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6

골프인문학 | 박세리의 비극

김민철 | CIO KR
오래전 박세리 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내게 가장 인상적인 남는 내용은 “쉬는 날 골프 치자고 하는 것이 제일 싫다”라는 말이었다. 같은 인터뷰에서 박세리는 최근 성적이 좋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훈련도 똑같이 열심히 하는데 왜 성적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을 했는데, 당사자는 못 느끼겠지만 이 두 가지 발언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약관의 나이에 LPGA에 데뷔한 뒤 2007년 한국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 여자 골프의 전설의 이 인터뷰를 보고 나는 매우 가슴이 아팠다. 골프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교육이 가진 문제점을 너무나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성적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 후 갑자기 하향 곡선을 그린다. 이후 몇 년 동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다가 2010년 한 차례 우승을 기록했지만, 이후에도 계속 저조한 성적을 이어오다가 올 시즌이 끝나면 은퇴할 것을 시사했는데, 이 모두가 인터뷰 기사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메이저 대회 5승을 포함하여 총 25번의 우승을 거머쥔 골퍼에게 기술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후 기량이나 체력에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군다나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제는 심리적인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쉴 때 골프를 치자는 말이 제일 싫다는 말은 골프를 단순한 노동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돈과 명예로 상징되는 성공을 위해 어린 나이부터 ‘골프 노동자’가 되어 새벽부터 밤까지 채찍질을 당하면서 조련되어 온 선수가 세계 최정상의 반열에 올라 원하던 돈과 명예를 얻고, 그 가운데에서도 극소수의 선수들에게만 허용되는 명예의 전당에 올랐을 때 그 노동에서 벗어나 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골프는 '신이 만든 놀이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게임이다. 그 게임을 즐기지 못하는 골프선수는 행복할 수는 없으며, 일정한 목표를 달성했을 때 더 이상의 동기부여가 이루어질 수 없다. 공자가 말한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당할 수가 없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당할 수가 없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은 이러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골프에 관한 기술적인 내용을 아무리 잘 숙지하고 체득했지만 그것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의무로 여기는 사람은 기술적인 수준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골프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은 전성기가 지났지만, 한때 한국 바둑의 정상에 올랐던 박영훈 9단은 취미도 바둑이고 좋아하는 것도 바둑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그가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상에 오르기까지 바둑을 두면서 그는 행복했을 것이고, 전성기가 지나 정상에서 멀어진 지금도 그는 여전히 바둑을 두면서 행복할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다.

돈과 명예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 즉 '목적가치'가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이 행복을 위해 매우 우호적인 수단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곧바로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적은 부와 명예를 얻더라도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행복하며,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프 선수들 가운데 내가 가장 주목하는 부류는 얼마 전 열렸던 2016 마스터스 대회에서 60세의 나이에 손자뻘의 선수들과 우승 경쟁을 벌였던 베른하르트 랑어나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역시 손녀뻘의 선수들을 위협하곤 하는 줄리 잉스터나 로라 데이비스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골프를 계속하고, 또 30~40세가량 어린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단순히 부와 명예 때문이 아님은 분명할 것이다. 그들은 박세리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큰 부와 명예를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골프란 직업인 동시에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자 삶 자체일 것이다. 그들의 삶은 노동과 행복이 조화된 이상적인 모습이며, 개인적으로 행복한 삶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오랫동안 잘해 내는 데 동기부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반면 한국의 골프 선수들이 그와 같은 삶을 살기란 매우 힘들다. 대다수의 프로 지망생들은 유명한 골프 선수를 목표로 초등학교 때부터 스파르타식 훈련을 감내한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들은 학교 수업을 거의 받지 않으며, 골프 선수들은 학교에 일 년에 한두 번도 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대개 골프선수라는 목표도 부모에 의해 정해진 것이지만, 설사 스스로가 좋아서 그 길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중간 과정은 그러한 희망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하다.

당장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조급증으로 부모와 지도자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어린아이들을 다그친다. 전지훈련장에서 만난 대다수의 프로들은 새벽 기상 시간부터 저녁 식사 후 취침 전까지 고강도 훈련을 이어가곤 했다. 나로서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지만, 부모들뿐 아니라 정작 어린아이들조차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눈치였다. 모두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질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생활하는 아이들이 어떤 자세로 골프에 임할지는 뻔하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프로만 안 보이면 ‘땡땡이’로 일관하고, “하기 싫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전지훈련지 전동카트의 지붕에는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집에 가고 싶다”와 같은 내용이 갖은 욕설과 함께 적혀 있다. 심지어는 연습 라운딩 때 만난 10대 후반의 유망주 투어프로조차 “이 라운딩이 취소되고 집에 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곤 했다.

