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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O / 인문학|교양

인문학 | 골프와 자기 수양

2013.10.15 김민철  |  CIO KR
골프라는 운동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기 수양의 과정이라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다른 운동은 대부분 성공 확률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축구에서는 90분 동안 수십 번의 슈팅 가운데 2~3번의 골만 들어가도 관중이 환호하고, 야구의 경우 10번 타석에 타와 50개가량의 공을 상대하다가 3번만 잘 쳐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으며, 농구를 하더라도 10번 슛을 시도하여 3~4차례만 성공하여도 잘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골프는 그와 정 반대다. 실수를 줄여야 하는 운동인 것이다. 한 게임을 하면서 70여 차례의 플레이를 진행하는 도중 3~4차례의 실수만 범하여도 좋은 점수를 기록할 수 없다. 멋진 플레이가 많이 나오기보다는, 치명적인 실수를 안 하는 것이 성공적으로 경기를 이끌어가는 최선의 방책인 것이다.

하수와 고수,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하수들은 경기에 나가 몇 차례의 “나이스 샷”이 나오면 매우 만족해하며 그 날 경기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고수 혹은 프로들은 한 두 차례의 실수가 나온 날은 경기를 망쳤다며 스스로를 자책하곤 한다. 하수들은 드라이버 티샷을 10번 하여 1번 220m의 비거리를 기록하면, 자신의 장타 능력을 과시하며, 그것이 자신의 평균 비거리라 자랑하지만, 고수들은 250~260m의 티샷을 날릴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욕심을 버리고 230~240m의 비거리를 구사하여 페어웨이 안착률을 높이고자 노력한다.

하수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이 펼친 멋진 플레이를 자랑하지만, 고수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 자체를 자랑스럽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그 전에 실수를 이미 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수들은 트러블 상황에 처했을 때 환상적인 샷으로 즉각 만회하고자 하지만, 고수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모험을 피하여 안전한 샷을 통해 한 타를 잃는 것에서 만족한 후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한국 골퍼들의 상황은 더욱 심하다. 전 세계적으로 평균 70대 타수의 싱글 골퍼는 1%에 불과하며, 80~90대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13%, 나머지는 100타를 넘긴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골퍼들은 5%가 싱글 골퍼라 말하고, 25%가 평균 80대의 플레이를 자처하며, 100타를 넘기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일반인 남자 골퍼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180~190m정도인데, 우리나라 남성 골퍼들은 자신이 평균 230~240m의 비거리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내가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300미터 정도 나가지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잘 맞아야 240m 정도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럴 리가 있나요? 제가 240미터 정도 나가는데요?”라고 반문하곤 한다. 일반 아마추어 골퍼들과 함께 플레이를 해 보면, 적게는 20~30m, 많게는 60~70m까지 차이가 나는데도 말이다. 나는 “PGA 탑 클래스의 프로들도 300m를 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PGA 프로들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가 260m 정도이고, 한국 프로들은 당연히 그보다 좀 짧습니다”라고 차근차근 자세히 설명을 해도 믿지를 않는다. 그 다음부터는 그냥 우기거나 자리를 뜬다.


실제로 평균 90개 정도를 기록한다는 사람과 룰에 따라 플레이를 해 보면 105~110개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장인•장모님도 1년 전까지 당신들이 80대 플레이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와 몇 차례 함께 경기를 한 다음부터는 “우리는 백돌이야. 사람들은 왜 점수를 그리 올리려 하는지 몰라. 그래서 뭐하려구? 재미도 없고”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우리나라 골퍼들은 캐디에게 은근히 압박을 준다. “우리는 싱글이야. 일단 첫 홀은 다 파로 적고, 알아서 잘 적어 봐”라고 말이다. OB가 나면 벌타를 몇 점 받는지, 어디에서 쳐야 하는지조차도 잘 모르고, 그린에서는 스스로 컨시드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나서도 스코어가 좋지 않으면 캐디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반대로 프로들은 캐디가 점수를 올려 적으면 불쾌해한다.

자신의 상황을 잘 모르니 남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연습을 하다 보면 가끔 내게 레슨을 자처하는 분들이 있다. 아마도 내가 연습장에 갈 때 골퍼다운(?) 복장을 갖추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수는 상수가 얼마나 상수인지 모르지만 상수는 하수의 수준을 금방 알아보는 법이다. 얼핏 보아도 나와 최소 20~30점은 차이가 나는데도 티의 높이를 조절해주고, 직접 팔을 잡아가며 침을 튀어 그냥 웃고 말 수밖에 없게 만들곤 한다.

