구나 배웠겠지만, 막상 호머의 작품을 읽어 보면, “이게 무슨 시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것을 서사시라고 부르잖아”라는 대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시경>>의 작품들은 시 비슷한 형태라도 갖추고 있지만 말이다.

수수께끼의 열쇠는 그것들이 노래의 가사였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노래로 불렀다는 것은 당시에 문자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용이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축적된 삶의 지혜를 전승하기는 해야겠는데, 그 양이 방대하여 구전이 쉽지가 않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노래로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학부 시절 교수님 한 분이 <<주역>>의 64괘를 외워 오라는 숙제를 내 준 적이 있다. 64개밖에 되지 않으니 쉬울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좀처럼 외워지지 않았다. 동료와 함께 이 방법, 저 방법 궁리하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 음악에 맞추어 노래 가사로 부르는 것이었다. 내 동료는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에 맞추어 외웠고, 나는 영화 <소오강호>의 주제가에 맞추어 외움으로써 성공했던 기억이 있다. 옛날 선비나 승려들이 경전을 암송할 때 언제나 운율에 맞추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노래로 부르지 않는다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처럼 긴 가사를 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당시에는 시를 얼마나 많이 외우고 있는가가 지식인의 척도였다. 외교 사신들의 회합에서도 시로 의견을 주고받기 일쑤였다. 상대국가의 사신이 읊은 시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지를 올바로 파악해서 적절한 시로 답하지 못한다면 사신으로서의 자격 미달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신의 실추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흔히 인류의 4대 발명으로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을 꼽는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절반에 해당하는 두 가지가 언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종이와 인쇄술의 개발을 통해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은 곤혹스러운 상황을 타개하고 지식과 정보의 효율적 전달을 통해 획기적인 문화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화의 발전이야말로 인간만이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로 흔히 인간만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지만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인간의 두뇌를 해부한다고 해서 이성 자체나 이성을 관장하는 기관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지혜의 축적을 통해 본능적인 자연 상태로부터 이탈하여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개발한 것이야말로 그 유일한 추론 근거인 것이다.

혹자는 일부 유인원이 도구를 사용한다거나 혹은 비버처럼 댐을 쌓기도 하는 동물이 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이에 반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유인원의 도구 사용이나 비버가 댐을 쌓는 방식은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 동물들의 행위는 지식의 축적에 의한 발전이라는 문화의 특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본능적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문화의 발전은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물론 동물들도 단편적 음성 신호를 통해 의사 전달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혜를 축적하여 환경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창출해 내는 기능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는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런 존재가 있었다면 노래든 아니면 죽간이든 어떤 방법을 통해서건 축적된 지혜를 통해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다시 말해서 자연 상태의 본능에서 벗어난 나름의 문화를 소유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사용이야말로 인간만이 이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사실 ‘언어(language)’와 ‘논리(logic)’, 그리고 ‘이성(reason)'이라는 개념은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고 할 때, ‘말씀’에 해당하는 단어는 바로 logos이며, 이것이 바로 세 가지 개념의 어원인 것이다.

다양한 자격시험에서 언어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언어의 발달은 이성적 사고의 범위가 확장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언어를 유려하고 폭넓게 사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논리적이고 풍부한 사고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보다 이성적인 인간이며, 문화적인 인간이기도 한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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