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7

인문학 | 도구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

김민철 | CIO KR

테니스나 탁구, 농구, 권투를 포함한 모든 운동에서는 외관상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존재한다. 아마추어 복서와 프로 복서가 경기를 하면, 아마추어는 온 힘을 다해 펀치를 날려도 힘과 정확성에서 프로 복서가 가볍게 치는 펀치에 미치지 못한다. 농구도 마찬가지다. 아마추어가 아무리 공을 세게 던져도 거리나 방향의 정확성 면에서 프로 선수들이 가볍게 던지는 것만 못하다. 탁구나 테니스를 포함한 모든 운동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수수께끼의 비밀은 바로 운동의 축이다. 아마추어들이 온 힘을 다해 펀치나 볼은 던진다고 할 때, 그 힘은 팔과 어깨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프로들은 오히려 팔과 어깨의 힘을 뺀다. 허리 근육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근육은 허리 근육이다. 힘의 측면에서 그것을 사용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천지 차이이다. 체중을 싣기 위해서는 반드시 허리 근육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향이라는 측면에서도 팔과 어깨가 운동할 때의 방향 편차는 매우 큰 반면, 허리 근육의 운동 편차는 그리 클 수가 없다. 힘과 방향이라는 운동의 두 가지 핵심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허리 근육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필자더러 골프 천재라고 한다. 40세에 골프를 시작하여 독학으로 8개월 만에 70대 타수를 기록했고, 11개월만에 마이너 단체의 프로자격증을, 그리고 올해는 국내에서 2번째 단체의 프로 자격증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프로선수를 포함하여 전 세계 골퍼 가운데 70대 타수를 기록하는 사람은 1%에 불과하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게다가 일반 골퍼들과 거리 차이가 상당히 나는 챔피언 티에서 경기를 하면서 70대 타수를 기록한다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다. 힘과 방향성 모두에서 굉장한 우수성을 보유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골프도 이론과 훈련이 조화롭게 병행되어야만 진보가 가능하다. 40세까지 학자로 살아 온 필자가 어린 시절부터 선수 생활을 해온 친구들과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한 원동력은 바로 이론적인 측면에 대한 우위였다. 훈련과 그에 따르는 신체적 능력이라는 측면에서는 프로를 포함하여 선수 생활을 하는 골퍼들을 따라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탐구와 이론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들보다 낫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스윙 자세와 공이 날아가는 거리 및 방향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며 조금씩 자세를 교정해 가던 중, 이론적으로 핵심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허리 근육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때다.

골프를 포함한 많은 운동에서 하수는 팔로, 중수는 어깨로, 그리고 고수는 허리로 운동을 수행한다. 몸으로 연구하면서 이를 깨닫고는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부수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모든 스윙에서 허리 근육의 운동을 보장해 줄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방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양 발의 체중 이동과 무릎의 회전을 통해 허리의 근육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연습을 통해 이론이 옳음도 충분히 검증하였다.

필자는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75~6타 정도의 평균 타수에서 이제는 꿈의 핸디 0, 즉 평균 타수 72타에 이르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얼마 후 지인들이 함께 라운딩하기를 청했다. 드디어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호기 좋게 경기에 나섰지만, 뜻밖에도 참담하기 그지없는 결과를 얻었다. 90타 가량을 치고 만 것이다. 이론적으로 완성되었을 뿐 아니라 훈련을 통해 검증했다고 생각한 필자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충격이었다.

집에 돌아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생각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다시 연습을 하면서 되돌아보고, 너무나 중요한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도구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의 문제였다. 필자는 경기 중 양 발의 체중 이동과 무릎의 회전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정작 목표로 삼았던 허리 이동은 잊고 있었다. 도구적이고 수단적인 것에 사로잡혀 정작 궁극적 목표로 삼았던 것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몇 차례 실수가 나오자 예상과 다른 진행에 당황한 나머지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고, 그것은 더 잦은 실수를 나은 것이다.

그것은 비단 골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운동만의 문제도 아니다. 인생의 모든 측면이 그러하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도구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좀 어려운 말로 전자를 도구적 가치, 후자를 목적가치라고 부른다.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필자에게 글쓰기를 배우는 학생들의 예를 들어 보자. 그들에게 글쓰기 수업은 목적가치인가? 그렇지 않다. 로스쿨 입시에서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도구적인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좋은 점수를 맞아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은 목적가치인가? 그 역시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행하는 대다수의 행위는 목적가치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단지 도구적인 것일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문제시되는 황금만능주의라는 것도 이에서 예외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돈이 목적가치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 그것이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인위적 도구에 불과하다. 교환의 편리성을 위해 고안된 방법일 뿐인 것이다. 목표한 만큼 돈을 벌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목적가치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나 반성을 할 여가가 없다. 그저 도구적인 것에 빠져서 살 뿐이다.

