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1

칼럼 | 기술로 '지식 노동'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을까?

William Heitman | CIO

미국에서 19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도 불린다. 이 때 표준화와 대량생산은 그야말로 파괴적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자동화는 자동차 생산방식, 바느질 기계, 자전거 생산을 변혁시켰다.



당신 혁명적 접근방식이었던 자동화는, 요즘 시각으로 보면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단순화시키고 표준화시킴으로써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제조업과 배급에 있어서 널리 성공해 전세계적으로 생산성 및 경제적 부의 증가를 가져왔다.

이제 오늘날의 풍경을 살펴보자. 노동자 대부분은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 가운데, 광란의 시기에 볼 수 있었던 산업혁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사무실 혹은 지식 노동자 역시 분명 기술의 세례를 받았지만 공장의 생산성 향상과는 분명 다르다. 지식 노동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생산성 성장은 지지부진하다. 최대 규모의 노동자 집단에게서 생산성 증가 현상이 ‘실종’된 것이다.

오피스 기계에의 열광
이러한 현상은 기업들이 불가능한 역설을 약속하는 사무 기기들에 대해 열광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중역들은 오피스 자동화로 인한 생산성 혜택을 원한다. 하지만 그들은 공장의 동료들과 달리, 자동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데 필수적인 파괴적 단순화와 표준화를 거부했다. 그리고 기술 벤더들은 그저 달콤하게 유혹할 뿐이다. 그들은 새로운 오피스 기계가 지식 노동자들로 하여금 작업 방식을 표준화하도록 ‘미묘하게 유도’할 것이라고 암시하곤 했다.

이러한 유혹은 거부하기 어렵다. 단순히 돈만 쓰면 기술이 작업 활동을 단순화하고 표준화할 것만 같다. 문제는 이게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장에 제조라인을 이동식으로 설치했다고 노동자들에게 생산 작업을 “미묘하게 유도”할 수 있을까?

컴퓨터가 보급되기 이전의 사무 자동화 기술은 표준화를 ‘미묘하게 유도’하는데 줄곧 실패해왔다. 시작은 1920년대 기계적 복제, 분류, 회계 기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기계는 보급되었지만 단순화와 표준화를 향해 ‘미묘하게 강제’되지 못했다.

사실 이와 동일한 상황은 오늘날의 디지털 작업흐름 사무실 기술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종이 파일은 사라졌지만 지그재그식 비효율적 작업흐름은 여전하다. 워크플로우 기술은 그저 오류가 많은 비표준화 작업 프로세스를 빠르게 하고 또 숨겨줄 뿐이다.

즉 오피스 기계에의 열광이 한 세기에 걸쳐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은 오늘날의 지식 노동 조직에서 정체상태다.

표준화 거부
그렇다면 사무실 내 생산성 혁명을 이끌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실 1920년대에도 상황은 애매했다. 현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포드자동차 회사의 첫 이동 생산 라인에서 1913년 만든 모델 T 자동차 사진들은 향후 나타날 조직적 자동화 진화를 암시한다. 하지만 당시의 현실은 혼란스러웠고 결과는 불확실했다.

공장 관리자였던 당시의 생산 ‘엔지니어들’은, 구스타보 스위프트(Gustavus Swift)의 혁신적인 시카고 도축장 방문 이후 이동 생산 라인의 개념을 채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를 자동차에 적용시키는 일은 난관투성이였다. 포드 경영진은 엔진이 떨어져 작업자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사고가 발생하자 초기 시도들을 거의 중단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 시도를 이어나갔고, 강압적으로 단순화와 표준화를 밀어붙였다. 1,200개가 넘는 크기의 금속 튜빙 재고가 50개의 표준 사이즈로 크게 줄어들었다. 모두가 힘들어했지만 결국 통했다. 렌치 사이즈가 표준화됐다. (당시의 노력은 현재도 공구판매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자동차 기술 학회(Society of Automotive Engineers)의 약자인 “SAE” 표시가 그것이다.)

결국 몇 달 만에 수천 명의 기계 장인들은 그들의 작업을 단순화하고 표준화해야 했다. 그러자 자동화가 뒤따라왔다. 자동차 조립 시간이 무려 70%나 단축됐다.

