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를 빛낸 여성 주역들

Computerworld

독자 여러분들도 에이다 러브레이스와 그레이스 호퍼에 대해서는 들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란시스 앨런, 데보라 에스트린, 라디아 펄먼은 어떤가? ciokr@idg.co.kr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그림 속 여인)나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2차대전 당시 활약한 애니악(ENIAC) 프로그래머들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들도 잘 알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IT분야에서 활약해 온 여성들이 많다.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날을 기념해, 독자들이 한 번도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그러나 자신들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테크놀로지 및 과학 분야에 공로를 세운 13인의 여성 전문가를 소개하기로 했다. 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세대의 여자들이 더 많이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 분야에 더 많이 진출하기를 바래본다. 컴퓨터 과학 학위를 공부하는 여성의 비율이 20년 전에 비해 오히려 지금이 더 적다는 사실, 알고 계시는지? 이미지 출처 : Watercolor portrait of Ada King, Countess of Lovelace (Ada Lovelace)

컴파일러 전문가 프란시스 E. 앨런(Frances E. Allen) 프란시스 E. 앨런은 1957년 IBM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였던 포트란(Fortran)을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한 그녀는 소스코드를 컴퓨터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코드로 전환해주는 프로그램인 ‘컴파일러’ 전문가로 성장했다. 앨런은 코드 최적화 및 코드 병렬화에 관한 일도 했다. 앨런의 연구와 노력으로 얻게 된 테크닉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앨런은 여성 최초로 IBM 펠로우(fellow)가 됐고 2006년에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컴퓨팅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A.M. 터닝 어워드(A.M. Turning Award)’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Frances E. Allen recieving the Erna Hamburger Distinguished Lecture Award at the EPFL. Rama/Wikimedia Commons

로켓 과학자 이본느 브릴(Yvonne Brill) 이본느 브릴은 항공우주학의 추진 장치를 개발한 장본인이다. 1972년 특허를 받은 이 기술은 통신 위성이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이드라진 전기저항 제트엔진 등 그녀가 개발한 기술 중에는 아직까지 쓰이는 것들도 많다. 브릴은 나사에서 달 착륙 계획에 쓰였던 로켓 설계와 최초의 초고층 대기관측위성, 그리고 로봇 우주 탐색기인 ‘마스 옵서버(Mars Observer)’ 개발 등에도 기여했다. 1940년대, 매니토바 대학은 필수 조건인 엔지니어링 캠프에 받아줄 수 없다는 이유로 캐나다 사람인 브릴의 공과대학 입학을 거부했다. 그래서 브릴은 화학과 수학을 전공하고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화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브릴은 미국 발명가명예전당에 이름을 올렸으며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기술혁신 훈장을 수여했다. 이미지 출처 : National Science & Technology Medals Foundation

탄소 섬유 전문가 밀드리드 드레셀하우스(Mildred Dresselhaus) 밀드리드 드레셀하우스는 무엇보다 탄소 과학 분야에 대한 공로가 큰 인물이다. 1960년대에 시작된 밀드리드의 탄소 섬유 및 관련 화합물에 관한 연구는 훗날 탄소 나노튜브와 관련된 발견의 기반이 되었다. 탄소 나노튜브는 기기를 더 작고 효율성 있게 만드는 기술로 테크놀로지 분야의 혁신이 될 수도 있는 소재다. ‘탄소 과학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드레셀하우스는, 어렸을 때 선생님이 될 생각으로 헌터 칼리지 여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결국 물리학을 공부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후 드레셀하우스는 MIT의 링컨 연구소에서 일했다. 이곳에서의 연구가 그래핀(grapheme)이라는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흑연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그래핀을 통해 탄소 나노튜브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레셀하우스는 2012년 나노과학 분야에서 카블리 상을 받았다. 이미지 출처: Berkeley Lab