대다수 한국 가정의 경우를 살펴보자. 부모와 아이들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부모는 언제나 아이들의 행복, 그리고 나아가 가족 전체의 행복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면서 자신을 희생한다. 아버지는 직장 상사에게 인격적인 모독을 당해도 참고 견디며, 어머니는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하면서 학원비를 벌기도 한다. 자식들과 함께하며 진지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다. 자식들도 학교, 학원 등으로 어른들 못지않게 바쁘기 때문에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희생과 노력이 목표했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얼마나 되는가? 아이들은 자신의 소질이나 꿈과 무관하게 획일적인 교육에 내던져지고, 함께 할 시간과 대화의 상실로 가족 관계는 원만하지 못 하게 된다. 부모는 자신의 노력과 희생에 합당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식을, 그리고 자식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한다. 설사 부모의 희생과 자식의 노력이 모두 성공하여 부모가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자식은 일류대학의 유망 학과에 입학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구적인 것일 뿐이다. 애초에 목표했던 가족 전체의 행복이 도구적인 것에 의해 희생되고 만 것이다.

“자, 이제 경제적으로 여유도 좀 생기고, 너도 좋은 대학에 입학했으니 이제 원만한 관계 속에서 행복한 가정으로 탈바꿈시켜 보자꾸나”라고 말한다고 해서 상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원만한 가족관계, 행복한 삶이라는 것도 오랜 기간의 훈련과 습관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도구적인 것에 매몰되어 근본적인 목적 가치를 오랫동안 잊고 산 삶의 결과는 결국 주객이 전도된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도구적인 것이 제 역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목적 가치와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내가 돈을 버는, 내가 직장을 다니는, 내가 공부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가끔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도구적 가치의 노예가 될 뿐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2012.09.17

인문학 | 도구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

김민철 | CIO KR

테니스나 탁구, 농구, 권투를 포함한 모든 운동에서는 외관상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존재한다. 아마추어 복서와 프로 복서가 경기를 하면, 아마추어는 온 힘을 다해 펀치를 날려도 힘과 정확성에서 프로 복서가 가볍게 치는 펀치에 미치지 못한다. 농구도 마찬가지다. 아마추어가 아무리 공을 세게 던져도 거리나 방향의 정확성 면에서 프로 선수들이 가볍게 던지는 것만 못하다. 탁구나 테니스를 포함한 모든 운동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수수께끼의 비밀은 바로 운동의 축이다. 아마추어들이 온 힘을 다해 펀치나 볼은 던진다고 할 때, 그 힘은 팔과 어깨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프로들은 오히려 팔과 어깨의 힘을 뺀다. 허리 근육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근육은 허리 근육이다. 힘의 측면에서 그것을 사용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천지 차이이다. 체중을 싣기 위해서는 반드시 허리 근육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향이라는 측면에서도 팔과 어깨가 운동할 때의 방향 편차는 매우 큰 반면, 허리 근육의 운동 편차는 그리 클 수가 없다. 힘과 방향이라는 운동의 두 가지 핵심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허리 근육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필자더러 골프 천재라고 한다. 40세에 골프를 시작하여 독학으로 8개월 만에 70대 타수를 기록했고, 11개월만에 마이너 단체의 프로자격증을, 그리고 올해는 국내에서 2번째 단체의 프로 자격증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프로선수를 포함하여 전 세계 골퍼 가운데 70대 타수를 기록하는 사람은 1%에 불과하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게다가 일반 골퍼들과 거리 차이가 상당히 나는 챔피언 티에서 경기를 하면서 70대 타수를 기록한다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다. 힘과 방향성 모두에서 굉장한 우수성을 보유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골프도 이론과 훈련이 조화롭게 병행되어야만 진보가 가능하다. 40세까지 학자로 살아 온 필자가 어린 시절부터 선수 생활을 해온 친구들과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한 원동력은 바로 이론적인 측면에 대한 우위였다. 훈련과 그에 따르는 신체적 능력이라는 측면에서는 프로를 포함하여 선수 생활을 하는 골퍼들을 따라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탐구와 이론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들보다 낫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스윙 자세와 공이 날아가는 거리 및 방향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며 조금씩 자세를 교정해 가던 중, 이론적으로 핵심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허리 근육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때다.