사실 골프가 어려운 것은 몸의 본능적 움직임에 역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윙을 할 때 팔꿈치는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 방향으로 굽어야 올바로 타구할 수 있다. 또한 공을 앞에 두면 공을 세게 때리기 위해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좋은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몸에서 가장 큰 근육인 허리의 운동을 통해 스윙의 아크와 스피드를 최대화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스윙의 후반 스피드가 빨라야 한다. 힘을 후반에 쓰기 위해서는 초반에 속도를 줄이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골프가 왜 자기 수양을 닮았다고 하는가? 동양에서는 인격적 수양이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성인은 완벽한 판단력과 실행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인격 완성자의 상징인 공자에 따르면 훌륭한 인격자의 기준은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하지 않으며,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인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할 수는 없다. 게다가 수양이라는 것이 인생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임을 감안하면, 젊은 시기의 실수란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공자는 지인의 하인에게 그 사람의 안부를 물었을 때 “그 분께서는 실수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계십니다”라고 말하자 “어떻게 그런 경지에 이를 수가 있을까?”라고 감탄하며 존경의 마음을 표하였으며, 스스로에 대해서는 “(평생 동안의 인격 수양을 통해)70세에 들어서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라고 말하였다.

타인을 배려하는 인격 수양이란 대체로 이기적인 본성에 역행하여 심사숙고한 후 행동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야근 후 파김치가 되어 요행히 지하철 빈자리에 앉았을 때 임산부나 노인을 볼 경우, 눈을 감고 자는 척 하고 싶은 본능적인 마음을 누르고 그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내이고 부모임을 스스로에게 일깨운다면 자리를 양보할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본능을 거스르는 이러한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 도덕적 행위가 훨씬 수월해지는 단계를 넘어 궁극적으로는 그로부터 더 큰 만족을 느끼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심사숙고와 인내를 통해 안으로 굽기 마련인 팔꿈치를 밖으로 굽히도록 노력하고, 빨리 휘둘러 치고자 하는 마음을 다잡아 보다 커다란 시야로 몸의 균형 잡힌 운동을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하지만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해서 여름이 온 것은 아닌” 것처럼, 훌륭한 행동을 한두 번 했다고 해서 인격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격 완성이란 인생 전반에 걸친 끊임없는 수양 끝에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1%의 싱글골퍼를 넘어 0.01%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매일 피나는 훈련이 필수적인 것처럼 말이다.

싱글에 진입하여 퍼팅의 중요성을 인식한 후, 퍼팅 연습 매트를 사다가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 100개 성공을 목표로 하되, 실수가 나오면 점수를 2점씩 마이너스 하는 식이었다. 스스로에게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해야만 진보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걸리던 연습이 실수를 줄이고 또 줄여 몇 달 후에는 1시간 정도 안에 끝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연속 100개를 넣을 때까지 하되, 실수를 하면 처음부터 다시 하는 식으로 연습을 하였다. 그런 식으로 연습을 한 지 2년여가 지나서, 연속 1,000개를 성공할 수 있었고, 그 후에는 하루에 연속 50개를 넣는 것으로 연습을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요즘도 가끔씩은 실수를 범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곤 한다. 물론 두 번의 과정을 거쳐봤자 20분가량이 소요될 뿐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오랜 연습과 피나는 반복에도 실수를 할 수밖에 없음은 인간의 조건임을 깨닫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더 겸손해야 함을 다짐하곤 한다.

스윙을 연습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클럽 당 연습 개수를 정해 놓고, 실수가 나오면 점수를 빼되, 그런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준비 자세부터 어떤 동작에 집중해야 하는지 심사숙고하여, 서둘러 힘껏 치고자 하는 내 몸의 욕구를 억누르고 전반적인 균형을 잡는 데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여전히 실수는 불가피하며, 다시 겸손과 인내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공자는 인격 완성자가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티를 내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많이 가진 것은 돈일 수도 있고, 실력일 수도 있으며, 인격 수양의 결과일 수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골퍼들은 실력 이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대접받기를 원하지만, 수양 혹은 실력이 어느 경지를 넘어서면 저절로 바뀌게 된다. 과거 한 중소단체 티칭프로와 동반 플레이를 하는데, 그분이 비거리에 대해 고민하기에 “그 정도면 플레이하기에 충분하십니다”라고 말했더니, “아닙니다. 허리가 뽀솨지게 휘둘러도 200m밖에 안 나가는걸요.”라고 말하여 서로 웃은 적이 있다.

연습을 하노라면 “몇 타나 치세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사실 골퍼에게, 특히 프로골퍼에게 그런 질문 자체가 실례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궁금증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마도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골퍼다운(?) 복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들이 진정 나를 프로골퍼라고 생각했다면 저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아직은 많이 부족하구나”라고 말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유학의 갈림길’이라는 두 권의 전문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라는 대중 교양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저술과 더불어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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