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2

칼럼 | '부품이냐, 소모품이냐' 배터리의 딜레마

정철환 | CIO KR
애플이 아이폰의 구형 모델에 배포한 업데이트에 고객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배터리 상태에 따라 고의로 성능을 저하시키는 로직을 삽입한 것이 발각되어 작년 말부터 큰 쟁점이 되고 있다. 애플이 일단 배터리 교체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고 새로운 업데이트를 배포하는 방안으로 대응했지만 불거진 이슈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애초에 워크맨이나 라디오 같은 휴대용 전자기기의 배터리는 일반 알카라인이나 망간 전지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배터리가 다 되면 새것으로 늘 교체하였기에 기기의 수명과 배터리는 관계가 없었다. 그 후 일반 건전지 형태의 충전식 배터리가 등장했다. 충전식 건전지는 몇 번이고 충전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오래 사용하면 수명이 점점 다해서 결국 새것으로 바꿔야 했다. 그러다가 휴대용 전자제품의 사이즈 축소 경쟁이 벌어지면서 기존의 원통형 배터리로는 기기의 사이즈 축소에 한계가 있어 전자기기 회사에서 자체적인 전용 사각 사이즈의 충전식 배터리를 개발했다. 소위 소니에서 나온 껌전지가 대표적이다. 이때부터 사용자는 표준규격의 배터리가 아니라 크기가 맞는 특정 회사의 배터리를 사야 했다. 위와 같은 상황이 MP3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를 비롯하여 휴대폰, 그리고 스마트폰까지도 공통으로 발생했으나 배터리는 소모품이라는 게 소비자의 기본 인식이었다. 배터리가 문제가 생기면 새 배터리를 사서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애플이 아이팟을 내놓으면서 배터리 내부 장착 일체형으로 제품을 선보였다. 사용자가 쉽게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는 제품이 등장한 것이다. 획기적인 개념이었고 디자인 측면에서 날렵하고 얇으며 튼튼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후 이 트렌드는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에 기본적인 제품 전략이 된다. 그리고 초기 이를 비난하던 다른 회사의 스마트폰들도 점차 배터리 일체형 제품을 출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배터리 일체형 제품은 유려한 외관 디자인이 가능하고 제품의 기계적 강도를 높이며 더 얇고 멋지게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아울러 최근 스마트폰 기술의 대세가 된 방진, 방수를 가능하게 해 주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이제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 스마트워치 등 대부분의 모바일 기기에 채택되는 전략이 된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전까지는 충전식 배터리든 일반 건전지든 사용자에게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며 교환비용은 사용자가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으나 배터리 일체형 모바일 기기를 최초의 휴대용 기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어린 또는 젊은 세대에게는 배터리는 사용하고 있는 기기의 일부분이며 포함된 부품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전체 제품의 한 구성요소이기에 배터리 불량이나 성능 저하에 따른 사용시간 감소가 소모품인 배터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기 자체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일체형이기에 소비자가 쉽게 교체할 수도 없고 그 비용도 객관적인 수준인지 검증할 수 없기에 향후 배터리 교체 비용에 따른 사용자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의 애플 에어팟처럼 고가의 초소형 블루투스 이어폰 세트의 경우 배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작고 일체화된 기기이기에 배터리의 성능이 저하되기 시작하면 고가의 기기 전체가 고장 나는 것으로 사용자에게 인식될 수 있다. 스마트워치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이 문제는 향후 애플만의 문제가 아니라 스마트 모바일 기기 전반에 걸쳐 소비자와 제조사의 갈등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조사가 전통적인 개념, 즉 배터리는 소모품이고 그 교체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고수한다면 필자와 같은 올드세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건전지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기기 자체의 결함 또는 내구성 문제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며 그 비용의 전가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출시된 초기 배터리 수명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자동차는 한번 구입하면 10년 이상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동차 회사의 대응은 배터리의 무상 보증기간을 많이 늘려주는 것이었고 이는 소비자의 호응을 얻어 하이브리드 자동차 확산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소비자가 배터리를 스스로 교체할 수 없게 만든 모바일 기기에서 배터리는 소모품일까 부품일까? 수십만 원이 넘는 고가 기기를 사서 2년 정도 만에 배터리가 다 되어 성능이 떨어지거나 사용시간이 짧아지는 것이 정상인가? 자동차 회사의 대응 방식을 따른다면 얼마의 기간을 보증하여야 할까? 저가의 멀쩡한 소형기기를 배터리가 오래되었다고 폐기해야 하나? 배터리의 수명이 곧 기기의 수명이 되는 것이 타당한가?

모바일 기기 제조사는 지구의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소비자의 불만을 가져오지 않으며 제조사의 부담이 커지지 않는 현명한 대응 방안이 필요할 듯하다.

