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4

오힘찬 칼럼 | 개틀링 건과 Peace

오힘찬 | CIO KR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 인문학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 업계의 새로운 도전과 맞물리면서 기술 인재에 꼭 필요한 소양으로 강조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넘어서는 걸 두려워하기보다는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하고, 기술이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을 해결하려면 인문학을 적용해야 한다는 등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기술 산업에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게 된 계기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등장인 것은 아니다. AI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가 인공신경망을 개발하게 된 배경이 흥미롭다. 그는 수학, 물리학, 유전학, 신경학과 더불어 사회학과 음악까지 배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인간의 지능 연구에 몰두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행동주의 심리학자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의 강의였다. 인간의 지능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발단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민스키가 1974년에 발표한 '지적 활동의 프레임워크(A framework for representing knowledge)' 역시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이 결합한 학문인 심리학의 '스키마(Schema)'에 뿌리를 둔 이론이었다. AI가 발달하면서 인문학적 소양과 AI 사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진 것이 아니라 AI의 시작부터 인문학적 고민은 진행되었다는 이야기이며, 지금까지 기술에서 인문학이 결여된 적이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인문학이 오늘날 필요해진 이유가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과 발전이 기술 산업에 근본적으로 필요했던 이유일 것이다.

1862년, '리처드 조던 개틀링(Richard J Gatling)'은 여러 개의 총열을 합쳐서 손잡이를 돌리면 교대로 발사하는 총기인 '개틀링 건(Gatling Gun)'을 고안했다. 당시는 미국의 남북전쟁 상황이었고, 개틀링 건의 발명으로 많은 사람이 전쟁터에서 죽었다. 그러나 개틀링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개틀링 건을 발명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직업은 의사였으며, 전쟁으로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돌아오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 그들이 총보다는 질병으로 더 많이 사망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 줄어든다면, 사망하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라 개틀링은 생각했다. 그래서 한 명이 많은 총탄을 발사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면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개틀링 건을 발명했다.


   개틀링 건

오늘날 기준이라면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라 생각할 수 있겠다.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의 무기가 주어졌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생기고, 더 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당연한 전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적으로는 업적을 남겼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에 개틀링 건이라는 무기를 만든 비극을 저질렀다.'라고 개틀링을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했던 건 개틀링 건을 손에 쥔 당시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위험한 무기의 탄생이 오히려 자신들을 평화롭게 해주리라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평화의 의미는 지금과 다소 달랐다.

평화를 뜻하는 영단어인 'Peace'의 어원은 라틴어의 'Pax'이다. Pax는 평화를 상징하는 여신의 이름이다. 로마 제국이 태평성대를 누릴 1~2세기경이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불렸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오랜 전쟁을 끝내고, 한동안 전쟁이 없는 시기가 될 때 Pax를 붙여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등의 단어로 평화를 상징하고자 했다.

반대로 말하면 Pax라는 단어를 사용할 시기, 평화로운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강대국에 의한 전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Pax는 평화라는 단어 자체로 인식되기보단 '힘으로 얻은 거짓된 평화'로 읽힌다. 즉, 강대국만 평화로운 상태를 말하며, 그 평화로운 상태를 만들고자 벌어진 것이 전쟁이었다. 고로 평화가 '승리를 통한 평화'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던져진 개틀링 건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평화를 위한 발명품 외엔 무엇도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더 거듭하여 무기가 발전하고, 대량 살상이 벌어지면서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전쟁하지 않는 것이 평화라는 걸 인지한 것이다. 물론 확실히 인지했기에 그나마 과거보다 평화로운 상태가 된 것인지, 아니면 개틀링 건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무기의 등장이 대규모 전쟁을 억제하고 있는 것인지까지는 필자가 논할 부분이 아니다.

분명한 건 Pax에서 뻗어 나온 Peace라는 단어가 이제는 '약자를 포용하고, 서로 이해하는 화목한 상태'를 점차 의미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길 바라도록 바뀌었다는 점이다. Peace의 의미가 변한 건 고작 100년도 되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비약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개틀링은 오히려 인도적으로 성숙한 인물이었다. 적어도 전쟁의 참상을 인지했고, 많은 사람이 전쟁에 참여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단지 인도와 기술의 괴리를 좁히기에는 개틀링 건이 핵미사일처럼 강력하지 못했을 뿐이다.

