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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 봄바람 같은 따스함과 가을 서리같은 엄격함

2012.11.14 김민철  |  CIO KR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일이다. 남방의 강국인 초나라 장왕이 전투에 승리하여, 문무백관을 초대하여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모두가 왁자지껄하며 즐겁게 노닐던 중 갑자기 불이 꺼졌다. 그 때 왕의 애첩이 비명을 지르고 나서 말했다. “폐하, 누군가가 제 몸을 더듬으며 희롱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사람의 갓끈을 잡아 뜯었으니, 불을 켜고 갓끈이 없는 사람을 찾는다면 누가 그런 불경한 짓을 했는지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의 반응은 전혀 의외였다. “불을 켜지 마라. 이 자리는 임금과 신하가 격의 없이 즐기는 곳이다. 모두 갓끈을 떼고 즐기도록 하라”고 말한 것이다. 애첩을 희롱한 신하는 왕의 관대한 조치로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몇 년 후, 서방의 강대국인 진(秦)나라와의 전쟁에서 초나라가 대패하여 장왕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때 장웅이라는 장수가 죽기를 무릅쓰고 싸워 장왕을 구했을 뿐 아니라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초나라는 명실상부한 패자(覇者)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전투가 끝난 후 장왕은 장웅을 불러 물었다. “내가 평소에 그대를 특별히 우대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가?” 그러자 장웅은 말하였다. “저는 이미 3년 전에 죽은 목숨입니다. 연회에서 갓끈을 뜯긴 사람이 저였습니다. 그때 폐하의 온정으로 살아났으니, 목숨을 바쳐 그에 보답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갓끈을 끊은 연회라 하여 절영회(絶纓會)라 불리는 초나라 장왕의 이 일화는 아랫사람을 부리는 도리를 잘 보여준다. 독자 여러분이나 필자와 같은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당연히 범인을 잡아 엄히 벌하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장왕은 넓은 도량으로 덕을 베풀어 부하 장수의 작은 잘못을 용서함으로써 그가 가진 재능을 십분 발휘할 기회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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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군자는 섬기기는 쉽지만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 정도에 맞는 행위가 아니라면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부림에 있어서는 도량에 맞추어 준다. 소인은 섬기기는 어렵지만 기쁘게 하기는 쉽다. 정도를 통하지 않더라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부림에 있어서는 완벽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하였다.

얼마 전 대기업 중간 관리직에 있는 후배가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술을 못하는 자신으로서는 우리나라의 직장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 따위의 손발이 오그라들 만한 행위를 해야 상사들의 신임을 얻게 되는데,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그런 짓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도량이 작은 사람이 윗자리에 있으면, 그에게 아첨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환심을 사기 쉽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부를 하거나 뇌물을 주는 것과 같은 치졸한 행위에도 소인배들을 기뻐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군자에게 그런 전략이 통할 리는 만무하다. 군자를 기쁘게 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정도를 걷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책임감을 가지고 해 내고, 어려움에 빠진 동료를 도우며, 강한 자에게 강직하게 대하고 약한 자에게는 관용을 베푸는 모습을 보인다면 군자를 그 사람의 행동에 만족하고 인정하며 기뻐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인을 기쁘게 하기는 쉽지만 군자를 기쁘게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소인배는 사사건건 군자의 눈 밖에 날 짓만 하기 마련이다. 윗사람에게는 매우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지만, 아랫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윗사람이 실수를 하면 인간적이라고 포장하지만, 아랫사람이 실수를 하면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느냐고 쥐 잡듯 하기 일쑤다. 아랫사람에게는 작은 실수마저도 용서하지 않고 완벽함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섬긴다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반면 군자는 아랫사람의 과오에 대해 관대하다. 그는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 신이 아닌 바에는 과오를 범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공자조차도 인격적 완성의 기준을 “같은 과오를 두 번 범하지 않고,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군자는 인격적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며, 그의 목표는 반성과 노력을 통해 과오를 줄여 나가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각박할 수가 없다. 특히 아랫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일천한 사람일수록 실수를 범할 가능성은 더 높기 마련이다. 누구나 그렇게 실수를 범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그로 인해 주눅 들지 않고 잠재적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윗사람의 바람직한 역할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군자를 섬기는 것은 쉬울 수밖에 없다. 소인배와 달리 실수를 포용하고, 기회를 준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아랫사람이 실적을 올리면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준다. 아니, 그것은 실제로 자신의 일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한 장수의 사례처럼 그와 같은 상사가 없다면 그런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을 수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소인배가 아랫사람의 공적을 배 아파하고, 어떻게든 그것을 자신의 공적으로 돌리려 하는 것과는 정 반대이다.

공자는 “군자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소인은 남의 탓으로 돌린다.”라고 말하였다. 훌륭한 상사는 자신이 맡은 집단의 일이 잘못되면 스스로를 책망하며 반성하지만, 소인배가 윗자리에 있을 때는 반대로 아랫사람들만을 탓하기 마련이다. 물론 좋은 일이 생기면 반대이다. 훌륭한 상사는 구성원들의 공으로 돌리지만, 소인배는 자신의 공을 치사하기 마련인 것이다.

삶을 지혜를 담고 있는 <채근담>이라는 책에서는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하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하라(待人春風 持己秋霜)”고 말하고 있다. 아랫사람을 부리는 방법, 나아가 스스로를 도야해 나가는 방법은 이 한 마디에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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