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1

박준영 칼럼 | 고기 좋아하세요?

박준영 | CIO KR
고기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마블링이 그득한 등심도 있지만 투박하게 썰어놓은 삼겹살도 야들야들한 보쌈도 저만 빼고 먹다가 미안한 마음에 남겨놓은 고기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맛있는 고기라도 혼자 먹기는 겁이 나는지 스무 살 때부터 고기를 직접 구워왔다는 나름의 핑계를 대면서 사람들과 함께 고기를 나누어 먹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들과 고기를 함께 나누어 먹는’ 장면을 수 만 년 전으로 옮겨봅니다. 아프리카 넓은 평원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젓가락도 포크도 없이 손과 이빨로 뼈에 붙은 갈빗살을 발라먹고 이빨 사이 낀 고기를 보며 서로 웃는 조상들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냉장고도 없고 뗀석기 말고는 별다른 사냥도구도 없을 때 고기는 참 귀중한 먹을거리였겠죠. 붉은색의 고깃덩이, 비릿한 피의 냄새는 요즘말로 ‘레어아이템’이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DNA는 만년마다 바뀔 수 있는데 조상님과 우리의 DNA 차이는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기를 아직도 좋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절을 상상하는 이미지는 수염을 기른 백인 남성들이 죽창이나 뗀석기, 혹은 동물의 뼈를 들고 사냥하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중심으로 귀중한 음식은 힘센 남자들이 사냥했다는 남성사냥꾼 가설(man hunter theory)이 통용됐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을 연구하는 학자는 놀라운 장면을 발견했습니다. 옛날 모습을 그 지역에서 주로 먹을 거리 90%이상을 여성들이 땅에서 열매, 곡식을 채집해서 얻었다는 결과였습니다. 이를 여성 채집자 가설(woman gatherer theory)이라고 합니다. 단지 10%정도만 한 달에 한 번쯤 겁이 잔뜩 난 남성들이 온몸을 나름 무섭게 색칠하고 괴성을 질러 몰려다니다 피튀기는 싸움을 이겨내고 약한 초식 동물이나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와서 생색내기를 했던 것이죠. 사냥은 먹을거리보다는 의례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가설에 고개를 끄덕여지세요?


이미지 출처: https://www.ibiblio.org/ahkitj/wscfap/arms1974/Regl_womens_prog/Women%20and%20Men%20in%20Partnership/05e%20Historical%20Analysis.htm

한 술 더 떠 인간은 넝마주의(scavenger theory), 곧 평원의 쓰레기 청소부였다는 가설도 제기되었습니다. 그 증명에는 기술의 역할이 컸는데요. 조상들 거주지의 동물 뼛조각을 분석해보니 뗀석기로 뼈에 낸 상처보다 동물의 이빨 자국이 더 먼저 났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말하자면 맹수가 동물을 사냥하고 배불리 먹은 뒤에 인간들이 해질녘, 새벽녘에 남은 고기나 뼛속 골수를 먹어치웠다는 것이죠. 갈빗살이 맛있다거나 사골국물이 진국이라고 하는 저를 보면서 넝마주의 가설에 흠칫 솔깃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기존 학계에서는 ‘어떻게 인간을 청소부 취급을 할 수 있으냐?’며 그 가설을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여간 껄끄러웠던 것이죠.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보면 더 그런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지금 도시인들처럼 임금노동을 하기 전에는 농촌에서 가사일이며 식량을 수확하는 일이며, 온가족이 해야할 일이 적지 않았죠. 해뜨면 아침에 나와 농사일하다 점심때 새참에 고봉으로 쌓은 밥 한 공기, 풋고추 몇 개, 김치 반포기에 막걸리를 나누다가 해지기 전에 들어갔습니다. 하루 소출에 감사하는 그림을 보며 ‘왜 더 벌지 않고 더 욕망하지 않느냐?’를 물어보고도 싶지만 그 때는 전등불이 없어 더 이상의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겨울이면 배가 고프기는 하지만 자연의 리듬에 맞게 농사일 없이 견디며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 <이삭줍는 여인들> 와 <만종>


구석기에서 신석기, 곧 자연물을 사냥하거나 채집해서 먹을 것을 얻던 시대에서 자연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던 시대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를 신석기혁명 혹은 농업혁명이라고도 합니다. 이주민이 아닌 정주민이 되었습니다. 과연 그 시절에 한 곳에 머무르는 선택은 윤택함을 만들었을까요? 연구에 따르면 신석기 혁명 시기에 갑작스럽게 사람들 평균 신장,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고, 고된 농사일로 한 쪽 팔이 휘어진 유골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한 곳에 머물다 보니 맹수의 습격이 잦았을 것이고 고인 물처럼 병충해도 발생했을 것 입니다. 소출이 형편없는 농작물을 기르다보니 배도 많이 고팠을 겁니다. 노동권 의식은 물론 근무요건에 대한 협상도 없었기에 우두머리를 제외한 사람들은 참 힘든 계절을 버티고 살아야 했습니다.

