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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 권위와 복종

2011.07.21 김민철  |  CIO KR
사회적으로 성공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은 권위를 가지고 싶어 한다. 권위 있는 의사, 권위 있는 학자, 권위 있는 법조인 등을 꿈꾸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이 올바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권위의 탓을 하기도 한다. 국정 운영이 잘 안 되는 이유를 대통령의 권위가 추락한 탓으로 돌리고, 공교육이 표류하는 이유를 교사의 권위 실추에서 찾기도 한다.

“이거, 선생(혹은 대통령)의 권위가 이렇게 서지 않아서야......”와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특정 사회가 올바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의 원인을 권위 상실에서 찾을 경우, 문제의 해결책은 당연히 권위의 회복이 될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엄숙하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이다.

교사에게 체벌을 허용해서 학생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자거나, 청와대 직원들이 청바지와 같은 자유로운 복장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마치 왕정 시대에 왕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거나 말하지 못 하도록 함으로써 왕의 권위를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사자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원하는 권위란 그런 식으로는 잘 주어지지 않는다. 난해한 용어를 쓴다고 해서, 고급 승용차를 탄다고 해서, 불편한 정장을 입는다고 해서, 엄숙한 분위기나 위협적인 상황을 조성한다고 해서, 그리고 폭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물론 비싼 정장을 입고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면 수위나 음식점 직원 등이 좀 더 굽실거릴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상대방의 권위를 인정해서가 아님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권위’라는 말이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는 일상어에서 사용되는 용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권위 있는 학자(의사/교사)’와 ‘권위적인 교사(대통령/의사)’는 분명히 다르다. 전자가 긍정적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면, 후자의 그것은 부정적인 것이다. 권위를 추구하는 사람 가운데 후자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권위 있는 상사’가 되고 싶어 하지, ‘권위적인 상사’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단어가 두 가지 이상의 의미로 쓰인다면, 최소한 그 어원이 같거나 의미상의 공통분모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권위’의 경우에 그것은 바로 복종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권위’라는 말은 복종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를 앞에서 거론한 여러 사례에 적용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이 권위를 원한다는 것은 타인들이 자신에게 복종하기를 원하는 권력에 대한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복종한다고 해서 곧바로 권위를 추구하는 사람의 바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복종의 이유가 자신의 무력이나 경제력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힘의 과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권위는 분명 지배와는 다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이 자신을 만나는 이유가 돈이나 힘 때문임을 알고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누구나 상대방이 자신을 인간 그 자체로서 좋아하고 따라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부정적 의미의 권위를 통해 얻게 되는 복종이란 진정한 의미의 복종이라고 할 수 없다. 힘이 부족해서 고개를 조아리는 척 할 뿐, 내가 경제력 혹은 무력을 상실하거나 상대방이 나보다 더 큰 경제력이나 무력을 획득한다면 상황은 180도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힘이 약해 복종하는 모양새를 보일 때조차도, 당사자가 없을 때에는 그를 욕하고 조소하곤 한다.

여기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은 그 반대편, 즉 긍정적 의미의 권위란 자발적인 복종을 수반할 것이라는 점이다. 몸이 아프면 권위 있는 의사를 찾아 그의 지시를 받고, 배움을 얻고자 한다면 권위 있는 학자의 가르침에 따르며, 권위 있는 기술자나 예술가가 만든 제품을 사고자 하는 것은 누가 억지로 시켜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그 사람을 찾고 따르고자 하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진정한 “마음으로 복종함”, 즉 ‘심복(心腹)’인 것이다.

독특한 취향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하면, 누구나 긍정적인 권위를 가지고자 할 것임은 분명하다. 부정적 의미의 권위가 경제력이나 무력을 통해 획득 가능함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긍정적 의미의 권위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그 말이 들어가는 일반적 용례를 살펴보는 것이 유용하다.

긍정적 의미의 권위가 들어가는 용례를 생각해 내기란 어렵지 않다. 권위 있는 학자, 권위 있는 의사, 권위 있는 발명가, 권위 있는 요리 전문가 등등 그 용례를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주의 깊고 세심하게 살펴본다면, 그 용례들은 모두 일종의 계약과 관련이 있음을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다(그러한 사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지 몰라도, 설명을 듣고 나면 무릎을 치며 “아~!”하는 깨달음의 탄성을 뱉어낼 것이다).

권위와 관련된 계약의 특수한 성질은 그것이 명시적이 아닌 암묵적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치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진료대에 누워 입을 벌릴 때, 누구도 그 의사가 자신의 목을 찔러 죽이리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소임이 무엇인지는 의사도,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를 때도 마찬가지이다. “절대로 그 가위로 내 귀나 코를 잘라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내가 원하는 대로 머리를 다듬어 주고, 일정 정도의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내용의 계약서에 먼저 서명하고 머리 자르는 일을 시작하도록 합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그저 대표적 사례일 뿐이다. 많은 사회적 관계에서는 분명한 계약이 없어도 당사자들은 이미 서로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 계약서를 쓴 적도 없고, 구두로 약속을 하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이 특정 분야의 일에 종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와의 계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권위란 그런 암묵적인 계약을 충실히 혹은 기대 이상으로 잘 이행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생겨난다. 사람들은 최소한 그 분야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그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다.

반대로 암묵적 계약이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그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사람들을 복종시킨다면, 권위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바람직한 의미의 권위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의사는 맡은 분야에서 사람들을 열심히, 잘 치료하면 권위 있는 의사가 된다. 학자는 훌륭한 학문적 성과를 내야 권위 있는 학자가 된다. 어느 한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닭을 정말 맛있게 튀겨낸다면 닭튀김의 권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고 따르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사회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 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하였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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