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프트 퇴출 이후' 러시아의 새 현금 통로는 암호화폐?

최근 세계 최대의 금융 메시징 네트워크인 스위프트(SWIFT)에서 러시아가 퇴출되면서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경제적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며칠 사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연달아 내놓은 제재에 따라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안정을 위해 보유해둔 달러, 유로 및 기타 외환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러시아 은행의 스위프트 퇴출은 현재까지 나온 제재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러시아 증시는 폭락했고 1일 기준 루블화 가치는 달러 대비 30% 하락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루블화 가치를 어느 정도 복구했지만 1일 마감 시점에도 여전히 20% 하락을 기록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율을 기존의 2배 이상인 20%로 올렸으며 모스크바 증권거래소는 폐쇄됐다. 오랜 중립 역사를 지닌 스위스도 러시아 지도층과 몇몇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금융 제재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토론토에 본사를 둔 자문업체 센터 포 이노베이팅 더 퓨처(Center for Innovating the Future)의 공동 창업자이자 글로벌 미래학자인 아심 프라카시는 “매우 사납고 어두운 해역에 들어온 것과 같다. 과거 안전한 투자로 간주됐던 것이 지금은 위험투성이다. 이미 많은 부분이 바뀌고 있다. 더구나 서방의 제재가 이것으로 끝난 것도 아니다. 앞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재무부는 미국에 있거나 미국인이 소유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동결하는 새로운 제재를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조치에 따라 러시아 자금 '수천억 달러'가 동결될 것으로 추정했다. 프라카시는 “러시아 중앙은행은 유로 또는 미국 달러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루블화 안정화에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미 발표했다”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 유럽 연합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미국의 움직임에 동참해서 러시아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고 밝혔다. EU 대표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EU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위해 유럽 지도자들과 '강력하고 표적화된 제재' 패키지를 계획하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중요한 기술과 시장에 대한 접근을 차단해 러시아 경제의 전략적 분야에 타격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제적 제재 확대

첨단 기술 제품의 수입 차단을 포함한 경제적 제재가 늘어남에 따라 러시아는 다른 메시징 네트워크로 금융 거래를 전환하는 대응책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안 네트워크는 스위프트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고 성숙도도 낮다. 가능한 방법은 루블화를 암호화폐로 바꿔서 규제 감시망이 느슨하고 누구에게나 개방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에베레스트 그룹(Everest Group)의 파트너인 로낙 도시는 러시아가 달러화 환전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암호화폐 및 프라이빗 코인과 같은 기타 디지털 자산에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러시아는 거래 의향이 있는 국가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자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도 실험 중이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디지털 혁신 장관인 미카일로 페데로프는 모든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에 러시아 사용자의 주소를 차단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 및 벨라루스 정치인과 연결된 주소를 동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 사용자의 거래도 막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제제 대상 주체의 암호화폐 네트워크 사용은 주소 거부 목록을 통해 간단히 차단할 수 있다. 가트너 부사장 겸 특별 애널리스트인 아비바 리탄은 "이렇게 차단된 주체는 암호화폐 네트워크에서 중앙 서비스 및 금융 기관(예를 들어 암호화폐 거래소 또는 은행)의 계좌로 암호화폐 자금을 옮길 수 없게 된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암호화폐는 익명의 위법자를 위한 피난처가 아니다. 오히려 블록체인에서는 아무리 복잡한 우회 경로를 사용해도 스마트 블록체인 분석을 통해 전통적인 결제 네트워크에 비해 더 쉽게 돈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은행이 스위프트 시스템에서 퇴출되고 우크라이나 통화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주요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했다. 최근 대대적인 비트코인 투매가 발생한 이후에 9% 이상 뛰어 현재 4만 1,300달러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동성은 거래자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 지속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측된다.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한때 고위험 투자자의 보루였던 블록체인 네트워크와 이를 통해 구현되는 디지털 화폐는 거래 안전성 증대와 금융 가치 폭등에 힘입어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중이다.

