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의 대상인 여러 알짜 공기업, 전 국민의 절반은 족히 이용할 법한 메이저 은행, 누구나 인정하는 산업 분야의 여러 대기업. 이들을 ‘약자’라고 지칭하면 가당하기나 한 말일까? 그러나 엔터플의 박현민 대표는 이러한 조직들에 대해 선뜻 ‘약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물론 ‘디지털 비즈니스’라는 전제를 달고서였다.
박현민 대표의 이러한 표현에 엔터플과 엔터플의 노코드 솔루션 ‘
싱크트리’에 대한 호기심이 삽시간에 증폭됐다. 이유가 있었다. 그간 이야기를 나눠온 여러 IT 리더들의 씁쓸한 자기 진단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세상에서야 내로라하는 조직들이지만 ‘디지털’이라는 수식어 앞에서 초라해지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글이나 카카오, 네이버와 같은 디지털 대기업과 더불어 작을지라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여러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들과 비교하면 구분선은 더욱 선명해진다. 박현민 대표가 진단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현실과 엔터플의 백엔드 노코드 솔루션이 오늘날 비즈니스 현실에서 가지는 의의에 대해 정리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80%는 백엔드 작업”
박현민 대표가 2013년 게임 아이템 거래 플랫폼으로 창립한 엔터플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노코드 솔루션 벤더다. ‘싱크트리’라는 이름의 이 솔루션은 다양한 명칭으로 묘사된다. ‘노코딩 API 솔루션 플랫폼’, ‘마이크로서비스 구현 및 관리를 위한 노코드 솔루션’, ‘API 생성-관리 솔루션, ‘개방형 온라인 SW-서비스 개발 플랫폼’, ‘백엔드 노코드 솔루션’ 등이다. 먼저 정확한 정체가 궁금했다.
“기업의 디지털 비즈니스 가속화를 도와주는 백엔드 분야 전문 노코드 도구입니다. 기업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과정에서 가장 난제로 맞닥뜨리는 백엔드 분야의 디지털화에 특화된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중의 여러 노코드 솔루션들이 프론트엔드 단의 작업 용이성에 초점을 맞춘 것과 비교해 본질적인 차이를 가집니다.”
즉, 화면의 프레임워크를 쉽게 만들거나 간단한 앱을 생성하는데 초점을 맞춘 탬플릿 기반의 노코드 툴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데이터베이스와 인터페이스 사이의 백엔드 로직 생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다르다며 박현민 대표는 설명을 이어갔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대개 내부의 데이터와 인터페이스를 통합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창출하거나 내외부의 데이터를 결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변환하고 외부와의 연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이 작업이 매우 개발자 노동 집약적이라는 것입니다.”
동의할 수 있는 진단이다. 기성 기업의 IT 혁신팀들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구상하는 스타트업들에게 아이디어가 부족한 경우는 드물다. 각종 데이터와 서비스를 연결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고된 실무 작업이 현실적인 난제다. 전세계적으로 8,500만 명의 개발자가 부족하다는 진단이 나오는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EDI, ESB와 같은 온갖 프로토콜이 아직도 널리 활용됩니다. 기업에 따라 클라우드를 쓰거나 안 쓰는 경우가 있으며, 클라우드 벤더 및 데이터베이스 벤더에 따라 API와 게이트웨이, 프로토콜 등이 다르기도 합니다. 개별 기업들의 레거시 백엔드 아키텍처, 보안 이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보안 토큰 하나의 변환을 위해 인프라와 보안을 모두 이해하는 고급 개발자가 두어 달 작업하는 사례가 흔합니다.”
박현민 대표는 엔터플의 싱크트리가 바로 이러한 현실적 난제에 대응한다고 강조했다. 보안이나 거버넌스 문제를 비롯해, 여타 다양한 이유로 존재하는 서버나 로직, 아키텍처 이슈와 관련해 개발자 노동 집약적인 코딩 작업을 간편하게 구현해주는 백엔드 로직 툴이 바로 ‘싱크트리’라는 설명이다. 내부 분석 결과 약 80%의 개발자 인력 효율화 및 속도 개선 효과가 있다는 귀뜸과 함께였다.