골프를 포함한 많은 운동에서 하수는 팔로, 중수는 어깨로, 그리고 고수는 허리로 운동을 수행한다. 몸으로 연구하면서 이를 깨닫고는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부수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모든 스윙에서 허리 근육의 운동을 보장해 줄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방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양 발의 체중 이동과 무릎의 회전을 통해 허리의 근육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연습을 통해 이론이 옳음도 충분히 검증하였다.

필자는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75~6타 정도의 평균 타수에서 이제는 꿈의 핸디 0, 즉 평균 타수 72타에 이르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얼마 후 지인들이 함께 라운딩하기를 청했다. 드디어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호기 좋게 경기에 나섰지만, 뜻밖에도 참담하기 그지없는 결과를 얻었다. 90타 가량을 치고 만 것이다. 이론적으로 완성되었을 뿐 아니라 훈련을 통해 검증했다고 생각한 필자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충격이었다.

집에 돌아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생각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다시 연습을 하면서 되돌아보고, 너무나 중요한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도구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의 문제였다. 필자는 경기 중 양 발의 체중 이동과 무릎의 회전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정작 목표로 삼았던 허리 이동은 잊고 있었다. 도구적이고 수단적인 것에 사로잡혀 정작 궁극적 목표로 삼았던 것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몇 차례 실수가 나오자 예상과 다른 진행에 당황한 나머지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고, 그것은 더 잦은 실수를 나은 것이다.

그것은 비단 골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운동만의 문제도 아니다. 인생의 모든 측면이 그러하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도구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좀 어려운 말로 전자를 도구적 가치, 후자를 목적가치라고 부른다.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필자에게 글쓰기를 배우는 학생들의 예를 들어 보자. 그들에게 글쓰기 수업은 목적가치인가? 그렇지 않다. 로스쿨 입시에서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도구적인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좋은 점수를 맞아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은 목적가치인가? 그 역시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행하는 대다수의 행위는 목적가치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단지 도구적인 것일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문제시되는 황금만능주의라는 것도 이에서 예외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돈이 목적가치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 그것이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인위적 도구에 불과하다. 교환의 편리성을 위해 고안된 방법일 뿐인 것이다. 목표한 만큼 돈을 벌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목적가치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나 반성을 할 여가가 없다. 그저 도구적인 것에 빠져서 살 뿐이다.

대다수 한국 가정의 경우를 살펴보자. 부모와 아이들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부모는 언제나 아이들의 행복, 그리고 나아가 가족 전체의 행복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면서 자신을 희생한다. 아버지는 직장 상사에게 인격적인 모독을 당해도 참고 견디며, 어머니는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하면서 학원비를 벌기도 한다. 자식들과 함께하며 진지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다. 자식들도 학교, 학원 등으로 어른들 못지않게 바쁘기 때문에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희생과 노력이 목표했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얼마나 되는가? 아이들은 자신의 소질이나 꿈과 무관하게 획일적인 교육에 내던져지고, 함께 할 시간과 대화의 상실로 가족 관계는 원만하지 못 하게 된다. 부모는 자신의 노력과 희생에 합당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식을, 그리고 자식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한다. 설사 부모의 희생과 자식의 노력이 모두 성공하여 부모가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자식은 일류대학의 유망 학과에 입학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구적인 것일 뿐이다. 애초에 목표했던 가족 전체의 행복이 도구적인 것에 의해 희생되고 만 것이다.

“자, 이제 경제적으로 여유도 좀 생기고, 너도 좋은 대학에 입학했으니 이제 원만한 관계 속에서 행복한 가정으로 탈바꿈시켜 보자꾸나”라고 말한다고 해서 상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원만한 가족관계, 행복한 삶이라는 것도 오랜 기간의 훈련과 습관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도구적인 것에 매몰되어 근본적인 목적 가치를 오랫동안 잊고 산 삶의 결과는 결국 주객이 전도된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도구적인 것이 제 역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목적 가치와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내가 돈을 버는, 내가 직장을 다니는, 내가 공부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가끔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도구적 가치의 노예가 될 뿐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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