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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교양

인문학 | <맹자> 삼천독의 교훈

2014.05.15 김민철   |  CIO KR
옛날에 아이들을 재목으로 키워내기로 유명한 훈장님이 살았다. 그는 은퇴하고 한거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장래를 걱정한 한 아이의 아버지가 그를 찾아가 자신의 아이를 맡아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였다. 훈장님은 아버지의 정성에 감동하여 그 아이를 마지막 제자로 삼기로 하였다. 아버지는 만족하고 돌아갔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아버지는 여러 가지 귀한 음식을 싸 들고 훈장님의 집을 찾아갔다. 문 밖까지 책 읽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들이 훈장님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을 배우는지 밖에서 가만히 들어보니 천자문이었다. 아이의 청명하고 낭랑한 목소리와 훈장님의 인자하면서도 엄한 가르침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훈장님께 크게 감사하고, 아이를 격려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또 몇 개월이 지나고 아버지는 다시 음식을 싸 들고 아들을 만나러 갔다. 훈장님의 집이 가까워지자 여전히 아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렸다.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는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다시 흐뭇한 마음이 절로 감돌았다. 이번에는 무엇을 배우고 있나 궁금하여 문 밖에서 들어보니 여전히 천자문을 읽고 있었다.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천자문을 배우고 있는 것이 다소 찜찜하기는 하였지만,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훈장님의 깊은 뜻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음식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돌아갔다.

그런 일이 두어 차례 계속 반복되면서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갔지만, 훈장의 명성이 있는지라 뭐라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삭히면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느덧 2년여가 훌쩍 지나고 아버지가 다시 찾았을 때에도 훈장님은 여전히 아들에게 천자문을 읽히고 있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는 “유명한 선생이라더니 다 거짓이었구려. 남의 자식을 망칠 요량이요? 도대체 언제까지 천자문만 읽힐 셈이요? 명심보감, 소학, 사서삼경, 자치통감, 사기 등등 공부해야 할 거리가 얼마나 많소?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소. 아이를 데려가겠소”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훈장님이 잠시 진정하라는 손짓을 한 뒤, 이런저런 책들을 꺼내 아이에게 읽도록 하였다. 처음 읽는 책이지만 아이는 거침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여준 훈장님은 “이제 당신의 뜻대로 아이를 데려가시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제야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며, “제 속이 좁았습니다. 아이를 계속 맡아주십시오”라고 애걸했지만, 이미 돌아선 훈장님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언제 누구에게서 들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이 이야기가 내 가슴 깊이 남아 있는 것은 그것이 주는 커다란 교훈 덕분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본, 그리고 그것을 익히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인내와 끈기의 중요성이다. 정말로 운이 좋아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같은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그러한 인내와 끈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커다란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타고난 자질 덕이며, 자신들은 애초에 그런 것을 꿈도 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눈을 다시 돌려 주변을 잘 둘러보기만 해도 그것은 전혀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수영을 접할 기회가 없어 맥주병이던 내가 30세에 다리를 다쳐 다른 운동을 못하게 된 것을 계기로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하였다. 워낙 운동에 자신이 있던 터라 2~3개월이면 그럴싸하게 수영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내 모습을 꿈꾸면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완전 초급반에 들어갔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나는 꼴찌였다. 호흡은 물론이거니와 발차기를 하면서 팔을 한 바퀴 돌리는 것조차도 전혀 되지 않았다. 주로 연세 드신 아주머니들로 이루어진 30명의 클래스에서 꼴찌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창피했을 뿐 아니라 좌절감에 빠져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상담도 받아보았다. 한 친구는 “천 명 중에 한 명은 태생적으로 수영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더라. 그것이 너인가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개인교습을 받아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버텨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때까지도 그랬지만,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강습에 나갔다. 상갓집에 가서 밤을 세고 온 날은 집에 들어가면 마음이 흐트러질까 두려워 창문을 두드려 수영복을 달라고 해서 강습에 나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매일 강습 시작 1시간 전에 수영장에 가서 유아풀에서 발차기 연습을 했다. 호흡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곳이 내게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목표는 유아풀 한 쪽 끝에서 반대편까지 쉬지 않고 가는 것이었다.