문제는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 탓에 지체 현상이 과거보다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수 과학이나 공학 측면에서 지체 현상은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 지체되거나 말거나 발전하는 게 본디 마땅하다. 필요한 건 지체된 거리를 좁힐 방법이다. 그러나 무기가 계속 발전할 동안 벌어진 지체 현상, Peace의 의미가 현대에 바뀌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고, 현대의 기술은 활에서 화약으로 넘어간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기술 발전이 마땅하다면, 지체 현상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과 발전이 기술 산업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최근 산업에서 인문학을 강조하는 이유는 경제성에 있는 듯 보인다. 지체 현상의 거리를 인지하여 조정된 기술 상품들은 산업 경제의 한 축이 되었고, 기술의 제원과 자금 규모를 넘어선, 지체 현상을 좁힌 소위 말하는 '사소한 아이디어'가 경제성을 가지자 그 원인으로 인문학이 꼽힌 것이다. 그저 상황은 산업 혁명 때나 닷컴 붐 때와 똑같은데도 말이다. 여전히 느린 사회 변화와 그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 기술 속도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 탓으로 일각에서는 '기술 인재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보다 누구나 기본적인 기술적 소양을 갖추는 편이 수월하다'라고 말한다. 괜히 '초등학교 코딩 교육'과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다. 그것도 지체한 거리를 좁힐 방법의 하나이다. 그리고 부쩍 가치가 늘어난 기업 중 몇 곳은 순수 기술 기업이 아닌 스트리밍으로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TV 보는 양식을 바꾸거나 이동 수단을 이용하는 방법을 바꾸고, 전통적인 기술 산업인 자동차 산업을 흔든 그런 곳이라 설득력도 있다.

하지만 기술의 절댓값보다 지체 현상을 좁히고, 다음 기술 세대로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에 변화를 주는 방법이라면 양분하는 것부터 바람직하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개틀링 건의 발명 목적이 실패한 원인은 개틀링의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뿐만 아니라 기술까지 앞선 탓에 지체 현상을 좁히긴커녕 거리를 더 벌려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성으로만 보면 개틀링은 개틀링 건을 팔아서 많은 돈을 벌었다. 최근 인문학을 강조하는 이유에 매우 충족하는, 거짓된 평화를 이치로 생각한 당시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그보다 더 훌륭할 수 없는 경제성을 갖춘 모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만약 기술 산업에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이유, 또는 보편적인 기술적 소양을 갖춰야 하는 이유가 경제성에 있다고만 말한다면 개틀링 건과 같은 물건이 다시 등장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인문학이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계속 질문을 던지고자 존재하지 않던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는 기술이 경제성을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체 현상을 완화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지점이다. 경제성은 그 지점까지 도달함에 따라 부산물로 따라왔을 뿐 핵심이었던 적이 없다.

지금까지 두 가지가 양분된 상태였던 건 산업 시스템에 따라 역할 구분을 편하게 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 지점이 과거에 없었던 탓이 아니다. 지체한 거리가 그리 길지 않으니 구분하는 쪽이 편이해서였다. 그러나 지체할 거리가 더 길어질수록 양분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교차 지점을 이해하는 사람이 미래의 인재상으로 떠오를 테니 말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바꾸는 것, 강조되는 인문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인문학으로 본격적인 성과를 내는 것까지 도달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이 코앞인데, 오래 걸리면 어쩌나!'라고 생각될수록 이것이 장기적인 목표라는 걸 더욱 상기해야만 한다. 그놈의 산업 패러다임에 이끌려 인문학을 멸시한 시간부터 되돌아보라. 그래야 뒤집어진다는 기술 혁명에 사회까지 좌초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인문학이라는 화두가 산업과 경제성에 국한하여 단기적인 양상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닌, 위에서 말한 인문학적 소양과 발전이 기술 산업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보편적인 사회 시스템으로 이해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은 미래 기술 산업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열쇠가 될 테니 말이다.

