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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FBI의 '아이폰 만능열쇠' 요구가 뇌순남스러운 이유

2016.02.23 Rob Enderle  |  CIO


아무리 좋게 말해도 필자는 애플의 팬이 아니다. 10년 넘게 애플 제품을 단 한 번도 구매해 본 적 없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필자가 애플의 입장을 변호하는 글을 쓰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애플과 FBI가 빚는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애플이나 팀 쿡에 대한 개인적 의견은 각자가 다를 수 있다 해도, FBI가 모든 아이폰을 제집 드나들듯 열 수 있는 사실상 '마스터키'를 손에 넣는 것에는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해서 결국 미국 내 모든 IT 기기를 정부 기관이 마음대로 열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해외 경쟁사는 반길지 몰라도 미국 내 소비자에겐 나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미 정부의 간단한(?) 요청
언뜻, 미국 정부의 요청은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인다. 잠금 해제 비밀번호를 몇 차례(보통 약 11회가량) 잘못 입력해도 내부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툴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4자리 비밀번호로는 약 1만 가지 조합이 가능하며, 적당한 기술을 쓰면 약 4,000회 시도해 비밀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은 자동으로 진행되고 불과 몇 시간 내에 끝난다.

그러나 현재 아이폰에 이런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이폰의 소스 코드를 알아내고, 사용자 동의 없이 휴대전화를 업데이트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즉 FBI가 요구하는 '모든 아이폰에 접근 가능한' 마스터키를 만들 수 있는 건 애플뿐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문제는 '모든' 아이폰이라는 부분이다.

이 키가 일단 세상에 나오면 아이폰을 쓰는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아이폰을 사용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자녀도 포함된다). 게다가 이 문제가 이미 이만큼 논쟁거리가 되었으니 세상 사람들 몰래 비밀리에 마스터키를 제작할 수 있을 리 없다.

이 키는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가리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과 FBI 요원을 포함한 정부기관 종사자, 기업의 CEO와 노동자, 일반 가정의 자녀와 부모, 경찰관 등 예외는 없다. 이런 마스터키가 암시장에 나온다면 천문학적인 가격에 매매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각종 범죄 조직은 둘째치고, 러시아나 중국 정부에서는 얼마를 내더라도 이를 손에 넣으려 할 것이다.

일단 세상에 나오면 이 키를 안전하게 지킬 방법은 없다. 이 마스터키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잠재적으로 모든 아이폰 사용자의 보안을 위협하는 툴의 탄생을 옹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책임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 아이폰 사용자가 입을 잠재적 피해액은 수십, 수백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 범죄 혐의가 있는 극소수 정보를 얻겠다고 이런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나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인물과 그의 부인은 이미 자신의 휴대전화를 폐기했지만 그중에서도 아이폰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이겠나? 그 아이폰에는 수사기관에서 봐도 상관없는 정보만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정부에서 이 휴대전화를 열람해야만 하겠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으니 이미 이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했던 인물이 있다 해도 꼬리를 자르고 도망갔을 것이다. 테러 관련 정보가 있다 해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사실상 정보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지 오래일 것이다.

정리해 보면, 이 아이폰에 뭔가 가치 있는 정보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어떤 유의미한 정보가 있었다 해도 지금쯤이면 이미 그 가치가 사라져버리고 없을 것이다. 즉, 문제의 아이폰에 저장된 정보의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FBI는 그 가치도 의심스러운 약간의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툴을 만들라고 애플을 압박하는 것이다. 도저히 합리적인 요구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며 특히 그것이 시민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할 정부 기관의 요청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 자체는 그저 빌미나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FBI가 애플에 마스터키를 만들라고 하는 것은 일단 이것이 있기만 하면 어떤 목적으로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이런 마스터키가 존재한다면 어떤 아이폰도 정부의 사용 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테러 단체를 향한 미끼?
아이폰 보안을 우회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유일한 조직은 애플이다. 하지만 이는 일반 사용자에게도, 또 아이폰 사용자가 많은 정부 기관에도 좋은 소식이 아니다. 아이폰 보안을 우회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사용자의 정보가 노출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미 ‘마스터키’가 제작됐으며 FBI는 이미 아이폰에 대한 접근 수단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이번 논란은 테러리스트에게 아이폰은 안전하니 사용하라고 알리기 위한 미끼라는 것이다. 하지만 테러단체 대부분이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폰보다 싼 제품을 사용한다. 물론 정부에서 아이폰을 열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더욱 아이폰 사용을 꺼릴 것이다.

결국, 필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별것 아닌 문제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부각해 애플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렇다. 이해할 수 없는 정신 나간 행동이다. '뇌가 순수한 사람(wackadoodle)'.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Rob Enderle은 엔덜 그룹(Enderle Group)의 대표이자 수석 애널리스트다. 그는 포레스터리서치와 기가인포메이션그룹(Giga Information Group)의 선임 연구원이었으며 그전에는 IBM에서 내부 감사, 경쟁력 분석, 마케팅, 재무, 보안 등의 업무를 맡았다. 현재는 신기술, 보안, 리눅스 등에 대해 전문 기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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