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5

인문학 | 우익과 좌익, 그리고 자유주의

김민철 | CIO KR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던 시절, 두 사람은 보수 진영은 물론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욕을 먹곤 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색깔론을 내세우며, 두 사람이 좌익이라고 매도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두 사람의 정책을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좌익이라는 것이 무엇 때문에 죄가 되는가,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것이 왜 비판의 대상이 되는가다. 이 두 단어 역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흔히 들어 넘기고, 또 사용하면서도 그 정확한 의미는 모르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먼저 ‘좌익(左翼)’은 말 그대로 ‘왼쪽 날개’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 말 자체에는 정치적이거나 도덕적인 의미가 전혀 담겨있지 않다. 이 말에 특정한 의미가 담기게 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다. 혁명기 국민공회에서 의장석 좌측에는 급진파인 자코뱅파가, 우측에는 온건파인 지롱드파가 자리를 잡은 사건에서 유래한다. 당시에는 급진파건 온건파건 모두 사회의 변화를 원했으나, 이후에는 사회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집단을 우익, 그리고 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원하는 집단을 좌익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좌익이라는 말은 진보와 거의 동의어며, 개혁보다 좀 더 급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역으로 우익은 보수와 동의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가변적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남한에서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이 보수이자 우익이겠지만,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그런 사람들이 진보이자 좌익이 된다.

이렇게 그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나면, 그것이 왜 욕일까 하는 의문은 더욱 심해진다. 정치란 당연히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집단과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집단이 대결하는 장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좌익’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당신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우리와는 다르오!”라고 말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 말을 일종의 비판으로 여기게 된 것은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독재정권 하에서는 사회의 부조리에 항거하는 모든 사람들을 공산주의자의 은어인 ‘빨갱이’라고 매도하고, 그것을 좌익과 동의어로 사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집권하고 있는 현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 것이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방을 좌익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그에 대한 비판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재정권 하에서처럼, 현 상황이 크게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뒤집어엎는다 해도 잘못일 수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사회를 개혁하려는 상대방을 보다 정확히 비판하려면 “당신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한 점에서 잘못되었소”라고 말해야 한다. 친일행위를 하거나 독재자에게 협력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상대방을 ‘좌빨’이라고 욕하는 세태가 지속돼서는 안 된다. 친일파나 독재권력에 협조한 사람들이 아무 뒤탈 없이 잘 살고 있다면, 그 문제에 관한 한 보수적인 우파적 견해를 유지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비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독재에 항거하던 야당 출신 대통령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진보적인 좌익인 것은 사실이며, 특별하거나 부인할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또 진보진영으로부터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일까? 아니, 그것이 도대체 왜 비판이 될까? 잠시 돌아가보기로 하자.

6~7년 전 필자가 교사들을 상대로 논술 강의를 할 때의 일이다. 나는 당시 인기가 있던 <좋은나라 운동본부>라는 TV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어 자유주의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서울 시청의 전담반이 고액 세금 체납자를 찾아가 납부를 종용하고, 거부할 때는 압류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그 체납자들의 사상적 근거가 자유주의라고 설명했다. 수업이 끝났을 때, 60세에 가까운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선생님, 그런 사람들은 ‘나쁜 놈’이라고 해야지, 그들에게 자유주의자라는 폼 나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듯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쉽지 않다. 독자 여러분도 세금을 체납하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을 ‘나쁜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왜 분개하는가? 세금은 당연히 내야 하는 것인데 내지 않아서? 그렇다면 한 번 따져 보도록 하자. 여러분이 부모님께 100억 원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다면, 40억 이상을 기꺼이 세금으로 낼 용의가 있는가? 물론 그런 상황이라면 대다수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많은 돈을 물려받아도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을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인가? 재벌 총수들이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줄 때 교묘한 방법으로 탈세하는 모습을 보고 분개하는 것은 못 가진 자의 증오일 뿐인가?

그 사람들은 “내가 번 돈 내 자식에게 물려주는데 왜 국가가 참견하는가? 내가 벌었으니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상속세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앞서 말한 세금 체납자들도 동일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왜 내가 애써 번 돈을 무능력하고 게으른 사람들을 위해 쓰는가? 여기는 자유국가 아닌가?”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이 번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쓸 권리를 주장한다. 반면 현대 사회의 대다수 국가들은 복지국가를 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다. 국가 자체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므로, 그 재원은 세금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복지란 기준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그 재원은 당연히 기준 이상의 고소득자에게서 취해져야 한다. 소득이 높을수록, 혹은 재산이 많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해진다.

두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진보진영 인사들은 두 전 대통령이 경제 분야에서도 진보적 정책을 실행에 옮기기를 바랐다. 그러나 두 전 대통령의 정책이 그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에 그들은 두 사람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비판하게 되었는데, 이는 다시 말해서 “진보진영의 변절자”와 유사한 의미였던 것이다.

