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컴퓨터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 있다. '방 하나만한 크기였다'는 것이다. 방을 컴퓨터 크기를 측정하는 척도로 사용한 표현이다. 그러나 초창기 컴퓨터의 크기를 감안할 때 이런 표현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현재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결과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크기에 집착을 한다.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얼마나 작아져야 하는지 등이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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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인가, 전화기인가?
아마 가장 작아진 기기 중 하나는 휴대폰일 것이다. 이론적으로 휴대폰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2차 세계 대전 직후다. 서류 가방이나 자동차에 휴대하고 다녔기 때문에 휴대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적인 개념의 휴대폰은 1980년대 모토롤라의 다이나택(DynaTAC)이 원조다. 다이나택은 그 크기가 1피트가 넘었고, 무게는 2파운드에 가까웠다.
손바닥 크기로 작아진 전화기
이후 10년간 휴대폰 산업은 더 작고, 빠르고, 가벼운 전화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아이폰 4가 출시된 2010년의 대표적인 스마트폰들은 평균 4.5인치와 4.8파운드로 다이나택 의 1/3 및 20%에 불과한 크기와 무게를 자랑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본의 윌컴(Willcom)은 2013년 길이 3인치에 무게는 1온스에 불과한 초소형 휴대폰을 공개하기도 했다.
패블릿과 '역풍'
그러나 작아지기만 하던 휴대폰 시장에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풀 스크린 화면을 중심으로 휴대폰이 너무 작다며 불평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이다. 이런 불평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일부 휴대폰 제조업체들 이런 '역풍'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갤럭시 노트 2나 소니 엑스페리안 Z 울트라(사진) 같은 태블릿 크기의 휴대폰인 이른바 '패블릿(Phablet)'을 선보인 것이다. 심지어는 아이폰조차 과거에 비해 크기가 1인치 커졌다.
노트북 컴퓨터의 탄생
1950년대부터 일부 컴퓨터를 '휴대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해체하지 않고도 옮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휴대용 컴퓨터는 1981년의 오스본(Osbourne) 1이 처음이다. 오스본 1의 무게는 당시 기준으로는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가벼운 24 파운드에 불과했으며, 5인치의 화면과 1시간을 충전해 사용할 수 있는 외장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었다. 오스본 1은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플랫폼이 쇠퇴를 했다. 고객들은 새 모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지만, 새 모델은 출시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PC와 호환되지 않는 컴퓨터는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름 그대로의 '노트북' 컴퓨터
가장 먼저 성공을 거둔 노트북 컴퓨터는 1989년 컴팩 LTE 8086과 286 모델들이었다. 무게는 6 파운드를 조금 넘었으며, 실제 공책(노트북)과 비슷한 크기였다. 노트북 컴퓨터라는 명칭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운영 체제는 MS-DOS였고, 관련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있었다. 뉴욕 타임즈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뉴욕 타임즈는 크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다. 우선순위가 변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컴팩 LTE는 경쟁 제품인 맥(Mac)의 15파운드짜리 포터블(Portable)과의 경쟁에서 크게 앞서 나갔다. 많은 인기 덕분에 팬 사이트가 생겼을 정도다.
더 작아진 노트북 컴퓨터
이후 20년 동안 더 작고, 얇고, 가벼운 노트북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경쟁이 계속됐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능과 품질을 희생시키기도 했다. 이런 트렌드는 넷북(netbook)과 함께 절정에 달했다. 넷북이란 아주 저렴하고 가벼운 대신 성능을 낮춘 노트북으로 리눅스나 윈도우 구 버전을 운영 체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무게 2파운드에 7인치 화면을 장착한 에이수스의 Eee PC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울트라북과 '역풍'
그러다 2010년 흥미로운 트렌드가 부상했다. 애플이 아이패드를 내놓으면서, 누구나 500달러 미만의 인터넷 서핑이 주된 목적이며 휴대하기 편한 기기를 원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넷북 시장이 몰락했다. 동시에 지난 몇 년간 노트북 컴퓨터의 평균 크기가 커졌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작은 노트북 컴퓨터를 원하는 사람들은 맥북 에어나 유사한 윈도우 모델 같은 울트라북(ultrabook)을 구입한다. 무게가 3파운드 미만이지만, 더 큰 키보드와 모니터, 성능을 갖춘 제품이다.
보청기
보청기의 역사는 휴대폰 및 컴퓨터의 역사와 관련있다.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드라 그래험 벨은 청각 장애인을 가르쳤던 교사였다. 전기전자 보청기에 초기 전화기와 동일한 기술이 사용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를린 의료사 박물관(Berlin Museum of Medical History)에 전시된 제품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크기 또한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진 보청기
1996년 디지털 보청기가 첫 선을 보였다.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폰 마이크로폰을 개선하는데 목적을 뒀던 연구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보청기 또한 계속 작아졌다. 귀에 감추어 착용을 할 수 있는 현대의 보청기는 아주 작고 가볍다. 때로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할 정도다(모르고 샤워를 하다 고장이 나는 경우도 있다).
놀라울 정도로 작아진 트랜지스터
기기들의 크기 축소 경쟁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표현이다. 바로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다. 현대적인 기술 혁신을 견인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 부품인 트랜지스터도 기술이 발전하면서 크기가 계속 줄어들었다. 칩을 만들 때 사용하는 이 부품은 모든 것을 작고 빠르게 만든다. 사진 왼쪽부터 시대별 트랜지스터다. 현대의 프로세서에는 말 그대로 수백만 개의 초소형 트랜지스터가 사용된다. 그렇지만 일부에서는 더 이상은 크기가 작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리학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전자 스토리지
'무어의 법칙'은 모든 기기 및 기계에 영향을 미쳤다. 전기전자 제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1950년대 처음 등장한 하드 드라이브는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거대한 기계류였다. 이를 수십 년간 사용했다. 그러다 갑자기 크기가 작아졌다. 아이팟이 첫 출시된 2001년만 하더라도 내부의 대부분을 기계식 하드 드라이브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칩 기반의 전자 플래시 메모리가 저렴해지고, 용량이 커지면서 64GB의 아이폰과 아이팟 셔플 같은 작은 기기가 등장했다.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은 제품
부품의 크기가 변하기는 했지만 몸체의 크기는 변하지 않은 제품도 있다. 1977년과 2013년에 인기를 끌고 있는 비디오 게임기를 비교하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아타리(Atari) 2600의 크기와 무게는 각각 '3.5 x 13.5 x 9' 인치 및 5 파운드였다. 그렇다면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4는 어떨까? 크기는 '2 x 11 x 12' 인치로 큰 차이가 없고, 무게는 오히려 1파운드가 무거워졌다. 게다가 형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