숨은 센서 과학자 데보라 에스트린 데보라 에스트린은 성냥 곽만한 크기의 마이크로프로세서들을 적외선 카메라나 움직임 감지기, 음향 방출 센서, 화학 센서 같은 기기에 연결시키는 분야인 ‘임베디드 네트워크 센싱(embedded network sensing)’의 선구자다. 넓은 공간 안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 기기들은 주변을 살피며 변화를 감지해낸다. 소위 ‘스마트’ 가전 제품에 사용되는 기술과도 관련이 있다. 에스트린은 임베디드 네트워크 센싱 센터의 센터 장이다. 센터의 연구 주제는 생물학적, 화학적 오염 물질 식별에 있어서의 ENS 테크닉 사용에서부터 자발적 도심 센싱(participatory urban sensing)에 휴대폰 이용까지 다양하다. 자발적 도심 센싱은 도시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모으고 분석할 지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에스트린은 2003년 ‘파퓰러 사이언스(Popular Science)’ 가 선정한 ‘똑똑한 인물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전화 교환 시스템의 혁신가 에르나 슈나이더 후버(Erna Schneider Hoover) 1951년 예일대에서 수학과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에르나 슈나이더 후버는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는 컴퓨터화된 전화 교환 방법을 처음 생각해 낸 인물이다. 후버는 1967년 벨 연구소(Bell Labs)에서 일할 당시 일정 수 이상의 통화가 걸려오면 콜센터가 말 그대로 ‘넘쳐’서 과부하가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징적 논리와 피드백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후버는 각기 다른 시간대에 걸려오는 전화의 수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컴퓨터화 된 방법을 개발하고 콜센터의 수신율을 이에 맞게 조정했다. 이미지 출처: Photograph of Women Working at a Bell System international Telephone Switchboard/Flickr

인간 컴퓨터 캐서린 존슨(Katherine Johnson)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캐서린 존슨은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컴퓨터’로 일했다. 원래는 정확한 수학 계산을 해내는 여성 그룹에 속해 있었지만, 팀원 전원이 남자인 연구팀에 임시로 배정되면서 그곳에서 자신의 재능과 가치를 충분히 증명했다. 1959년 그녀는 최초의 미국 유인 우주선의 비행 경로를 계산해냈고, 1969년에는 달에 보낸 아폴로 11호의 비행 경로를 계산해냈다. 1962년 나사에서 전자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여전히 컴퓨터의 계산 결과를 존슨에게 확인할 정도였다고 한다. 존슨은 여성으로, 그리고 흑인으로서 과학 분야의 장벽을 깬 인물이다. 존슨은 수많은 수상 경력 중에서도 나사 랭글리 연구소 특별 공로상을 6번이나 받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Image courtesy of the National Visionary Leadership Project

주파수 호핑의 발견자, 헤이디 라머(Hedy Lamarr) 1930년대에서 50년대 사이 활동한 영화 배우로 가장 잘 알려진 헤이디 라머는 무선 전화기, 무선 인터넷, GPS 시스템 등의 기반이 된 기술을 개발한 인물이기도 하다. 라머와 그 이웃 조지 안테일(George Antheil)은 2차 대전 당시 적군이 무선 제어 어뢰의 신호를 방해할 수 있음이 분명해지자 주파수 호핑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 라머가 제시한 해결책은 제어 신호와 어뢰의 주파수를 변경해 아군끼리는 소통이 가능하되 적군은 신호를 방해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라머와 안테일은 1942년 이 기술에 대해 특허를 받고 이를 미 국방부에 넘겼다. 비록 이 기술이 실제로 어뢰에 사용된 적은 없지만, 미 정부는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선박들간의 안전한 소통을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 이미지 출처: MGM/Wikimedia Commons

인터넷 프로토콜의 창시자 라디아 펄먼(Radia Perlman) 흔히 ‘인터넷의 어머니’로 불리는 라디아 펄먼은 스패닝 트리 프로토콜(spanning tree protocol, STP)의 기반이 된 알고리즘을 만들어 낸 인물이다. 1976년 MIT에서 수학 학위를 따 졸업한 펄먼은 주로 컴퓨터의 안정적 정보 공유에 관한 일을 했다. 펄먼은 이에 대해 STP라는 솔루션을 제시했는데, ‘트리’의 일부가 아닌 경로는 무력화 시키고 백업 경로를 마련해두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법은 네트워크 노드들 사이에 하나의 경로만을 남기며 인터넷 상 트래픽을 라우트할 수 있다. 최근 펄먼은 STP를 대체하고 대역폭 사용을 개선할 TRILL이라는 기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펄먼은 약 50개의 특허 보유자이며 연구 성과에 대한 많은 상을 받았다.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감성 컴퓨팅 선구자 로잘린 피커드(Rosalind Picard) MIT에서 미디어 아트와 과학을 가르치는 로잘린 피커드는 ‘감성 컴퓨팅(affective computing)’ 이라는 분야를 시작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감성 컴퓨팅이란 기계가 인간의 감정을 감지, 해석, 심지어는 시뮬레이션 할 수 있게 만드는 컴퓨터 과학의 한 분야다. 이 기술은 다양한 곳에 적용될 수 있지만, 특히 웨어러블 컴퓨팅 제품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MIT에서 전기 공학과 컴퓨터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피커드는 지금까지 200여 편 이상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연구 성과에 대해 수많은 상을 받았다. 이미지 출처: David Bruce/Wikimedia Commons (CC BY-SA 2.0)

