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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교양 / 훈련|교육

인문학 | 방목의 미학

2013.12.12 김민철   |  CIO KR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가운데 “조장(助長)”이라는 말이 있다. “야, 너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지 마라”와 같은 용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누구나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아주 흔하고 일상적인 용어이지만, 그 어원은 매우 심오하다. 이야기는 『맹자』에 등장한다.

송나라에 한 농부가 어느 날 집에 돌아와서는 “아~ 피곤하다. 오늘은 일을 너무 많이 했다”라고 말하면서 쓰러져 누웠다. 아들이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하셨어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아 글쎄 논에 모가 잘 안 자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자라는 것을 도와주려고 모마다 조금씩 뽑아주고 왔지”라고 말하였다. 아들이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모는 모두 말라죽어 있었다.

“자라는 것을 돕다”라는 뜻의 이 말은 본래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촉진하고자 하여 일을 망치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는 “잊어버리고 방치해서도 안 되지만, 인위적으로 자라는 것을 돕고자 해서도 안 된다”라고 말하였다. 맹자가 본래 의도한 대상은 사단(四端), 즉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선한 싹이지만, 맹자 자신이 든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농작물, 나아가 가축을 기르는 데에도 매우 잘 적용된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유종원은 <종수곽탁타전>에서 이를 보다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곱추라서 낙타라는 뜻의 ‘탁타’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그 별명이 자신에게 잘 들어맞는다 하여 본명을 버리고 별명을 이름으로 삼아버렸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의 본명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의 직업은 나무를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기술이 뛰어나 관상수를 돌보려는 권력자들이나 부자들이 앞 다투어 그를 초빙할 정도였다. 동종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몰래 엿보고 흉내 내어도 좀처럼 그와 같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슨 비법으로 그렇게 하는가 묻자, 탁타는 대답하였다.

“내게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가 많이 열게 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요, 나무의 천성에 따라 그 본성이 잘 발휘되게 할 뿐이다. 일단 정성스레 심고 난 후에는 내버려두고 지나치게 염려해서는 안 된다. 심기는 자식처럼 하고 두기는 버린 듯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나무의 천성이 온전하게 되고 그 본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무를 관리하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사랑이 지나치고 근심이 너무 심하여, 아침에 와서 보고는 저녁에 와서 또 만지는가 하면 갔다가는 다시 돌아와서 살핀다. 심한 사람은 손톱으로 껍질을 찍어보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사하는가 하면 뿌리를 흔들어보고 잘 다져졌는지 아닌지 알아본다. 이렇게 하는 사이에 나무는 차츰 본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비록 사랑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해치는 일이며, 비록 나무를 염려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원수로 대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 살피되, 스스로의 천성이 발현되도록 해야지 억지로 성장을 촉진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잡는 것은 그야말로 섬세한 관심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맹자가 든 모의 비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자.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잡초가 우거져 모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조급증을 보일 경우의 해악은 무관심보다 크면 컸지 절대로 작지는 않다. 모의 사례에서처럼 상황 자체를 아주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식물이나 동물도 그러할진대, 아이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 보다 섬세한 노력과 주의가 필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것의 문제는 쉽게 인지하면서도 관심이 과한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음에 대해서는 둔감한 경향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성장과 발달의 단계가 있고, 단계와 시기에 따라 필요로 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가 빨리 튼튼하게 자라기를 원한다고 해서 이유식을 먹어야 할 시기에 갈비찜을 먹인다면 아이에게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자연 친화적으로 뛰놀면서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함양하며, 친구들과 함께 놀면서 사회성을 익혀야 하는 시기가 있고, 점차적으로 지적인 측면에 비중을 높여야 할 시기가 있다. 아이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갖추어 주는 노력을 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뛰놀아야 할 시기에 과도한 지적인 훈련을 부과한다면 균형 있는 성장이 이루어질 리 없다.

지인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의 아이에게 책과 예술을 생활화해주기 위해 3~4세경부터 매 주 한 번씩 도서관과 미술관에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그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곳이 도서관과 미술관이 되었다고 한다. 요즘 부모들은 의례적으로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전집을 사 주곤 하는데, 그 아이들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치원 시절부터 미국 아이들조차 알지 못하는 단어를 외우게 하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학원이니 방문학습이니 하여 어른보다 더 바쁜 스케줄을 강요하는 부모들은 참으로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조급하게 새싹이 빨리 자라기를 바란 나머지 새싹을 조금씩 뽑아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나는 집사람에게 언제나 방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동시에 방목과 방치는 전혀 다른 것임을 끊임없이 경계한다. 어른의 욕심을 아이들에게 투영시켜서도 안 되지만, 아이들에게 섬세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함 또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거의 사 주지 않는다.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아빠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거나 “아빠는 공부 안 좋아한다”라고 말하곤 한다. 아이는 애가 닳아서 책을 거의 다 외우다시피 한다. 그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 필요해 보이는 책을 한두 권 더 사서 놓아두곤 한다. 이런 식의 교육 덕에 아이들은 책을 매우 좋아하고, 토요일이면 엄마에게 도서관에 가자고 조르곤 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하면 억지로 깨우지 않는다. 심지어는 결석을 마다하지 않고 푹 재운 적도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못 간 데 대해 엄마아빠를 탓하며,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없도록 알아서 조심한다.

건강에 좋은 음식도 억지로 먹이지 않는다. 오히려 집사람과 연극을 해서 비싼 것을 아이들이 안 먹어서 다행이라는 식의 대화를 아이들이 듣도록 꾸민다. 그러면 아이들은 심통이 나서 먹곤 한다.

‘금지된 장난’ 심리라는 것이 있다. 못 하게 하면 아이들은 더 하고 싶어 하는 법이다. 나는 아이들 교육에 그러한 심리를 십분 활용한다. 하지만 그런 작전을 펴기 위해서는 섬세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작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의도와 달리 그것을 원치 않는다면?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더 좋은 작전을 구상한다. 아이들이 그것을 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끝으로 한 가지 더. 우리 아이들은 원하는 장난감이나 책 등이 있으면 스스로 돈을 벌어서 산다. 나는 아이들이 몸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부모로서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라 여겨, 고난도 스트레칭 자세를 몇 가지 선정해 주고, 매일 일정 시간 이상 그것을 해 내면 몇 백 원씩 저금통에 넣어 주곤 한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유연해지고, 점점 어려운 동작을 쉽게 해 내는 성취감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용돈을 모아 원하는 것을 사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낀다. 그러데 매일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난이도의 운동이 필요한지를 관찰하는 것 또한 세심한 관심을 요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집이나 영어 유치원, 학원 등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해결하려는 부모들은 다시 한 번 반성해야 한다. 혹시 아이들에게 그 정도의 관심과 노력을 투자할 의지가 부족해서 돈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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