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6

인문학 | 동막골 사람들의 행복의 비밀

김민철 | CIO KR

몇 해 전 미얀마에서 한 달 여를 지낸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필자는 아이들을 돌봐 줄 베이비시터를 고용했는데, 필자가 그에게 지불한 월급은 우리 돈으로 7만원 남짓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매우 후한 대우였다는 것이다. 그곳 사람들의 월 평균 수입은 우리 돈으로 3~4만 원 가량이라고 했다. 미얀마의 경우가 조금 더 심하기는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의 사정은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보다 놀라운 것은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의 행복 지수가 우리나라보다 크게 높다는 사실이다. 식사는 언제나 밥에 반찬 한 가지고, 공산품 가격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라 보통 사람들은 평생 우유나 콜라 한 잔 마시지 못하지만, 그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미얀마에서 필자가 머물던 마을 사람들은 하루에 4~5시간만을 노동에 투자한다. 나머지 시간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어울려 여가를 즐긴다.
 
그곳에는 나름의 복지가 존재한다. 다리 하나를 잃은 사람도 청소와 같은 일을 배당받아 함으로써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전기톱을 쓰면 5분이면 벨 수 있는 나무를 몇 사람이 달려들어 하루 종일 끙끙거리며 베어내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그것이 일거리를 나누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풍요와는 거리가 멀지만, 모든 구성원들은 공동체 속에서 소박하고 여유로우며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필자는 그곳에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오래된 미래>에서 묘사한 라다크인들의 삶을 보았다. 서구 자본주의 문명이 침투하기 전의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목격한 것이다. 이 책을 아직 접하지 못한 분들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지만, 현대 도시인들이 동막골에 간다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가르치던 학생 중 하나가 호지의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가, TV에서 방영된 라다크의 모습을 보고 그런 곳에서 살 자신이 없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동막골이든 라다크든 미얀마든 간에, 자본주의 사회의 도시인들에게 그곳은 너무나 미개하고 불편한 곳일 수밖에 없다. 컴퓨터나 핸드폰은 말할 것도 없고, 전기나 수도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깔끔한 수세식 화장실은 언감생심이다. 샤워는커녕 머리 한 번 깔끔하게 감는 것도 쉽지 않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감자나 옥수수와 같은 ‘건강식’ 외에는 먹을 것도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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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인문학
-> 인문학 | 맹자는 바보인가, 천재인가?
-> 인문학 | 패러다임과 겸손함
-> 인문학 | 천리마론
-> 인문학 | 형이상학에서 합의와 계약으로
-> 인문학 | 진정한 자유 ; 얽매이지 않음
-> 인문학 | 옳고 그름이 아닌 멀고 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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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은 우리보다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도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넘쳐나고, 주거 환경은 깔끔하고 위생적이며, 음식과 의복을 비롯한 소모품이 넘쳐난다. 기본적인 욕구 충족조차 힘든, 야만에 가까운 그들의 삶이 우리의 그것보다 낫단 말인가? 비밀은 바로 행복 계산법에 있다.

보통 우리는 더 많은 욕구가 충족될수록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일정 부분 참이기도 하다. 행복 지수는 전체 욕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욕구가 충족되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필자가 원하는 것이 10가지인데, 그 10가지가 모두 이뤄진다면 나의 행복지수는 당연히 100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는 전체 욕구가 불변의 상수(常數)가 아니라 변수(變數)라는 데 있다. 거액의 복권 당첨자가 종종 불행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차를 더 낮은 등급으로 바꾸기는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는 자동차와 집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욕구는, 줄이기는 매우 어렵지만, 쉽사리 커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한다. 작은 차를 타던 사람이 큰 차를 타다가 다시 작은 차를 타지 못하는 것은 욕구가 이미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작은 차를 타게 되면 이미 커져버린 전체 욕구 때문에 행복지수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100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는 이모조모 따져 본 결과, 한 달에 1,500만 원 정도면 완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10억 원짜리 주택을 구입하고, 2억 원짜리 최고급 승용차를 구입했다. 자신의 여생을 40년 정도로 보고, 나머지 88억이면 남은 인생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화폐가치의 하락분은 이자로 보충한다고 생각하라). 과연 그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대답은 ‘No’이다. 그가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은 소비 수준을 늘릴수록 전체 욕구가 더욱 커져간다는 사실이다. 전체 욕구가 커지면 행복 지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행복지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비 수준을 더욱 높여야 한다. 