“다시 말해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 벡엔드 로직을 만드는데 특화한 솔루션입니다. 가령 RST to SOAP 변환 작업이 싱크트리에서는 블록 하나를 배치하는 것으로 완료됩니다. 한 건설 기업은 싱크트리를 이용해 3일 만에 60개의 서비스를 완성했으며, 한 보험 기업은 세일즈 채널 자동화 작업의 속도를 3배 개선했습니다. 국내 유수의 조직에서 레퍼런스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박현민 대표에 따르면, 전통 산업에 속한 IT 리더들이 특히 ‘감동의 피드백’을 전해오곤 한다. ‘마침내 우리도 자신 있게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정말로 이같이 극적인 속도 향상이 나타날 줄 몰랐다’, ‘사례 공유가 필요하면 기꺼이 도와주겠다’ 등이다.
“<A>라는 주소와 <ㄱ>이라는 주소를 그저 매핑만 시켜주면 될 것 같지만 세상의 레거시가 그렇지 않습니다. 일일이 변환시켜줘야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싱크트리의 개념을 소개할 때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라는 반응이 흔히 나오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소하던 분들이 검증 작업 후 태도가 확 바뀌면서 ‘오라클 붙여달라’, ‘세일즈포스 넣어달라’라고 말하곤 합니다.”
‘유니티’가 게임 분야를 바꿔낸 것처럼…
사실 미심쩍다는 반응이 당연하게 보인다. ‘노코드’, ‘로우코드’라는 화두가 세상을 뒤흔들 것처럼 요란하게 회자된 것이 벌써 몇 년 전이지만, 아직은 찻잔 속의 태풍처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또 ‘백엔드 노코드’가 그렇게 유용하다면, 글로벌 거대 IT 기업들에 의해 진작에 등장했어야 하는 접근법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백엔드 노코드’라는 제품군이 아직 없습니다. 공개 입찰에서 구글 아피지, 레드햇의 쓰리스케일, 여타 API 게이트웨이 등이 경쟁 솔루션으로 경합을 벌이곤 합니다만, 싱크트리와 같이 백엔드 로직을 생성하는데 특화된 솔루션을 아직 없다고 봅니다. 싱크트리는 API 관리를 넘어 언어에 근접하는 수준의 자체 해석 엔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엔터플은 어떻게 백엔드 로직 생성에 특화한 노코드 툴이라는 분야에 주목하게 된 것일까? 게임 아이템 플랫폼으로 태동한 기업인데도 말이다. 박현민 대표 개인 또한 게임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온 전형적인 게임 전문가였다
“창업 초기에는 게임 아이템 데이터와 서버의 교환 및 중개 서비스를 개발해 게임사에 공급했습니다. 약 2015년부터 게임 분야에 IP가 대거 접목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리 엔진, 광원 엔진, 이펙트 엔진, 사운드 엔진과 같은 외부의 도구를 활용하는 동향이 뚜렷해졌습니다. 데이터를 교환하는 서비스와 기술이 있었기에 이 같은 아이디어가 B2B 비즈니스 환경에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시작은 우연이었다고 박현민 대표는 회고했다. 우연히 국내 최대의 한 커뮤니티와 항공사의 PoC를 수행했다. 카페 커뮤니티 내의 데이터를 국내 대표 메신저 내에서 검색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프로젝트, 페이스북 API를 활용해 항공권 구매 시 보험 자동 가입 서비스에 가입하도록 하고 증명서 내역을 출력해주는 프로젝트였다.