* 필자 오힘찬은 다각도의 시각과 일말의 통찰력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술 산업과 관련한 글을 저술하고 있다. 비석세스, 애브리뉴스 등 매체에 기고했으며, 현재는 애플 전문 매거진인 월간 IUM, LG CNS 블로그, 개인 매체인 맥갤러리 등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ciokr@idg.co.kr



2017.06.14

오힘찬 칼럼 | 개틀링 건과 Peace

오힘찬 | CIO KR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 인문학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 업계의 새로운 도전과 맞물리면서 기술 인재에 꼭 필요한 소양으로 강조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넘어서는 걸 두려워하기보다는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하고, 기술이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을 해결하려면 인문학을 적용해야 한다는 등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기술 산업에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게 된 계기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등장인 것은 아니다. AI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가 인공신경망을 개발하게 된 배경이 흥미롭다. 그는 수학, 물리학, 유전학, 신경학과 더불어 사회학과 음악까지 배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인간의 지능 연구에 몰두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행동주의 심리학자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의 강의였다. 인간의 지능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발단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민스키가 1974년에 발표한 '지적 활동의 프레임워크(A framework for representing knowledge)' 역시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이 결합한 학문인 심리학의 '스키마(Schema)'에 뿌리를 둔 이론이었다. AI가 발달하면서 인문학적 소양과 AI 사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진 것이 아니라 AI의 시작부터 인문학적 고민은 진행되었다는 이야기이며, 지금까지 기술에서 인문학이 결여된 적이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인문학이 오늘날 필요해진 이유가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과 발전이 기술 산업에 근본적으로 필요했던 이유일 것이다.

1862년, '리처드 조던 개틀링(Richard J Gatling)'은 여러 개의 총열을 합쳐서 손잡이를 돌리면 교대로 발사하는 총기인 '개틀링 건(Gatling Gun)'을 고안했다. 당시는 미국의 남북전쟁 상황이었고, 개틀링 건의 발명으로 많은 사람이 전쟁터에서 죽었다. 그러나 개틀링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개틀링 건을 발명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직업은 의사였으며, 전쟁으로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돌아오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 그들이 총보다는 질병으로 더 많이 사망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 줄어든다면, 사망하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라 개틀링은 생각했다. 그래서 한 명이 많은 총탄을 발사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면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개틀링 건을 발명했다.


   개틀링 건

오늘날 기준이라면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라 생각할 수 있겠다.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의 무기가 주어졌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생기고, 더 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당연한 전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적으로는 업적을 남겼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에 개틀링 건이라는 무기를 만든 비극을 저질렀다.'라고 개틀링을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했던 건 개틀링 건을 손에 쥔 당시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위험한 무기의 탄생이 오히려 자신들을 평화롭게 해주리라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평화의 의미는 지금과 다소 달랐다.

평화를 뜻하는 영단어인 'Peace'의 어원은 라틴어의 'Pax'이다. Pax는 평화를 상징하는 여신의 이름이다. 로마 제국이 태평성대를 누릴 1~2세기경이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불렸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오랜 전쟁을 끝내고, 한동안 전쟁이 없는 시기가 될 때 Pax를 붙여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등의 단어로 평화를 상징하고자 했다.

반대로 말하면 Pax라는 단어를 사용할 시기, 평화로운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강대국에 의한 전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Pax는 평화라는 단어 자체로 인식되기보단 '힘으로 얻은 거짓된 평화'로 읽힌다. 즉, 강대국만 평화로운 상태를 말하며, 그 평화로운 상태를 만들고자 벌어진 것이 전쟁이었다. 고로 평화가 '승리를 통한 평화'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던져진 개틀링 건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평화를 위한 발명품 외엔 무엇도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더 거듭하여 무기가 발전하고, 대량 살상이 벌어지면서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전쟁하지 않는 것이 평화라는 걸 인지한 것이다. 물론 확실히 인지했기에 그나마 과거보다 평화로운 상태가 된 것인지, 아니면 개틀링 건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무기의 등장이 대규모 전쟁을 억제하고 있는 것인지까지는 필자가 논할 부분이 아니다.

분명한 건 Pax에서 뻗어 나온 Peace라는 단어가 이제는 '약자를 포용하고, 서로 이해하는 화목한 상태'를 점차 의미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길 바라도록 바뀌었다는 점이다. Peace의 의미가 변한 건 고작 100년도 되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비약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개틀링은 오히려 인도적으로 성숙한 인물이었다. 적어도 전쟁의 참상을 인지했고, 많은 사람이 전쟁에 참여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단지 인도와 기술의 괴리를 좁히기에는 개틀링 건이 핵미사일처럼 강력하지 못했을 뿐이다.