*정철환 팀장은 삼성SDS,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부제철 IT기획팀장이다. 저서로는 ‘SI 프로젝트 전문가로 가는 길’이 있으며 삼성SDS 사보에 1년 동안 원고를 쓴 경력이 있다. 한국IDG가 주관하는 CIO 어워드 2012에서 올해의 CIO로 선정됐다. ciokr@idg.co.kr
 
2018.02.02

칼럼 | '부품이냐, 소모품이냐' 배터리의 딜레마

정철환 | CIO KR
애플이 아이폰의 구형 모델에 배포한 업데이트에 고객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배터리 상태에 따라 고의로 성능을 저하시키는 로직을 삽입한 것이 발각되어 작년 말부터 큰 쟁점이 되고 있다. 애플이 일단 배터리 교체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고 새로운 업데이트를 배포하는 방안으로 대응했지만 불거진 이슈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애초에 워크맨이나 라디오 같은 휴대용 전자기기의 배터리는 일반 알카라인이나 망간 전지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배터리가 다 되면 새것으로 늘 교체하였기에 기기의 수명과 배터리는 관계가 없었다. 그 후 일반 건전지 형태의 충전식 배터리가 등장했다. 충전식 건전지는 몇 번이고 충전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오래 사용하면 수명이 점점 다해서 결국 새것으로 바꿔야 했다. 그러다가 휴대용 전자제품의 사이즈 축소 경쟁이 벌어지면서 기존의 원통형 배터리로는 기기의 사이즈 축소에 한계가 있어 전자기기 회사에서 자체적인 전용 사각 사이즈의 충전식 배터리를 개발했다. 소위 소니에서 나온 껌전지가 대표적이다. 이때부터 사용자는 표준규격의 배터리가 아니라 크기가 맞는 특정 회사의 배터리를 사야 했다. 위와 같은 상황이 MP3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를 비롯하여 휴대폰, 그리고 스마트폰까지도 공통으로 발생했으나 배터리는 소모품이라는 게 소비자의 기본 인식이었다. 배터리가 문제가 생기면 새 배터리를 사서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애플이 아이팟을 내놓으면서 배터리 내부 장착 일체형으로 제품을 선보였다. 사용자가 쉽게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는 제품이 등장한 것이다. 획기적인 개념이었고 디자인 측면에서 날렵하고 얇으며 튼튼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후 이 트렌드는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에 기본적인 제품 전략이 된다. 그리고 초기 이를 비난하던 다른 회사의 스마트폰들도 점차 배터리 일체형 제품을 출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배터리 일체형 제품은 유려한 외관 디자인이 가능하고 제품의 기계적 강도를 높이며 더 얇고 멋지게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아울러 최근 스마트폰 기술의 대세가 된 방진, 방수를 가능하게 해 주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이제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 스마트워치 등 대부분의 모바일 기기에 채택되는 전략이 된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전까지는 충전식 배터리든 일반 건전지든 사용자에게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며 교환비용은 사용자가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으나 배터리 일체형 모바일 기기를 최초의 휴대용 기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어린 또는 젊은 세대에게는 배터리는 사용하고 있는 기기의 일부분이며 포함된 부품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전체 제품의 한 구성요소이기에 배터리 불량이나 성능 저하에 따른 사용시간 감소가 소모품인 배터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기 자체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일체형이기에 소비자가 쉽게 교체할 수도 없고 그 비용도 객관적인 수준인지 검증할 수 없기에 향후 배터리 교체 비용에 따른 사용자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의 애플 에어팟처럼 고가의 초소형 블루투스 이어폰 세트의 경우 배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작고 일체화된 기기이기에 배터리의 성능이 저하되기 시작하면 고가의 기기 전체가 고장 나는 것으로 사용자에게 인식될 수 있다. 스마트워치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이 문제는 향후 애플만의 문제가 아니라 스마트 모바일 기기 전반에 걸쳐 소비자와 제조사의 갈등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조사가 전통적인 개념, 즉 배터리는 소모품이고 그 교체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고수한다면 필자와 같은 올드세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건전지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기기 자체의 결함 또는 내구성 문제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며 그 비용의 전가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출시된 초기 배터리 수명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자동차는 한번 구입하면 10년 이상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동차 회사의 대응은 배터리의 무상 보증기간을 많이 늘려주는 것이었고 이는 소비자의 호응을 얻어 하이브리드 자동차 확산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소비자가 배터리를 스스로 교체할 수 없게 만든 모바일 기기에서 배터리는 소모품일까 부품일까? 수십만 원이 넘는 고가 기기를 사서 2년 정도 만에 배터리가 다 되어 성능이 떨어지거나 사용시간이 짧아지는 것이 정상인가? 자동차 회사의 대응 방식을 따른다면 얼마의 기간을 보증하여야 할까? 저가의 멀쩡한 소형기기를 배터리가 오래되었다고 폐기해야 하나? 배터리의 수명이 곧 기기의 수명이 되는 것이 타당한가?

모바일 기기 제조사는 지구의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소비자의 불만을 가져오지 않으며 제조사의 부담이 커지지 않는 현명한 대응 방안이 필요할 듯하다.

*정철환 팀장은 삼성SDS,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부제철 IT기획팀장이다. 저서로는 ‘SI 프로젝트 전문가로 가는 길’이 있으며 삼성SDS 사보에 1년 동안 원고를 쓴 경력이 있다. 한국IDG가 주관하는 CIO 어워드 2012에서 올해의 CIO로 선정됐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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