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해커에 대한 생각이 자리잡힌 시기는 1960년대로 바로 반체제 문화가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등장하던 때에서 기인한다. 그러다 1973년 시분할 BOS(Berkeley Operating System)에서 근무하던 버클리의 프로그래머들이 최초의 공공 게시판 시스템인 CM(Community Memory)를 공개했는데, 그 개척자들 중에는 주드 미혼(Jude Milhon), 일명 세인트 주드(St. Jude)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2003년 세상을 떠났다. 몇 년 후 다른 지역에서 수잔 해들리(Susan Headley)가 갱단과 연합하여 DEC의 시스템을 해킹했으며, 그녀는 수지 썬더(Susy Thunder)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들 해커들의 이름에서는 시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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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오브라이언, 일명 스콜피온
별명이나 필명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오랜 전통이며 문화를 막론하고 나타나며 월터 오브라이언은 자신이 자란 아일랜드에서 이는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의 따돌림을 복수한 이후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얌전하고 종족에 충성을 다하는 생물의 이름을 따 스콜피온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3세에 ARPANET을 해킹하기 시작했으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로그인명으로 스콜피온을 선택했다. 이 이름은 훗날 그의 회사의 브랜드 이름이 되었고 그의 일화를 그린 TV 시리즈의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다. 많은 해커들의 핸들(Handle)이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에서 기인하곤 한다.
마이클 칼스, 일명 마피아보이
해커들이 선택한 별명이 다소 유치해 보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브라이언의 경우처럼 어린이들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0년 당시 몬트리올에 거주하던 15세 소년이었던 마이클 칼스는 야후와 이트레이트(E-Trade) 같은 닷컴 시대의 유명 사이트에 대해 일련의 디도스 공격을 감행했다. 그가 선택한 마피아보이(MafiaBoy)라는 별명은 캐나다의 10대에겐 극단적으로 과장된 느낌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TNT라고 알려진 조직화된 해킹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해당 공격은 TNT의 지배력을 과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비유가 아주 뜬금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킴 반백, 일명 기가바이트
바이러스 개발자 킴 반백이 선택한 별명인 기가바이트도 나이든 사람이나 당시 컴퓨터 바이러스를 실험하던 16세의 소녀에게는 첨단처럼 들리는 천진난만한 단어다. 분명 그녀의 동년배들은 그 이름을 존중하게 되었다. 다른 바이러스의 페이로드(Payload)에는 "HECHO EN ADMIRACION A GIGABYTE" 등의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반백은 그녀가 잘난 체하고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했던 소포스 시큐리티(Sophos Security)의 그레이엄 클루리와 전쟁을 벌이다 2004년 19세의 나이로 체포되면서 바이러스 게임을 그만 두었다. 현재 그녀는 네트워크 보안 전문가로 과거를 그리워하는 듯한 홈 페이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트위터에서는 여전히 기가바이트이다.
개리 맥키넌, 일명 솔로(SOLO)
영국의 해커 개리 맥키넌은 자신의 동료 해커들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위한 명함으로 사용했다. 맥키넌은 여러 미국 정부 및 국방 시스템에 침투했으며 해킹된 기기에 이런 메시지를 남기곤 했다. "미국의 해외 정책은 오늘날 정부 후원의 테러와 유사하다... 나는 솔로다. 나는 고위층에 대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다." 불길하게 들리긴 하겠지만 이후 맥키넌은 스스로를 ‘갈팡질팡하는 괴짜’ 라고 치부하면서 감춰진 UFO의 증거와 억압되고 있는 공짜 에너지에 대한 증거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미국으로 인도되지는 않았다.
조지 호츠, 일명 조핫(geohot)
때로는 해킹에 사용하는 별명으로 그 해커가 어디 출신인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지 호츠의 경우 최초의 iOS 탈옥 툴을 작성했으며 플레이스테이션 3(PlayStation 3)를 역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등의 주요 IT미디어는 일반적으로 그를 그의 합법적인 이름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다른 간행물은 그에 관한 기사의 헤드라인에 그의 유명한 별명을 언급하여 해커 문화에 좀 더 정통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조나단 제임스, 일명 c0mrade
10대의 나이로 NASA 컴퓨터에 접속하여 ISS(International Space Station)의 항법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한 조나단 제임스는 스스로를 정치적 목적의 해커로 여겼으며 이것이 그가 c0mrade라는 별명을 선택한 이유일 수 있다. 2000년 그는 연방 교도소에서 6개월을 복역했다. 하지만 별명으로 인해 다른 비극이 일어났다. 2007년 TJX 백화점 체인점 해킹 사건에서 조사관들은 ‘J. J’라는 이름을 사용한 공모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임스는 자살했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정부가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것이라는 유서를 남겼다.
조나잔 질레트, 일명 와이더럭키스티프
2000년대에 유명했던 와이더럭키스티프(why the lucky stiff) 또는 와이는 괴짜스러운 프레젠테이션과 매력적인 출판물로 루비(Ruby) 컨퍼런스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항상 가명을 사용했으며 모든 것을 현금으로 지불했다. 2009년 어느 날 통렬한 익명의 사이트에서 그가 유타(Utah) 출신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인디 록커인 조나단 질레트라는 사실이 공개되자 그는 자신의 오픈소스 코드를 포함하여 웹에서 자신의 신원 전체를 삭제하는 ‘정보 자살(Infosuicide)’을 자행했다. 결국 그는 중재자를 통해 자신이 잘 지내지만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 일명 사토시 나카모토
비트코인(Bitcoin) 사용자들이 이 암호화된 화폐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그 개발자가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명이나 별명이라고 여겼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한 개인을 지칭하는지 아니면 비트코인을 만든 그룹의 리더를 지칭하는 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지난 해 뉴스윅(Newsweek)은 실제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남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으며 도리언(Dorian)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일본 출신의 엔지니어라고 과감하게 보도했다. 혼란스러운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이 사토시라고 대답하는 듯 했지만 도리언은 결국 자신의 개입을 부인했으며 몇 년 만에 사토시가 수 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온라인에 다시 등장하여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고 해명했다. 미스터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실성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스콜피온의 오브라이언은 가상 현실에 신원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열렬히 설명했다. 자신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변경이 용이한 가상 신원에 대한 열망 때문에 해커와 프로그래머들이 별명에 매료되는 것 같다. ‘실제’ 신원은 단조로운 현실과 누가 필명으로 작성한 코드의 소스 코드를 소유하고 있는가와 같은 재미 없는 질문에 연계되어 있다.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많은 기술 전문가들이 실제 신원의 자본화를 위한 현실 때문에 구글 플러스의 실명 정책에 대해 우려했다.
스티브 워즈니악, 일명 록키 클락
그리고 필자가 본 기사에서 밝힌 모든 간접적인 정신 분석을 종합해 보면 해커들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신원을 숨기기 위해 별명이나 필명을 사용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효과는 상당할 수 있다. 기술계의 전설 스티브 워즈니악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돈을 벌기 위해 UC 버클리를 휴학했다가 애플을 창업했다. 10년 후 그는 완전히 평범한 ‘록키 클락(Rocky Clark)’이라는 이름으로 학위를 마치기 위해 복학했다. 놀랍게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클락의 이름으로 학위가 제공되었지만 워즈니악은 졸업하던 해에 학위 수여식 연설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