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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O / 리더십|조직관리

칼럼 | ‘갑’은 과연 편하기만 할까?

2011.08.16 정철환  |  CIO KR
SI프로젝트를 오랫동안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공감하는 말이 있을 것이다. “갑 한번 해보고 싶다” 라는 이야기다.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 SI프로젝트 계약관행이 건설분야 등 기존 사업분야의 계약관행과 많이 유사해 ‘갑’과 ‘을’의 관계가 상호 대등한 계약관계가 아닌 상하관계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할 때면 갑의 무조건적인 요구와 잦은 요구사항 변경, 그리고 종료단계에서 새로운 요구사항 추가 등으로 프로젝트 팀 입장에서 억울하다고 느낀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갑’은 과연 어떤 고민을 안고 있을까? 그리고 ‘갑’은 어떻게 해야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을’에게 합리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필자는 이러한 것을 푸는 열쇠가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생각한다.

먼저 ‘을’은 ‘갑’이 가진 고민과 입장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SI프로젝트 팀원으로 ‘갑’을 상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느꼈던 의문 중의 하나가 “왜 갑은 프로젝트 초반부터 성급함을 보이고 프로젝트 기간 내내 수행팀을 믿지 못할까?”였다.

프로젝트 착수보고회가 막 끝난 초기 단계에서 이런저런 결과물을 성급하게 요구하거나 수시로 점검하면서 수행팀이 차분히 진도를 나가기 어렵게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그리고 단계별로 검수 받고자 하면 이를 회피하거나 최종 검수 시 기존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 종종 논쟁이 벌이지곤 했지만 결국에 갑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갑과 을간에 이견이 있을 경우 갑의 의견을 따른다”라는 묵시적인 관행을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현재의 직장에서 IT기획팀장으로 갑이 되어 수년간 업무를 해보면서 그 의문점이 풀렸다.

갑, 소위 IT 전략담당부서는 기업 내에서 지원조직, 또는 스텝조직에 해당한다. 그리고 프로핏센터가 아닌 코스트센터다. 즉 돈을 버는 부서가 아니라 돈을 쓰는 부서라는 뜻이다. 부서의 장이 임원인 경우도 있고 부장급인 경우도 있다. 임원이라고 해도 아주 규모가 크거나 글로벌 기업이 아니라면 상무급 임원이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기업 내에서 영향력이나 힘이 크지 않은 부서라는 뜻이다.

얼마 전 필자는 지식경제부가 후원했던 공청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한 신RFP의 도입과 대형SI기업의 독식을 막기 위한 분할발주 도입을 논했던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패널이 말했던 것으로 ‘상세한 RFP의 작성 및 분할발주 한 소프트웨어 사업관리를 위해서는 갑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조직 내에서 비전도 없고 승진도 안되고 힘도 없는 IT 담당자가 무슨 사명감으로 RFP 작성에 큰 노력을 들이고 국내 소프트웨어 발전을 위해 분할발주를 하고 통합 관리를 책임지겠는가?’라는 이야기였다.

그렇다. 사실 어떤 유머에서 CIO가 ‘Career Is Over’의 준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필자가 갑으로서 SI사업을 발주해 보니 초기 예산 수립단계부터 사업 타당성에 대해 CFO 및 관련 임원들 이해 및 설득, 그리고 품의 작성 및 승인, RFP 작성 및 제안서 접수/평가, 구매팀의 금액 협상 지원,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환경 마련 등 실제 프로젝트가 킥오프(Kick Off)하기 전에 이미 진이 다 빠져버렸다.

더구나 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 노력에 대한 인정은 고사하고 향후 어떤 대가를 치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을’인 프로젝트 수행팀은 이제 막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킥오프를 한 상황이지만 ‘갑’은 이미 길고 긴 과정을 힘들게 지내온 상태며 이제 프로젝트에 대한 부담감이 밀려오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 입장이 되고 보니 예전에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SI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을’이 가장 원하는 것은 ‘갑’이 요구하는 업무 범위가 명확하고 프로젝트 일정에 맞추어 필요한 의사결정을 책임감 있게 내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전략부서가 항상 시스템 개발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즈니스를 담당하고 있는 현업이 주도적으로 시스템의 요구사항을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갑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영향력 있는 현업 대표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 그리고 프로젝트 팀과 현업 사이에서 정보전략부서는 IT와 비즈니스 사이의 중계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프로젝트 팀이 현업의 요구사항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현업이 시스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때 정보전략부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록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갑인 정보전략부서지만 프로젝트 팀에게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위치니 말이다.

사실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SI프로젝트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복잡하다. 또한 갑이라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고 책임이 가벼운 것도 아니다. 정보전략부서는 회사 내에서는 을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프로젝트 팀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지원해야 하며 때론 현업과 문제가 불거졌을 때 프로젝트 팀의 편을 들어주어야 할 때도 있다. IT적인 측면의 문제점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자기 주장만 하는 현업을 프로젝트 팀이 설득하기 무척 어려울 때 정보전략부서가 그래도 같은 회사 동료로서 잘 이해시키고 중재해 주면 프로젝트 팀은 무척 고맙게 여길 것이다.

필자는 을로서 15년 가까이 IT분야에 몸을 담았고 6년 정도 갑으로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마음은 ‘을’의 입장에 더 공감이 간다. 하지만 을을 겪어보지 못한 정보전략부서 담당자들은 쉽게 을의 애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세상은 서로 돕고 도우며 이뤄나가는 것이다. 성공적인 SI프로젝트의 첫걸음은 ‘역지사지’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정철환 팀장은 삼성SDS,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부제철 IT기획팀장이다. 저서로는 ‘SI 프로젝트 전문가로 가는 길’이 있으며 삼성SDS 사보에 1년 동안 원고를 쓴 경력이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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