미얀마나 라다크, 동막골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은 욕구가 매우 작기 때문이다. 그곳 사람들도 콜라나 피자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것을 먹어본 적도 없고 먹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월 소득 3~4만원을 올리면서 한 캔에 600원짜리 콜라나 한 판에 만 원짜리 피자를 먹고 싶어 한다면 그야말로 너무나도 불행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사회가 정의로운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 상위 계층의 생활이 하위 계층에게는 다른 세상의 일로 여겨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위 계층에게 그것은 자포자기이자 절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막골 사람들이 핸드폰과 노트북을 가진 사람들 만났을 때 그것을 다른 세상의 일로 여기고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자포자기나 절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포기를 통해서든 안분지족을 통해서이든 간에 그들은 행복하며 여유롭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 바람을 보면서 필자는 한 편으로 착잡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 정의 차원에서는 그것이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구성원들의 행복으로 이어질까 하는 우려였다. 정치적 차원의 민주화는 경제적 차원의 평등을 요구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저 세상’을 인정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결국 중하위 계층의 구성원들은 상위층과 동등한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고, 전에 없던 무수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는 행복지수의 기하급수적 감소를 의미한다. 이것이 개발 과정의 라다크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과 사회는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신성장동력을 창출해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최근에 들어 그것은 단연 핸드폰과 관련된 분야이다. 보다 편리한 기능을 가진 전화기가 등장한다. 인류 문명의 차원에서 보면 커다란 발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구성원들에게도 그러한가 하는 문제는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욕구가 생겨나 전체 욕구가 증가했으므로, 행복 지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득을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보다 강도 높은 노동을 의미한다.

동막골 사람들의 행복에서 우리는 커다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행복을 위해서는 사회를 한 발 떨어져서 관찰하고, 절제의 미덕을 발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2012.08.16

인문학 | 동막골 사람들의 행복의 비밀

김민철 | CIO KR

몇 해 전 미얀마에서 한 달 여를 지낸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필자는 아이들을 돌봐 줄 베이비시터를 고용했는데, 필자가 그에게 지불한 월급은 우리 돈으로 7만원 남짓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매우 후한 대우였다는 것이다. 그곳 사람들의 월 평균 수입은 우리 돈으로 3~4만 원 가량이라고 했다. 미얀마의 경우가 조금 더 심하기는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의 사정은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보다 놀라운 것은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의 행복 지수가 우리나라보다 크게 높다는 사실이다. 식사는 언제나 밥에 반찬 한 가지고, 공산품 가격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라 보통 사람들은 평생 우유나 콜라 한 잔 마시지 못하지만, 그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미얀마에서 필자가 머물던 마을 사람들은 하루에 4~5시간만을 노동에 투자한다. 나머지 시간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어울려 여가를 즐긴다.
 
그곳에는 나름의 복지가 존재한다. 다리 하나를 잃은 사람도 청소와 같은 일을 배당받아 함으로써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전기톱을 쓰면 5분이면 벨 수 있는 나무를 몇 사람이 달려들어 하루 종일 끙끙거리며 베어내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그것이 일거리를 나누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풍요와는 거리가 멀지만, 모든 구성원들은 공동체 속에서 소박하고 여유로우며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필자는 그곳에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오래된 미래>에서 묘사한 라다크인들의 삶을 보았다. 서구 자본주의 문명이 침투하기 전의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목격한 것이다. 이 책을 아직 접하지 못한 분들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지만, 현대 도시인들이 동막골에 간다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가르치던 학생 중 하나가 호지의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가, TV에서 방영된 라다크의 모습을 보고 그런 곳에서 살 자신이 없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동막골이든 라다크든 미얀마든 간에, 자본주의 사회의 도시인들에게 그곳은 너무나 미개하고 불편한 곳일 수밖에 없다. 컴퓨터나 핸드폰은 말할 것도 없고, 전기나 수도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깔끔한 수세식 화장실은 언감생심이다. 샤워는커녕 머리 한 번 깔끔하게 감는 것도 쉽지 않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감자나 옥수수와 같은 ‘건강식’ 외에는 먹을 것도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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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인문학
-> 인문학 | 맹자는 바보인가, 천재인가?
-> 인문학 | 패러다임과 겸손함
-> 인문학 | 천리마론
-> 인문학 | 형이상학에서 합의와 계약으로
-> 인문학 | 진정한 자유 ; 얽매이지 않음
-> 인문학 | 옳고 그름이 아닌 멀고 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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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은 우리보다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도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넘쳐나고, 주거 환경은 깔끔하고 위생적이며, 음식과 의복을 비롯한 소모품이 넘쳐난다. 기본적인 욕구 충족조차 힘든, 야만에 가까운 그들의 삶이 우리의 그것보다 낫단 말인가? 비밀은 바로 행복 계산법에 있다.