산업혁명 시기에 기계를 없애버리자며 일어났던 러다이트 운동도 유사한 결과입니다. 어떠한 혁명의 시기마다 그 시절을 감내하고 겪어내야 하는 저와 같은 뭇사람들 삶에는 주름살이 드리워집니다. 요즈음 네 번째 산업혁명 이야기가 들립니다. 직종에 따라서 살갗으로 느껴지기도 먼 훗날로 잡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또 어떠한 삶의 모습이 그려질까요. 과학과 기술이 그려왔던 청사진은 어떻게 삶의 터전에서 펼쳐질까요. 스마트폰으로 시공간 구분 없이 정보 접속을 가능해졌지만 내 옆에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보다 스마트폰의 열기만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행기로 혹은 구글어스로 수많은 여행지는 다니거나 볼 수 있지만 내 옆집 누가 사는지 몰라서 철통같은 보안시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행지를 다닐 때 셀카봉을 들지 않는 편인데요.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얻는 마주침에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발달은 어떻게 해서 한 인간의 개별성을 지켜내며 또 다른 공동체로 총체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요? 말하자면 혼자 혹은 더불어 사는 풍요로운 삶은 가능할까요?

철학에서는 언어의 통약불가능성을 이야기 했습니다. 말하자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라 완벽히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한 사람을 단순히 ‘무엇’이라 정의내릴 수 없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글쓰기 전의 저와 글 쓴 후 저는 조금이나마 차이가 있습니다. 저를 30대 직장경력 10년의 여행자, 인문대 박사과정 등등, 무엇이라 규정하는 것도 불쾌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규정되었다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라며 스스로를 채근합니다. 그러나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잠들기 전 몇 분, 주말에 창문을 열며 오랜만에 햇빛을 보고, 가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생각해 볼 것은 수많은 논리나 정의가 아닌 판단중지와 그저 바라보기인 것은 아닐지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채집, 농사, 그리고 기계, 인공지능으로 오늘을 모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냥꾼, 채집자 및 넝마주의 가설, 신석기 혁명 연구에서 기술은 특별한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관습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고 새로운 생각의 장을 열었습니다. 그 시절을 겪어온 사람들은 단 하나의 역사적 물줄기가 아닌 각기 소중한 바람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채식주의자도 여행자도 방안퉁수도 나름의 삶을 살겠죠. 수 많은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닌 오롯한 한 존재로 말이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문화인류학자 박준영씨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연구원, 인사팀 과장으로 근무하고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연세대학교 공학, 경제학석사를 졸업하고 문화학/인류학 박사과정 중이다. 기술과 인문, 예술이 만나는 장면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관련 강의와 저술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walker80/)를 운영 중이다. ciokr@idg.co.kr
 
2017.08.11

박준영 칼럼 | 고기 좋아하세요?

박준영 | CIO KR
고기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마블링이 그득한 등심도 있지만 투박하게 썰어놓은 삼겹살도 야들야들한 보쌈도 저만 빼고 먹다가 미안한 마음에 남겨놓은 고기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맛있는 고기라도 혼자 먹기는 겁이 나는지 스무 살 때부터 고기를 직접 구워왔다는 나름의 핑계를 대면서 사람들과 함께 고기를 나누어 먹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들과 고기를 함께 나누어 먹는’ 장면을 수 만 년 전으로 옮겨봅니다. 아프리카 넓은 평원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젓가락도 포크도 없이 손과 이빨로 뼈에 붙은 갈빗살을 발라먹고 이빨 사이 낀 고기를 보며 서로 웃는 조상들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냉장고도 없고 뗀석기 말고는 별다른 사냥도구도 없을 때 고기는 참 귀중한 먹을거리였겠죠. 붉은색의 고깃덩이, 비릿한 피의 냄새는 요즘말로 ‘레어아이템’이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DNA는 만년마다 바뀔 수 있는데 조상님과 우리의 DNA 차이는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기를 아직도 좋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절을 상상하는 이미지는 수염을 기른 백인 남성들이 죽창이나 뗀석기, 혹은 동물의 뼈를 들고 사냥하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중심으로 귀중한 음식은 힘센 남자들이 사냥했다는 남성사냥꾼 가설(man hunter theory)이 통용됐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을 연구하는 학자는 놀라운 장면을 발견했습니다. 옛날 모습을 그 지역에서 주로 먹을 거리 90%이상을 여성들이 땅에서 열매, 곡식을 채집해서 얻었다는 결과였습니다. 이를 여성 채집자 가설(woman gatherer theory)이라고 합니다. 단지 10%정도만 한 달에 한 번쯤 겁이 잔뜩 난 남성들이 온몸을 나름 무섭게 색칠하고 괴성을 질러 몰려다니다 피튀기는 싸움을 이겨내고 약한 초식 동물이나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와서 생색내기를 했던 것이죠. 사냥은 먹을거리보다는 의례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가설에 고개를 끄덕여지세요?


