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7

인문학 |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

김민철 | CIO KR
중국 은(殷)나라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주(紂)는 폭군의 대명사이다. 천하장사에 두뇌마저 우수했지만, 타고난 잔인한 성품으로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했다. 경국지색의 대명사로 알려진 달기(妲己)를 얻은 후부터 그의 잔인함은 도를 더해갔다. 달기가 한 신하의 눈초리가 싫다 말하자 그의 눈을 뽑으라고 명령했으며, 소풍을 가다가 만난 임산부의 뱃속을 궁금해 하자 그녀를 잡아 배를 가르기도 했다. 커다란 연못을 파 술로 채우고 젊은 남녀를 벌거벗겨 그곳에 풀어놓고 즐겼고, 엄청나게 큰 구리 기둥을 가로로 세워 놓고 기름을 바른 뒤 밑에서 불을 지핀 후 죄수들로 하여금 그곳을 건너면 살려준다 해 놓고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재미 삼아 구경하였다. 이 두 사건은 각각 주지육림(酒池肉林)과 포락지형(炮烙之刑)이라는 사자성어의 기원이기도 하다.  

천자의 무도함을 걱정하던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80세까지 때를 기다리며 낚시 바늘 없이 낚시질을 한 것으로 유명한 강태공을 재상으로 삼아 무도한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려 출정하였다. 당시 고죽국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의 왕자이던 백이와 숙제는 어떤 경우에도 신하가 임금을 정벌할 수는 없다고 간언하였으나, 무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주왕을 정벌하고 새로이 천하를 통일하여 천자가 되었다. 이에 백이와 숙제는 하극상을 벌인 주나라의 녹봉을 받지 않겠다 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고 살았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찾아와 “고사리는 주나라의 것이 아닌가?”라고 묻자, 그것마저 먹지 않고 결국은 굶어 죽고 말았다.


이후 백이와 숙제는 충신의 대명사로 현재까지 칭송받고 있다. 그들의 곧은 절개와 의기는 역사 속에서 많은 지사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과연 백이숙제처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학자적인 견지에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과연 그들이 칭송받을 만한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당시의 상황은 딜레마 상황이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자면 하극상은 불가피하고, 하극상을 범하지 않으려 하면 백성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들의 주장은 과연 타당한 것이었는가?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만의 심적 만족을 위해 목숨마저 버린 꽉 막힌 고집쟁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어부사(漁父詞)>라는 글에 등장하는 굴원과 어부의 대화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일반적인 평가와는 다른 생각을 보여준다.

춘추전국 말기 남방의 강국인 초나라 회왕 때 귀족 출신 정치가인 굴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초나라는 왕족들이 주축이 된 보수파와 굴원과 같은 신하들이 주축이 된 개혁파의 갈등이 심한 상황이었다. 굴원은 심혈을 다하여 정치와 외교 분야에서 회왕을 보좌하였으나 회왕은 보수파와 개혁파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굴원의 충고를 듣지 않고 진나라의 속임수에 빠져 포로 생활 끝에 사망하였다. 이에 회왕의 맏아들이 즉위하자, 보수파가 더욱 득세하게 되었다. 굴원에 대한 박해는 심해졌고, 결국 그는 강남으로 추방을 당하게 된다. 그는 상강(湘江) 일대를 배회하였는데, 어부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어부는 굴원의 안색이 초췌하고 피골이 상접해 있음을 보고 “당신은 고귀한 벼슬에 있는 분이 아니십니까?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셨습니까?”라고 묻는다.

굴원은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 혼자만이 맑고, 모든 사람들이 다 술에 취해 있는데 나 혼자만이 술에 취하지 않았소. 그렇기 때문에 쫓겨난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부는 “성인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따른다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한데 어찌 진흙탕 물에 뛰어들어 물을 튕기며 놀지 않으셨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술에 취했다면 어찌 술이든 술찌끼든 가리지 않고 마시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까닭으로 깊이 생각하고 고상하게 행동해서 스스로 쫓겨나도록 하신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굴원은 대답한다. “내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모자를 털어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했소. 어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상황에 영합할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 물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깨끗하디 깨끗한 이 몸이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이에 어부는 빙그레 웃고 노를 저어가면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만하고, 창랑의 물이 탁하다 해도 발을 씻을 만하다네”라고 노래를 부르며, 다시 굴원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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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 옳고 그름이 아닌 멀고 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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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도 이미 아시다시피 ‘도(道)’란 길을 의미한다. “도를 지킨다”라는 말은 인간답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에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야 하듯이,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이 가야 할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理)’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옥의 결을 의미한다. 나무를 잘 다듬기 위해서는 나무의 결에 따라야 하듯이, 옥을 잘 다듬어 상등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옥돌의 결에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도 도리(道理)를 지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도리를 지키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도리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하였다. 자신이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 알기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위의 두 고사에서 나온 백이숙제와 굴원은 올바른 도리를 지킨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당연히 도리를 어긴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극상을 무릅쓰고라도 새 시대를 열려던 무왕이나, 굴원의 개혁책에 반대한 보수파들이 도리를 어긴 인간만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도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도리를 지킨 것뿐이다.  
 