문제는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 탓에 지체 현상이 과거보다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수 과학이나 공학 측면에서 지체 현상은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 지체되거나 말거나 발전하는 게 본디 마땅하다. 필요한 건 지체된 거리를 좁힐 방법이다. 그러나 무기가 계속 발전할 동안 벌어진 지체 현상, Peace의 의미가 현대에 바뀌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고, 현대의 기술은 활에서 화약으로 넘어간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기술 발전이 마땅하다면, 지체 현상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과 발전이 기술 산업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최근 산업에서 인문학을 강조하는 이유는 경제성에 있는 듯 보인다. 지체 현상의 거리를 인지하여 조정된 기술 상품들은 산업 경제의 한 축이 되었고, 기술의 제원과 자금 규모를 넘어선, 지체 현상을 좁힌 소위 말하는 '사소한 아이디어'가 경제성을 가지자 그 원인으로 인문학이 꼽힌 것이다. 그저 상황은 산업 혁명 때나 닷컴 붐 때와 똑같은데도 말이다. 여전히 느린 사회 변화와 그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 기술 속도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 탓으로 일각에서는 '기술 인재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보다 누구나 기본적인 기술적 소양을 갖추는 편이 수월하다'라고 말한다. 괜히 '초등학교 코딩 교육'과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다. 그것도 지체한 거리를 좁힐 방법의 하나이다. 그리고 부쩍 가치가 늘어난 기업 중 몇 곳은 순수 기술 기업이 아닌 스트리밍으로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TV 보는 양식을 바꾸거나 이동 수단을 이용하는 방법을 바꾸고, 전통적인 기술 산업인 자동차 산업을 흔든 그런 곳이라 설득력도 있다.

하지만 기술의 절댓값보다 지체 현상을 좁히고, 다음 기술 세대로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에 변화를 주는 방법이라면 양분하는 것부터 바람직하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개틀링 건의 발명 목적이 실패한 원인은 개틀링의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뿐만 아니라 기술까지 앞선 탓에 지체 현상을 좁히긴커녕 거리를 더 벌려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성으로만 보면 개틀링은 개틀링 건을 팔아서 많은 돈을 벌었다. 최근 인문학을 강조하는 이유에 매우 충족하는, 거짓된 평화를 이치로 생각한 당시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그보다 더 훌륭할 수 없는 경제성을 갖춘 모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만약 기술 산업에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이유, 또는 보편적인 기술적 소양을 갖춰야 하는 이유가 경제성에 있다고만 말한다면 개틀링 건과 같은 물건이 다시 등장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인문학이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계속 질문을 던지고자 존재하지 않던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는 기술이 경제성을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체 현상을 완화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지점이다. 경제성은 그 지점까지 도달함에 따라 부산물로 따라왔을 뿐 핵심이었던 적이 없다.

지금까지 두 가지가 양분된 상태였던 건 산업 시스템에 따라 역할 구분을 편하게 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 지점이 과거에 없었던 탓이 아니다. 지체한 거리가 그리 길지 않으니 구분하는 쪽이 편이해서였다. 그러나 지체할 거리가 더 길어질수록 양분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교차 지점을 이해하는 사람이 미래의 인재상으로 떠오를 테니 말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바꾸는 것, 강조되는 인문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인문학으로 본격적인 성과를 내는 것까지 도달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이 코앞인데, 오래 걸리면 어쩌나!'라고 생각될수록 이것이 장기적인 목표라는 걸 더욱 상기해야만 한다. 그놈의 산업 패러다임에 이끌려 인문학을 멸시한 시간부터 되돌아보라. 그래야 뒤집어진다는 기술 혁명에 사회까지 좌초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인문학이라는 화두가 산업과 경제성에 국한하여 단기적인 양상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닌, 위에서 말한 인문학적 소양과 발전이 기술 산업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보편적인 사회 시스템으로 이해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은 미래 기술 산업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열쇠가 될 테니 말이다.

* 필자 오힘찬은 다각도의 시각과 일말의 통찰력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술 산업과 관련한 글을 저술하고 있다. 비석세스, 애브리뉴스 등 매체에 기고했으며, 현재는 애플 전문 매거진인 월간 IUM, LG CNS 블로그, 개인 매체인 맥갤러리 등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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