물론 그 중 일부는 정상급의 선수가 되어 부와 명예를 얻겠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 구명 들어가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며, 나머지 대다수는 억지로 버텨온 보람조차 없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자신이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골프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에 처하고 만다. 원하는 목표를 이룬 선수들조차도 자신이 삶을 바쳐 해 온 골프 자체가 아니라 오직 그것을 통해 얻은 부와 명예를 통해서만 행복을 얻어야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내가 전지 훈련장에서 처음 프로 지망생들을 만났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옷과 장비로 삐까뻔쩍하게 멋을 낸 겉모습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언행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인성과 매너가 특출한 프로 아래에서 지도를 받는 일부와 천성 자체가 워낙 착한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 그런 모습에 예외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과 교육받는 현실을 알게 되면서 그것이 얼마나 당연한지 이해하게 되었다.


얼마 전 박세리와 함께 LPGA에서 활약했던 크리스티 커가 한국 선수들을 ‘스윙 머신’과 같다고 비아냥거려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한국 골프 관계자들은 발끈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평가가 상당 부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수업은커녕 선생님과 친구들이 누군지도 모른 채 새벽부터 밤까지 코치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고, 유명한 선수가 되면 대학 역시 한 번도 출석하지 않더라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상황에서는 극소수 최선의 경우라도 지덕체 가운데 하나만을 갖추게 되고, 나머지는 그 하나조차도 온전히 갖추지 못 하게 되니 그런 비난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하긴 이런 모습이 비단 골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학원과 과외를 전전하는 일반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까지 세계적인 학력 수준을 자랑하다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보잘것없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행복이란 오직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쟁취한 부와 명예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행복이란 승리가 아닌 과정을 통해서 얻어져야 하며, 삶 전반을 통해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진로 선택에서부터 당사자의 의지와 소질, 성향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이후의 교육 과정 또한 말한 나위 없이 중요하다. 단기간에 동료들을 능가하는 성과를 내고자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과정에 호기심과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동기부여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다양한 지적 체험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진로를 변경할 가능성 또한 열어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경쟁에서 승리하여 타인을 압도하는 부와 명예를 얻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일과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탁월한 소질과 노력이 겸비된 사람은 랑어나 잉스터, 데이비스와 같이 타인에게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되는 삶을 오랫동안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골프든 아니면 다른 어떤 분야이든 간에 교육의 목표는 그것이어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강의와 글쓰기를 해 왔다 몇 권의 전문 서적과 교양서적을 저술하여 학술원과 문광부 등에서 우수 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40세에 우연히 골프를 시작하여 독학으로 8개월여 만에 싱글 타수를 기록하고 11개월 만에 군소 단체 티칭 프로 시험을 통과하기도 했다 이후 USGTF 티칭 프로 자격을 획득한 뒤 세계 최고의 골프 교습가를 목표로 정진하고 있다. ciokr@idg.co.kr
 



2016.05.16

골프인문학 | 박세리의 비극

김민철 | CIO KR
오래전 박세리 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내게 가장 인상적인 남는 내용은 “쉬는 날 골프 치자고 하는 것이 제일 싫다”라는 말이었다. 같은 인터뷰에서 박세리는 최근 성적이 좋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훈련도 똑같이 열심히 하는데 왜 성적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을 했는데, 당사자는 못 느끼겠지만 이 두 가지 발언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약관의 나이에 LPGA에 데뷔한 뒤 2007년 한국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 여자 골프의 전설의 이 인터뷰를 보고 나는 매우 가슴이 아팠다. 골프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교육이 가진 문제점을 너무나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성적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 후 갑자기 하향 곡선을 그린다. 이후 몇 년 동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다가 2010년 한 차례 우승을 기록했지만, 이후에도 계속 저조한 성적을 이어오다가 올 시즌이 끝나면 은퇴할 것을 시사했는데, 이 모두가 인터뷰 기사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메이저 대회 5승을 포함하여 총 25번의 우승을 거머쥔 골퍼에게 기술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후 기량이나 체력에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군다나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제는 심리적인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쉴 때 골프를 치자는 말이 제일 싫다는 말은 골프를 단순한 노동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돈과 명예로 상징되는 성공을 위해 어린 나이부터 ‘골프 노동자’가 되어 새벽부터 밤까지 채찍질을 당하면서 조련되어 온 선수가 세계 최정상의 반열에 올라 원하던 돈과 명예를 얻고, 그 가운데에서도 극소수의 선수들에게만 허용되는 명예의 전당에 올랐을 때 그 노동에서 벗어나 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골프는 '신이 만든 놀이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게임이다. 그 게임을 즐기지 못하는 골프선수는 행복할 수는 없으며, 일정한 목표를 달성했을 때 더 이상의 동기부여가 이루어질 수 없다. 공자가 말한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당할 수가 없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당할 수가 없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은 이러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골프에 관한 기술적인 내용을 아무리 잘 숙지하고 체득했지만 그것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의무로 여기는 사람은 기술적인 수준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골프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은 전성기가 지났지만, 한때 한국 바둑의 정상에 올랐던 박영훈 9단은 취미도 바둑이고 좋아하는 것도 바둑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그가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상에 오르기까지 바둑을 두면서 그는 행복했을 것이고, 전성기가 지나 정상에서 멀어진 지금도 그는 여전히 바둑을 두면서 행복할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다.

