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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O / 리더십|조직관리

인문학 | 빼앗고자 하거든 먼저 주어라

2011.08.17 김민철  |  CIO KR
춘추전국시대는 중국 최고의 혼란기였다. 1,000여 개에 이르던 나라들이 약 300여 년 후에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는 일곱 개의 나라로 정리되고, 그로부터 약 100여 년 후에는 진(秦)이라는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었으니,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백성들이 얼마나 깊은 도탄에 빠져 있었는지를 쉽게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시대에 통치자들의 최고 목표는 부국강병이었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상황이라, 군사력을 강하게 하여 다른 나라를 합병하는 것만이 생존의 유일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혼란한 시기에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부국강병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은 백성들을 덕(德)으로 다스리는 것뿐이라고 외쳤다. 군주들이 듣기에 허황되기 짝이 없는 주장을 한 이들은 이른바 유가(儒家)로 알려진 공자와 그 제자들이었다.

공자의 어록인 <논어(論語)>에 보면 공자의 모국인 노나라의 실권자와 공자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등장한다.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강자라는 사람은, 다른 여느 나라의 집권자들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해 국력 신장을 이루고자 한다. 그래서 공자에게 “무도한 자들을 죽여서 도리에 맞는 쪽으로 나아가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런데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 가관이다. 공자는 “정치를 하는데 어찌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쓰겠습니까? 당신이 선함을 원한다면 백성들도 선하게 될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습니다. 풀은 그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한 마디로 집권자가 도덕적으로 행동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대답이니, 천하가 모두 전쟁 중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이 무슨 허무맹랑한 말인가?

그로부터 약 100년 후, 공자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맹자는 당시 유력한 나라의 왕에게 이보다 더 황당한 설교를 한다. 진정으로 덕치를 행하는 군주가 있다면, 그 나라의 백성들이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나라의 백성들까지도 그 군주의 나라에서 살기를 원할 것이다. 반면, 억압과 강제로 통치를 하는 군주의 경우에는 백성들의 마음이 이미 그에게서 떠나갔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맹자는 “(덕으로 통치하는)인자한 군주에게는 대적할 상대가 없다”라고 과감히 선언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통일된 이후의 사상적 주도권은 이러한 황당무계한 주장을 내세운 유가의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집권자들은 (속마음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유덕한 통치자인 양 행세하게 되었다. 이제 학자들은 덕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그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힘을 가지게 되는지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 가운데 특이한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중국의 문헌에서는 ‘덕’을 ‘득(得)’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영미권 학자들 가운데는 일반적으로 ‘virtue’로 번역되는 이 말을 ‘power’로 번역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덕을 통해서 무언가, 즉 어떤 힘을 얻게 된다는 말인데, 어떤 과정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한 미국의 학자는 그것을 ‘마술적인 힘’이라고 설명하지만, 그것이 아무런 설명도 아님을 너무 쉽게 짐작 가능하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를 보면 이 수수께끼를 풀 만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대표적인 것을 하나만 뽑아 보면 다음과 같다.  

병가의 대표자 중 하나인 오기는 출세를 위해 자기 부인을 죽일 정도로 잔인한 인물이었지만, 전투에 임하면 진정으로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그는 부하들과 더불어 먹고 잤으며, 행군도 함께 했다. 부하들은 오기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러던 중 한 병사의 다리에 종기가 난 것을 오기가 발견하게 되었다. 오기는 놀랍게도 그 병사의 다리에 난 종기에 입을 대고 고름을 스스로 빨아내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그 병사의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아들의 죽음을 예언하였다고 한다. 예언대로 아들은 전쟁에서 오기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가 죽고 만다.

오기는 부하에게 덕을 베풀었다. 그러자 부하는 오기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오기는 덕을 베풀어서 무언중에 부하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소규모 공동체 사회에서 인간의 행동 원리와 관련이 있다.

인간이 사자처럼 힘이 세거나 말처럼 빠르지 않지만 만물의 지배자가 된 것은 오직 사회적인 협동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농기계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넓은 논밭을 경작할 수 있었던 것도 공동체의 협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구성원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만 하고 입을 닦아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동네 사람들이 자기 논에 모내기 하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동네 사람들 모내기 할 때에는 모른 척 한다면 말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멍석말이를 당하고 쫓겨날 것이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받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갚아야만 공동체 내에서 인간 대접을 받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내 아들 결혼식에 누군가가 엄청난 양의 축의금을 냈는데, 그 집 자식 결혼식에 내가 그만큼의 돈을 낼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보답을 해야 한다. 잔치 음식 준비를 돕는 등 몸으로 때우는 식으로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들의 잠재의식 속에 뿌리 박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장군에게 예상되는 행동 방식이 있다. 오기는 부하에게 기대 이상의 호의, 즉 덕을 베풀었다. 부하는 어떤 식으로도 갚아야 한다. 그러나 그가 특별히 오기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결국 그는 몸 바쳐 충성을 다하기로 마음먹는다.  

덕치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다수의 군주들이 폭정을 행하는 상황에서, 일반적인 군주가 행할 것으로 예견되는 행동 방식이 있다. 그런데 어떤 군주가 백성을 자식처럼 대하는 등 기대 이상의 호의를 베푼다면 백성들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기의 경우에 비추어 본다면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타인의 마음을 얻는 최선의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의 예상을 뛰어 넘는, 그리고 그가 갚을 수 없는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노자>에 나오는 “빼앗고자 하거든 반드시 먼저 주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풀이하는 열쇠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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