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10나노 칩 악몽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 시작은 2014년 9월 5일이었다. 인텔이 사상 처음 14나노 공정을 사용해 만든 프로세서인 브로드웰(Broadwell)에 기반을 둔 5세대 코어M 칩을 공개한 날이다. 브로드웰은 제조 관련 문제로 애초에 2013년으로 예정됐던 출시가 지연되기는 했지만, 프로세서 기술의 선도적 위치를 점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AMD는 불도저(Bulldozer) 아키텍처로 여전히 28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었다. 한 달 뒤 애플 아이패드 에어 2가 출시됐는데, 애플이 맞춤 개발한 A8X 칩은 긱벤치(Geekbench)에서 인텔의 구형 하스웰(Haswell)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격차가 좁혀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6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인텔의 10세대 코어 프로세서는 업그레이드가 되었지만, 여전히 14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다. AMD의 라이젠 칩이 컴퓨팅 왕좌를 뺏었다. 애플은 인텔 x86을 버리고 독자적으로 개발한 ARM 프로세서로 옮겨가고 있다. 2009년 범프게이트(Bumpgate) 이후 애플이 엔비디아 GPU 사용을 중단한 것을 봤을 때, ARM으로의 전환을 되돌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인텔은 왜 이렇게 됐을까? ‘틱톡(tick-tock)’의 파멸부터 시작해 인텔이 어떻게 방향을 잃게 됐는지 알아보자.
10나노 공정으로의 긴 여정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인텔은 원래 2016년에 10나노 칩을, 2018년에 7나노 칩을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지연되기 시작했다.
인텔이 자랑했던 ‘틱톡’ 제조 공정이 좌초된 것이 위기의 신호였다. 인텔은 몇 년 동안 더 작아진 제조 공정으로 업그레이드된 CPU를 출시하고, 그 다음 해에는 더 작아진 공정을 기반으로 새 마이크로아키텍처를 출시하는 ‘틱톡’ 주기를 적용했다.
그런데 문제가 많았던 10나노 공정이 이를 망쳐버렸다. 2016년 초, 인텔은 틱톡의 ‘사망’을 확인하면서 공정에 ‘최적화’라는 부수적 명칭을 붙였다. 2017년 인텔의 7세대 카비 레이크(Kaby Lake) 프로세서가 첫 번째 ‘최적화’ 아키텍처였다. 브로드웰과 스카이라엨의 뒤를 이은 또 다른 14나노 공정 칩이다. 인텔이 아직 10나노 데스크톱 프로세서를 출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후 틱톡이나 틱톡 최적화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틱톡이 사라지면서 10나노 칩의 출시가 지연됐다. 원래 2016년 출시를 목표로 삼았지만, 인텔은 2016년 초 카비 레이크 아키텍처의 다이 슈링크(Die-shrink) 버전인 첫 번째 10나노 공정 캐논 레이크(Cannon Lake)가 2017년 하반기에 공개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18년 중반까지 출시되지 않았고, 통합 그래픽이 비활성화된 소수의 ‘로우엔드’ 시스템에만 탑재되었다. 캐논 레이크는 그해 말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유의미한 물량이 생산되기 시작했지만, 문제가 너무 많았다. 인텔은 2018년 12월 언론에서 10나노 서니 코브(Sunny Cove) 코어를 미리 공개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능한 제조 공정과 IP, 아키텍처를 분리하겠다고 밝혔다.