“현장의 피드백을 확인하면서 방대한 가치를 가진 데이터가 비즈니스 현장에 있음을 포착했습니다. 여러 금융 기업들과 협업하는 과정에서는 현장의 디지털 혁신 환경이 게임 분야처럼 ‘IT 프렌들리’하지 않음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금융, 공공 분야의 기성 조직들이 카카오나 구글, 네이버에게 데이터를 공급하기만 하는 약자로 보였습니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큰 기회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오랜 준비 시간을 거쳐 2021년 상용화된 제품이 바로 싱크트리다. 온프레미스, 프라이빗 클라우드, 퍼블릭 클라우드에 모두 설치 가능한 싱크트리는 작년에만 500% 성장했다. 올해에는 1,000% 성장이 목표다. 박현민 대표는 헤비한 레거시 시스템을 보유한 기성 기업이나 인슈어테크, 헬스케어 스타트업과 같이 데이터를 다양하게 연동하는 서비스를 빠르게 준비하는 조직에게 싱크트리가 특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게임 분야에 모바일 게임 생태계가 조성될 때, 이를 실질적으로 가속해준 존재가 바로 유니티(Unity)입니다. 100명의 개발자를 보유하지 않은 조직도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한 주역입니다. 유니티 이후 서드파티 업체들이 비주얼스크리핑 툴들을 선보이면서 일인 스튜디오가 다수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엔터플이 바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측면에서 유니티와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합니다.”
한국 기업이 감히 코어 소프트를 한다고?
박현민 대표는 기업들의 니즈가 명확한 이상 앞으로 다양한 백엔드 노코드 툴들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때는 ‘노코드’라는 용어가 굳이 활용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백엔드 자동화나 코딩 자동화라는 영역이 좀더 구체화된다면 기업들이 순식간에 도입해 활용하는 양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시장의 니즈가 팽배하고 있습니다. 개발자가 점점 부족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요구되는 기술 난이도가 점점 더 올라가고 있습니다. 당장 올해 체감하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코딩은 예술이다’, 심지어는 ‘이런 툴 도입하면 내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등의 반응이 흔했습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한 국내 기업들이 내부 검증을 거쳐 싱크트리를 유료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빠른 검증과 혁신에 유용하다는 판단이 서기 때문입니다.”
박현민 대표는 초기 ‘한국 기업이 감히 코어 소프트를 해?’, ‘한국 기업이 감히 SaaS를 해?’와 같은 반응을 자주 접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기에 오히려 유리한 점도 있었다고 그는 웃으면 말했다.
“코어 기술은 큰 인내심을 요구하는 섹터이며, 어떻게 보면 리스크가 무척 큰 분야입니다. 투자 과정에서 토양이 부족함을 실감하기도 했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테스트해주곤 했습니다. 한 금융권은 싱크트리를 도입하려고 구매 프로세스를 바꾸기까지 했습니다. 또 정부 분야와 공공 기관들의 문턱이 의외로 낮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생각보다 기회가 많았고 또 쉽게 열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 박현민 대표는 백엔드 노코드라는 분야를 창출하는 것 이상의 분야를 바라보고 있다. 개발자를 대상으로 하는 개발 생태계 플랫폼의 표준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AWS 마켓플레이스 등록이다.
“지금까지는 핵심 클라이언트 레퍼런스를 확보하는데 주력해왔습니다. AWS 파트너 소프트웨어 패스 획득을 기반으로 올해에는 AWS 마켓플레이스에 진출하려고 합니다. 매월 200만 건의 구매가 이뤄지는 AWS 마켓플레이스에서 인정받으면 차원이 다른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후 다른 글로벌 벤더의 생태계에 진출한다는 계획입니다.”
여의도 엔터플 사옥에서 나눈 박현민 대표와의 대화는 흥미진진했다. 회사가 실시하고 있다는 ‘주 30시간 근무제’에 대해 질문해봐야겠다는 개인적 다짐을 까먹을 정도였다. 그렇게 사심어린 질문은 뒷전에 잊혀지고 대신 개발자 구인난이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가속화, 국내 기업의 근간 기술 확보 가능성과 같은 화두가 머리를 채웠다. 앞으로도 엔터플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게 될 것같다는 예감이 든 이유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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