돈과 명예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 즉 '목적가치'가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이 행복을 위해 매우 우호적인 수단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곧바로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적은 부와 명예를 얻더라도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행복하며,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프 선수들 가운데 내가 가장 주목하는 부류는 얼마 전 열렸던 2016 마스터스 대회에서 60세의 나이에 손자뻘의 선수들과 우승 경쟁을 벌였던 베른하르트 랑어나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역시 손녀뻘의 선수들을 위협하곤 하는 줄리 잉스터나 로라 데이비스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골프를 계속하고, 또 30~40세가량 어린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단순히 부와 명예 때문이 아님은 분명할 것이다. 그들은 박세리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큰 부와 명예를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골프란 직업인 동시에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자 삶 자체일 것이다. 그들의 삶은 노동과 행복이 조화된 이상적인 모습이며, 개인적으로 행복한 삶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오랫동안 잘해 내는 데 동기부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반면 한국의 골프 선수들이 그와 같은 삶을 살기란 매우 힘들다. 대다수의 프로 지망생들은 유명한 골프 선수를 목표로 초등학교 때부터 스파르타식 훈련을 감내한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들은 학교 수업을 거의 받지 않으며, 골프 선수들은 학교에 일 년에 한두 번도 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대개 골프선수라는 목표도 부모에 의해 정해진 것이지만, 설사 스스로가 좋아서 그 길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중간 과정은 그러한 희망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하다.

당장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조급증으로 부모와 지도자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어린아이들을 다그친다. 전지훈련장에서 만난 대다수의 프로들은 새벽 기상 시간부터 저녁 식사 후 취침 전까지 고강도 훈련을 이어가곤 했다. 나로서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지만, 부모들뿐 아니라 정작 어린아이들조차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눈치였다. 모두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질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생활하는 아이들이 어떤 자세로 골프에 임할지는 뻔하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프로만 안 보이면 ‘땡땡이’로 일관하고, “하기 싫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전지훈련지 전동카트의 지붕에는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집에 가고 싶다”와 같은 내용이 갖은 욕설과 함께 적혀 있다. 심지어는 연습 라운딩 때 만난 10대 후반의 유망주 투어프로조차 “이 라운딩이 취소되고 집에 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곤 했다.

물론 그 중 일부는 정상급의 선수가 되어 부와 명예를 얻겠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 구명 들어가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며, 나머지 대다수는 억지로 버텨온 보람조차 없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자신이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골프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에 처하고 만다. 원하는 목표를 이룬 선수들조차도 자신이 삶을 바쳐 해 온 골프 자체가 아니라 오직 그것을 통해 얻은 부와 명예를 통해서만 행복을 얻어야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내가 전지 훈련장에서 처음 프로 지망생들을 만났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옷과 장비로 삐까뻔쩍하게 멋을 낸 겉모습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언행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인성과 매너가 특출한 프로 아래에서 지도를 받는 일부와 천성 자체가 워낙 착한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 그런 모습에 예외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과 교육받는 현실을 알게 되면서 그것이 얼마나 당연한지 이해하게 되었다.


얼마 전 박세리와 함께 LPGA에서 활약했던 크리스티 커가 한국 선수들을 ‘스윙 머신’과 같다고 비아냥거려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한국 골프 관계자들은 발끈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평가가 상당 부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수업은커녕 선생님과 친구들이 누군지도 모른 채 새벽부터 밤까지 코치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고, 유명한 선수가 되면 대학 역시 한 번도 출석하지 않더라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상황에서는 극소수 최선의 경우라도 지덕체 가운데 하나만을 갖추게 되고, 나머지는 그 하나조차도 온전히 갖추지 못 하게 되니 그런 비난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하긴 이런 모습이 비단 골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학원과 과외를 전전하는 일반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까지 세계적인 학력 수준을 자랑하다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보잘것없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행복이란 오직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쟁취한 부와 명예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행복이란 승리가 아닌 과정을 통해서 얻어져야 하며, 삶 전반을 통해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진로 선택에서부터 당사자의 의지와 소질, 성향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이후의 교육 과정 또한 말한 나위 없이 중요하다. 단기간에 동료들을 능가하는 성과를 내고자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과정에 호기심과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동기부여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다양한 지적 체험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진로를 변경할 가능성 또한 열어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경쟁에서 승리하여 타인을 압도하는 부와 명예를 얻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일과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탁월한 소질과 노력이 겸비된 사람은 랑어나 잉스터, 데이비스와 같이 타인에게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되는 삶을 오랫동안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골프든 아니면 다른 어떤 분야이든 간에 교육의 목표는 그것이어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강의와 글쓰기를 해 왔다 몇 권의 전문 서적과 교양서적을 저술하여 학술원과 문광부 등에서 우수 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40세에 우연히 골프를 시작하여 독학으로 8개월여 만에 싱글 타수를 기록하고 11개월 만에 군소 단체 티칭 프로 시험을 통과하기도 했다 이후 USGTF 티칭 프로 자격을 획득한 뒤 세계 최고의 골프 교습가를 목표로 정진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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