10나노 공정과 관련된 질문은 17분 30초에 나옴
인텔의 CEO 밥 스완은 2019년 중반 포춘의 브레인스톰 테크 컨퍼런스(Brainstorm Tech Conference)에서 불가능한 것을 달성하려다가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더 공격적인 목표를 세웠다. 그러면서 더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예측성이 정말 중요한 시기에 성능을 우선시했다. 즉, 이런 과정에서 교훈을 얻었다. 올해 10나노 노드를 공개할 것이다. 그리고 2년 이내에 7나노 노드를 공개할 계획이다. 무어의 법칙으로 되돌아가는 2.0x 스케일링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9년 8월 10나노 서니 코브 코어가 10세대 아이스 레이크(Ice Lake) 프로세서라는 형태로 노트북에 탑재되기 시작했다. 최소한 노트북용으로는 10나노 칩이 출시된 것이다. 그렇지만 인텔 데스크톱 제품은 여전히 14나노 공정에 머물러있다. 3년이나 지연됐지만, 10나노 CPU 코어의 클럭 속도는 낮고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PCWorld의 성능 분석에 따르면, 아이스 레이크의 장점은 크게 업그레이드된 그래픽 성능이나. 강화된 암호화, AI, 인코딩 기능을 이용하지 않는 대부분의 일반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이 CPU의 성능은 기존의 노트북 CPU와 비슷하거나 조금 빠른 수준이다. 그렇지만 이런 기능을 이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기존 14나노 칩보다 크게 업그레이드된 성능을 제공한다. 하지만 인텔의 10세대 코멧 레이크(Comet Lake) H 게이밍 프로세서는 계속해서 14나노 공정과 더 높은 클럭 속도를 사용한다.
인텔이 5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AVX-512와 썬더볼트 3, 와이파이 6를 도입하고, 통합 그래픽 성능을 크게 강화하는 등 성능을 업그레이드했다.
또한, 경쟁 지형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14나노 공정에서 가능한 것들의 한계를 넓히고 있다. 4코어인 14나노 코어 i7-6700K의 터보 클럭 속도는 4.2GHz이지만, 10코어 20 스레드 코어 코어 i9-10900K는 최적화했을 때 최대 5.3GHz의 성능을 자랑한다. 아직 데스크톱에 10나노 공정 칩이 채택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 인텔은 14나노 아키텍처를 아주 좋게 바꿨기 때문에, 새 10나노 칩 성능이 여기에 근접할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AMD의 부상
인텔이 10나노 공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쟁업체에 기회의 문이 열렸다.
끔찍했던 불도저 이후, AMD는 TSMC의 최첨단 프로세싱 노드를 이용해 만든 새 라이젠 프로세서로 강하게 반격했다. 2017년 출시된 라이젠은 많은 코어를 장착한 14나노 ‘괴물’이다. 멀티스레드 작업 성능 및 전반적인 가치에서 인텔을 앞서지만, 게임 성능은 뒤처졌다. 저렴한 가격과 크게 향상된 IPC 성능은 우리가 플래그십 프로세서로 인텔 8세대 코어 i7 대신 2세대 라이젠을 추천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인텔 14나노 공정이 문제를 겪으면서, AMD 3세대 라이젠 CPU가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정말 빠른 PCIe 4.0 스토리지를 지원하고, 첨단 7나노 공정을 사용해 만든 프로세서다. (인텔의 최신 10세대 칩은 여전히 PCIe 3.0을 지원)
PCWorld는 리뷰에서 “하이엔드 CPU를 찾는 소비자 10명 중 9명은 코어 i9-9900K 대신 라이젠 9 3900X를 구입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AMD는 훨씬 더 빠른 16코어 라이젠 9 3950X를 출시했다. 더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AMD 라이젠이 15년이 지나 어떻게 인텔로부터 왕좌를 탈환했는지는 관련 기사를 참조한다.
PCWorld가 선정한 최고 CPU 목록에는 라이젠 프로세서가 가득하다. AMD는 10분기 연속 시장 점유율을 높였고, 2013년 이후 처음으로 데스크톱 시장의 약 20%를 차지하게 됐다. 지난 2월 PC 마니아를 주 고객으로 하는 독일 마인드팩토리의 데스크톱 CPU 매출에서 라이젠 매출이 86%를 차지하기도 했다. 아마존의 CPU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몇 년 동안 라이젠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AMD의 리사 수 CEO는 4월 투자자들에게 “데스크톱 부문에서는 최신 라이젠 3000과 이전 세대인 라이젠 2000 프로세서 제품들을 찾는 수요가 높다. 유수 소매업체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유수 글로벌 소매업체의 프리미엄 프로세서 매출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텔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문제는 2020년 출시된 7나노 라이젠 4000 모바일 프로세서가 최고급 인텔 시스템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스템의 성능을 앞선다는 것이다. PCWorld는 리뷰에서 “AMD 라이젠 4000을 ‘이해’ 하려면 AMD의 50년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AMD는 노트북 시장에서는 단 한 번도 인텔을 이긴 적이 없다. 더구나 AMD 라이젠 4000 노트북은 무게가 2~3배 더 무거운 인텔 노트북과 경쟁할 수 있다. 솔직히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라이젠 4000은 우리가 최근 몇 년간 보지 못했던 가장 강력한 ‘게임 체인저’급 퍼포먼스 노트북 CPU다”라고 설명했었다.