이미지 출처: https://www.ibiblio.org/ahkitj/wscfap/arms1974/Regl_womens_prog/Women%20and%20Men%20in%20Partnership/05e%20Historical%20Analysis.htm

한 술 더 떠 인간은 넝마주의(scavenger theory), 곧 평원의 쓰레기 청소부였다는 가설도 제기되었습니다. 그 증명에는 기술의 역할이 컸는데요. 조상들 거주지의 동물 뼛조각을 분석해보니 뗀석기로 뼈에 낸 상처보다 동물의 이빨 자국이 더 먼저 났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말하자면 맹수가 동물을 사냥하고 배불리 먹은 뒤에 인간들이 해질녘, 새벽녘에 남은 고기나 뼛속 골수를 먹어치웠다는 것이죠. 갈빗살이 맛있다거나 사골국물이 진국이라고 하는 저를 보면서 넝마주의 가설에 흠칫 솔깃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기존 학계에서는 ‘어떻게 인간을 청소부 취급을 할 수 있으냐?’며 그 가설을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여간 껄끄러웠던 것이죠.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보면 더 그런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지금 도시인들처럼 임금노동을 하기 전에는 농촌에서 가사일이며 식량을 수확하는 일이며, 온가족이 해야할 일이 적지 않았죠. 해뜨면 아침에 나와 농사일하다 점심때 새참에 고봉으로 쌓은 밥 한 공기, 풋고추 몇 개, 김치 반포기에 막걸리를 나누다가 해지기 전에 들어갔습니다. 하루 소출에 감사하는 그림을 보며 ‘왜 더 벌지 않고 더 욕망하지 않느냐?’를 물어보고도 싶지만 그 때는 전등불이 없어 더 이상의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겨울이면 배가 고프기는 하지만 자연의 리듬에 맞게 농사일 없이 견디며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 <이삭줍는 여인들> 와 <만종>


구석기에서 신석기, 곧 자연물을 사냥하거나 채집해서 먹을 것을 얻던 시대에서 자연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던 시대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를 신석기혁명 혹은 농업혁명이라고도 합니다. 이주민이 아닌 정주민이 되었습니다. 과연 그 시절에 한 곳에 머무르는 선택은 윤택함을 만들었을까요? 연구에 따르면 신석기 혁명 시기에 갑작스럽게 사람들 평균 신장,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고, 고된 농사일로 한 쪽 팔이 휘어진 유골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한 곳에 머물다 보니 맹수의 습격이 잦았을 것이고 고인 물처럼 병충해도 발생했을 것 입니다. 소출이 형편없는 농작물을 기르다보니 배도 많이 고팠을 겁니다. 노동권 의식은 물론 근무요건에 대한 협상도 없었기에 우두머리를 제외한 사람들은 참 힘든 계절을 버티고 살아야 했습니다.

산업혁명 시기에 기계를 없애버리자며 일어났던 러다이트 운동도 유사한 결과입니다. 어떠한 혁명의 시기마다 그 시절을 감내하고 겪어내야 하는 저와 같은 뭇사람들 삶에는 주름살이 드리워집니다. 요즈음 네 번째 산업혁명 이야기가 들립니다. 직종에 따라서 살갗으로 느껴지기도 먼 훗날로 잡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또 어떠한 삶의 모습이 그려질까요. 과학과 기술이 그려왔던 청사진은 어떻게 삶의 터전에서 펼쳐질까요. 스마트폰으로 시공간 구분 없이 정보 접속을 가능해졌지만 내 옆에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보다 스마트폰의 열기만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행기로 혹은 구글어스로 수많은 여행지는 다니거나 볼 수 있지만 내 옆집 누가 사는지 몰라서 철통같은 보안시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행지를 다닐 때 셀카봉을 들지 않는 편인데요.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얻는 마주침에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발달은 어떻게 해서 한 인간의 개별성을 지켜내며 또 다른 공동체로 총체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요? 말하자면 혼자 혹은 더불어 사는 풍요로운 삶은 가능할까요?

철학에서는 언어의 통약불가능성을 이야기 했습니다. 말하자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라 완벽히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한 사람을 단순히 ‘무엇’이라 정의내릴 수 없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글쓰기 전의 저와 글 쓴 후 저는 조금이나마 차이가 있습니다. 저를 30대 직장경력 10년의 여행자, 인문대 박사과정 등등, 무엇이라 규정하는 것도 불쾌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규정되었다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라며 스스로를 채근합니다. 그러나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잠들기 전 몇 분, 주말에 창문을 열며 오랜만에 햇빛을 보고, 가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생각해 볼 것은 수많은 논리나 정의가 아닌 판단중지와 그저 바라보기인 것은 아닐지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채집, 농사, 그리고 기계, 인공지능으로 오늘을 모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냥꾼, 채집자 및 넝마주의 가설, 신석기 혁명 연구에서 기술은 특별한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관습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고 새로운 생각의 장을 열었습니다. 그 시절을 겪어온 사람들은 단 하나의 역사적 물줄기가 아닌 각기 소중한 바람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채식주의자도 여행자도 방안퉁수도 나름의 삶을 살겠죠. 수 많은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닌 오롯한 한 존재로 말이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문화인류학자 박준영씨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연구원, 인사팀 과장으로 근무하고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연세대학교 공학, 경제학석사를 졸업하고 문화학/인류학 박사과정 중이다. 기술과 인문, 예술이 만나는 장면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관련 강의와 저술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walker80/)를 운영 중이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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