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SC제일은행 현재명 부행장

CIO KR

“일을 즐기고 나를 낮추며 상대방을 높이는 게 롱런 비결”
 

2000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최장 CIO’라는 닉네임을 가진 SC제일은행 현재명 부행장에 대해 어떻게 하면, 장기 집권이 가능한 지 국내 CIO들은 그 비결을 궁금해 했다. 이에 CIO 코리아는 현 부행장을 만나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CIO 시니어 모임이 있는데 거기 나가면, CIO에서 CEO로 멋지게 성공한 분들도 많다. 그분들이 우스갯소리로 내게 ‘한 자리에 그리 오래도록 있으니 성공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CIO의 경험을 살려 금융 기업 CEO가 되신 원명수 부회장님이나 이강태 사장님이 더 훌륭하신 것 같다.”

현 부행장은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기업 풍토와 나와 마음을 합쳐 추진력을 갖춰 일할 수 있었던 직원들, 그게 비결이다.”

그가 말한 롱런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지만, 정통 은행원 출신도 아니고, 게다가 한국 기업에서 일해 본 적이 전무한 그가 외국계 은행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 들어와 어떻게 IT조직을 끌고 갈 수 있었는지 궁금증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현 부행장은 멋쩍어 하면서 덧붙였다. “SC제일은행이 외국계 회사다 보니, 투명한 의사결정 체계를 따르고 사람에 대한 평가도 투명하게 진행하는데, 특별히 잘못이 없거나 무능하지 않으면 계속 같이 가려는 경향이 있다. 이 부분이 미국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으로서는 유리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은 IT부서원들이다. 어려웠던 순간도 있었지만 직원들이 나를 믿고 따라왔다.”

그는 직장경력 36년 중 22년을 미국에서 보냈다. 양쪽의 경험은 그에게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현 부행장은 외국인 경영진들에게 한국을 설득시키고, 한국인들에게 외국 기업문화를 이해시키며 양쪽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현 부행장과 관련해 SC제일은행에는 전설적인 사건이 하나 있다. 2000년 3월 12일에 부임했던 현 부행장은 한달 뒤인 4월에 IT직원 300명과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검단산에 올랐다. 등산이 끝나고 300명이 6개 식당에 나눠 회식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현 부행장은 300명과 일일이 술잔을 나눴다. 물론 소주잔을 가득 채우지는 않았지만, 그 일은 현 부행장을 ‘300명과 술잔을 주고 받은 임원’으로 각인시킨 사건이 됐다.  

“내가 우리 직원들 마음을 얻는 게 바로 그날이다. 그 때 직원들 전부와 술을 주고 받으면서 ‘은행에 입사한 이후 임원에게 소주잔을 받는 것은 처음’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 날 이후, 내가 하자고 하면, 직원들이 나를 믿고 따라왔다.”

현 부행장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하지만, 그런 우호적인 분위기는 그 자신이 만들어간 것이다.

시중 은행과 다른 행보
IT투자 붐이 한창 일어났던 지난 10여 년 동안 많은 은행들이 차세대시스템 구축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과 달리 SC제일은행은 이를 구축하지 않았다. 대신 SC제일은행은 국내 시중 은행 중 가장 먼저 BCP(비즈니스 연속성)를 위한 재해복구(DR)센터와 백업시스템에 투자했다.

“미국에서 BCP를 갖추지 않은 기업들은 911 사건 이후 복구하는 데 1주일이 걸렸다. 2000년 이후 미국 정부는 BCP를 기업들에게 반드시 갖추도록 요구했다. 한국에서는 차세대시스템을 구축해야만 IT에 투자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현 부행장은 IT조직에 대해서도 시중 은행들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가 SC제일은행에서 합류해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비즈니스와 IT의 관계 정비(BRM)였다. 현 부행장은 IT직원 중에서 은행의 상품 업무를 많은 사람들을 모아 현업과 같이 일하게 했다. 그는 “그 사람들이 IT와 현업의 가교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SC제일은행의 BRM은 후에 하이닉스 등이 벤치마킹했다.