19조 4,000억 달러에 이르는 전 세계 자금 흐름에서 암호화폐의 비중은 약 11% 수준이다. 그러나 디지털 현금의 가치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주류 기업, 투자자, 금융 기관이 사들이는 물량도 증가하고 있다. 리탄은 "코카콜라, 스텔라 아르투아, 비자를 비롯한 많은 소비재 기업이 이미 디지털 대체 불가 토큰(NFT)을 채택했으며, 마케팅과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위해 각자의 무형적 브랜드 가치를 활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현금과 연동되는 암호화폐인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는 작년 200억 달러에서 1,100억 달러로, 5배 이상 뛰었으며 전통적인 결제 네트워크에 비해 더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가치를 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심지어 스위프트를 비롯한 기존의 주요 결제 네트워크도 새로운 암호화폐 결제 네트워크에 의한 탈금융중개화를 피하기 위해 현재 암호화폐를 지원하고 있다. 프라카시는 "러시아는 꽤 오래 전부터 미국 달러에 대한 투자를 헤징해왔다. 2018년에 미국 재무부 채권 보유량을 84% 줄였고 국부 펀드에서 미국 달러를 완전히 없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SPFS(System for Transfer of Financial Messages)를 스위프트의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SPFS의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다. 프라카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SPFS에 연결된 외국 은행의 수는 23개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국내 송금에 사용된다. 이에 비해 스위프트 메시징 시스템은 209개국 1만 1,000개 이상의 금융 기관이 사용 중이다.

안정적인 경제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둥 중 하나가 화폐 가치다. 국내 시장이든 해외 시장이든 화폐는 변동성이 클수록 매력이 떨어진다. 프라카시는 “중앙은행이 루블화를 신규 발행하는 방법을 택하더라도 비트코인으로 변환할 수는 없다. 중앙은행이 화폐 안정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을 잃게 되면서 화폐에 대한 모든 신뢰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금을 구매하고 화폐 가치를 끌어올릴 방법을 재고하는 것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침공으로 주요 IT 서비스 중단

에베레스트 그룹의 파트너인 아누라그 스리비스타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난 몇 년 동안 성장해 온 주요 IT 서비스의 중단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IT 및 엔지니어링 연구개발 서비스 부문에서 중요한 글로벌 거점이다. 이번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많은 기업에 대한 불확실성과 우려가 광범위하게 퍼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윅스(Wix), 비스타프린트(Vistaprint), 시클룸(Ciklum) 심프레스(Cimpress)와 같은 기업은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중단 없이 지속하고 직원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미 우크라이나 동부 직원을 리비프, 테르노필, 이바노프란키우시크와 같은 비교적 안전한 위치로 이동 배치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터키, 이스라엘 등 아예 다른 국가로 직원을 보내는 기업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러시아를 대상으로 외국에서 미국 출처의 소프트웨어, 기술 또는 장비를 사용해 생산되는 민감한 기술에 대한 광범위한 제한을 포함한 첨단 기술 제재를 이미 시작했다. 이 제한은 반도체, 통신, 암호화 보안, 레이저, 센서, 내비게이션, 항공전자, 해양 기술에 영향을 미치며 첨단 기술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목표다. 프라카시는 "첨단 기술 품목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는 미국 업체가 제조한 제품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제조 위치에 관계없이 어떤 종류든 미국 기술을 사용하는 모든 제품이 포함된다"라고 말했다.
 

소셜 미디어, 가짜 정보 차단 나서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Meta)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 두 개의 소셜 미디어 캠페인이 폐쇄 조치됐다. 메타의 위협 무력화 책임자인 데이비드 아그라노비치는 “페이스북 플랫폼에서 이들의 활동을 중단시키고 도메인 공유를 차단했으며 다른 기술 플랫폼, 연구원 및 정부와 이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캠페인은 메타 보안팀을 피해 40개 계정을 만들기도 했으며 이러한 계정의 생성 과정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메타에 따르면 이들은 독립 뉴스 사이트를 표방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텔레그램, 오드노클라스니키(Odnoklassniki), VK를 포함한 다양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가짜 인물도 만들었다. 또한 이 캠페인은 우크라이나 군대와 유력 인사를 표적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그라노비치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접촉하면서 이들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 관영 미디어 조직에 속한 계정을 포함해 우크라이나의 여러 계정에 대한 접근을 제한했다. 또한 러시아 정부가 지배하는 미디어를 제한해야 한다는 다른 정부 요청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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