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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리눅스에 들어온 윈도우의 그림자

2014.09.04 Paul Venezia  |  InfoWorld
systemd를 둘러싼 분열은 결과적으로 데스크톱과 서버 배포판의 분열, 또는 리눅스 서버 관리자의 FreeBSD 전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systemd를 둘러싼 논란이 systemd의 우세로 결론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메시지 보드, 포럼, 그리고 필자가 지난 2주 동안 쓴 게시물에 달린 격렬한 반대 의견들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레드햇이 RHEL 7.1 릴리스부터 엔터프라이즈에 systemd를 강제로 편입하도록 하면서 systemd의 승리를 선언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필자는 그리 쉽게 넘어갈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페도라에서 systemd의 부상을 보며 RHEL 7의 일부분이 되리라는 사실은 이전부터 예견할 수 있엇다. 우분투와 데비안에도 systemd가 포함됐고, 특정 리눅스 사용자 기반에게는 그것으로 이미 끝난 일이다. 그 외의 나머지, 즉 CentOS와 RHEL에서 대규모 리눅스 기반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상황이 이렇게 되기 전에 systemd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히는 데 있어 태만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한 의견을 밝히기에 늦지는 않았다.

systemd에 대한 열띤 토론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적인 맥락이 있다. systemd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은 데스크톱 사용자들로 보이고 서버 관리자와 설계자들은 그 반대쪽에 서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필자의 게시물에 달린 대화를 보면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ZincKidd라는 사용자가 "BSD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라는 글을 쓰자, 그 대답으로 Adam Jorgensen은 "그게 노트북에서 잘 돌아가려나...:-)"라고 썼다.

Adam에게 대답하자면 필자도 RHEL 7을 노트북에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버에서 사용할 예정인데 서버와 노트북의 워크로드는 전혀 다르다. 지금 여기서 노트북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다른 게시물에서 systemd를 지지하는 Luya Tshimbalanga는 runlevel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중에는 모든 리눅스 파생물의 일부분이 된 기본 0,1,2,3,4,5,6 runlevel이 너무 복잡하다고 말했다. runlevel이 누구에게 명확하지 않냐고 묻자 Luya는 "새로운 세대의 관리자와 사용자"라고 답하며, "당신은 이미 init 숫자에 대해 익숙하니까 그렇게 묻겠지만 미래의 관리자들은 문서 없이는 모를 것이다. init 숫자는 임의적이고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일부 사람들을 비꼴 의도는 없지만 이들이 시사하는 세태는 명확하다. 바로 매뉴얼을 읽고 OS 내부 구조를 배우는 것은 나쁜 일이며 그런 허튼 소리 따위는 훌륭하고 보기 좋고 (완전히 불투명한) 관리 계층, 즉 systemd와 같은 것으로 뒤덮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태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1990년 초반 마이크로소프트의 생각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 즉, 최종 사용자 관점의 사고 방식이며 서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당연히 엔터프라이즈 수준의 서버와도 동떨어져 있다. 이 "배우기 어려움"을 탓하는 정신은 진지한 플랫폼으로서의 리눅스에 큰 상처를 입히고 있다.

앞서 언급한 글과 관련하여 또 다른 요소를 짚고 넘어가자면 FreeBSD에 대한 갑작스러운 관심 증가다. 필자는 오랜 시간 FreeBSD의 지지자로서 지금까지 20년째 FreeBSD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 systemd 탓에 리눅스 대신 FreeBSD로 서버를 마이그레이션할 가능성을 모색하는 베테랑 관리자들에 대한 소문을 여러 번 들었는데, 이 아이디어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도커(Docker)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지금, FreeBSD라는 감옥에서 오래 전부터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갑자기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면 업계를 뒤흔드는 수준의 변화가 촉발될 수 있다.

Systemd를 둘러싼 분열은 아마 사용 사례에 따른 분열로 이어질 것이다. 리눅스는 노트북을, FreeBSD는 서버를 가져간다. 또는 systemd와 모든 데스크톱 요소를 버린(GNOME에서 발견된 systemd 종속성을 포함해서) 새로운, 순수한 리눅스 서버 배포판이 등장할 수도 있다. 물론 젠투(Gentoo)와 슬랙웨어(Slackware) 사용자는 자신이 이미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믿겠지만 말이다.

리눅스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일반적인 미학은 모든 부분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때 합당한 일련의 행동 과정이 도출된다는 데 있다. 레드햇이 RHEL 7에 systemd를 강제 포함한 것은 실수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 싸움의 결과로 리눅스 배포판 내에서 일종의 명료성이 나타날 수 있다. 일부는 서버보다 데스크톱을 선호하며 systemd를 계속 사용할 것이고, 일부는 데스크톱보다 서버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단점은 여러 배포판에서 사용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패키징할 때 반영해야 할 프레임워크가 추가된다는 점이지만 이건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지금은 새로운 플레이어가 게임에 참가해서 비대한 RHEL에 대한 대안을 제안하기에 좋은 시점이다. 누가 알겠는가? 수세가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는 그것보다 더 이상한 일도 일어났었다.

철없는 아이들에게 할 말은 원한다면 보기 흉한 runlevel 위를 반죽으로 발라서 덮으라는 것이다. init과 cron, pam과 login를 덮어씌워 칠하고 dbus와 함께 모두 PID1에 집어넣은 다음 겉모습을 예쁘게 꾸미고 '다 알아서 해주니까 매뉴얼을 읽거나 바보 같은 명령줄 따위는 배울 필요 없다'는 달콤한 말을 속삭여라. 배포판을 데스크톱 워크로드에 맞춰 만들어라. 그렇게 해서 또 다른 모습의 윈도우를 만들어라.

이게 바로 나머지 우리가 바라보는 systemd 모습이다. 결코 아름답지 않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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