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심사위원들이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어떤 참가자에게는 “본인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지만, 기본적으로 음정이나 박자, 발성이 너무 불안해요. 그래서는 가수가 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가 다른 참가자에게는 “음정이나 박자, 발성은 완벽해요. 그런데 왜 감동이 안 오죠?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없어요. 음정이나 박자에 집착하지 말고 대충 부르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참가자들과 일반 시청자들은 한편으로는 심사위원의 권위에 눌려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 좋은 말이라고 수긍하면서 아무 반론도 제기하지 않지만, 나로서는 두 가지 지적이 일관되어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가? 물론 천재적인 자질을 타고나서, 두 가지 모두를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고대의 현인들도 이와 비슷하게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발언을 하곤 했다. 공자는 “공손하되 아첨하지 말고, 신중하되 나약해서는 안 되며, 강직하되 각박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무모함과 나약함의 균형을 잡아야 용기라는 중용의 덕을 갖추게 되고, 방탕함과 인색함의 균형을 잡아야 타인에게 진정으로 후하게 대하는 중용의 미덕에 이르게 된다”라고 말하였다.
말은 쉽다.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에게 점잖은 미덕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예체능에 자질이 있는 학생에게 수학이나 어학 쪽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정작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라.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개그맨은 다소 경박해 보이기 마련이고, 점잖은 사람은 재미가 없기 마련이다. 서태지나 양현석이 공부까지 잘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불공평하겠는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미덕이란 그렇게 힘든 것이다. 그것은 하늘이 내려준 사람에게나 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동서양고금을 막론하고 성현들은 그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미덕을 갖춘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림의 떡과 같은 것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천부적인 자질과 능력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최고의 덕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용의 미덕을 포기할 수는 없다.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로서는 학생들이 시험장에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극단적으로 갈림을 익히 보아 왔다. 진중함이 부족해 이름이나 수험 번호를 빼 먹거나 문제의 요구사항을 끝까지 정확히 읽지 않아 후회하는 경우가 그 하나이고, 반대편에는 지나치게 긴장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 했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골프 시합에 참가해 보면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경솔하여 실수를 하지만,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야겠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어떤 선수들은 “즐겨야 해!”라고 혼잣말을 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이미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이는 골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생의 기로가 될 만한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에는 경망스럽게 행동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긴장하는 것 또한 일을 그르친다. 복잡하고 정교한 시한폭탄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 혹은 매우 어려운 수술을 집도하게 된 의사를 상상해 보라. 그가 서두르거나 부주의해서는 안 됨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긴장으로 손이 떨리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오디션 프로나 혹은 <나는 가수다>와 같은 경연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가사나 음정, 박자와 같은 기본적이고 형식적인 요소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만 집착해서는 감동적인 무대를 연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0.00001%의 타고난 천재나 성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중용의 덕을 성취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단순히 “당신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으니 좀 더 균형을 잡도록 하시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는 마치 “시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학생에게 “균형 있게 잘 해야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철학자인 나에게도 이것은 정말 실질적이고 커다란 고민거리였다.
그런데 과거 우연히 시청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에서 가수 박정현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래, 저거였어”라는 깨우침을 얻었다. 박정현은 어떻게 준비를 했냐는 질문에 “정말 연습을 많이 했어요. 그래야지 커다란 무대에서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도 해 낼 수 있거든요”라고 말한 것이다. 중용의 미덕을 성취하는 방법은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알게 된 것이다.
로스쿨 시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학생들이 “선생님, 긴장 때문에 실력 발휘가 안 되었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그것이 실력이다. 누군들 긴장이 안 되겠니? 조건은 동일한 것이야. 네가 유치원생과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경우와 고등학교 육상 선수와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렴. 어느 경우에 긴장하지 않고 시합 자체를 즐길 수 있겠니? 시험에서 긴장하지 않는 방법은 평소에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월등한 실력을 갖추는 것뿐이야”라고 말하곤 한다.
이는 나머지 모든 경우에도 해당한다. 골프 시합에 나가는 선수가 평소에 진지한 태도로 엄청나게 연습하여 라운딩할 때마다 6~7언더파를 기록한다면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즐기면서 시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폭탄 해체 요원이 수십만 번의 연습을 통해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밥 먹듯이 능숙하게 폭탄을 해체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다면 그 역시 주어진 임무를 수월하게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음정이나 박자, 발음과 같은 요소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연습을 한 가수라면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가 무대에 동화되어 감동적인 노래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장점은 있고, 정말로 행운아가 아니라면 그것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 마련이다. 그가 중용의 덕을 성취하여 결정적 시기를 하나하나 성공적으로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굳은 의지와 신중한 태도를 동반한 장기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유쾌한 기질과 유머감각을 타고난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는 말투와 행동, 즉 예절 바른 행동이 몸에 배도록 노력함으로써 유머감각을 균형 있게 발휘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고자 노력함으로써 중용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그러한 미덕을 성취해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인내심과 노력의 부족 때문이다. 골프를 가르치다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게 지적받은 자신의 단점이 무엇인지 인정하면서도, 장기간의 어려운 길을 걷기보다는 “한 큐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을 찾아 다닌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도 6개월에서 1년의 장기적이고 규칙적인 운동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약이나 건강 보조제와 같은 쉬운 방법을 택하고자 하기 때문에 실패하곤 한다.
로스쿨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상담을 요청한 학생들에게 학습 방법과 계획을 알려 주면 고개를 끄덕이고 실천에 대한 열의에 불탄다. 나는 항상 오버페이스하면 안 됨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마라톤에서의 완주처럼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2~3개월 후 다시 물어보면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리고 성공하는 사람은 그들뿐이기도 하다. 나머지 대다수는 비법을 가르쳐주는 강의나 학습법의 유혹에 빠져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시험에 맞닥뜨리곤 한다. 그들이 진중하되 긴장하지 않고 자신 있게 시험에 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프로 격투가와 아마츄어가 경기를 하면 아마츄어들은 어깨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나머지 몸의 균형을 잃는 반면, 프로들은 가볍게 치는 듯하면서도 커다란 충격을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로골퍼들 또한 전혀 힘들이지 않는 스윙으로 엄청난 비거리를 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과도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그러한 동작은 정말 오랜 기간의 훈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도장에 입문하면 체중을 옮기면서 잽을 내 뻗는 단순한 동작을 수개월 이상 반복하지만, 정작 신인 복서들이 링에 오르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휘둘러 치다가 스스로 지치곤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펀치를 맞고 실신한 상태에서도 다음 기술을 취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감동적으로 중용의 미덕을 발견하곤 한다. 그들은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면서도, 무수한 연습을 통해 무의식 상태에서도 그 동작을 해 낼 수 있을 정도의 자연스러움을 갖추었으니 말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