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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인터넷 비즈니스 역사 속 뒷이야기

2019.02.28 정철환  |  CIO KR
1994년 NCSA에서 모자익 브라우저를 개발하여 월드와이드웹의 시대를 연 마크 안드라센은 NCS를 그만둔 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작은 회사에 취업했다. 왜 창업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회사를 창업하고 벤처 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고, 제품 또는 서비스를 개발하여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주식시장에 상장해 대박을 거두는 그런 프로세스 자체가 실리콘밸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를 최초로 만든 것이 넷스케이프였고 아직 마크 안드라센이 넷스케이프를 창업하기 전이었다.

넷스케이프가 주식시장 상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지속해서 사용자를 늘려가고 있을 때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인터넷과 웹에 큰 관심이 없었다. 빌 게이츠는 당시 미국 IT 업계를 지배하던 ‘Information Super Highway’의 주인공은 웹과 인터넷이 아니라 TV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최대 14.4Kbps 정도의 속도만 가능한 전화선으로는 미래에 필요한 통신 대역폭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생각을 바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무상으로 배포하면서 넷스케이프의 몰락을 주도하게 된다.

1994년 웹에서 최초로 배너 방식의 광고를 도입한 후 전체 매출액은 5천만 달러 수준이었고 1997년에 비로소 온라인 광고 매출이 10억 달러에 이른다. 당시 기업의 전체 광고 시장 규모는 600억 달러였다. 그러나 2015년에는 전체 디지털 광고 시장의 규모는 596억 달러로 성장한다.

MakeItSo.com, Relentless.com, Cadabra.com, Browse.com, Bookmall.com 그리고 Aard.com, Awake.com.... 이 도메인 네임들은 제프 베조스가 자신의 웹사이트 이름이 결정되기 전 후보였던 이름들이다. 결국 아마존으로 결정한 이유는 A로 시작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eBay는 왜 eBay라고 이름이 지어졌을까? 창업자 Pierre Omidyar는 이미 eShop이라는 기업의 창업 멤버였는데 이를 마이크로소프트에 팔고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 후 프리랜서 겸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때 자신의 일인 기업 이름을 Echo Bay Technology Group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인터넷 도메인으로 EchoBay를 등록하려고 하니 이미 누군가 등록을 한 상황이어서 줄여서 eBay라고 도메인을 등록하고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터넷을 통한 경매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고 이를 구현한 웹사이트를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기존 웹사이트에 올렸는데 URL은 eBay/aw 이였다. 처음 이름은 Auction Web이었다. 후에 투자를 받고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eBay 웹사이트의 다른 내용은 모두 버리고 경매 서비스 사이트의 이름을 eBay로 바꾼다. 

빌 게이츠는 스탠퍼드 대학에 건물 짓는데 6백만 달러를 기증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이 건물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능가할 회사를 만들 인재가 배출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 스탠퍼드 대학 내의 건물은 '윌리엄 게이츠 컴퓨터 사이언스 빌딩'이고 그 건물의 한 사무실에서 (360호실)같이 공부하던 두 학생이 나중에 회사를 세운다. 그 두 학생의 이름은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였다.

MP3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초기 애플에서 근무했던 두 명의 전직 직원이 개발한 음악 라이브관리 및 재생 프로그램 'SoundJam'을 (당시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던 윈앰프와 유사한) 애플이 2000년 3월에 매입한다. 그리고 2001년 1월 9일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iTunes로 발표를 한다. 스티브 잡스는 비록 인터넷 닷컴 폭발기에는 별 관여를 하지 못했지만 이후 PC는 미디어 허브가 되리라고 예측했고 그 중심을 음악이 차지하리라 생각했다. 한편 아이튠즈는 당시 맥에서만 수행이 되었는데, 윈도우에서도 수행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회사 내부의 주장에 대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진 안된다'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 굴복하고 2003년 10월에 아이튠즈 윈도우 버전을 발표한다. 이것을 계기로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이익이 많이 남는 회사로 가는 계기가 된다.

오늘날 전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스트리밍 미디어 거인 넷플릭스...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넷플릭스를 창업하도록 하게 만든 계기가 '아폴로 13' DVD를 대여했다가 연체하면서 연체로 40달러를 낸 것이라고 한다. (사실 기존 DVD 대여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을 통한 사업 가능성을 본 것이 계기임)

페이팔을 1999년 7월에 최초로 설립한 피터 티엘은 후에 (2000년 3월) 비슷한 서비스를 하던 X.com (일론 머스크가 설립)과 합병되고 2002년 2월 15일 상장하여 크게 성공한다. (그땐 많은 이들이 닷컴 버블 붕괴로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을 때라 분위기가 아주 안 좋을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랬으니 대단한 것) 그 후 페이팔을 이베이가 15억 달러에 매입하게 됨으로써 대박 신화를 현실로 만들게 된다. 그런데 이때 페이팔에 참여했다가 큰돈을 벌게 된 이들이 향후 그 돈을 가지고 투자한 회사들이 테슬라(일론 머스크), 페이스북(피터 티엘) 및 옐프, 링크드인, 유튜브, 야머... 등 그 외 다수의 기업들이다. 이들이 지금의 실리콘밸리를 좌우하는 페이팔 마피아들이다.

구글이 한참 초기 성장세를 구가할 무렵, 구글의 CEO를 새로이 뽑으려 할 때 브린과 페이지가 원하는 희망 1순위 후보는 스티브 잡스였다고 한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올 리가 없어 대신 선발된 인물이 에릭 슈미트였다.

CBS 스튜디오의 기념품점 점원이었던 매트 드러지는 1994년 헐리우드의 가십을 주로 다루는 이메일 뉴스레터를 시작한다. 그는 주로 일하다가 듣는 이야기 또는 CBS쓰레기통에서 찾은 내용 등을 가십으로 전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가 1998년 1월 뉴스위크가 알고 있긴 했지만 진위가 의심스러워 보도를 보류한 한 루머를 처음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다. 그 내용은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인턴과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것. 바로 빌 클린턴 이야기였다. 그 후 6개월간 드러지의 블로그는 매월 6백만명의 방문객이 방문한다. 타임지를 능가하는 수준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2007는 DrudgeReport.com은 한 해 동안 수백만 달러의 광고매출을 사이트에서 기록했다고 한다.

넷스케이프가 상장될 때 마크 저커버그는 11살이었다. 그는 인스턴트 메시징 서비스인 AIM 헤비 유저였고 최초의 소셜 서비스라고도 할 수 있는 Friendster 가 등장할 때부터 사용했으며 Napster의 등장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블로깅도 했는데 자신의 홈페이지에 다음가 같이 자신을 소개했다고 한다. “Hi, my name is …… Slim Shady”. 그리고 그가 만든 페이스북에 대해 10억 달러 매각 제의를 받았을 때 그는 23살이었다.
 
[출처: ‘How the Internet Happened: From Netscape to the iPhone’ by Brian McCullough]

*정철환 팀장은 삼성SDS,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부제철 IT기획팀장이다. 저서로는 ‘SI 프로젝트 전문가로 가는 길’이 있으며 삼성SDS 사보에 1년 동안 원고를 쓴 경력이 있다. 한국IDG가 주관하는 CIO 어워드 2012에서 올해의 CIO로 선정됐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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