모든 국민을 포용하고자 했던 국가의 원수가 두 집단 모두에게 배척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그것이 바로 정치의 장인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2012.02.15

인문학 | 우익과 좌익, 그리고 자유주의

김민철 | CIO KR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던 시절, 두 사람은 보수 진영은 물론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욕을 먹곤 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색깔론을 내세우며, 두 사람이 좌익이라고 매도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두 사람의 정책을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좌익이라는 것이 무엇 때문에 죄가 되는가,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것이 왜 비판의 대상이 되는가다. 이 두 단어 역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흔히 들어 넘기고, 또 사용하면서도 그 정확한 의미는 모르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먼저 ‘좌익(左翼)’은 말 그대로 ‘왼쪽 날개’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 말 자체에는 정치적이거나 도덕적인 의미가 전혀 담겨있지 않다. 이 말에 특정한 의미가 담기게 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다. 혁명기 국민공회에서 의장석 좌측에는 급진파인 자코뱅파가, 우측에는 온건파인 지롱드파가 자리를 잡은 사건에서 유래한다. 당시에는 급진파건 온건파건 모두 사회의 변화를 원했으나, 이후에는 사회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집단을 우익, 그리고 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원하는 집단을 좌익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좌익이라는 말은 진보와 거의 동의어며, 개혁보다 좀 더 급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역으로 우익은 보수와 동의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가변적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남한에서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이 보수이자 우익이겠지만,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그런 사람들이 진보이자 좌익이 된다.

이렇게 그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나면, 그것이 왜 욕일까 하는 의문은 더욱 심해진다. 정치란 당연히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집단과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집단이 대결하는 장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좌익’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당신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우리와는 다르오!”라고 말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 말을 일종의 비판으로 여기게 된 것은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독재정권 하에서는 사회의 부조리에 항거하는 모든 사람들을 공산주의자의 은어인 ‘빨갱이’라고 매도하고, 그것을 좌익과 동의어로 사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집권하고 있는 현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 것이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방을 좌익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그에 대한 비판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재정권 하에서처럼, 현 상황이 크게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뒤집어엎는다 해도 잘못일 수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사회를 개혁하려는 상대방을 보다 정확히 비판하려면 “당신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한 점에서 잘못되었소”라고 말해야 한다. 친일행위를 하거나 독재자에게 협력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상대방을 ‘좌빨’이라고 욕하는 세태가 지속돼서는 안 된다. 친일파나 독재권력에 협조한 사람들이 아무 뒤탈 없이 잘 살고 있다면, 그 문제에 관한 한 보수적인 우파적 견해를 유지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비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독재에 항거하던 야당 출신 대통령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진보적인 좌익인 것은 사실이며, 특별하거나 부인할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또 진보진영으로부터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일까? 아니, 그것이 도대체 왜 비판이 될까? 잠시 돌아가보기로 하자.

6~7년 전 필자가 교사들을 상대로 논술 강의를 할 때의 일이다. 나는 당시 인기가 있던 <좋은나라 운동본부>라는 TV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어 자유주의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서울 시청의 전담반이 고액 세금 체납자를 찾아가 납부를 종용하고, 거부할 때는 압류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그 체납자들의 사상적 근거가 자유주의라고 설명했다. 수업이 끝났을 때, 60세에 가까운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선생님, 그런 사람들은 ‘나쁜 놈’이라고 해야지, 그들에게 자유주의자라는 폼 나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듯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쉽지 않다. 독자 여러분도 세금을 체납하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을 ‘나쁜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왜 분개하는가? 세금은 당연히 내야 하는 것인데 내지 않아서? 그렇다면 한 번 따져 보도록 하자. 여러분이 부모님께 100억 원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다면, 40억 이상을 기꺼이 세금으로 낼 용의가 있는가? 물론 그런 상황이라면 대다수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많은 돈을 물려받아도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을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인가? 재벌 총수들이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줄 때 교묘한 방법으로 탈세하는 모습을 보고 분개하는 것은 못 가진 자의 증오일 뿐인가?

그 사람들은 “내가 번 돈 내 자식에게 물려주는데 왜 국가가 참견하는가? 내가 벌었으니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상속세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앞서 말한 세금 체납자들도 동일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왜 내가 애써 번 돈을 무능력하고 게으른 사람들을 위해 쓰는가? 여기는 자유국가 아닌가?”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이 번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쓸 권리를 주장한다. 반면 현대 사회의 대다수 국가들은 복지국가를 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다. 국가 자체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므로, 그 재원은 세금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복지란 기준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그 재원은 당연히 기준 이상의 고소득자에게서 취해져야 한다. 소득이 높을수록, 혹은 재산이 많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해진다.

두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진보진영 인사들은 두 전 대통령이 경제 분야에서도 진보적 정책을 실행에 옮기기를 바랐다. 그러나 두 전 대통령의 정책이 그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에 그들은 두 사람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비판하게 되었는데, 이는 다시 말해서 “진보진영의 변절자”와 유사한 의미였던 것이다.

모든 국민을 포용하고자 했던 국가의 원수가 두 집단 모두에게 배척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그것이 바로 정치의 장인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