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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교양

인문학 | 자본주의와 아줌마 파마의 기원

2013.01.15 김민철  |  CIO KR
20년 전 풋풋했던 시절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파 앤드 어웨이>에는 매우 인상 깊은 장면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개척기의 미국에서 정착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던 모습이다. 땅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100명 정도 말을 탄 채 줄을 서 있고, 그들 앞에는 정사각형으로 구분된 땅이 100개 있다. 하나의 땅은 개간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며 삶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면적이다. 구분된 각 땅에는 깃발이 꽂혀 있다. 총성이 울리면 지원자들은 각자 원하는 곳으로 말을 타고 달려가 깃발을 뽑게 되면 그 땅을 소유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모태 사상인 자유주의자들이 꿈꾸는 사회는 아마도 바로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기회는 열려 있고, 누구나 똑 같은 출발점에 서 있다. 얼마나 빨리 달려가 기회를 잡고, 그 기회를 토대로 삼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투자하는가에 따라 잘 사느냐 못 사느냐가 결정된다. 그들이 재산을 증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노동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노력을 했다는 의미이며, 그만큼 존경받을 만함을 뜻하기도 한다. 소유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노동을 통해 일구어낸 재산은 내 몸의 일부와 다를 바 없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신체의 자유와 재산의 자유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영화와 같은 상황은 정말로 이상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언제나 그러하듯이 현실은 달랐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땅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원하는 사람들에게 일정 정도의 땅을 계속해서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자유주의자들이 꿈꾸는 이상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기반이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땅은 무한하지 않고, 처음에 행해졌던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분배라는 조건은 계속 유지되지 않는다.


사회의 새로운 성원, 즉 아이들이 성장하여 독립할 때면 위에서 묘사한 바와 같은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아야겠지만, 땅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원초적 분배는 얼마 못가 중단되고 만다. 또한 최초에 공정한 분배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노력을 통해 부를 증식시키지만, 또 다른 일부는 나태와 게으름으로 주어진 기회를 십분 활용하지 못한다. 결국 후자의 땅은 전자에게 팔리고 만다. 전자의 재산은 불어나고, 땅을 판 돈을 모두 소비하게 되면 후자는 몸밖에 가진 것이 없게 된다.

상황이 여기에서 끝난다면 그다지 나쁠 것도 없다. 뿌린 대로 거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각각은 가정을 가지고 있고, 그 아이들은 부모의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회에서 새로운 구성원에게 제공할 기회 즉 땅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부잣집 자식은 더 이상 스스로 노동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가진 것이 몸밖에 없는 가난한 집 자식을 고용해서 쓰면 되기 때문이다. 그에게 개간과 경작을 시키고, 그 산물 가운데 일부만을 주면 된다. 얼마나 편한가?

이러한 상황이 되면 애초에 자유주의자들이 꿈꾸던 이상과는 전혀 달라진다. 많은 재산을 가졌다는 것이 더 이상 존경받을 만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냥 좋은 부모를 만난 행운아임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재산권 또한 이전처럼 신성하지 않다. 노동력, 즉 내 몸을 써서 산출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재산을 낳는 것은 재산을 이용하여 동료 구성원을 착취하는 것이다. 노동을 제공한 사람에게 그 대가를 적게 줄수록 자신의 재산은 더 불어나게 된다.

자본을 투자했으니 그가 더 많은 몫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땅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혹은 아무리 많은 자본을 투자해서 생산 시설을 갖추어 놓는다 하더라도, 그에 노동이 부가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생산해 낼 수 없다. 자본가는 생산 기반을 제공했지만, 그 기반은 고스란히 그의 소유로 남는다. 가치 창출의 핵심 요소는 바로 노동이다.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는다면 생산된 결과물에 대해 자본가가 주장할 수 있는 몫은 거의 없거나 혹은 매우 적어야 한다.

직접 경영에 참여해서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면 그에게도 물론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 노동이 육체적인 것이든 아니면 정신적인 것이든 말이다. 생산 기반에 대한 감가상각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계가 낡아서 가치가 떨어졌다면, 그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이견을 제기할 노동자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 그가 창출된 가치를 독점하여 노동자들에게 시혜를 베풀듯이 임금을 지불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정당성을 고려하여 흘러가지 않는다. 산업혁명을 거쳐 자본주의가 무르익을 대로 익은 영국에서 노동자는 이미 자본가의 노예와 같은 신세가 되어 있었고, 자본가들은 호사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에게 일주일에 만원도 안 되는 급료를 지불하면서도, 자본가들은 다이아몬드로 이빨을 해 넣고, 십만 원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고, 애완견에게 수천만 원짜리 목걸이를 해 주었으며, 일억 원을 호가하는 쌍안경으로 연극을 관람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워낙 박봉에 시달렸기 때문에 가장이 벌어들인 수입만으로는 가족이 입에 풀칠도 할 수 없었다. 임산부들까지 공장에서 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고, 10세 미만의 아이들까지 새벽 5~6시부터 밤 8~9시까지 노동을 해야만 했다. 그들은 노예나 다름없었다. 성인 노동자들은 노동 시간을 하루 18시간으로 제한해달라고 청원하기 위해 공청회를 열 정도였다. 아이들은 발육부진과 만성적인 병에 시달렸고, 성인들은 40세 정도가 되면 노인으로 취급받을 정도였다.

이른바 아줌마파마라 불리는 뽀글이파마는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당시 공장에서는 혹독한 노동으로 피곤에 지쳐 깜빡 조는 사이 여성 노동자들의 긴 머리가 기계에 말려들어가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그러자 자본가들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머리를 짧게 자를 것을 강요하였다. 그나마 직장을 잃어서는 생계가 막막했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은 취직을 위해 머리를 짧게 잘라야만 했으며,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머리를 뽀글뽀글 볶아 올린 것이다.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뽀글이 파마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경제적 ‧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은 셋팅 파마와 같은 보다 우아한 헤어스타일을 선호한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긴 머리는 일하는데 거치적거릴 뿐만 아니라 관리도 힘들다. 그렇다고 남자처럼 짧은 생머리를 하고 다니기는 어색하다. 따라서 한 번 하면 오래가는 뽀글이파마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줌마파마로 불리는 뽀글이파마는 자유 지상주의에 기반을 둔 순수 자본주의만으로는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자유주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됨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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