장자는 “길이란 사람들이 다니면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정해진 길이 있어서 반드시 그리로 다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잡초가 무성한 곳이라도 사람들이 다니다 보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길, 즉 도리는 절대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백이숙제와 굴원은 자신에게 익숙한 길만을 고집한 사람들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부가 말한 것처럼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고차원적인 삶이란 특정한 상황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세태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다면 나 역시 취할 때까지 마시고, 내 앞에 놓인 물이 맑든 탁하든 그에 따라 적절한 용도를 취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2012.12.17

인문학 |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

김민철 | CIO KR
중국 은(殷)나라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주(紂)는 폭군의 대명사이다. 천하장사에 두뇌마저 우수했지만, 타고난 잔인한 성품으로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했다. 경국지색의 대명사로 알려진 달기(妲己)를 얻은 후부터 그의 잔인함은 도를 더해갔다. 달기가 한 신하의 눈초리가 싫다 말하자 그의 눈을 뽑으라고 명령했으며, 소풍을 가다가 만난 임산부의 뱃속을 궁금해 하자 그녀를 잡아 배를 가르기도 했다. 커다란 연못을 파 술로 채우고 젊은 남녀를 벌거벗겨 그곳에 풀어놓고 즐겼고, 엄청나게 큰 구리 기둥을 가로로 세워 놓고 기름을 바른 뒤 밑에서 불을 지핀 후 죄수들로 하여금 그곳을 건너면 살려준다 해 놓고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재미 삼아 구경하였다. 이 두 사건은 각각 주지육림(酒池肉林)과 포락지형(炮烙之刑)이라는 사자성어의 기원이기도 하다.  

천자의 무도함을 걱정하던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80세까지 때를 기다리며 낚시 바늘 없이 낚시질을 한 것으로 유명한 강태공을 재상으로 삼아 무도한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려 출정하였다. 당시 고죽국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의 왕자이던 백이와 숙제는 어떤 경우에도 신하가 임금을 정벌할 수는 없다고 간언하였으나, 무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주왕을 정벌하고 새로이 천하를 통일하여 천자가 되었다. 이에 백이와 숙제는 하극상을 벌인 주나라의 녹봉을 받지 않겠다 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고 살았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찾아와 “고사리는 주나라의 것이 아닌가?”라고 묻자, 그것마저 먹지 않고 결국은 굶어 죽고 말았다.


이후 백이와 숙제는 충신의 대명사로 현재까지 칭송받고 있다. 그들의 곧은 절개와 의기는 역사 속에서 많은 지사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과연 백이숙제처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학자적인 견지에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과연 그들이 칭송받을 만한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당시의 상황은 딜레마 상황이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자면 하극상은 불가피하고, 하극상을 범하지 않으려 하면 백성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들의 주장은 과연 타당한 것이었는가?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만의 심적 만족을 위해 목숨마저 버린 꽉 막힌 고집쟁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어부사(漁父詞)>라는 글에 등장하는 굴원과 어부의 대화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일반적인 평가와는 다른 생각을 보여준다.

춘추전국 말기 남방의 강국인 초나라 회왕 때 귀족 출신 정치가인 굴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초나라는 왕족들이 주축이 된 보수파와 굴원과 같은 신하들이 주축이 된 개혁파의 갈등이 심한 상황이었다. 굴원은 심혈을 다하여 정치와 외교 분야에서 회왕을 보좌하였으나 회왕은 보수파와 개혁파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굴원의 충고를 듣지 않고 진나라의 속임수에 빠져 포로 생활 끝에 사망하였다. 이에 회왕의 맏아들이 즉위하자, 보수파가 더욱 득세하게 되었다. 굴원에 대한 박해는 심해졌고, 결국 그는 강남으로 추방을 당하게 된다. 그는 상강(湘江) 일대를 배회하였는데, 어부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어부는 굴원의 안색이 초췌하고 피골이 상접해 있음을 보고 “당신은 고귀한 벼슬에 있는 분이 아니십니까?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셨습니까?”라고 묻는다.

굴원은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 혼자만이 맑고, 모든 사람들이 다 술에 취해 있는데 나 혼자만이 술에 취하지 않았소. 그렇기 때문에 쫓겨난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부는 “성인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따른다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한데 어찌 진흙탕 물에 뛰어들어 물을 튕기며 놀지 않으셨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술에 취했다면 어찌 술이든 술찌끼든 가리지 않고 마시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까닭으로 깊이 생각하고 고상하게 행동해서 스스로 쫓겨나도록 하신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굴원은 대답한다. “내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모자를 털어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했소. 어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상황에 영합할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 물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깨끗하디 깨끗한 이 몸이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이에 어부는 빙그레 웃고 노를 저어가면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만하고, 창랑의 물이 탁하다 해도 발을 씻을 만하다네”라고 노래를 부르며, 다시 굴원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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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도 이미 아시다시피 ‘도(道)’란 길을 의미한다. “도를 지킨다”라는 말은 인간답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에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야 하듯이,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이 가야 할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理)’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옥의 결을 의미한다. 나무를 잘 다듬기 위해서는 나무의 결에 따라야 하듯이, 옥을 잘 다듬어 상등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옥돌의 결에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도 도리(道理)를 지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도리를 지키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도리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하였다. 자신이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 알기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위의 두 고사에서 나온 백이숙제와 굴원은 올바른 도리를 지킨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당연히 도리를 어긴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극상을 무릅쓰고라도 새 시대를 열려던 무왕이나, 굴원의 개혁책에 반대한 보수파들이 도리를 어긴 인간만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도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도리를 지킨 것뿐이다.  
 
장자는 “길이란 사람들이 다니면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정해진 길이 있어서 반드시 그리로 다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잡초가 무성한 곳이라도 사람들이 다니다 보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길, 즉 도리는 절대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백이숙제와 굴원은 자신에게 익숙한 길만을 고집한 사람들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부가 말한 것처럼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고차원적인 삶이란 특정한 상황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세태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다면 나 역시 취할 때까지 마시고, 내 앞에 놓인 물이 맑든 탁하든 그에 따라 적절한 용도를 취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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