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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 쓸모 없는 것의 쓸모 있음

2011.05.31 김민철  |  CIO KR

몇 년 전 <불만제로>라는 프로에서 드럼세탁기가 문제된 적이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생산 업체에 항의했지만, 최고의 조치는 수리를 해 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집은 달랐다. 2~3년 사용한 드럼세탁기를 전액 환불받은 것이다. 아마 전국에서 유일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문제의 발단은 아내였다. 방송을 보기 전 이미 몇 차례 AS까지 받았던 터라, 환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내는 환불을 요청했고, 상담원은 당연히 환불이 불가함을 주장했다. 의견차이가 전혀 좁아지지 않자, 아내는 흥분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전화기를 넘겨받았고, 이후 2시간여의 대화 끝에 환불해주겠노라는 답변을 받아내었다.


사실 우리 집에서 이런 일은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다. 식기세척기, 인덕션 등 문제가 되는 제품을 동일한 과정을 거쳐 환불받거나 새 제품으로 교환받은 일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해하지는 마시라. 내가 요즘 문제되고 있는 블랙컨슈머는 아니니 말이다. 나는 그들을 진정으로 설득하고 납득시켜, 환불 혹은 교환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한 것이다.


나는 먼저 상담원에게 대화의 전말을 듣는다. 도중에 내가 끼어들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적도 많지만, 꾹 참는다. 상담원이 만족스럽게 자신(혹은 회사 측)의 주장을 펼치고 나면, 나는 상담원의 주장을 요약해 들려준다. “지금 ~씨가 하신 말씀은 첫째,.....이고, 둘째는.....이고, 셋째는....라는 것이지요. 맞습니까?”라고 말이다. 상대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 부분에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다시 듣고 질문한다.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 내 주장이 이어진다. “내가 보기에 첫째와 둘째는 ~씨의 말씀을 인정할 만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세 번째인데요, 거기에는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는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라고 말이다. 대화는 이런 식으로 계속되고, 그 사원 선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높은 책임자와 동일한 방식의 대화를 계속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내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 마침내 교환이나 환불이 결정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말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는 것이다. 진짜 싸움의 고수는 아무하고나 싸우지 않는다. 반드시 필요할 때에만 싸움을 하고, 질 것 같은 싸움은 피해야 한다. 질 것이 뻔한데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손자병법에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울 때마다 이긴다(知彼知己百戰百勝)”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내가 분쟁에 끼어드는 것은 내 요구가 정당하고, 상대방을 납득시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때뿐이다. 둘 중 한 가지만 충족되지 않아도 목적 달성에 실패할 확률이 높으며, 따라서 그런 경우에는 아내에게 포기할 것을 권한다. 싸움 자체를 피하는 것이다.


아내와 나의 차이는 대화와 소통 능력에 관한 것이다. 아내는 자기 주장의 정당성만 내세울 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설득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상담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동의 하에 그 이야기의 요점을 정리한 후, 그 주장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납득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물론 상대방에게도 끊임없이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것을 권유한다. 대화와 글쓰기에서는 이를 ‘자비의 원칙’이라 부른다.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흔히 별로 쓸모 없다고 여겨지는 학문인 인문학, 그 가운데에서도 정점에 있는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부터 이공계의 위기가 인구에 회자되지만, 인문학 전공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부잣집 도련님의 반찬투정에 불과하다. 인문학의 경우, 전공자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과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공계의 경우 기초과학으로서의 필요성이 광범위하게 인정받고 있지만, 인문학은 그야말로 쓸모없는 학문처럼 보인다. 호사가들의 지적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다.


사실 그런 면이 없지는 않다. 인문학은 문학과 사학, 그리고 철학의 세 분야로 나뉘는데, 문학자들은 공허한 몽상에 빠져 있고, 철학자들은 그냥 넘겨도 좋을 것들을 따져 물으며, 역사학자들은 과거 지향적인 듯하다. 인문학자들은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한 공상적 이상주의자들인 것이다.

그러나 장자에 나오는 옛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명한 목수와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엄청나게 큰 나무를 발견했다. 높이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둘레는 열 명이 팔을 벌려 둘러싸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제자들이 그 웅대함에 감탄하고 있을 때 목수가 말했다. “가자! 쓸모없는 나무이다. 아무 쓸모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클 때까지 베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날 밤 목수의 꿈에 나무의 정령이 나타나 말했다. “네가 커다란 쓸모를 알기나 하는가? 나는 쓸모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쓸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문학은 겉보기에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당위를 추구하는 인문학은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가치를 발휘한다. ‘해저 2만리’라는, 당시로서는 황당한 소설이 있었기에 현대적 잠수함의 개발이 가능했다. 철학자들의 따져 묻기가 있기에 독재와 부조리에 대한 비판이 가능했다. 독재자들이 인문학자들을 경계하고 탄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운동에서도 그 가치는 빛을 발한다. 나는 40세에 골프를 시작하여, 독학으로 8개월만에 전 세계 골퍼의 1%만이 달성한다는 싱글골퍼의 벽을 넘었고, 11개월만에 티칭프로 테스트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몸치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1년 이내에 싱글골퍼로 만들어 줄 수 있음을 자신한다. 이 모든 것은 적정한 목표설정과 원리에 대한 따져 묻기, 그리고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와의 의사소통 능력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현대에 들어와 정치와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인문학적 인프라의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과학자들이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이론을 발견해 내도, 그것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글쓰기와 말하기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논리력이 부족한 정치인은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정책 실현을 해낼 수 없다. 대기업에서는 대화와 소통의 부재로 인해 업무 진행이 원활하지 못하다. 그것이 바로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을 보여주는 반례인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하였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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