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뒤를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기업이 고객을 배신하고 파트너의 뒤통수를 치고 인수 후 없애버리는 사례까지, IT 업계에서도 배신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업체, 파트너, 또는 고객에게 걸려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최악의 배신 사례 10가지를 살펴보자.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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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드몬드의 배신
마이크로소프트가 1985년 IBM과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함께 개발하기로 협의했을 당시 컴퓨팅 업계의 거물 IBM은 풋내기 소프트웨어 기업이 이 인터페이스와 경쟁하는 자체 GUI를 개발하고 있을 줄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OS/2는 망하고 윈도우는 흥했다.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1991년 공동 개발 관계를 끝낸 시점에는 이미 윈도우 3.0이 1300만 개나 팔려나간 상태였다. 반면 OS/2의 판매 수는 60만 개에 불과했다. 로터스, 워드퍼펙트 등 OS/2 개발에 투자했던 기업들은 큰 손해를 입었다. 윈도우를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너무 늦었고 버그도 많았고 속도도 느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데스크톱 OS 시장을 장악했고 이후 업무용 소프트웨어 시장까지 정복하면서 혈기왕성한 신생 기업에서 무자비한 독점 기업의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2. 스티브 잡스가 버린 뉴튼
스티브 잡스가 애플 CEO로 복귀했을 때 그 시작은 결코 상서롭지 않았다. 1997년 애플 CEO로 재선임된 당시 잡스가 처음 한 일은 뉴튼 메시지패드를 없앤 것이었다. 수천 명의 분노한 뉴튼 사용자들은 맥월드 컨벤션 현장에서 고아가 된 메시지패드를 치켜든 채 스티브 잡스의 배신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고 신문에 메시지패드를 위한 5,500단어짜리 부고를 내기도 했다.
이후 잡스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이들에게 보상했지만, 뉴튼은 여전히 오랜 애플 애호가들의 마음 속에 특별한 존재이자 기술 업계의 컬트 중 하나로 남아 있다.
3. 월드컴의 지저분한 회계
나름 독창적인 회계 방식이었다. 2002년 월드콤은 의도적으로 수익을 40억 달러나 부풀렸고, 이는 당시 미국 역사상 최대의 회계 부정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썩은 통신회사”의 경영진은 직원과 고객, 채권자, 주주, 그리고 다른 통신업체를 배신한 끝에 결국 파산을 신청했다.
이 부정 사건 후 CFO 스콧 설리반은 해고되었고 전 CEO 버니 에버스(사진)는 사기 및 공모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로 25년형을 선고 받고 2006년 속칭 ‘클럽 페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죄를 지은 경영진은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4. 버라이즌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는 거짓말
사실이라고 믿기엔 너무 좋다 싶더니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2000년대 중반, 버라이즌 EVDO 기기를 통해 모바일 브로드밴드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던 사용자들은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사용하다가 “데이터 제한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2007년 뉴욕주는 버라이즌의 이와 같은 행태에 제동을 걸고 사실은 5GB 제한이 있음을 공표하도록 명령했다. 물론 지금도 무제한 데이터라고 해도 모두 제한이 있는 것 같다. 이 거짓말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내심도 점점 한계에 이르고 있다.
5. 마이크로소프트, 비스타의 함량 미달을 스스로 입증
마이크로소프트는 2006년 인텔을 지원하기 위해 비스타 컴퓨터 구매자들을 희생시켰다. 비스타의 화려한 인터페이스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그래픽 하드웨어가 필요했다. 그러나 인텔은 신형 그래픽 프로세서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했고, “비스타 구동 가능(Vista capable)”이라는 딱지가 붙는 PC의 사양을 수정하도록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득했다. 이후 법정 소송에서 드러난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진의 이메일에는 비스타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소송이라는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비스타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장 큰 실패 사례 중 하나가 되면서 전쟁에서는 패하고 말았다.
6.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과 같은 야후
야후는 로마 원로원과 거리가 멀다. 웹 1.0 시대의 거물 야후의 최대 투자자들은 거침없이 칼을 뽑아 CEO의 등을 겨눈다. 예를 들어 칼 아이칸은 2008년 6월 마이크로소프트의 야후 인수를 추진하기 위해 야후의 수장 제리 양을 축출하려고 시도했고, 야후 투자자 댄 로브는 2012년 1월에 선임된 신임 CEO 스콧 톰슨을 5개월만에 내쫓았다. 톰슨의 실수는 이력서에 컴퓨터 과학 학위를 취득했다는 허위 학력을 기재한 것이다. 현 CEO인 매리사에게 조언한다면 잘 때도 한쪽 눈은 뜬 채로 자고, 베개 밑에는 항상 칼을 숨겨두라는 것이다.
7. 썬의 몰락
2009년 4월 오라클이 썬을 인수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팬에게 이는 루크, 한스, 츄바카가 다스 베이더의 휘하로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썬은 자바, MySQL, 오픈오피스와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선두 주자인 반면, 오라클은 독점 소프트웨어 세계의 암흑 군주, 래리 엘리슨이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8.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 보호 축소
한때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가장 은밀한 소셜 네트워크였다. .edu로 끝나는 이메일 주소가 없는 사람은 가입도 할 수 없었거니와 다른 사람의 활동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맷 맥케언의 인터랙티브 그래픽에서 볼 수 있듯이 2005년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페이스북의 정보 수집은 2010년 4월, 서드파티 웹 사이트를 위한 좋아요(Like) 버튼을 도입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이 버튼을 통해 페이스북 안은 물론 밖에서도 사용자들의 행동을 포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프라이버시 보호 범위가 축소되는 마당에 페이스북의 데이터 사용 정책 안내문은 무려 9,349단어로 늘어났다. 그 내용을 3단어로 요약하면 ‘페이스북에 사생활은 없다’가 될 것이다.
9. HP 팜의 배신
여러 집을 전전하는 고아가 그렇듯이, 팜도 2010년 4월 HP에게 인수된 당시 마침내 머물 집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오랜 팜 마니아들은 기뻐했다. HP는 세계 최대의 PC업체인 만큼 팜을 단순히 거두어 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유망한 WebOS를 기반으로 하는 단말기와 태블릿도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꿈은 오래 가지 않았다. HP는 터치패드 태블릿을 발표하고 불과 5주 후, 팜을 완전히 폐쇄하고 WebOS의 남은 자원도 그램(Gram)이라는 새 회사로 분사시켰다가 지난 달 LG에 매각했다. LG는 스마트 TV에 이 기술을 사용할 계획이다. LG의 차기 60인치 평면 TV에는 스타일러스가 딸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10. 친구에서 적으로
애플과 구글이 절친이었던 때를 기억하는가? 그다지 오래 전도 아니다. 2009년 8월까지 구글 CEO 에릭 슈미트는 애플 이사회의 일원이었다. 잡스와 슈미트는 종종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구글은 인터넷 부문에서, 애플은 하드웨어와 OS 부문에서 각기 활동했던 때의 이야기다.
잡스 전기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단말기가 사방으로 확산되자 잡스는 구글을 “초토화”시키기로 결심하고 구글 OS를 파괴하는 데 애플이 가진 모든 자금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잡스는 결국 이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현재 안드로이드는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애플이 가진 24%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