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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교양

인문학 | 맹자는 바보인가, 천재인가?

2012.07.16 김민철   |  CIO KR
당신이 카페에서 연인과 식사를 하고 있다. 달콤한 대화와 맛있는 음식에 기분은 최고다. 그런데 갑자기 “끼익~퍽”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교통사고가 나 있었다. 보행자가 차에 치인 것이다. 다리가 부러져 허연 뼈가 튀어나오고, 혈관이 끊어져 피가 용솟음친다.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당신 연인의 표정은 당신과 다를까? 사건을 목격한 후에 전과 다름없이 즐거운 식사와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필자에게 “미친놈!”이라고 욕하실지 모르겠다. 당신은 당연히 인상을 찌푸릴 것이고, 어쩌면 경악하여 소리를 지를 지도 모른다. 당신의 연인도 당신과 크게 다를지 않을 것이며, 그날의 즐거운 데이트는 끝장일 것이다. 이것은 비단 당신들만의 일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장면을 목격하고 유사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심지어 유영철이나 김길태와 같은 흉악범들조차 예외는 아니다.

반면 <동물의 왕국>과 같은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라. 사자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영양 떼를 덮치려 한다. 살금살금 접근하여 가장 어리고 연약한 놈을 덮친다. 나머지 영양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사자는 아기 영양의 목을 물어뜯어 숨을 끊고는, 배를 물어뜯어 내장부터 포식하기 시작한다. 피가 쏟아지고 창자가 터져 나온다. 이 때 나머지 영양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신과 당신의 애인처럼 인상을 쓰며 애처롭게 그 장면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다시 이전과 같이 태연하게 풀을 뜯을 것인가? 새끼영양의 엄마를 제외한 다른 영양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식사를 즐길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왜 생길까? 필자는 왜 뜬금없이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여러분이 중고등학교 윤리 시간에나 들어본 맹자의 성선설에 대해 설명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론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지 논의할 때면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맹자의 성선설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오해가 존재한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인간에게는 인의예지라는 네 가지 덕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등등 말이다. 윤리시간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운 사람들뿐 아니라 전공자들까지도 이러한 오해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오해가 사실이라면 맹자는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다. 그것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기만 해도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갈등과 다툼, 시기, 전쟁이 존재하는가? 게다가 맹자의 시대에는 그 정도가 현대보다 최소 100배는 심했다.  

오히려 순자의 주장은 현실에 부합해 보인다. 인간의 마음속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같은 도덕적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물욕과 시기심, 경쟁심, 명예욕 따위로 가득 찬 존재다. 그들을 그냥 놓아두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질서 있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악한 본성을 인위적으로라도 선한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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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성현들의 말씀을 주입시켜야 한다. 그것을 올바로 학습하지 않거나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회초리를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스스로 올바른 행동을 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의심과 감시의 눈길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교육이 있었음에도 범죄를 저지른다면 강력하게 처벌하여야 한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와 교육 체계는 바로 이러한 생각에 기초해 있다. 학생들은 교복과 두발에 대한 규제를 통해 묶어두지 않으면 나쁜 길로 나가려 하는 잠재적 악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체벌이 필수적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은 잠재적 범죄자이므로 엄중한 감시와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최근 진보교육감의 등장과 함께 논란이 된 바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 인성론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체벌을 없애고 자율성을 보장하더라도 바람직한 교육은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람직한 교육이 가능하지 않다. 보수적인 사람들의 눈길로 보면 그야말로 발칙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과 짐승의 싱크로율은 99.9%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짐승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측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맨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사례다. 인간에게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런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그것은 0.1%의 극소량이다. 인간에게는 그야말로 ‘도덕의 싹(혹은 불씨)’라고 부를 만한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싹 혹은 불씨는 부지불식간에 예상외의 경험을 통해서 발견된다. 그것은 스스로에게도 “나에게도 이런 측면이 있었다니!”라고 읊조리게 하는 놀라운 경험이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과의 일체감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해 주는 경험이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여, 그들을 어려움에서 구해주고자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이 짐승이 아닌 인간임을 실감하게 해 주는 경험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단초에 불과하다. 불씨가 꺼지거나 싹이 시들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억지로 불을 지피려고 바람을 세게 불거나, 싹에 물을 너무 많이 준다면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어려움이다. 무관심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뭔가를 주입시키려 하다가는 역효과가 나기 마련인 것이다.

우리나라 부모와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싹부터 자르는 데 선수이다. 어릴 때 전집을 몇 질씩 사 주고 억지로 읽혀 독서라면 진저리치게 만들고, 한참 뛰어 놀아야 할 중고등학교 시절에 새벽부터 밤까지 교실에 잡아 두고 감시와 회초리로 주입식 교육을 시킴으로써 공부 자체에 흥미를 잃게 만든다. 당연히 대학에 가면 술과 유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필자는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거의 사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언제나 독서에 굶주려 있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필자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아이가 책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할 때면, 매우 과장하여 놀라움을 표시한다. 아이는 지식 획득의 보상을 나의 과장된 칭찬에서 얻게 되고, 또 다른 지식을 탐구할 동력을 얻는다. 그리고 몇 권 안 되는 책을 하도 여러 번 읽어 거의 외울 때쯤 되면, 아이가 행한 선행을 핑계 삼아(예를 들어, “오늘 엄마를 잘 도와주었으니” 따위) 선심 쓰듯이 책을 한 권 더 사준다.

이는 비단 독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지만, 다른 어느 부모보다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아이가 스스로 그림놀이를 즐기다가 내게 자랑을 하면 “오~, 정말 잘 그렸네. 우리 아가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구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는 스스로 재주를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킬 동력을 재충전하게 된다.

서구권에서 공부하다가 온 학생들이 가끔 이런 한탄을 하곤 한다. “선생님, 저는 그곳에서 언제나 칭찬받는 아이였어요. 사소한 일에도 선생님과 친구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곤 했죠.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니 저는 바보였어요. 암기식 교육을 따라가지 못했거든요.”

아이들을 바라볼 때, 혹은 부하 직원들을 바라볼 때 우리가 그들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지,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근본적으로 어떤 인간관을 전제하는가에 달려 있다. 앞서 말한 학생의 한탄에 공감이 간다면, 모든 부모와 상사들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순자의 인성론에서 성현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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