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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관리 / 소프트스킬

최원규 칼럼 | 인터넷 시대의 독서

2011.08.26 최원규  |  CIO KR
1996년 가을 어느 금융회사의 회의실. 인터넷 도입 건에 대한 관련 부서의 회의가 열렸다. 인터넷 도입이 업무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ROI는? 시기상조가 아닌가? 다양하고 많은 질의가 이어졌다. 시스템 도입과 같은 신규 투자가 일어날 때 흔히 볼 수 있는 회의 풍경이다.

명쾌한 비즈니스적 답변이 어려운 IT 담당 책임자는 ‘인터넷의 도입은 세상을 향해 창을 여는 것이다” 라는 말로 투자의 효용과 같은 재무적 관점에 익숙한 현업과의 논쟁을 감성적인 답변으로 넘겼다. 결국 그 회사에 인터넷이 도입되었으며, 금융 투자를 본업으로 하는 직원들의 가장 주요한 정보 수집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현재, 그 IT 책임자는 임원이 되었다. 그의 책상에는 외견상으로는 여전히 이전과 비슷한 형태의 단말기와 집기들이 놓여 있지만, 일하는 방식은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전에 일을 할 때는, 문제에 몰입하여 머리 속 깊이 기억되어 있는 지식의 편린들을 끄집어내어 이를 조합 재구성해 나가면서 해결방안을 찾아 나갔다. 하지만 그때는 필요한 정보가 항상 부족했기에, 자료를 수집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으며, 필요 시 지인들을 통하여 선행사례를 구하거나 혹은 선배들의 조언도 많이 구했다. 좋은 정보는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열쇠였으니 이를 빨리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은 일의 성과와 직결되었다. 이를 위하여 좋은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 또한 필수였다.

그러나, 이젠 인터넷을 통하여 관련 지식과 레퍼런스를 뒤지고, 또 하이퍼텍스트 연결을 통하여 수많은 자료를 검색함으로써 보다 쉽고 빠르게 정보를 얻는다. 인터넷으로부터 과거와는 비할 수 없는 정보의 양과 속도의 측면에서 엄청난 이점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의 일하는 방식에서 과거와 같이 완전히 몰입된 상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일을 하면서 수시로 새로운 메일 도착을 알리는 깜빡임, 문자 메세지, SNS 등을 확인하고 순간적으로 다른 일로 넘어가곤 한다. 게다가 하이퍼텍스트로 연결된 인터넷 서핑으로 인하여 종종 주제와 전혀 관련 없는 영역에 빠져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문제에 집중하기 위하여 온라인 연결이 없는 탁자로 이동하여 일을 해보기도 하지만, 책상에 놓아둔 노트북, 핸드폰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한마디로 주의가 산만해진 것이다. 이는 그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과연 인터넷을 통하여 돈 탯스콧이 주장하듯 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인 <디지털 네이티브>가 움직이는 세상이 된 것일까? 인터넷이 지칭하는 디지탈 세상이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든 것일까? 인간 세상이 분명 더 진화되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똑똑해졌다는 데는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쉬운 예를 들자. GPS의 발달은 우리의 길 찾는 어려움을 해소시켜주었지만, 이제 GPS가 없으면 방향감각조차도 없다. 최근에 한 지인은 이번 수해 때 인천공항을 가야 하는데 차에 부착된 GPS는 계속 물에 잠긴 올림픽대로를 가라고 알려주어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서울 태생이며 이전에는 4대문 안은 골목길까지 다 안다고 자랑했던 사람이다. 즉, GPS는 길을 쉽게 찾게 만들기는 했지만 반대로 우리의 길에 대한 공간 인지나 기억 능력을 떨어뜨리게 된 것이다. 기계에 익숙한 스크린골퍼가 필드에 나가 그린 위에서 짧은 퍼팅 거리를 물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은 우리의 정보습득을 쉽게 만들었지만, 링크와 하이퍼텍스트로 이어진 정보를 따라 흘러 다니는 사고방식이 GPS를 보고 운전하는 운전자의 쪼그라든 공간 인지능력처럼 우리의 사고체계를 얕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사고체계가 지식의 깊이보다는 효율성에 우선을 두고 깊고 오래 사고하는 것을 점점 더 싫어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젠 책을 읽을 때도 이전과는 다른 어려움을 느낀다. 한마디로 인내심이 없어진 것 같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전에 그 두꺼웠던 전집들을 어떻게 읽었는지 기특할 정도이다. 이전에 제라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읽었는데 비롯 600페이지 정도의 많은 분량이긴 하지만 정말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고서야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깊이 읽으면서 깊은 사고에 빠져드는 것에 점점 더 어려움을 느낀다. 이는 아마도 인터넷 속에서의 빨리 결론을 맺고, 분주하게 넘나드는 단편적인 지식 찾기에 익숙해진 내 산만하고 분주해진 행동양식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을 통하여 지식을 아웃소싱할 수 있지만, 머리 속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지적 기억과 경험을 기반으로 명상하고 사색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우리의 사유능력은 결코 아웃소싱될 수 없다. 아직은 인공지능도 결국 수학적인 추론의 결합일 뿐이다.

이제 디지털시대를 되돌릴 수 없으며, 인터넷을 끊고 살 수도 없다. 이는 앞으로도 모든 분야에서 더욱 확대. 발전될 것이라는 데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를 대체할 수는 있는 도구는 아니다. 창의적이고 깊은 통찰력은 책을 읽을 때와 같은 완전히 몰입된 지적 상태에서 나온다. 책과는 다르게 웹에서의 검색은 숲으로 보면 잔가지만 보게 할 뿐이다. 웹에서 얻는 지식은 그 속성상 겉핥기식, 피상적, 산만한 지식일 수밖에 없다.

수 천년 동안 인류는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금속활자를 거치면서, 기록하고 이를 전파하면서 지식의 확대 재생산을 통하여 문명과 지성을 발전시켜왔다. 한마디로 책은 인류의 발전을 가져다 준 가장 중요한 지적도구이자 유산이다. 인터넷 시대에서도 이 효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우리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사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2007년 아마존이 전자 책 단말기인 “킨들”을 출시한 이래로 e북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종이 책의 종말을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감성적인 측면에서 e북은 한계가 있다. 짧은 텍스트를 읽는 데는 전자 책의 효용이 크지만,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읽는 독서는 역시 종이 책을 따라가기 어렵다. 조용한 공간에서 집중해서 해야 하는 책 읽기는 자신만의 논리를 이끌어내고 상상력을 통하여 독자적인 생각을 키운다. 깊이 읽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테크놀로지에 쉽게 함몰되기 쉬운 IT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문학 서적 읽기를 권하고 싶다. 현존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의 한 분인 김석철 선생은 “인문학이란 공동체의 큰 흐름을 보게 하는 학문으로 우리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설명해 주고, 우리의 삶과 죽음 모든 지혜가 여기에 담겨 있으며 이는 결국 독서를 통해서 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테크놀러지, 경영도 결국 모두 인간을 위한 것임을 전제로 할 때, 이에 관한 독서는 우리가 일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탁월한 혜안을 갖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행위인 것이다.

이제 인터넷과 온라인 속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 깊게 침잠해보자. 조급함과 산만함을 벗어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평온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A reader is a leader” 라는 말이 있다. 독서를 하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는 뜻이다.

* 최원규 대표는 1988년 교보생명에서 금융IT업무를 시작했으며, 교보증권, 교보투자신탁운용, SAP 코리아, SAS 코리아를 거쳐 지난 2008년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에 합류했다. 현재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의 대표이사를 역임 중이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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