1917년에는 사무 노동에 대한 산업화 기법을 주창하는 이가 나타났다. WH레핑웰(Leffingwell)은 성공적으로 대형 광고조직을 산업화했고 전체 생산성을 4배 증가시켰다. 사무노동 흐름이 단순화되고 표준화된 양식, 광고, 그리고 구직활동 등이 개선되었다. 파괴적 변화였다. 이후 오피스 기계류가 뒤따랐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파괴적이지만 성공적이었던 이 산업화 접근방식을 거부했다.

지식 노동 산업화 혁명
1990년대 초 학자들은 컴퓨터 기술이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한 것을 두고 “생산성 역설”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진정한 역설은 관리자들이 지난 100년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식 노동에 대해 표준화를 여전히 강제하기보다는 ‘미묘하게 유도’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성공적이었던 파괴적 기법은 아직도 거부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기술들이 등장해 표준화를 다시 ‘미묘하게 유도’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자동화된 오류 수정: 기업 내에 사소한 수동 조정을 필요로 하는 방대한 데이터 풀을 보유하고 있는가? 일관성이 낮아 분석을 못할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드는 데이터 풀 말이다. 거의 모든 기업이 봉착한 이 문제를 겨냥해 일련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데이터 랭글링’(data wrangling) 기술 플랫폼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그런 성가신 비일관적 데이터 요소를 통합, 분석, 시각화해 준다고 약속한다.

즉 기업은 비용을 일부 투자함으로써 지식 노동 생산 현장을 표준화시키는데 필요한 교환가능형 데이터 요소 혹은 ‘부품’을 생성하고 관리할 수 있다. 데이터 랭글링의 대부분은 비일관적 데이터 필드 일반화 같은 지루한 작업들이다. 예를 들어 고객명은 다른 방식으로 시퀀싱 된다: 어떤 것은 이름, 성 순; 어떤 것은 성, 이름 순이다.

제조 분야의 산업화처럼 지식 노동을 표준화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생성 관련해 철저한 계획과 문서화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데이터 랭글링 솔루션들은 데이터가 통제 밖으로 벗어난다고 할지라도 관리 가능한 표준 수로 강제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포드 자동차 튜빙 사례에서처럼 말이다.




2016.06.01

칼럼 | 기술로 '지식 노동'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을까?

William Heitman | CIO

미국에서 19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도 불린다. 이 때 표준화와 대량생산은 그야말로 파괴적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자동화는 자동차 생산방식, 바느질 기계, 자전거 생산을 변혁시켰다.



당신 혁명적 접근방식이었던 자동화는, 요즘 시각으로 보면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단순화시키고 표준화시킴으로써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제조업과 배급에 있어서 널리 성공해 전세계적으로 생산성 및 경제적 부의 증가를 가져왔다.

이제 오늘날의 풍경을 살펴보자. 노동자 대부분은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 가운데, 광란의 시기에 볼 수 있었던 산업혁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사무실 혹은 지식 노동자 역시 분명 기술의 세례를 받았지만 공장의 생산성 향상과는 분명 다르다. 지식 노동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생산성 성장은 지지부진하다. 최대 규모의 노동자 집단에게서 생산성 증가 현상이 ‘실종’된 것이다.

오피스 기계에의 열광
이러한 현상은 기업들이 불가능한 역설을 약속하는 사무 기기들에 대해 열광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중역들은 오피스 자동화로 인한 생산성 혜택을 원한다. 하지만 그들은 공장의 동료들과 달리, 자동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데 필수적인 파괴적 단순화와 표준화를 거부했다. 그리고 기술 벤더들은 그저 달콤하게 유혹할 뿐이다. 그들은 새로운 오피스 기계가 지식 노동자들로 하여금 작업 방식을 표준화하도록 ‘미묘하게 유도’할 것이라고 암시하곤 했다.

이러한 유혹은 거부하기 어렵다. 단순히 돈만 쓰면 기술이 작업 활동을 단순화하고 표준화할 것만 같다. 문제는 이게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장에 제조라인을 이동식으로 설치했다고 노동자들에게 생산 작업을 “미묘하게 유도”할 수 있을까?

컴퓨터가 보급되기 이전의 사무 자동화 기술은 표준화를 ‘미묘하게 유도’하는데 줄곧 실패해왔다. 시작은 1920년대 기계적 복제, 분류, 회계 기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기계는 보급되었지만 단순화와 표준화를 향해 ‘미묘하게 강제’되지 못했다.