보통 우리는 더 많은 욕구가 충족될수록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일정 부분 참이기도 하다. 행복 지수는 전체 욕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욕구가 충족되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필자가 원하는 것이 10가지인데, 그 10가지가 모두 이뤄진다면 나의 행복지수는 당연히 100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는 전체 욕구가 불변의 상수(常數)가 아니라 변수(變數)라는 데 있다. 거액의 복권 당첨자가 종종 불행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차를 더 낮은 등급으로 바꾸기는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는 자동차와 집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욕구는, 줄이기는 매우 어렵지만, 쉽사리 커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한다. 작은 차를 타던 사람이 큰 차를 타다가 다시 작은 차를 타지 못하는 것은 욕구가 이미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작은 차를 타게 되면 이미 커져버린 전체 욕구 때문에 행복지수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100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는 이모조모 따져 본 결과, 한 달에 1,500만 원 정도면 완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10억 원짜리 주택을 구입하고, 2억 원짜리 최고급 승용차를 구입했다. 자신의 여생을 40년 정도로 보고, 나머지 88억이면 남은 인생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화폐가치의 하락분은 이자로 보충한다고 생각하라). 과연 그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대답은 ‘No’이다. 그가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은 소비 수준을 늘릴수록 전체 욕구가 더욱 커져간다는 사실이다. 전체 욕구가 커지면 행복 지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행복지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비 수준을 더욱 높여야 한다. 

미얀마나 라다크, 동막골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은 욕구가 매우 작기 때문이다. 그곳 사람들도 콜라나 피자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것을 먹어본 적도 없고 먹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월 소득 3~4만원을 올리면서 한 캔에 600원짜리 콜라나 한 판에 만 원짜리 피자를 먹고 싶어 한다면 그야말로 너무나도 불행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사회가 정의로운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 상위 계층의 생활이 하위 계층에게는 다른 세상의 일로 여겨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위 계층에게 그것은 자포자기이자 절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막골 사람들이 핸드폰과 노트북을 가진 사람들 만났을 때 그것을 다른 세상의 일로 여기고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자포자기나 절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포기를 통해서든 안분지족을 통해서이든 간에 그들은 행복하며 여유롭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 바람을 보면서 필자는 한 편으로 착잡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 정의 차원에서는 그것이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구성원들의 행복으로 이어질까 하는 우려였다. 정치적 차원의 민주화는 경제적 차원의 평등을 요구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저 세상’을 인정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결국 중하위 계층의 구성원들은 상위층과 동등한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고, 전에 없던 무수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는 행복지수의 기하급수적 감소를 의미한다. 이것이 개발 과정의 라다크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과 사회는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신성장동력을 창출해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최근에 들어 그것은 단연 핸드폰과 관련된 분야이다. 보다 편리한 기능을 가진 전화기가 등장한다. 인류 문명의 차원에서 보면 커다란 발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구성원들에게도 그러한가 하는 문제는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욕구가 생겨나 전체 욕구가 증가했으므로, 행복 지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득을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보다 강도 높은 노동을 의미한다.

동막골 사람들의 행복에서 우리는 커다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행복을 위해서는 사회를 한 발 떨어져서 관찰하고, 절제의 미덕을 발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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