BRM 이후 현 부행장이 추진한 것이 프로젝트 관리 오피스(PMO)였다. SC제일은행은 컨설팅을 받아서 PMO에 대한 방법론부터 소프트웨어 개발 성숙도 모델(CMM)까지 도입했다. “SC제일은행은 프로젝트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인프라 만들고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춘 것이다. 이 역시 한국에서 제일 먼저 했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우리 직원들을 트레이닝하면서 선진화된 기법을 도입했고 IT개발 프로젝트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다. 지난 12년 동안 가장 도움을 받았던 것이 BRM과 PMO다. 스탠다드 차타드가 들어오고 나서도 이 두 가지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새로운 IT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IT는 매력적인 직업
“36년 경력을 돌아보면서 누가 내게 다시 커리어를 선택할 수 있으면, 무엇을 하겠냐고 질문한다면, 젊은 사람으로서 IT로 일을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변화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언제라도 도전을 받아들일 열정만 있다면, IT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커리어를 시작한다면, 다시 IT를 선택하겠다.”

현 부행장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일을 시작한다면, 10년 정도는 단축시켜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현 부행장은 CTO를 지내면서도 CIO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EDS에서 컨설팅을 하면서 여러 CIO들을 만나며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 전부였다.

“CIO를 고객으로 상대하면서 회사를 위해 CIO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도 있었고, IT업체들한테 의지하면서 자기 일을 태만히 하는 사람도 봤다. 제너럴모터스(GM)를 컨설팅하며, GM의 CIO 랄프 자이겐다(Ralph Szygenda)를 보며 막연히 “저런 CIO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이겐다를 통해 어떻게 IT를 관리하고 아웃소싱 업체들을 관리하는지, 어떻게 비용을 절감하는 등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당시 GM은 매년 40억 달러(4조원 이상)를 IT에 투자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으며 IT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현재 CIO들이 마주한 이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비즈니스 창출이다. 지난 10년 동안 CIO의 역할로 강조했던 부분은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능력, 비용관리 능력, 기술과 시장에 대한 통찰력 등이다. 이제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데 IT가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CIO가 비즈니스를 만든다는 것은 다른 경영진과 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GM은 ‘온스타’라는 서비스 모델을 만들었고 이 별도 법인으로 분사해 포드와 같은 경쟁사까지도 고객으로 영입해 서비스를 판매하게 됐다. 최근 들어 아이폰 등 새로운 기기, 새로운 방식(SNS)을 어떻게 비즈니스에 접목해서 새로운 매출을 창출할 것인가가 CIO들의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CIO에게 새로운 덕목이기도 하지만 모든 경영진들의 공통 고민이기도 하다.

현 부행장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기술을 비즈니스 환경에 사용해 내부 생산성 올리거나, 고객에게 편리한 서비스 제공할까? 또는 비즈니스 매출을 창출할까? IT를 적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단, 변화에 유연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라고 강조했다.


예비 CIO들에게
CIO로서 성공하려면, 필요한 것들이 많다. 리더십, 전략적 사고, 새로운 기술을 기업에 도입해서 새로운 매출 창출, 미래에 대한 식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도전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CIO 대상 강의에서 젊은 CIO들을 자주 만나는데, 이들이 CIO로서의 자긍심과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다. 그들을 폄하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기업에서 CIO의 입지가 애매하고 기술자 출신이며 CEO가 아닌 CFO에게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직책 자체가 제한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CEO를 직접 만날 수 없다는 걸 극복해야 한다. 그걸 극복하는 것은 CIO 본인의 책임이다.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보고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렇게 하려면, IT의 중요성을 설득시켜야 한다.”

현 부행장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당부했다.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에 있는 게 아니다. 지식과 경험은 어느 수준에 오면 비슷해 진다.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띄워주는 사람은 100%가 아니라 500%, 1,000%도 달성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고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잘생겼다. 여러 해 커리어를 쌓으면서 선한 행동이 쌓여 외모도 바뀐 것이다.”

현 부행장은 자신의 초기 직장 생활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10여년은 나 혼자 일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노력했다. 그런데 혼자만 잘하는 걸로는 10년이 지나자 더 이상 성과가 나지 않았다. 그 때 깨달았다. 나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올라가는 건 여기까지고, 그 다음으로 가는 건,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하는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현 부행장은 앞으로 IT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멘토링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36년간의 경험을 압축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젊은 세대들은 더 짧은 시간 동안 성과를 이루도록 멘토가 된다면,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명 부행장은 의사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의학도가 아닌 수학도의 길을 걷게 되면서 IT와 인연을 맺었다.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인 주립대학교 컴퓨터 사이언스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EDS에서 뱅킹솔루션 컨설팅디비전의 디렉터, 전략사업부에서 CTO를 지냈다. 2000년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 CIO로 영입됐으며 현재 CIOO(Chief Information Operation Officer)다. Jenny_park@id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