사실 이와 동일한 상황은 오늘날의 디지털 작업흐름 사무실 기술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종이 파일은 사라졌지만 지그재그식 비효율적 작업흐름은 여전하다. 워크플로우 기술은 그저 오류가 많은 비표준화 작업 프로세스를 빠르게 하고 또 숨겨줄 뿐이다.

즉 오피스 기계에의 열광이 한 세기에 걸쳐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은 오늘날의 지식 노동 조직에서 정체상태다.

표준화 거부
그렇다면 사무실 내 생산성 혁명을 이끌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실 1920년대에도 상황은 애매했다. 현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포드자동차 회사의 첫 이동 생산 라인에서 1913년 만든 모델 T 자동차 사진들은 향후 나타날 조직적 자동화 진화를 암시한다. 하지만 당시의 현실은 혼란스러웠고 결과는 불확실했다.

공장 관리자였던 당시의 생산 ‘엔지니어들’은, 구스타보 스위프트(Gustavus Swift)의 혁신적인 시카고 도축장 방문 이후 이동 생산 라인의 개념을 채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를 자동차에 적용시키는 일은 난관투성이였다. 포드 경영진은 엔진이 떨어져 작업자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사고가 발생하자 초기 시도들을 거의 중단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 시도를 이어나갔고, 강압적으로 단순화와 표준화를 밀어붙였다. 1,200개가 넘는 크기의 금속 튜빙 재고가 50개의 표준 사이즈로 크게 줄어들었다. 모두가 힘들어했지만 결국 통했다. 렌치 사이즈가 표준화됐다. (당시의 노력은 현재도 공구판매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자동차 기술 학회(Society of Automotive Engineers)의 약자인 “SAE” 표시가 그것이다.)

결국 몇 달 만에 수천 명의 기계 장인들은 그들의 작업을 단순화하고 표준화해야 했다. 그러자 자동화가 뒤따라왔다. 자동차 조립 시간이 무려 70%나 단축됐다.

1917년에는 사무 노동에 대한 산업화 기법을 주창하는 이가 나타났다. WH레핑웰(Leffingwell)은 성공적으로 대형 광고조직을 산업화했고 전체 생산성을 4배 증가시켰다. 사무노동 흐름이 단순화되고 표준화된 양식, 광고, 그리고 구직활동 등이 개선되었다. 파괴적 변화였다. 이후 오피스 기계류가 뒤따랐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파괴적이지만 성공적이었던 이 산업화 접근방식을 거부했다.

지식 노동 산업화 혁명
1990년대 초 학자들은 컴퓨터 기술이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한 것을 두고 “생산성 역설”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진정한 역설은 관리자들이 지난 100년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식 노동에 대해 표준화를 여전히 강제하기보다는 ‘미묘하게 유도’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성공적이었던 파괴적 기법은 아직도 거부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기술들이 등장해 표준화를 다시 ‘미묘하게 유도’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자동화된 오류 수정: 기업 내에 사소한 수동 조정을 필요로 하는 방대한 데이터 풀을 보유하고 있는가? 일관성이 낮아 분석을 못할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드는 데이터 풀 말이다. 거의 모든 기업이 봉착한 이 문제를 겨냥해 일련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데이터 랭글링’(data wrangling) 기술 플랫폼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그런 성가신 비일관적 데이터 요소를 통합, 분석, 시각화해 준다고 약속한다.

즉 기업은 비용을 일부 투자함으로써 지식 노동 생산 현장을 표준화시키는데 필요한 교환가능형 데이터 요소 혹은 ‘부품’을 생성하고 관리할 수 있다. 데이터 랭글링의 대부분은 비일관적 데이터 필드 일반화 같은 지루한 작업들이다. 예를 들어 고객명은 다른 방식으로 시퀀싱 된다: 어떤 것은 이름, 성 순; 어떤 것은 성, 이름 순이다.

제조 분야의 산업화처럼 지식 노동을 표준화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생성 관련해 철저한 계획과 문서화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데이터 랭글링 솔루션들은 데이터가 통제 밖으로 벗어난다고 할지라도 관리 가능한 표준 수로 강제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포드 자동차 튜빙 사례에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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