컴퓨터 언어의 설계자, 아이다 로즈(Ida Rhodes) 1913년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온 아이다 로즈는1950년대 초반 UNIVAC I 컴퓨터 시스템의 C-10 컴퓨터 언어를 설계했다. 이 언어는 통계를 계산하는 데 사용되었다. 로즈는 또 미 사회보장국에서 사용한 컴퓨터를 설계 및 프로그램 하기도 했다. 로즈는 현대 컴퓨터 설계의 선구자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1952년 컨퍼런스에서 로즈가 데스크톱 컴퓨터, 다중 프로그래밍 언어, 비디오 디스플레이 등을 사용하는 미래에 대한 논문을 내놓았다고도 한다. 이미지 출처: The Adventures of the Real Mr. Science

코볼(Cobol) 언어의 선구자 진 E. 새멋(Jean E. Sammet)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수학과 문학 석사를 받은 진 E. 새멋은 그레이스 호퍼와 함께 실바니아 (Sylvania)에서 1950년대~60년대까지 코볼 언어를 개발한 위원회의 일원이었다. 1961년 새멋은 IBM에서 일을 시작했다. 새멋은 IBM에서 수학 공식에 널리 사용된 최초의 컴퓨터 언어인 ‘포뮬라 매니퓰레이션 컴파일러’ 혹은 줄여서 FORMAC을 개발하기도 했다. 새멋은 또한 1969년 “프로그래밍 언어: 그 역사와 기초(Programming Languages: History and Fundamentals)”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프로그래밍 언어 분야에서 그녀의 업적은 향후 컴퓨터 과학자들의 연구 기반을 쌓아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 Image courtesy of Computer History Museum

자연 언어 프로세싱 전문가 카렌 스파크 존스(Karen Spärk Jones)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편리하게 구글링을 즐기게 된 데에는 카렌 스파크 존스의 덕이 적지 않다. 그녀가 진행한 자연 언어 프로세싱과 정보 복구에 관련한 작업들은 우리가 코드가 아닌, 일상 언어를 통해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게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웨이팅(weighting)이라는, 문서 내 특정 단어의 중요도를 특정하는 방법론을 개발한 것도 그녀다. 웨이팅은 검색 쿼리에서 특정 문서의 검색 엔진 순위를 평가하는 데에도 활용되는 방법론이다. 2007년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스파크 존스는 브리티시 컴퓨터 소사이어티(British Computer Society)로부터 러브레이스 훈장(Lovelace Medal)을 수여했다. 그녀의 업적은 세상의 박수와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그녀가 공식적으로 받은 훈장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미지 출처: Markus Kuhn/Wikimedia Commons (CC BY 2.5)

운영 체제 설계자 매리 앨런 윌크스(Mary Allen Wilkes) 매리 앨런 윌크스는 컴퓨터 운영 체제(OS)의 개념을 맨 처음 정립하고 또 실제로 적용한 인물이다. 1959년, 당시 MIT 링컨 연구소에서 근무 중이던 윌크스는 IBM 709나 TX-2와 같은 초창기 컴퓨터들을 활용해 작업을 진행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후 1965년 그녀는 연구소 설비 컴퓨터(LINC, Laboratory Instrument Computer)용 콘솔을 설계하고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프로그램 사이를 잇는, OS를 작성했다. 그녀는 이 위대한 작업을 자신의 집에 있는 LINC를 통해 진행했다. 최초의 가정용 컴퓨터 사용자 가운데 한 사람인 셈이다. 이후 윌크스는 컴퓨터 업계를 떠나 변호사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Image courtesy of the DigiBarn Computer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