노트북 시장은 여전히 인텔 천하이지만, AMD가 그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에이수스 ROG 제피러스(Zephyrus) G14, 에이서 스위프트 3, 델 G5 15 SE 같은 노트북은 경제적인 가격에 놀라운 성능을 제공한다. AMD는 2020년에 라이젠 4000을 탑재한 노트북이 100여 종 출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MD는 올해 말 차세대 라이젠 데스크톱 프로세서를 출시, 기술 입지를 강화할 계획이다.
ARM 기반 맥
오래 전부터 예상됐지만, 여전히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애플이 맥에서 인텔 x86 프로세서를 버리고 자체 개발한 A 시리즈 ARM 칩을 채택한다는 소식이다.
애플은 과거부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파트너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 회사의 경영진은 지난 5년 동안 인텔 프로세서의 성능이 정체된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 시기에 애플 하드웨어 팀은 계속해서 하드웨어 성능을 개선했다. RAS 테크니카(ARS Technica)의 테스트에 따르면, 새 아이패드 프로에 장착된 A12Z 바이오닉 프로세서의 긱벤치 점수는 싱글 코어와 멀티 코어 테스트 모두에서 2020년 맥북에 장착된 코어 i5를 앞선다. 아이패드의 발열 처리에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싱글 스레드 성능은 2019년형 맥북 프로에 장착된 코어 i8과 비슷하다.
긱벤치는 하나의 벤치마크에 불과하고, 더 고급 모델인 맥북 프로에 장착된 인텔 제온(Xeon) 칩을 능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인텔보다는 자신이 직접 나설 때 미래가 안전하다고 판단한다. 인텔에서 ARM으로의 변화는 맥 사용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애플 엔지니어들이 어떤 변화를 도입할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인텔에게는 또 다른 ‘타격’이다. 넷마켓셰어(NetMarketShare)에 따르면, 맥OS가 전체 PC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0%다. 맥의 분기 매출도 비슷한 수준이다. 값진 노트북 시장 점유율 10%를 잃어버리는 것은 ‘타격’이다. 더구나 AMD가 데스크톱과 서버 시장에서 고객을 빼앗아가고 있고, 노트북 시장에서도 입지를 강화하는 상황이다. 이것이 모두 모이면 상당한 충격이 될 것이다.
애플의 발표 후, 에이서는 세계 최초로 인텔 10나노 플러스 타이거 레이크 칩과 Xe 그래픽을 탑재한 노트북에 대해 발표했다. 우연이 아니다. 인텔은 자신의 입지를 되찾으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애플과 다시 부상한 AMD의 협공을 당하는 상황에서 미래를 위한 싸움을 준비하는 것이다. 타이거 레이크는 아주 인상적이어야 한다. 최소한 경쟁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
인텔은 10나노 공정 칩 때문에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프로세서 분야의 이 ‘고질라’는 과거에도 뒤처진 상태에서 싸운 이력이 있다. 15년 전, AMD는 애슬론 64로 인텔을 무찌르며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후 인텔은 코어 아키텍처로 10년을 지배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성공 확률이 과거보다 낮아 보인다. AMD가 전력을 다해 공격하고 있고, 애플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5년의 정체로 인해 인텔은 힘든 싸움에 직면했다.
인텔은 2021년부터 첨단 7나노 칩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데스크톱용 10나노 코어 프로세서에 대해서는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은 상태다.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editor@itworl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