그런 생활을 한 지 한 달 여가 지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1~2등을 다투게 된 것이다. 물론 인내와 노력을 통한 수영 실력의 향상도 큰 몫을 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30명 가운데 20여 명이 그 사이에 그만둔 것이다. 이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2년 가까이 열심히 연습한 결과는 쉬지 않고 수영장을 100번 왕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경험은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이제와 생각해 보면 길지도 않고 별로 이룬 것도 없는 삶이지만, 내가 뭔가를 성취한 것이 있다면 성급해하지 않고 목표에 이르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 결과였다. 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인내심을 가지고 1년 이상 학원에 다니고 과제를 수행한다면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고, 다이어트를 하고자 하는 사람도 계획을 1년 이상 실천한다면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다. 심지어는 혼자서 산을 옮기는 일조차도 쉬지 않고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음을 ‘우공이산’이라는 고사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인생의 많은 일에서 실패하는 원인은 조급증과 노력의 부족이다. 로스쿨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로서는 매년 너무나 안타까운 일들을 목격하곤 한다. 길어야 8개월 여 시험을 준비하면서, 두세 달이 지나면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보다는 비법을 가르쳐준다는 강의를 찾아 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따라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다가는 “내가 그 시험 준비해 봤는데, 공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구. 그냥 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기적의 다이어트 제품’을 이것저것 복용해보다가 자신은 태생적으로 다이어트가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몇 년 전 장인어른이 골프를 처음 시작할 때의 일이다. 사위가 프로급의 실력을 가졌고, 사설 단체이긴 하지만 실제로 프로 자격증도 두 개나 땄으니 있으니 당연히 사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나는 기본부터 차근차근 가르쳤고, 3개월여가 지나자 장인어른은 상당한 실력에 이르렀다. 그대로 계속 노력한다면 1년 정도면 싱글에 진입하고, 사설 단체 프로 자격증 정도는 취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또 그런 생각을 전달하여 용기를 북돋아드렸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장인어른이 나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것만 바꾸면 금방 싱글 되요”라는 ‘비책’을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혹한 것이다.

소를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법이다. 공자도 “삼군을 거느리는 장수의 목을 벨 수는 있지만, 필부필부의 마음을 빼앗을 수는 없다”라고 했다. 이미 마음이 떠난 바에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멀찍이 물러나 지켜보았다. 가끔 다시 가르침을 청하시기는 했지만, 나는 최소 몇 개월 이상 연습해야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니 다시 ‘비책’을 찾는 여정으로 돌아가시곤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제자리걸음 내지는 퇴보를 거듭하던 장인어른에게 뭔가 깨달음이 온 듯하다. 정말로 진지하게 가르침을 청하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면서 상당한 진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김연아나 박태환 같이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이는 사람들조차도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 어쩌면 진정한 천재성이란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에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인내와 노력일지도 모른다. 나와 같이 동양학, 그 가운데에서도 중국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한문이라는 언어의 벽에 부딪히곤 한다. 사어(死語)인데다, 지역과 시기에 따라 문법과 용례가 달라지는지라 여간 곤혹스런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한 가지 전설을 들을 적이 있다. <맹자>를 삼천 번 읽으면 문리(文理)가 트이면서 하늘에서 뚝 소리가 나는 것을 듣게 된다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스승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제자가 몇 년에 걸쳐 삼천 번을 읽었는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자 격분하여 스승에게 편지를 썼다. 스승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명문이로다!”라는 것이었다.

유학자들은 예로부터 자신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것을 건너뛰고 지름길로 가고자 하는 행위를 ‘엽등(獵等)’이라 하여 경계해 왔다. 이른바 ‘한 큐에’ 뭔가를 성취하려는 사람이 성공을 거둔다면 그것은 요행에 불과하다. 반면 서두르지 않고, 기초적이고 중요한 것을 꾸준히 해 나가는 노력은 언제나 보상을 받게 되어 있다. <맹자> 삼천독의 교훈은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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